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서른 둘 젊은 나이에 한국 엔터테인먼트 산업의 리더가 된 사람. ‘야한 것이 좋은 것’임을 줄기차게 주장해온 관습 파괴자. 돈이 싫고 사업이 싫고 결혼이 싫고 독한 게 싫은데, 돈도 많고 사업도 잘하고 결혼도 했고 지독스레 고집이 센, 강준만과 정경화와 모든 ‘올바르게 일관된 인간’을 죽도록 사랑하는 로맨티스트. 그의 가슴 뚜껑 열어보기.
박진영은 스타다. 그냥 스타가 아니라 섹시 스타다. 일찍이 현란한 몸짓과 자극적인 노랫말로 대한민국 여성의 ‘몽상의 대상’이 됐다. 그는 우리나라에서 가장 많은 저작권료를 받는 뮤지션 중 하나다. 내로라하는 가수들이 그의 곡을 받기 위해 줄을 서 있다. 연 매출액 100억 원 규모의 엔터테인먼트 회사를 운영하는 전문경영인이기도 하다. god, 박지윤, 비, 별, 노을…. 이런 스타들이 그의 손에서 탄생했다. 남모를 선행으로 보건복지부장관 표창도 받았다. 차세대 모바일 콘텐츠 개발의 핵심 브레인이자, MP3(인터넷 음악파일) 유료화 문제를 놓고 인터넷 사업자들과 일대 격전을 치르고 있는 대중음악계의 대표 논객이기도 하다.
더하여, 지금 그는 또 다른 논쟁의 한가운데 있다. 새로 나온 박지윤의 음반 때문이다. 그가 작사·작곡했고, 앨범 타이틀곡으로 내세웠고, 그런데 방송3사로부터 틀 수 없다는 통보를 받았고, 아예 앨범 전체가 청소년 이용불가 판정을 받는 데 절대적 공헌을 한 노래 제목은 ‘할 줄 알어?’다. ‘도대체 뭘 할 줄 안다는 말이냐’를 놓고 요즘 저명하신 분들 사이에 공방이 한창이다. 덥다. 덥고 습한 기운은 봄의 달뜬 호흡에 치명적이다. 그를 만나고 싶지 않다.
‘주류 딴따라’의 비주류적 파격
그럼에도 발길은 어느새 청담동이다. 박진영이 운영하는 JYP엔터테인먼트 사무실로 들어선다. 5분을 채 못 기다려 그가 온다. 큰 키, 웨이트트레이닝으로 공들여 다듬은 몸매다. 회의실로 자리를 옮긴다. 얘기를 시작하려는데 분위기가 심상찮다. 조금 전 박지윤의 새 음반이 영상물등급위원회로부터 청소년 이용 불가 판정을 받았단다. 어쩔거냐고 물으니, 좀 당황스럽지만 일단 조치에 따르고 재심을 신청하겠단다.
“그래도 안 되면 소송하려구요.”
흥분할 법도 한데 오히려 좀 어둡달까, 꽤 가라앉은 표정이다. 사실 성 표현 수위와 관련한 논쟁은 그에게 생소한 일이 아니다. 1994년 데뷔 당시부터 그는 ‘지나치게 섹시한 춤, 섹시한 옷, 섹시한 가사’로 많은 공격을 받았다. 특히 2001년 6월 출반한 6집 ‘게임’은 주류 언론은 물론 네티즌과 대학생, 문화산업 종사자들 사이에 엄청난 논란을 불러일으켰다. 당시 박진영은 “‘성=즐거운 놀이’라는 시각이 왜 문제가 되느냐”며 자신의 논리를 적극적으로 펼쳤다.
그렇게 때로는 성상품화의 원흉처럼 이야기되는 그는, 또 한편으로는 독특한 결혼 생활과 가부장제에 대한 전복적 가치관, ‘강한 여성, 독립적 여성’에 대한 일관된 지향으로 페미니스트들 사이에 폭넓은 지지를 얻고 있는 보기 드문 대중 스타다. 그러니 어쩌겠는가. 피할 길이 없다. 봄날은 자꾸 간다.
-성 표현 문제는 나중에 되짚기로 하고, 먼저 옛날 얘기부터 해보죠. ‘할 줄 알어 할 수 있어/ 내가 소리를 아 지르게 만들 수 있어 / 주는 건 문제가 아닌데 감당할 수 있냐고….’ 한국 사회에서, 그것도 이른바 ‘주류 딴따라’가 이런 가사를 쓰기란 쉬운 일이 아닐텐데, 역시 미국 생활 때문인가요.
“일곱 살부터 아홉 살까지 2년9개월을 뉴욕에서 살았어요. 아버지가 그쪽 지사로 발령이 났거든요. 주로 흑인들하고 어울렸고, 아주 행복했어요.”
박진영은 1972년 1월 생이다. 1남1녀 중 둘째. 교사이던 어머니는 그를 낳은 후 전업주부가 됐다.
-부모님이 다른 집하고는 좀 달랐나봐요.
“제일 큰 차이는 너무 편하다는 거. 엄마 아빠가 어려웠던 적이 없어요. 지금도 식구끼리 있을 땐 아빠라 부르고, 엄마한테도 누구씨라 부르고 그래요. 콩가루 집안처럼 보일 수도 있는데, 아버지보다 숟가락 먼저 들면 안 된다든가 그런 규칙이 전혀 없으니까. 두 분한테는 무슨 얘기든 다 하고 못할 얘기가 없어요. 부모님 말씀이, 무슨 대단한 교육 철학이 있어서가 아니라 마음이 약해서 그러셨대요. 위험한 방식일 수도 있는데 저랑 잘 맞았죠. 아빠랑 고스톱 쳐서 용돈 땄고, 뭐든 말리는 법이 없으셨어요. 늘 ‘왜’라고 물으셨고 논리적인 대답만 할 수 있으면 무조건 믿고 맡겨 주셨죠. 그래서 말을 잘하게 됐어요.”
-미국 생활이 좋았다고요.
“네. 거기서 영향을 되게 많이 받았어요. 공부 잘해서 월반도 하고.”
-그렇게 어린애가 뭘 아나요.
“안다기보다 그냥 스며든 거죠. 삶의 자세, 정신적인 것부터 걸음걸이, 자유로운 거랑 삐딱한 시선 같은 거. 항상 흑인들에 둘러싸여 있었고 걔들이랑 길에서 카세트 매고 춤추고…. 너무 잘 맞았어요. 지금도 흑인들과 있으면 편해요.”
-어떤 면이 잘 맞았죠.
“감정 기복이 큰 거요. 금방 웃다 또 우울하다, 그렇게 안과 밖의 기복이 큰 게 아주 솔직하고 감정적이에요. 화나면 때리고 신나면 춤추고. 우리끼리 노는 그 끼가 다른 사람들하고는 충족될 수 없는 거죠.”
-학교 생활은 어땠어요.
“백인, 흑인, 황인이 다 섞여 있었어요. 첨에는 많이 맞고 돈도 뺏겼죠. 그런데 6개월쯤 후부터는 제가 짱이었어요.”
-계기가 있었겠네요.
“하루는 역시 돈을 뺏기고 밀침을 당했는데 장미덩굴에 쓰러져 온몸이 상처투성이가 됐어요. 집으로 가는데 제 자신에 대해 너무 기분이 나쁘더라구요. 내일은 꼭 싸우겠다고 결심했죠. 다음날 쌍절봉을 만들어 가서 다 팼어요. 한번 폭발하니까 되게 많이 때리게 되더라구요. 한 명은 차에 다리까지 끼고. 싸우는 과정을 사람들이 다 봤는데, 그때 미국에선 브루스 리가 (문화) 키워드였거든요. 우리나라 애들은 다 태권도 단 따고 가잖아요. 그때부터 별명이 브루스 리가 됐고, 흑인 애들이 먼저 같이 다니자고 했어요. 덕분에 다른 한국 애들도 놀림을 안 당하게 됐죠.”
-영어는 빨리 배웠나요.
“네, 되게 빨리요.”
-머리가 좋은 건가요 적응이 빠른 건가요.
“머리로 적응한 게 아니라, 제가 되게 긍정적이고 낙천적이거든요. 그게 워낙 커서 적응해야 한다는 생각도 못하고 그냥 해피하게 산 것 같아요. 안 좋은 일 있으면 반사적으로 ‘그래서 좋은 점은 뭐지’ 하고 생각하거든요. 그리고 또 한 가지가, 제가 체력이 아주 좋아요. 어머니 닮았나봐요. 예순 연세에도 하루에 5km씩 뛰시니까. 그런데 끼는 없어요. 다른 식구들 다. 특히 아버지는 혼자 있는 거 너무 좋아하시는데, 전 혼자 있으면 불안해 죽어요.”
-혼자 있는 게 싫은가요.
“항상 그래요. 10대 때도 방문 안 닫고 큰 애는 저밖에 없을 거예요.”
-그런 사람들, 곁에 누군가 없으면 못 견뎌하죠. 애인과 헤어지면 금방 다른 사람 찾고. 안 그래요?
“정말 그런 면이 있는 것 같네요. 전 제일 신기한 사람이 혼자 영화 보고 여행 다니는 사람이에요. 저랑은 다른 종류의 사람 같거든요. 전 혼자 있을 때 뭔가 좋은 걸 만나면 감당을 못해요. 누군가와 나눌 수 없다는 게 너무 힘들어요. 차 타고 가다 좋은 음악 나오면 채널을 아예 돌려버리거나 전화를 해요. 누구한테든 그 말을 하고 같이 들어야 돼요. 아마 제가 대중예술을 하는 것도 그 때문일 거예요. 무슨 곡을 만들었는데 누가 안 좋다 그러면 그냥 덮어버려요. 남들은 자기만족이니 뭐 그런 말을 하는데 전 그런 거 없어요. 남들이 좋아하는 게 내 만족이에요.”
-그에 대한 회의는 없나요.
“없어요.”
-왜 그런 것 같아요?
“전 사람을 너무 좋아해요. 인간이란 존재를 되게 믿고, 바뀔 수 있어, 해낼 수 있어, 사람은 근본적으로 착해, 늘 그렇게 생각해요.”
-잘 자란 청년이란 느낌을 주네요. 특별한 고생이나 고통 없이 성인이 된 행운아요.
“잘 자란 것 같고, 말로 치면 굉장히 잘 뛸 준비가 된 말이죠. 하지만 고생은 무지 했어요. 했는데 다 사서 했어요.”
-그런 박진영씨가 어떻게 god의 ‘어머님께’나 ‘촛불 하나’ ‘길’ 같은 가슴 저린 노래를 만들 수 있었죠? ‘폼’일 뿐인가요.
“안 그래도 사람들이 그 가사들 보고 다 놀랐어요. 니가 어떻게 이런 걸 쓰냐고. 그런데 사실 제 주변에는 너무너무 그런 사람들뿐이었어요. 제가 항상 분배나 형평을 너무너무 좋아하는 게, 가난한 이들에 대한 애정이 너무너무 있거든요.”
-연민인가요 동정인가요.
“다 아니에요. 그냥 인간이 불행한 게 싫어요. 자기 힘으로 바꿀 수 없는 절망에 처했을 때, 그때 인간의 삶은 아무 의미가 없다는 걸 너무 알아요. 이건 해본 적 없는 말이지만, 솔직히 제가 주장하고픈 경제 논리는 1세대 자본주의예요. 자본주의인데 세습은 안 되는 거. 상속세 100%. 제가 중학교를 화양리에서 나왔어요. 중산층도 있었지만 가난한 애들은 정말 끝도 없이 가난했어요. 안방에 신문지 발라놓고 살았으니까.”
-그래도 왠지 자꾸 삐딱하게 보이는걸요. 그 친구들과 통한 코드가 뭐였죠.
“그냥 저는 정을 많이 주는 사람이 좋아요. 그 친구들, 잃을 게 없기 때문에 많이 줄 수 있었던 것 같아요. 그래서 잘 맞지 않았을까. 계산이 없잖아요. 저도 아무 생각 없었어요. 그냥 등록금 구하려고 같이 도둑질하고, 그렇게 지냈어요.”
-하지만 결국엔 멀어졌겠죠.
“대학(연세대 지질학과)에 갔는데 마지막 한 친구가 성동구치소에서 편지를 보냈어요. 굉장히 슬펐어요. 걔가 거기 있어서가 아니라, 이제 정말 멀어지는구나…. 그 친구 편지 내용도, 너 연대 갔다며, 너 잘될 줄 알았어…. 거기다 또 죄목이 너무 안 좋으니까, 정말 너무너무 속상한 거예요.”
-자본주의 사회에서 베이스가 다르다는 건 엄청난 거죠. 사실 그 친구들한테 받기만 했단 생각은 안 드나요. 박진영씨는 언제고 발을 뺄 수 있었지만 친구들은 아니었잖아요.
“그러네요. 그러고 보니 제가 무척 못되게 생각되네요. 저는 앞으로 계속 가면서 그때 필요한 것만 취한 것 같은…. 대학교 1학년 때였어요. 걔들을 압구정동 로바다야끼에 데려갔어요. 그런데 걔네 옷차림이 너무 창피한 거예요. 또 그걸 창피해하는 내가 너무 싫어. 내가 왜 이렇게 썩었지, 그러면서도 또 계속 창피해. 근데 친구 중 하나가 이미 차려져 있는 스키다시를 보더니 소리를 질러요. ‘아가씨, 먹던 건 치워 줘야지’. 속상해 죽~겠는 거예요 정말. 그런 일들을 생각하면 전 제가 만든 그런 정서의 노래들을 직접 부를 수가 없어요. 부르는 저나 보는 사람들이나 자연스럽지 않을 테니까. 그래서 god에게 준 거죠.”
14세, 술·담배·여자를 알다
-한국 돌아와서는 생활이 어땠어요.
“중곡동에서 초등학교를 다녔어요. 대체로 ‘밝은 세상’이었고…. 물론 힘든 면도 있었죠. 생활이 너무 단조롭고 아무것도 못하고. 한번은 6학년이랑 싸웠어요. 그랬더니 다 몰려와서 때리는 거예요. 그게 너무 이해가 안 갔어요. 왜 나이 많은 사람이랑 싸우면 안 되지? 왜? 그 사람이랑 나랑 일 대 일로 붙은 건데 왜 이러지? 나이가 뭔데! 제 정서에 그런 게 굉장히 많이 깔려 있어요. 전 효도, 그런 말 제일 싫어해요. 부모가 함부로 했으면 뭐가 고마워. 나한테 잘해줬어야 고마운 거고 잘못했으면 나쁜 거지. 피가 섞였다는 이유만으로 무조건 고맙다고 생각하라는 건 말이 안되죠.”
-그렇다면 선한 행동을 하는 건 나를 위해서일까요, 남을 위해설까요.
“그런 주제를 생각할 때마다 저 자신에 대해 기분이 되게 안 좋았어요. 그런데 한 1~2년 전인가, 가만 보니 제가 진심으로 남이 속상한 걸 싫어하더라구요. 본능적으로 남이 행복하길 바라는 게 정말 있었어요. 그걸 알고 나서 인생이 너무 행복해졌어요.”
-중학교 시절은 ‘어두운 세상’이었나요.
“그렇죠. 술, 담배, 여자를 다 중2 때 알았어요. 항상 싸웠고. 3년간 몸 여기저기를 한 100바늘쯤 꿰맸을 거예요. 그냥 싸움을 즐겼어요. 딴 학교 누가 세다 그러면 또 싸우러 가고.”
-싸우는 게 좋았나요.
“그냥… 친구들한테 멋있는 사람이고 싶었던 것 같아요. 그게 가장 큰 동인(動因)이었죠. 지금 생각하면, 피 낭자하고 죽고 다치고 쓰러지고, 병원 가서 여기 꿰매고 저기 꿰매고, 딱 맞으면 아 씨, 또 꿰매러 가는구나, 그리곤 또 때린 새끼 잡으러 가고…. 그리고 가난. 친구 등록금 내야 하니까 가게에서 돈 훔치고, 가출해 경로당 건물 위에서 비닐 덮고 자고. 그러니까 아버님이 딱 한번 매를 드시더라구요. 그런데 그애들이랑 못 놀게는 하지 않으셨어요. 집에 데려오면 밥 다 차려 먹여주시고.
전 ‘친구’ 그 영화, 불편해서 못 보겠더라구요. 퀴퀴한 방에 쪼그리고 앉아 담배 빨고 여자애들이랑 뽀뽀하기 게임 하고. 아휴, 그 방 냄새까지 알 것 같아요. 그리고 그 로라장, 화양리 국제로라장. 또 세종극장 지하 리틀파워 나이트클럽…. 저는요, 못된 애기들, 말 안 듣고 아주 못된 애기들을 너무 좋아해요. 사람들은 보통 착한 애기들만 좋아하잖아요.”
얘기 중간중간 그의 휴대전화가 울린다. 변호사, 기자들, 직원들, 시민단체들. 모두 박지윤 앨범 청소년 이용불가 판정에 관한 것이다. 일 처리는 간결하고 잔주문도 많지 않다. 그러고 보니 질문에 답하는 자세도 신중하다. 가장 적확한 답, 사실에 가까운 표현을 찾기 위해 질문을 꼭꼭 씹고 또 씹는다. 사고의 지구력이 있다는 증거다.
그럼에도 역시 마음은 안 좋은가 보다. 신나게 얘길 하다가도 자꾸 한쪽 팔을 베고 탁자에 머리를 얹는다. 우울하단다. 날씨 때문에 더 그렇단다. 왠지 마음을 많이 보여주고 싶단다. 어린애 같은 데가 있다. 아니, 아주 많다.
-이젠 담배를 안 피우는군요.
“네. 1년1개월 전에 끊었어요. 되게 힘들었어요. 고기도 끊었어요. 제가 태어나서 제일 잘한 거 두 가지가 담배 끊은 거, 그리고 기독교 끊은 거예요. 제가 모태신앙이거든요. 그런데 대학교 1학년 때 그냥 끊었어요. TV에서 엄마 아빠 아이 이렇게 셋이 불상 앞에서 열심히 절하는 모습을 봤어요. 순간, 나도 불교 믿는 집안에서 태어났으면 불교 신자가 됐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더라구요. 인생의 다른 모든 걸 내가 선택했는데 왜 제일 중요한 건 주어진 대로 산 거지? 그래서 관뒀죠. 부모님이 장로, 권사이신데 말씀드리니 뜻대로 하라 그러시더라구요.”
-‘어두운 세상’은 어떻게 끝이 났나요.
“맹모삼천지교죠 뭐. 강남으로 이사 갔어요. 사실 그 동네에서 더 살기도 힘들었어요. 제가 중3 때 대원외고에 거의 1등으로 붙었거든요. 근데 정작 학교를 다닐 수는 없었어요. 원서 내러 간 날, 제 성적 보고는 팜플렛 주며 막 격려하던 그 쪽 선생님이, 같이 간 제 친구는 막 무시하는 거예요. 그 성적에 우리 학교는 왜 왔냐고, 커닝하러 왔느냐고. 그래도 친구가 꾹 참고 ‘저도 팜플렛 하나만 주시겠어요’ 하는데 계속 욕설이에요. 다 엎어버렸죠. 그래놓고 또 시험 날은 엄마가 아시니 안 갈 수도 없고. 고개 푹 숙이고 시험 치느라 혼났어요.
그뿐이면 모르겠는데 또 사고가 났어요. 저한테 맞은 놈 둘이 아파트 경비실 옆 지하에 숨어 있다 절 덮친 거예요. 마침 제 쪽도 친구랑 둘이어서 옆에 세워둔 자전거 막 휘둘러가며 싸웠지요. 경비실이랑 우편물통이랑 다 피바다가 됐어요. 또 이겼죠. 그러고 나니 엄마가, 그냥 이사 가자 그러시더라구요.”
그렇게 이사간 강남은 전혀 다른 세계였단다.
“싸우는 것도 없고, 옷도 다 잘 입고. 걔들은 빵집에서 여자애들 만나면서 놀더라구요. 그것도 정말 예쁘고 착한 애들. 또 대학생 가는 나이트클럽 가고. 인생이 바뀐 거죠.
근데요, 제 인생 성공의 절반 이상은 화양리 3년 덕분이에요. 저한테 엄청난 카리스마를 심어줬거든요. 남자들 사이에서는 기가 느껴진다고 해야 하나, 하여튼 남자들은 주먹, 뭐 그런 진짜 싸움에 대한 감 같은 게 있거든요. 그런데 그 3년이 제 존재에 확실한 자신감을 실어줬어요.”
-공부는 잘했나봐요.
“잘했어요. 중학교 때 아이큐 검사 결과가 153이었어요. 아 내가 머리 좋은 게 맞구나, 그래서 더 벼락치기만 했죠.”
자신감이 너무 넘치는 것 아니냐고 핀잔을 줬더니 심각하게 되묻는다.
“근본적으로 저 왜 이렇게 자신감이 있죠? 그게 어느 정도냐 하면, 항상 짱이었어요. 쌈 젤 잘하고 공부 젤 잘하고. 미국 가기 전에도 골목대장이었대요. 온 동네 애들이 제가 준 계급장을 달고 다녔다더라구요. 지금도 그래요. 제가 오늘부터 웨이터를 한다, 그러면 그거 제일 잘할 자신 있어요. 세탁소를 한다, 그 동네에서 1등 할 자신 있어요. 우선 너무 건강하고 또 악착같아서 그런가봐요.”
-그런데 왜 서울대를 못 갔어요.
“자신감이 너무 있어서. 국·영·수는 늘 전교 1등, 전국 1등. 암기과목쯤이야 막판에 밀어붙이면 된다고 생각했거든요. 오산이었죠. 사실 고교 입시(연합고사)도 그렇게 해서 (200점 만점에) 194점 받았어요. 그 시험을 잘 치려고 그런 게 아니라 친구들 공부를 도와줬거든요. 고등학교는 가야 하니까.”
박진영은 잠실 배명고의 직선 1기 학생회장이었다.
“전교 25등까지 출마 자격이 있었어요. 제가 24등이었거든요. 선거운동기간 내내 반마다 돌며 춤만 췄어요. 회장 되고 나서 관심의 대상이 된다는 게 괜찮다는 걸 알았죠. 학교 축제도 가수 불러 근사하게 하고, 재미있었어요.”
하지만 대학 입시는 그에게 큰 고통이었다.
“고3 마지막 100일 동안 정확히 3시간씩 자며 공부했어요. 머리 밀고 눈썹 밀고, 뭐 괴물이 따로 없었죠. 그런데도 원하는 곳에 진학할 수 없었어요.”
-그렇게까지 대학에 매달릴 타입은 아닌 것 같은데요.
“좋은 대학 가는 게 멋있잖아요. 부모님도 기뻐하실 거고. 무엇보다 저는 루저(looser)가 싫어요. 위너(winner)가 좋지. 저 자신에 대해 기분이 좋아야 해요.”
-원하는 대학에 못 간 것이 인생에 어떤 영향을 끼쳤나요.
“나이트에 갔다 동창 녀석을 봤어요. 무시했던 놈인데 서울대 경영학과에 갔다더군요. 아이 씨 인제 공부 안 해, 그러구 맨날 놀았죠 뭐. 일주일에 나이트 일곱 번 가고 여자 사귀고. 하지만 사실은 대학 원한 만큼 못간 게 이후 제 인생의 가장 큰 동인이 됐어요.”
-데모에 휩쓸린 적은 없나요.
“왜요, 그래도 할 건 했죠. 뒤만 쫓아다녔지만. 그래놓고 또 밤에는 나이트 가고. 사실 부르주아도 그런 부르주아가 없죠. 흰색 코란도 오픈카를 턱 몰고 다녔으니까. 계약금은 아버지가 내주셨고 할부금은 과외 3건 해 번 돈으로 충당했어요. 연두색 셔츠에 분홍색 바지 입고. 아주 제대로 부르주아였죠.”
박진영은 1994년 ‘날 떠나지 마’란 곡으로 데뷔했다. 그러나 가수에 뜻을 두고 공부를 시작한 것은 대학교 2학년 때부터였다.
“어느 날 나이트에서 춤추고 있는데 김창환씨(라인기획 대표, 가수 김건모·신승훈·클론·박미경 등의 프로듀서)라는 분이 춤 너무 잘 춘다고, 가수 해 볼 마음 없냐고 하시는 거예요. 노래 녹음한 걸 보냈는데 저말고 신승훈씨가 선택됐어요. 그때까지는 가수라던가, 그런 쪽으로는 전혀 생각해본 적도 없었는데 안 되니까 하고 싶더라고요. 그러다 친구 통해 김현철씨를 알게 돼 그 작업실에 드나들었죠. 피아노를 칠 줄 아니까 뭘 하는지 눈에 보이잖아요. 그래, 기초부터 배우자 싶어 본격적으로 뛰어들었어요.”
그는 여섯 살 때부터 7년 동안 피아노를 배웠다. 좋아서 쳤다고 한다. “선생님이 너무 예뻤거든요. 매일 꽃 꺾어드리고 그랬어요.”
‘대체될 수 없는 존재’가 되고자
데뷔는 생각보다 쉽지 않았다. 어쨌건 춤 연습, 노래 연습에 몰두하던 그 때 그의 인생에 결정적인 영향을 끼친 사람을 만난다. 작곡가 겸 프로듀서 김형석이다. 대학에서 클래식을 전공하고 가요계에 뛰어든 김형석은 예나 지금이나 가수들 사이에서 ‘교주’로 통하는 당대 최고의 뮤지션이다.
“김건모, 신승훈씨 안무를 짜고 하면서 형석이 형을 알게 됐어요. 이 사람한테 붙어야겠다 싶었죠. 그래서 한 2년 정도 그 집서 먹고 자고 같이 살았어요. 운전기사 노릇, 심부름꾼 노릇 하며 일을 배웠죠. 형이 곡 만드는 거 옆에서 보고 또 따로 연습해가 평가받고. 학교는 거의 안 갔어요. 졸업 학점이 1.9였다면 알 만하죠.”
-가수가 될 거면 그냥 노래 연습이나 하지 왜 사서 고생을 했죠.
“노래가 안 된다고 생각했어요. 외모도 그렇고. 뭐 하나가 더 있어야겠다, 내 판을 내줘야 될 이유를 내가 만들어야겠다고 결심했어요. 그러면서 생각했죠. 여기 인생 역전을 할 기회가 있다. 연대 지질학과생인데 인기 댄스가수? 그러면 서울대 애들과도 역전이 될 것 같았어요. 한번 열정을 쏟아붓기 시작하니까 무섭게 집중이 되더라구요.”
2000년 1월, 그는 에세이와 아포리즘을 모은 책 한 권을 냈다. ‘미안해’(김영사)라는 제목의 이 책에는 ‘대체될 수 없는 사람이 되기 위해 가수가 됐다’는 내용의 글이 있다.
‘내가 연세대에 입학했을 때 나는 처음으로 내가 다른 사람들보다 뒤처져 있다는 것을 느꼈다. …나는 수없이 많은 사람들로 대체될 수 있는 존재였다. 그래서 나는 생각했다. 내가 왜 그들보다 뒤처지게 됐는지. 답은 간단했다. ‘춤추고 노래하다가’. 그래서 나는 차라리 그 부분을 살리기로 했다. 그냥 연대생들은 많지만 연대생 댄스가수는 흔치 않았기 때문이다.’
그의 ‘차별화 전략’은 계속된다. 춤 잘 추고 노래 잘하는 가수는 많지만 직접 작사 작곡 편곡 프로듀스를 하는 가수는 많지 않다. 그래서 그는 바로 그런 가수가 됐다. 그렇게 2년이 지나자 그는 자신과 비슷한 ‘롱런 가수’들이 제법 많아지고 있음을 느낀다. 한번의 도약이 더 필요했다. 결국 1999년, 그는 ‘연세대 출신의, 작사 작곡 편곡을 하는, 롱런한 댄스가수이자 (연세대) 정치학과 대학원생’이 되는 데 성공한다. 그리고 다시 3년이 지난 지금, 그는 이미 이전의 그가 아니다. 타고난 것이기에 “춤 잘 춘다”는 칭찬이 듣기 싫다는, 그 무한한 노력이 존경스러워 발레리나나 클래식 연주자를 보면 가슴이 쿵쾅댄다는, 대단히 승부욕 강한 젊은이의 남다른 자기혁신법이다.
-왜 하필이면 대학원 정치학과였지요.
“시사평론가가 되고 싶었어요. 제 가장 큰 장점이 친밀감이잖아요. 그걸로 국민들의 정치에 대한 관심을 일깨워주고 싶었어요. 우리나라가 보면, 국민참여의 개념이 너무 희미하거든요. 많은 정치 행위들이 국민을 대상화하는 방식으로 진행돼왔고. 그런데 이제는 그 꿈 접었어요. 음악인으로서 유통이나 지적 재산권 문제, 투명성 확보 등 음악산업 개혁에만 매달려도 할 일이 너무 많아서요.”
-자신을 학대하는 편인가요.
“그런 면이 있죠. 목표가 생기면 달성할 때까지 몰아쳐요. 제 6집 만들 때는 멜로디며 노랫말이 너무 어렵다는 지적이 많아 겁이 났어요. 이게 약이면 어떤 설탕을 발라야 할까 고민하다 탭댄스를 생각해냈죠. 앨범 발매를 6개월 미루고 매일 밤 아무도 없는 연습실에서 하루 4시간씩 비밀 연습을 했어요. 평소 쓰지 않던 근육, 관절을 단련시키느라 죽을 만큼 고생했어요. 덕분에 오른쪽 무릎이 나가버렸죠. 춤추다가, 자다가도 다리에 쥐가 나 수도 없이 혼자 비명을 삼켰고요. 하지만 무대에 올라 새 춤을 선보이는 순간 그 모든 고통은 다 하찮은 것이 되고 말았어요. 그 자유, 열광, 행복. 이루 표현할 수 없죠.”
아내를 ‘여자 친구’라 부르는 이유
1994년 첫 음반이 나오면서 그는 말 그대로 스타, 우상이 됐다. 그의 예견대로 ‘연세대생 댄스 가수’의 상품성은 대단했다. 더하여 그는 이전의 어떤 가수보다 춤을 잘 췄고, 우려와는 달리 ‘필(feel)을 가득 담은’ 목소리와 천부적 리듬감으로 가창력도 인정받았다.
그를 더욱 도드라지게 한 건 패션을 비롯한 이미지 메이킹, 사회적 발언에 있어 ‘박진영식 파격’이었다. 맨살이 훤히 들여다뵈는 망사 조끼에 비닐 바지를 받쳐입고 그는 말했다. “순결 서약식은 어이없는 짓이다” “섹스=사랑이지 섹스=결혼이 아니다” “리드하는 여자가 좋다” “남편은 접대부와 놀면서 아내가 호스트바에 가는 건 왜 막는가” “하루 빨리 결혼이란 제도가 없는 세상이 왔으면 좋겠다” “가수 활동에만 연연하지 않는다. 언제건 넥타이 매고 출근할 준비가 돼 있다” “경제 위기 때 가수가 할 일은 양복 입고 점잖은 노래를 부르는 게 아니다. 최선을 다해 최고로 화려한 무대를 선사하는 것이다”….
-그러고 보니 데뷔 때부터 여자친구 얘기를 참 많이 한 것 같네요. 결혼한 지 이제 3년 됐지요.
“제 첫사랑이에요. 데뷔 준비하며 한참 힘들 때 만나 10년을 사랑했죠. 지금도 너무 좋구, 너무 사랑스럽구, 너무 괜찮아요. 쿨하거든요. 그 친구한테는 무한한 애정이 있어요.”
-그녀를 만나기 전, 또 헤어져 있은 몇 년 동안 여자들을 참 많이 만난 걸로 아는데, 어때요, 결혼하고 한 3년쯤 지나니 애정도 식는 것 같지 않은가요.
“옛날 같지는 않죠. 그래도… 절 공격하는 사람들은 절보고 너무 개방적이라고 하는데 전 제가 세상에서 가장 보수적인 사람 같아요. 사랑하지 않으면 섹스가 안 돼요. 보통 남자들, 그냥 즐기려고 여자랑 자고 그러잖아요. 그것도 나쁘다고 생각지는 않지만 저는 안돼요. 결벽증이 있는 것 같아요.”
-한 여성만을 사랑하는 걸로 평생 만족할 수 있나요.
“근데 사실은 너무 새로운 사람을 만나고 싶어요. 특히 친구들이 새 여자친구 얘기 하는 걸 들으면 너무 부러워요, 그 설레임이. 그래서 항상 너무 바람을 피고 싶지만 그건 평생 한 번이어야 되거든요. 그렇게 생각하니까 오히려 잘 참아져요. 평생 한 번인데 쪼꼼만 더 참자, 평생 한 번인데. 근데 말은 이렇게 하지만 사실은 바람 못 필 거예요. 하면 사랑을 하겠지. 그리고 전 결정적으로 거짓말에 너무너무 약해요. 속일 수도 없고 그렇다고 여자친구한테 그런 말을 할 수도 없고. 다치는 걸 볼 수가 없을 것 같거든요. 마음이 너무 아파서.”
박진영은 아내를 ‘여자 친구’라 칭한다. 다시 그의 책 ‘미안해’의 한 구절을 보자.
‘나는 내 부인을 부인이라 부르는 것이 참 싫다. 그 말엔 내가 싫어하는 많은 것들이 담겨 있기 때문이다. 나만 보고 사는 여인, 내 말에 복종하는 여인, 집에 일찍 들어오는 여인, 청소 빨래 육아를 책임지는 여인, 다른 남자는 만나지 않는 여인, …즉 나에게 있어서 당연한 여인. 그에 비해 여자친구란 말엔 내가 좋아하는 많은 것들이 담겨 있다. 나말고도 다른 것에 관심이 많은 여인, 내가 생활의 전부가 아니라 일부인 여인, 내 말이 하나의 의견일 뿐인 여인, 나에게 밥을 해주는 것이 아니라 함께 밥을 사 먹는 여인, 청소 빨래 등은 하지 않고 자기의 꿈을 찾아 열심히 일하는 여인, 다른 남자들도 만나는 여인, 다른 남자들이 빼앗아가려고 넘보는 여인, 즉 나에게 있어 불안한 여인….’
그래서 그는 ‘그녀를 평생 여자친구로 두고 싶었지만 우리 사회에서 그렇게 살기엔 참 힘든 점이 많아 할 수 없이’ 결혼을 했다고 한다. 별난, 어찌 보면 솔직한, 한편으로는 참으로 자신감 넘치는 남자의 고백이다.
-처음 ‘섹시’라는 컨셉트를 잡고 그게 큰 화제를 불러일으켰을 때 어떤 생각이 들던가요. 그런 파장을 예상했나요.
“처음엔 그저 멋있어 보이려고 한 건데 그렇게까지 화제가 될 줄은 몰랐죠. 어느 정도 시간이 흘러 제 패션이나 노래나 춤이나 말들이 상당한 ‘도발’로 비친다는 걸 알게 되면서, 그 때부터는 일부러 더 그런 면도 있는 것 같아요. 인기를 얻기 위해서라기보다는 갑갑해서. 한심하고 답답하고 너무너무 숨이 막히고. 뭐가 그렇게 안 되는 게 많은지, 뭐가 그렇게 두려운지. 그래서 막 놀리고 싶었어요.”
-아슬아슬하게 수위를 맞추는 게 힘들지는 않았나요.
“아니, 즐겼던 것 같아요. 그걸 즐기며 할 수 있는 사람은 나밖에 없다, 그 경계선에서 장난 칠 수 있는 사람은 나밖에 없다고 생각했어요.”
-너무 오만하네요.
“하하, 사실 이번에도 그랬거든요. 근데 걸렸잖아요. 아, 이건 정말 괜찮을 줄 알았는데….”
왜 야한 노래를 만드는가
-‘할 줄 알어?’, 이 노래 가사 정말 야하긴 야하잖아요.
“야한 것도 좋은 것 같아요. 야한 게 나쁜 건 아닌 것 같아요.”
-걸릴 줄 알고 만든 거 아니에요?
“사람들 가장 큰 오해가, 얘가 걸릴 걸 예상하고 냈다, 그거예요. 전 안 걸리려고, 이번에도 이전처럼 잘 피해가려고 조심을 많이 했거든요. 그래서 처음 쓴 거에서 많이 고쳤어요. 단어도 여러 개 바꾸고.”
-단어는 조심했지만 맥락은 조심이 안됐군요.
“맥락은 원래 곡을 쓸 때의 생각이 있는 거니까. 아직까지 성에 대한 사회의 인식이 정말 보수적인 것 같아요. 이젠 한 단계 좀 올라가야 하는데.”
-개방적이 되면 ‘올라가는’ 건가요.
“창작이나 표현의 틀이 넓어지니까요. 그리고 무엇보다 성을 두려워하는 의식을 없애야 해요. 성을 언급하는 건 청소년에게 해롭다는 공포 그 자체를 없애야 하는 거죠.
물론 심의 기준은 있어야 해요. 방송에 옷 다 벗고 나갈 수는 없잖아요. 하지만 누가 그 결정을 하느냐가 문제지요. 현재의 심의위원 외에 예술인과 시청자가 함께 참여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그리고 제가 생각하는 합당한 심의 기준이란, 직접적이고 노골적인 성 표현, 즉 이건 성 표현이다라고 이론의 여지없이 동의할 수 있는 것들만 걸러내야 한다는 거예요.”
-‘할 줄 알어?’는 충분히 성적으로 느껴지는데요.
“한다는 게 뭘 한다는 얘기죠? 직접적 표현이 없잖아요. ‘나를 소리지르게 만들 수 있어’가 섹스라는 증거가 어디 있어요. 이론의 여지가 있다면 금지하는 건 옳지 않죠. 심증이 있으나 물증이 없으면 구속할 수 없는 것과 비슷한 이치 아닌가요.”
-사실 의도는 ‘그거’였잖아요. 의도가 명확하게 보이는데요.
“그렇게 따지면 위험한 상황이 뭐냐 하면, 세탁기 선전에 ‘오래오래 느끼고 싶어서’, 신용카드 선전에 ‘줄 때 받자’, 이런 것도 다 걸어야 돼요. 춤도 허리를 앞뒤로 움직이면 안 되고 옆으로 흔드는 것만 허용해야 하고. 그래서 위험하다는 거예요, 작가의 의도를 ‘짐작’해 처벌하는 건.”
-청소년에 악영향을 끼칠 수 있다는 지적에 대해선 어떻게 생각하나요.
“청소년이 성적으로 더 자극 받는 게 문제냐, 아니면 성적으로 너무 자극 없이 크는 게 문제냐. 전 후자라고 봐요. 여기서 제가 말하는 자극이란 양성(陽性)적인 자극이에요. 육체적 쾌락을 쫓는 게 나쁜 일이 아니라는 인식을 심어주는 것이 중요해요. 근데 우리 사회의 억압구조라는 게, 육체는 이성 혹은 정신보다 저속하다는 느낌을 강하게 주잖아요. 남성도 여성이 몸의 쾌락에 적극적이면 ‘얘가 어디서 놀다 온 거지’ 하는 생각부터 하고.
그래서 박지윤과 같이 여자가 남자를 리드하는 이미지를 계속 만들고 싶었던 거예요. 뮤직 비디오도 보면 남자는 가만 있고 여자가 유혹하고, 그런 그림을 많이 보여주거든요. 그러고 싶은 게, 자꾸 봐야 자기도 할 수 있잖아요. 어떤 통계를 보니 한국 여자의 3분의 2가 오르가슴을 잘 느끼지 못한대요. 오르가슴이라는 게 자기가 애써 쾌락을 좇고 실험도 하고 그렇게 노력해야 느낄 수 있는 건데, 그냥 나무토막처럼 당하고만 있으니까. 그럼 해결 방법이 뭐냐. 그냥 이런 노래들이나 뮤직 비디오나 그런 걸 통해 사랑하는 사람이 생기면 자동으로 적극적이 될 수 있게, 그런 것도 전 정말 필요하다고 생각하는데. 그런데 왜 제가 이런 말을 하면 무조건 상업적이다, 계산된 거다 그러는지 정말 화가 나요.”
-그렇다고 상업적이지 않다고 주장할 수는 없지 않을까요. 어쨌건 팔려고 내놓은 거니까.
“그렇게 따지면 저는 ‘이별’이나 ‘사랑’ ‘어머니’도 다 상업적으로 이용한 게 돼요. 그런 소재를 가져오면 상업적 마인드가 없는 거고 섹스를 말하면 있는 건가요. 돈으로 치면 섹스 얘기가 아닌 것들로 훨씬 더 많이 벌었어요. ‘어머님께’나 ‘촛불 하나’ 같은 것들. 그런 곡들도 쓰고 또 이런 곡도 쓰는 거죠.
그건 그냥 저란 사람을 보면 가장 이해가 빠를 것 같아요. 바로 저 같은 사람이 건강한 사람이란 말을 하고 싶어요. 한편으로는 소위 저속하고 음탕하기도 하고 또 한편으로는 되게 올바를 줄도 알고. 한 사람 안에 그런 두 가지가 공존하는 게 건강한 것 아닌가요. 성욕 자체는 넘치고, 더불어 자제할 수 있는 이성도 있고. 근데 우리 사회는 ‘자제할 수 있는 이성’만 지나치게 강조하고 ‘넘치는 성욕’은 굉장히 음적인 통로로, 아주 불건강하게 키우도록 돼 있잖아요. 섹스가 생활의 일부로 자리잡으면 영화, 코미디, 노래, 그 무엇의 소재도 될 수 있어요. 선진국에선 이 정도 노래가 문제되는 일은 있을 수 없죠.”
그는 “말을 하다 놀라운 사실 하나를 깨달았다. 남들이 상업적이라고 공격하는 곡들만 진짜 상업적이 아니게 썼다”고 한다.
“그런 곡들이야말로 정말 자연스럽게 쓰여진 거예요. 아무 생각 없이, 그냥 좋아서. 그 쪽이 제 주요 관심사고, 또 그런 음악이 제가 가장 잘할 수 있는 거니까. 그건 그냥 제가 무대에서 노래부르는 걸 보면 알아요. 그런 노래 부를 때 얼마나 자연스러운지, 얼마나 푹 빠져 젖어드는지.”
-한마디로 말해 상업적 선택에 의한 계산된 도발은 아니라는 거군요.
“그게 순서가 어떻게 되냐 하면요, 처음에는 그냥 써요. 그리고 심의에 걸리지 않도록 무진장 애를 써요. 그런데 누가 문제를 삼잖아요. 그럼 설명을 해야 돼요. 자연히 논리가 필요하고, 논리를 만들다 보면 꼭 그 이유 때문에 노래를 만든 것 같은 착각에 빠져버리는 거예요. 그래! 내가 하려던 말이 바로 그거야! 하구요.”
“올바른 자가 승리한다”
-성의 ‘무거움’을 일부러 외면하고 있다는 지적에 대해선 어떻게 생각하나요. 예를 들면 낙태 문제나 여성의 성상품화 문제 같은 것들.
“그게 언뜻 들으면 말이 되는 것 같은데 사실은 전혀 아니에요. 꼭 국어 시간에 산수 얘기 하는 거랑 같다니까요. 전 선생님이 아니잖아요. 가수여서 아무 주장이나 해도 된다는 게 아니라, 전 성을 둘러싼 여러 주제 중 성의 ‘책임’이 아닌 ‘기쁨’에 대해 노래한 거거든요. 사랑하는 성인 남녀가 동의하에 섹스의 행복을 나누는 게 뭐가 나빠요.”
-하지만 그 노래 가사 어디에 ‘성인들끼리만 즐기라’는 내용이 들어 있나요.
“노래를 부르는 가수 자체가 성인이라는 게 중요하죠. 만약 박지윤이 미성년자라면 그건 대단히 큰 문제지요. 그녀는 어른이에요.”
-밖에서 자신을 보는 시선에 불만은 없나요. 어떻게 볼 것 같아요.
“글세…, 자신만만하다, 잘났다고 착각하는 녀석이나, 뭘 모르는 부잣집 애다, 돈과 성공을 좇아 거짓과 가식을 밥 먹듯 한다, 지 거짓말에 지가 속을 정도의 거짓말쟁이다, 뭐 그렇지 않을까요.
그런데 사실은 저 그렇게 똑 부러지지 못해요. 회사 사람들도 저한테 얼마나 함부로 하는데요. 사장인데도 회의같은 거 할 때 막 그냥 ‘조용히 해’ 그러고. 왜냐면 회사 직원 30명이 다 친구고 형이고 동생이고 그렇거든요. 전 사람을 못 바꿔요. 같은 사람들하고 오래 같이 가요.”
-자신감이 지나쳐 반발을 살 때는 없나요.
“그럴 땐 반성을 많이 해요. 잘못했다 싶으면 바로 사과해요. 두 번 세 번 사죄해요. 솔직히 너무 힘들죠. 그래도 딱 해버려요. 그래서 사람들이 놀라요. 제가 영 안 그럴 것 같은가봐요.”
-꼭 자신처럼 스스로 잘났다고 생각하는 사람을 만나면 어떤 생각이 드나요.
“음…, 웃죠. 내가 더 잘났으니까. 근데 그게 밖으로 드러나지는 않을 거예요. 아 물론 상대방은 알아채겠죠. 제가 더 우수하다는 걸.”
-자신보다 우수한 사람은 본 적이 없나요.
“한 번도 못 봤어요. 저 사람한테 대항하면 뭘 해도 질 거란 식의 생각, 해본 적이 없어요. 두려운 사람도 본 적 없어요.”
-진짜 두려운 인간은 음험한 인간이죠. 본질은 악하지만 밖으로는 한없이 선하고 겸손해 보이는.
“그런 사람 한 명 알아요. 그래서 잘 안 만나요. 그 사람이 좋아질까봐.”
-그럼 라이벌이 한 명은 있단 소리네요.
“그래도 저랑은 게임이 안 돼요. 무엇보다 올바르지 않기 때문에. 정신이 똑바로 박혀 있는 사람은 누구도 이길 수 없어요.”
-자기를 정말 믿는군요. 지력, 판단력, 뭐 그런 것만 믿는 게 아니라 존재 자체를 행복해하는 무한긍정의 에너지. 어떤가요.
“맞아요. 그 가장 밑바탕에는 체력에 대한 자신감이 있고. 생각해보니 제가 고기, 담배를 끊은 건 바로 그 자신감을 유지하기 위해서였던 듯해요. 체력이 떨어지면 저 자신에 대한 전체 신뢰도가 떨어지니까.”
-자신감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아무래도 돈이 필요하겠지요. 돈, 좋아하죠?
“전 제일 화가 날 때가, 누가 저보고 ‘돈 좋아한다’는 말을 할 때예요. 저 돈 싫어해요. 돈이 있으면 아무래도 향유할 수 있는 자유의 범위가 넓어지니 좋지만, 돈 그 자체는 전혀 좋아하지 않아요. 돈에 대해 이런 느낌을 가지게 한 신께 감사해요. 사실 돈 버는 기쁨은 좋은 음악을 만들었을 때의 기쁨과 비교가 되질 않거든요. 제가 사업을 시작한 것도 힘을 길러 원하는 음악을 좀더 자유롭게 하기 위해서지 다른 건 없었어요. 회사 설립 이래 지금껏 월급 600만원 말고는 가져간 돈이 없는걸요. 그런데 할수록 점점 불편해지네요. 이젠 제발 음악만 할 수 있었으면 좋겠어요.”
-그럼 그렇게 하면 되잖아요.
“MP3 때문에 안 돼요. 지금 문제가 너무 커요. 음반 한 장 내면 16만장은 팔려야 손익분기점에 도달하는데, 인터넷 무료 다운로드 서비스 때문에 판이 팔리질 않아요. 이런 우수 인력들을 30명이나 모아놓고, 훈련중인 연수생만도 25명이나 되는데…. 아, 어떨 때는 정말 미칠 것 같아요.”
-음악보다 회사 운영 때문에 고민이 많군요.
“정확히 말해 산업 전체에 대한 거지요. 우리 회사가 지금 업계 1등이잖아요. 그런 의미에서 세계 음악산업의 미래가 제 어깨에 달려 있다 해도 과언이 아니에요. 지금 세계에서 MP3 문제에 가장 크게 노출된 지역이 우리나라거든요. 여기서 문제가 잘 안 풀리면 다른 나라에서도 비슷한 결말이 나올 가능성이 커요. 지금 제가 가장 많이 고민하는 게 이 문제의 해결법을 찾는 것, 합리적인 유료화 모델을 만드는 거예요. SK텔레콤의 ‘준’ 서비스에 관여하고 새로운 형태의 모바일 콘텐츠 개발에 전력을 기울이는 것도 다 그 때문이죠.”
-가수 양성부터 멀티 콘텐츠까지, 손대는 것마다 다 성공인데 대중의 기호를 꿰뚫는 무슨 묘수라도 있나요.
“음, 가장 유행 타지 않는 것으로부터 시작하는 거요. 오랜 시간이 지나도 바뀌지 않는 것. 예를 들어 god요. 이 친구들은 정말 평범해요. 흰 도화지 같았어요. 처음엔 참 난감했는데 문득, 이것도 좋다, 다르게 가보자 하는 생각이 들더라구요. 옷도 평범하게, 머리카락도 염색하지 말고. 작고 낮고 겸손한 모습 그대로, 노래로 승부하자. 물론 처음에야 눈에 톡 튀는 게 없으니 쉽지 않겠지만 이 평범함이 한번 먹히면 정말 아무도 못 막을 거라 생각했어요. 왜 흰밥은 못 끊잖아요.
춤, 패션으로 포장을 할 때도 너무 앞서가는 건 지양해요. 제 앞선 취향과 한국의 시장상황을 어느 선에서 중화시킬 것인가를 주로 고민하죠. 지금까지는 대체로 잘 맞아떨어진 것 같아요.”
-어떤 책을 주로 읽나요.
“솔직히 데뷔 후에는 책을 많이 읽지 못했어요. 물론 대학원 전공서적은 열심히 읽었죠. 저 A도 많이 받았어요. 대신 신문이나 주요 시사지는 빼놓지 않고 보는 편이에요. 그 중 제일 열심히 보는 게 ‘인물과사상’이고요. 저 강준만 교수님 너무너무 좋아해요.”
-강준만 교수의 어떤 면이 좋지요.
“그 일관성이 너무 재미있고 존경스러워요. 그렇게 자신의 신념을 삶 전체를 통해 실천하며 사는 사람이 몇이나 되겠어요. 정말 너무 멋있지 않아요? 얼마 전 MBC ‘100분 토론’에 나왔다는데 그걸 못 봐서 속상해요. 도대체 무슨 말을 했을까….”
-강교수와 대담 같은 걸 해보면 재미있겠네요.
“사실은 그쪽 담당자가 그런 제안을 해온 적이 있어요. 결정하기 참 힘들었어요. 자칫하면 보수언론 쪽에 밉보일 수도 있잖아요. 그래도 좋다 하고 응락했는데 팩스 한 장이 날아왔어요. 강교수님이 보낸 거였어요. 제가 그 담당자에게 ‘강교수가 나 같은 사람 얼마나 싫어하겠느냐’는 말을 했거든요. 그에 대한 답이었는데, 내가 박진영씨를 싫어하다니, 싫어하기는커녕 좋아하고 좋아하는 걸 넘어 존경한다, 진심으로 존경한다고, 당신이 어떤 사람인지 너무 잘 알기 때문에. 그러면서 ‘당신 같은 사람이 정치를 해야 한다. 만남은 후일로 미루자. 당신이 나서서 다치면 안 된다. 매는 우리가 다 맞을 테니 당신은 뒤에서 천천히 따라오라. 죄책감은 시민단체 등을 할 수 있는 선에서 돕는 것으로 해소하라….’ 생각해보세요. 만약 그 책이 나왔으면 돈을 얼마나 벌 수 있었겠어요. 그런데 절 배려해 그 좋은 기회를 포기한 거예요. 직원이 독자적으로 일을 추진했던 거죠. 저 그 팩스, 액자에 넣어 우리집 마루에 걸어 놨어요. 전 그런 분이 너무 좋아요. 순수하고, 일관성 있고, 어설픈 양심이 아니라 확실하게 양심적인 거. 그 앞에서 저는 그냥 무너져요.”
-스스로를 ‘레프트 윙’이라고 생각하나요? ‘진보’라는 표현을 쓰기도 한 것 같은데. 오히려 회색인에 가깝지 않은지요.
“회색 맞아요. 근데 그건 멀리서 본 거고, 가까이서 보면 흑-백-흑-백이 촘촘하게 얽혀 있어요. 행동은 회색이지만 내면의 호-불호는 제 색깔 그대로 있는 거죠. 예를 들어 언론이 죽도록 미운데 또 일을 하기 위해서는 꾹 참아야 하거든요. 그렇다고 마음으로부터 타협했다거나 하는 건 아니에요. 색은 다 그대로 갖고 있는 거죠.”
-그런 걸 보면 자신이 너무 계산적으로 여겨지지 않나요.
“아뇨. 계산을 하긴 하는데 ‘진정한 계산’인 것 같아요. 중심의 올바름은 늘 유효하니까.”
-박진영씨가 생각하는 진보는 뭔가요.
“전체, 사회 그런 게 아니라 개인의 행복에 초점을 맞추는 것. 그리고 분배를 중시하는 것. 저는 전체가 100인 것보다 10명이 1씩 벌어 10인 쪽이 훨씬 좋아요.”
“가장 아름다운 것, 일관성”
얘기를 끝마치고 보니 벌써 밤이다. 역시 전철을 타고 돌아오며 생각한다. 그를 만나길 잘했다. 똑똑하고 섹시하고 잘난 이 친구, 알고 보니 순둥이다. 또한 원칙주의자며 대책 없는 쌈꾼이다. 그가 만드는 노래 가사가 꽤 야하건 그렇지 않건, 자신감이 넘치다 못해 건방져 뵈건, 독한 승부사건, 이 청년 올바르다. 건강하고 고집 있다.
그래도 뭐 하나가 목에 걸린다. 확산과 집중, 진보와 보수, 주류와 비주류, 서구적인 것과 동양적인 것, 그런 수많은 반대항의 가치들 사이에서 아직 제 자리를 찾지 못한 자의 난감함 혹은 혼란스러움. 그 자신 “내 편이 누구인지 모르겠다” 했던가. 허나 엉거주춤한 속내를 있는 그대로 드러내면서도, 기실 놀라우리만큼 빠르고 정확하게 세상을 읽어내는 그 명민함으로, 이 젊은이 머지 않아 ‘자세’를 잡을 것이다. ‘대체될 수 없는 나’의 걸음을 멈추지 않을 것이다. 그러니 또 어쩌겠는가. 봄날은 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