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 아프지만 않으면요.”(김씨)
갯벌 여기저기 굴 따는 이들이 보인다. 대개 허리가 굽은 할머니들이다.
“그래도 나이 들면 힘들쥬.”(장씨)
파래 뜯기를 잠깐 만에 끝내고 새벽이를 위한 생일잔치가 시작된다. 장소는 곰섬을 향해 세워둔 트럭의 짐칸 위! 노래를 부르고 촛불을 불어 끄고 박수를 치는 것까지는 여느 모임과 같다. 그런데 케이크를 나눌 때부터는 처음 보는 풍경이 여럿 나온다. 김영자씨는 우선 케이크의 종이 상자를 사람 수만큼 착착 잘라냈다. 즉석 접시다. 아빠 장경희씨가 얼른 숲 속으로 뛰어간다. 이건 쑥대궁, 이건 익모초, 이건 버들가지! 사람마다 재질이 다른 젓가락 예닐곱 개를 순식간에 만들어 가져왔다. 생활에 필요한 것을 즉석에서 얻고 자연에서 구하는 것에 온 가족이 능숙하다. 케이크 자르던 칼을 들고 문득 새벽이가 궁리한다.
“이걸 뭐에 쓸 수 있을까요, 나무도 잘릴까요?”(새벽)
“무른 나무기만 하면!”(장씨)
“힘만 주기만 하면!”(김씨)
이 가족에게 쓰레기란 없다. 상쾌하게 손발이 척척 맞다. 뭐든 재생해서 쓸 수 있고 필요한 것을 자연에서 얻을 수 있는 삶이란 얼마나 풍요롭고 품위 있는 것인가.
엊저녁 손님 중의 하나가 새벽이에게 물었다.
“새벽이 공부 잘해?”
21세기 한국에서 어른이 아이를 보면 누구나 하는 질문이다. 대개 무심코, 별 뜻 없이 이런 질문을 던진다. 새벽이는 대답하지 못하고 우물쭈물 했다. 엄마가 대신 대답했다.
“새벽이, 공부 잘해요. 우린 어제보다 오늘이 조금 나아지는 것이 공부라고 가르쳐요. 하하.”
아빠가 거들었다.
“성적은 안 좋아도 공부는 잘하쥬. 허허.”
그림이 맺어준 인연
공부란 무엇인가. 새벽이는 닭 9마리, 거위 1마리, 고양이 2마리, 강아지 5마리를 거뜬히 통솔한다. 부모가 집을 비우면 2박3일 정도는 혼자 군불 때며 집을 건사한다. 엄마 따라 도자기도 빚고 아빠 따라 책상과 의자도 만든다. 아버지가 그렇게 자랐듯 새벽이도 그렇게 자란다. 부모는 더 이상 아무것도 요구하지 않는다. 과외도 없고 학원도 가지 않는다. 대신 칼로 나무와 흙을 빚고 산과 들과 바다에서 필요한 것을 채취하는 법을 배울 뿐!
“새벽이 나중에 뭐 되고 싶어?”
새벽이는 기다렸다는 듯 ‘시인’이라고 대답한다. 그냥 시인이 아니라 ‘농사지으면서 시를 쓰는 시인’이라고 한다. 그림을 그리면서 농사짓는 아버지처럼? 주부이면서 도자기를 빚는 어머니처럼? 그런데 모델이 따로 있단다. 나는 좀 설레ㅆ다. 심지 깊은 소년의 꿈을 만들어준 이가 누구일까.
“최은숙 선생님이요!”

초등학교 6학년 새벽이는 닭, 거위, 고양이, 강아지를 기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