제인이 어머니로부터 물려받은 가장 큰 자산은 무엇보다 자신감이었다. 제인은 어머니-외할머니로 이어지는 모계 집안에서 자랐는데, 어릴 때부터 “여자아이니까 안돼” 하는 말은 들어보지 못했다고 한다. 특히 어머니는 “진정 원하는 것을 찾아라. 찾았다면 최선을 다해 노력하라. 무엇보다 포기하지 말라”고 가르쳤다. 외할머니 대니 역시 의지와 자제력이 강한 사람이었다. 제인의 어머니와 할머니는 하숙을 치며 생활비를 벌었다.
남달랐던 동물 사랑
될성부른 나무는 떡잎부터 알아본다는 속담은 그에게 딱 들어맞는다. 제인은 첫돌 때 아버지가 사준 아이만한 크기의 침팬지 봉제인형에 푹 빠진다. 또 어린 시절부터 시골생활을 하면서 자연에 묻혀 살다보니 새와 동물, 꽃과 나무와 친근해졌다.
제인이 다섯 살 때 3시간 동안이나 행방불명이 되어 가족을 놀라게 했는데 알고 보니 닭장 속에 있었다. 닭이 어떻게 알을 낳는지 알고 싶어 닭장 안에 들어가 알 낳는 것을 볼 때까지 나오지 않은 것. 제인은 1988년에 출간한 아동용 전기 ‘침팬지와 함께한 나의 인생’에서 당시를 이렇게 회상했다.
“닭장 안은 몹시 후텁지근했다. 지푸라기가 다리를 간질였다. 어두컴컴했지만 짚으로 만든 둥지 위에 앉아 있는 닭을 볼 수 있었다. 닭은 닭장 건너편, 나에게서 1.5m 정도 떨어진 곳에 있었다. 내가 있다는 것을 전혀 눈치 채지 못하고 있었다. (…) 그러더니 어느 순간 암탉이 짚더미 속 둥지에서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나에게 등을 보인 채 몸을 앞으로 숙이고 있었다. 잠시 후 닭의 다리 사이에서 둥글고 하얀 물체가 서서히 나오기 시작했다. 그것은 점점 커졌다. 갑자기 닭이 가볍게 몸을 흔들었고, 흰 물체가 ‘퐁’ 하고 짚 위에 떨어졌다. 닭은 기쁜 듯 큰소리로 꼭꼭거리며, 깃털을 털고 부리로 달걀을 움직인 후 자랑스럽게 닭장에서 걸어 나갔다.”
다섯 살 때 닭장 안에서 한 이 관찰이야말로 생애 첫 번째 동물 연구 프로젝트였던 셈이다. 제인의 동물 사랑은 어릴 적부터 남달랐다. 동물이라면 사족을 못 썼고 지렁이, 지네 같은 징그러운 것들도 무서워하지 않고 신기한 관찰대상으로 삼았다. 다음은 ‘제인 구달 평전’에 소개된 어머니의 회상이다.
“딸은 여느 아이들과 많이 달랐다. 차분했고 생각이 깊고 관찰력도 좋았다. 밖에 나가 30분이 지나도 돌아오지 않으면 처음에는 걱정을 했는데 나중엔 그러려니 하게 됐다. 그러면 한참이 지나서야 발가락을 다친 개구리 같은 걸 들고 나타나곤 했다.”
진학 포기하고 비서학원 등록
큰 성취를 한 사람들은 학교라는 제도 안에 들어가서도 두각을 나타내는 경우가 있지만, 제인 구달은 반대였다. 이후 대학교육도 받지 못한 동물행동연구가로 제도권에서 인정받기까지 우여곡절이 있긴 했으나 제인은 어릴 적부터 학교와는 잘 맞지 않았다.
제인은 초등학교 시절 일기에 학교를 ‘반복되고 지루한 일상이 이어지는 끔찍한 곳’이라고 적었다. 그에게 학교는 규격화된 이성과 감성을 찍어내는 공장처럼 느껴졌다. 학교는 어린 제인의 끓어오르는 감성, 환상의 세계와 완전히 유리돼 있었다.
상급학교에 진학할수록 학교에서 하는 공부란 게 일자리를 준비하는 것에 지나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집안이 경제적으로 넉넉하지 못한 제인은 가족을 부양하기 위해 돈을 벌어야 했다. 하지만 그가 하고 싶었던 일은 당시 여학생 대부분이 선호하던 비서, 간호사, 교사와는 전혀 다른 직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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