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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리 로이스터 전 롯데 자이언츠 감독

‘No Fear’정신으로 꼴찌 팀 패배주의를 한 방에 날린 지도자

제리 로이스터 전 롯데 자이언츠 감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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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리 로이스터 전 롯데 자이언츠 감독
기자는 2009년 8월 대구 인터불고 호텔에서 로이스터 감독을 인터뷰한 적이 있다. 당시 불펜 투수 혹사 문제를 묻자 그는 이렇게 답했다. “오늘 경기를 이기기 위해 내일 써야 할 선수를 미리 투입한다면, 정작 그 선수가 절실히 필요한 순간에는 그를 기용할 수 없습니다. 저는 경기에서 지는 걸 두려워하지 않아요. 제가 선수들을 적재적소에 배치하기만 한다면 장기적인 관점에서 저는 분명 성공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단기 성과를 얻기 위해 장기적 계획을 바꾼다면 아무리 좋은 계획을 가져도 이를 달성할 수 없을 겁니다.”

2) 리더는 먼저 조직원에게 다가가야 한다

로이스터 감독은 한국에 오자마자 선수와 코치들의 이름을 외우는 데 상당한 시간을 할애했다. 그는 한국말을 전혀 할 줄 몰랐고, 통역이었던 커티스 정 역시 교포 출신으로 한국어가 그다지 능숙하지는 않았다. 직책은 감독이었지만 엄밀한 의미에서 그 역시‘용병’과 별반 다를 바 없는 처지였다. 하지만 로이스터 감독은 자신이 태어나고 야구를 했던 환경과 너무나 다른 한국의 문화를 이해하고 받아들이려고 노력했다.

로이스터 감독은 선수들이 자신을 허물없이 대하도록 ‘제리’라는 이름을 부르라고 주문했다. 그가 포수 강민호와 승리 후 펼치는 ‘하마 세리머니’는 로이스터가 어떤 유형의 지도자인지 잘 보여준다. 감독과 선수가 경기 후 손을 맞잡고 서로 얼굴을 들이대면서 크게 입을 벌려 소리치는 행위는 권위를 중시하는 국내 감독들이라면 상상하기 힘든 행동이다.

‘단장의 야구’가 아니라 ‘감독의 야구’를 추구하는 한국 프로야구에서 감독의 권위는 엄청나다. 유교문화의 바탕까지 더해져 선수들은 감독을 지도자이자 어버이와 같은 존재로 여긴다. 물론 여기에는 장점도 많다. 하지만 이 때문에 국내 감독들이 필요 이상으로 감독으로서의 위엄과 권위를 내세운 측면도 없지 않다.



그렇다고 해서 그가 무조건 선수들에게 편안하게 다가가기만 했던 것은 아니다. 그는 경기 후 하이파이브를 할 때는 언제 어떤 경우에라도 팀의 주장이 가장 먼저 오도록 했으며, 가끔 순서를 착각하고 먼저 나오는 다른 선수들에게 따끔하게 뒤로 가라고 이야기했다. 남보기에 매우 친밀감 있는 하마 세리머니를 같이 하는 강민호와 로이스터 감독이었지만, 사석에서는 따로 만나 사적인 시간을 가진 적이 없을 정도로 로이스터 감독은 공과 사를 엄격히 구분했다. 그는 단지 선수들이 야구를 더욱 즐겁게 하기를 원했고, 그런 목표를 위해서라면 자신의 권위가 다소 훼손돼도 상관없다는 점을 잘 알고 있는 인물이었다.

3) 리더는 직원들의 단점보다 장점에 주목해야 한다

제리 로이스터 전 롯데 자이언츠 감독
많은 국내 감독은 선수의 장점을 살리기보다는 단점을 보완하는 데 주력한다. 이와 관련, 한국 야구의 전설적 타자인 양준혁 전 삼성라이온스 선수는 2010년 8월 인터뷰에서 “한국 지도자들은 지나치게 정형화된 틀에 선수를 끼워 맞춘다. 물론 탄탄한 기초는 중요하지만 프로에 발을 담근 선수들은 그 자세에 몸이 길들어 있다. 이미 그 자세로 성공했기 때문에 프로에 와 있는 거다. 그러면 지도자가 그 선수만의 개성과 장점을 살려줘야 한다”고 말한 바 있다.

로이스터 감독은 이 점을 잘 이해했다. 그는 특정 자세나 스타일에 얽매이지 않고 선수 개개인이 지닌 장점을 최대한 끄집어내려고 애썼다. 교과서적으로만 보면 어떤 선수의 자세가 굉장히 엉성해 보이고 가망성도 없을 것 같지만 이 친구에게 어떤 부분만 추가하면 훌륭한 선수가 될 수 있다는 점에 주목했다. 일반적으로 타자가 삼진을 먹고 들어오면 한국 감독들은 조용히 해당 선수를 다음 회에 교체해버릴 때가 많다. 하지만 로이스터 감독은 결과에 상관없이 자신만의 적극적인 스윙을 했다며 해당 선수에게 박수를 쳐줬다.

투수들에게도 설사 장타를 맞더라도 두려움 없이 과감한 몸쪽 승부를 하라고 주문했다. 그는 종종 승부처에서 마운드로 올라가 다른 팀 감독과 선수들이 다 듣는데도‘인코스(In course·몸쪽 공)’을 외쳤다. 상대 타자가 그 말을 듣고 몸쪽 승부를 준비해도 전혀 상관하지 않았다. 이기던 경기를 역전당해 선수단의 분위기가 가라앉으면 “아직 경기가 끝나지 않았는데 무슨 짓이냐. 아직 우리에겐 기회가 있다”며 덕아웃을 다 부숴버릴 것처럼 불같이 화를 냈다.

불과 몇 년 전까지만 해도 경기에서 실수를 한 선수들이 감독에게 야단을 맞는 모습이 중계카메라에 잡혔던 게 한국 프로야구의 현실이었다. 명장으로 소문난 한 감독은 중계카메라가 돌아가고 있는데도 실수한 선수를 무릎 꿇게 한 후 발로 머리를 가격하기도 했다. 이런 상황에서 선수들의 실수에 박수를 쳐주는 외국인 감독의 존재는 한국 프로야구에서 그야말로 이질적이고 독특했다. 단순히 피부색과 국적이 다른 이방인이라서가 아니다. 로이스터 감독은 감독이 선수단을 장악하고 경기 흐름도 좌우하다시피 하는 한국 야구계에서 드물게 순수한 ‘즐거움의 야구’ ‘선수 스스로가 하는 자율 야구’를 추구한 감독이었다. 이게 바로 로이스터 매직의 요체다.

신동아 2011년 10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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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정민│동아일보 경제부 기자 dew@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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