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영웅에게 닥친 불치병

일찍이 알리는 ‘백인전용’ 식당의 인종차별에 격분해 올림픽 금메달을 오하이오 강물에 던져버리고, 흑인의 정체성을 위해 온몸을 던져 ‘알리의 1인 전쟁’을 벌였다. 그런데 냉전체제 속에서 반쪽짜리 올림픽 행사를 주관하게 된 미국 정부는 이슬람교도인 무하마드 알리에게 올림픽 금메달의 모사품을 만들어 증정하며 유화책을 편다.
미국 주류 언론은 알리가 스포츠 세계에 얼마나 공헌했는지, 사람들이 알리를 얼마나 사랑하는지 보여준다고 찬사를 쏟아내기 시작했다. 그런 사연으로 알리가 성화대에 점화하는 장면은 역설적이었다. 흑인의 정체성을 찾아서 그토록 치열하게 싸워온 알리가 이제는 미국의 정치와 자본을 장악하고 있는 기득권 주류세력과 타협하고 인도적인 사업에 눈을 돌리는 다른 모습을 보여준 것이다.
/ 한국 사진작가 김명중이 본 알리 /
근년에 파킨슨병을 앓고 있는 알리를 가까이서 본 사람은 알리의 전담 사진작가이던 김명중이다. 김명중에 따르면 알리는 한 마디 한 마디 떼어서 겨우 말을 하고 부축을 받아야 걸을 수 있는 상태라고 한다. 얼굴 근육은 굳어져서 탈을 쓴 것처럼 표정이 없다. 그렇게 힘든 상황이지만 눈빛이 살아 있고 정신이 맑다고 했다.
권투를 하다가 큰 주먹을 맞으면 충격 때문에 휘청댄다. 미국 사람들은 이것을 ‘펀치 드렁크’라고 말한다. 강타를 당해 술에 취한 듯 비틀댄다는 뜻인데 흔들흔들하는 ‘그로기’ 상태와 뜻이 비슷하다.
알리가 파킨슨 증후군 진단을 받은 것은 1984년이다. 파킨슨병은 뇌 신경계의 만성 퇴행성 질환으로 안정 떨림, 경직, 자세불안이 증세의 특징이다. 알리는 헤비급 선수로 수없이 싸우면서 머리가 가공할 살인 펀치에 수없이 노출되어 누적된 펀치 드렁크가 그의 뇌 신경계를 병들게 했을 것이다. 파킨슨 진단을 받은 알리는 의연하게 처신하며 꾸준히 공적인 활동을 하고 있다.
/ 부인 로니의 간병 /
알리의 네 번째 부인인 로니 알리는 파킨슨병 환자와 보호자 두 사람이 좋은 삶을 살자면 질병이 주는 스트레스를 인내하는 길뿐이라고 말한다. 21년 전 알리가 막 파킨슨병 진단을 받았을 때 두 사람은 결혼했다. 그녀는 지체 없이 알리를 간병하는 일에 뛰어들었다.
파킨슨병은 행동을 제어하는 두뇌세포가 기능을 정지하는 진행성 중추신경계의 질환이다. 이 병은 떨림·근육 경직·동작 퇴행·자세 불안정·보행 곤란 등의 증세를 보인다. 처음에 무하마드 알리는 그의 몸이 자신을 파멸시킨다는 점을 인정하지 않았다고 한다.
2. 무하마드 알리 센터
2004년 2월 알리는 단일 이벤트로는 세계 최대를 자랑하는 미국 프로풋볼(NFL) 챔피언 결정전인 슈퍼볼 경기장에 등장해서 ‘미래는 어린이들의 것’이라는 메시지를 전달했다. 그해 여름에는 메이저리그 올스타전에서 시구를 했다.
2005년 11월 9일 조지 부시 미국 대통령은 백악관에서 무하마드 알리에게 민간인 최고 훈장인 ‘대통령 자유메달’을 주고 포옹했다. 알리의 부인 로니 알리가 옆에서 지켜봤다. 부시는 9·11사태에 대한 보복으로 이슬람 국가인 이라크와 아프가니스탄을 차례로 침공한 주역이므로 ‘이슬람 민족’을 신봉하는 무하마드 알리에게 최고 훈장을 주는 것은 운명의 장난 같기도 했다. 그해 알리의 나이 63세였다.
2005년 11월 19일 건축비 8000만 달러를 들인 ‘무하마드 알리 센터’가 알리의 고향 루이빌의 오하이오 강변에 문을 열었다. 연면적 8988㎡의 6층 건물은 기념관, 문화관, 전시실, 권투 링, 타원형극장, 광장으로 이루어졌다. 뒤이어 2006년에는 알리의 이름과 문화적인 유산을 지속해서 함양한다는 취지로 ‘무하마드 알리 기업’이 설립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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