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업에 뛰어든 지 3년 만에 연매출 500억원대의 우량기업을 일군 (주)씨에스테크놀로지 안형기 회장.
- 그는 최근 저서 ‘이런 나라에서 살고 싶다’에서 우리 사회 전반에 걸쳐 60여 가지의 불합리한 사안을 곱씹고 이에 대한 참신하고 건설적인 대안을 제시했다.
처음엔 가족과 지인들에게만 자신의 글을 보여줬다. 그런데 주변의 반응이 예상외였다. “가려운 곳을 싹싹 긁어주듯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를 대신해줬다”는 것. 한 동료 기업가는 “직원들에게 보여주고 싶으니 쓴 글을 복사해달라”고 했다. 책을 내겠다는 생각은 꿈에도 해본 적이 없다는 (주)씨에스테크놀로지 안형기(安炯琪·48) 회장이 우리 사회를 비판·분석한 책을 낸 사정은 이러했다.
저서 ‘이런 나라에서 살고 싶다’에서 안 회장은 정치, 경제, 사회, 문화 전반에 걸쳐 60여 가지의 불합리한 사안에 대해 쓴소리를 내뱉는다. 기업인이 쓴 것이라고는 믿기 어려울 만큼 다양한 현상을 전문가에 가까운 식견으로 분석하면서 참신한 대안을 제시했다.
안 회장은 자신이 살고 싶은 나라의 조건을 다섯 가지로 요약했다. ▲위정자와 사회지도층이 솔선수범하는 나라 ▲기업인이 열심히 일하고 싶어하는 나라 ▲성공한 사람이 인정받고 존경받는 나라 ▲상식과 노력이 통하고 합리성이 존중되는 나라 ▲자식들에게 자랑스럽게 물려줄 수 있는 나라.
그는 이 모든 것의 밑바탕에는 ‘동기부여’라는 요소가 깔려 있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요즘 기업하는 재미가 없다고 말하는 기업가가 참 많습니다. 아무리 열심히 노력해도 사회로부터 돌아오는 건 냉담한 시선뿐이라는 거죠. 성공한들 인정받지도 존경받지도 못하니 어떤 동기부여를 받을 수 있겠어요? 물론 기업가들이 반(反)기업 정서를 야기한 면도 없진 않아요. 하지만 성공한 기업가가 아무런 보람을 느끼지 못하는, 이런 사회적 분위기는 한참 잘못된 것이죠.”
그는 우리 사회의 화두로 떠오른 ‘개혁’을 추진하는 방식에도 잘못된 부분이 많다고 지적했다.
“개혁은 분명 거스를 수 없는 시대의 필연적 요구지만 국민에겐 두려움과 공포감을 줄 수도 있거든요. 개혁, 개혁만 외치다 보니 앞날에 대한 막연한 불안감에 휩싸일 수밖에 없어요. 개혁은 소리없이 착실하게 추진해야 부작용을 최소화하며 성공할 수 있죠. 또 정계와 학계, 시민사회단체, 언론과 기업이 자발적으로 개혁에 참여할 수 있게 동기를 부여하고 범국민적 공감대를 이룰 수 있도록 대대적인 공익 캠페인을 벌이는 것도 필요합니다.”
지나친 반미(反美)정서도 우려했다. 미국이 아무리 우리에게 부정적인 영향을 끼쳤어도 현실적으로 우리가 줄 것보다는 받을 것이 더 많은 나라라는 것. 또 우리가 어려울 때 도움 받은 사실을 잊고 맹목적인 반미로 흐른다면 인간적인 도의나 정치적 신의를 저버리는, ‘경우에 맞지 않은 일’이 된다고 강조했다.
그는 또한 자신이 IT전문가임을 증명이라도 하듯 톡톡 튀는 참신한 제안들을 쏟아놓아 눈길을 끈다. 효율적인 교통문화 정착을 위해 차량 2부제를 실시해야 한다거나, 시속 120km 이상 속도를 내지 못하게 하는 속도제한장치를 차에 달아 판매하자는 등의 발상이 그런 예다. 고속도로 수신호 제도 아이디어도 기발하다.
“주말이나 명절, 연휴에는 고속도로 정체구간에 교통경찰과 도로공사 직원, 자원봉사자들을 배치하고 수신호로 차량의 통행속도를 조절하는 겁니다. 가령 손을 펴면 5분, 주먹을 쥐면 10분, 두 번 쥐면 20분, 이런 식으로요. 수신호를 보면 그 자리에 멈춰서서 시동을 끄고 기다리는 겁니다. 기름 낭비도 막고 운전자들도 잠깐이나마 휴식을 취할 수 있으니 1석2조죠.
또한 수많은 경조사를 일일이 챙기는 것은 아주 부담스럽습니다. 인터넷을 활용해 경조사 참석을 대신하면 갖가지 불합리한 폐단과 사회적 비용을 절감할 수 있죠. 즉 결혼식이나 장례식을 인터넷으로 중계해 해당 홈페이지에서 그 장면을 지켜보게 하는 거죠. 부조금은 인터넷뱅킹으로 결제하게 하고, 게시판에 축하나 위로의 글을 남기게 하는 겁니다. 기술적으로는 전혀 문제가 없어요. 문제는 인식의 전환이죠.”
안 회장은 이런 대안들이 자신만의 생각이라기보다는 평소 많은 사람과 대화를 나누면서 공감한 이야기들을 정리한 것이라고 했다.
사실 IT업계에서는 그를 모르는 사람이 드물다. 벤처 거품이 빠진 뒤인 1999년 업계에 진출한 후 수년째 경기가 하강하는 국면에서도 연 100%에 달하는 성장을 이뤄냈기 때문. 회사를 설립하던 해 87억원의 매출을 올린 이래 수직상승을 거듭, 올해엔 600억원 돌파를 목표로 삼고 있다.
주력사업인 VoIP(Voice over internet Protocol·무료 인터넷 전화)는 국내 시장점유율 1위다. 지난해 우리은행 하나은행 현대증권 신한생명 SK증권 등 하반기에 발주한 금융권의 VoIP 시스템 구축 프로젝트를 독식하는 ‘괴력’을 발휘했다. 2003년에는 현대미포조선 STX 동서석유화학, 2002년에는 현대중공업동양제과 코스트코코리아 대신증권 교보증권 등에 VoIP 시스템을 구축했다. 또한 SI(System Integration) 컨설팅 및 서비스 분야에서도 1인당 생산성이 국내 1위를 자랑한다. 한국IBM의 비즈니스 파트너로 2003년 400억원의 SI사업 실적을 올렸다.
IT업계에 ‘겨울’이 계속되는 와중에도 고속 성장을 거듭하는 원인은 무엇일까.
“저는 직원들을 평생 동지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10원짜리 일을 해놓고 100원을 요구한다면 동지가 될 수 없죠. 직원이 자신의 생산성을 높이고 그만한 대가를 요구하면 급여인상이든 휴가든 무조건 다 들어줍니다. 그럴 자격이 있으니까요. 직원 수도, 투자자본도 적은 우리 회사가 성공할 수 있었던 것은 직원들에게 이렇듯 확실하게 동기부여를 해왔기 때문입니다.”
(주)씨에스테크놀로지의 인사고과는 철저히 실적 중심이다. 그것도 1년에 한번 평가하는 것이 아니라 수시로 진행한다. 평가는 이른바 ‘색깔카드제’로 이뤄진다. 직원들은 실적이 좋으면 그린, 보통 수준이면 옐로, 나쁘면 레드카드를 받는다. 그린카드를 받으면 1분기 동안 봉급의 10%를 올려주지만 레드카드를 받으면 5%가 깎인다. 상벌의 퍼센티지에 차이가 있는 것은 이 제도가 실적이 나쁜 사람에게 불이익을 주기보다는 실적이 좋은 사람에게 더 많은 보상을 하기 위한 것이기 때문이다. 인센티브나 페널티를 1년 단위가 아닌 1분기 단위로 주는 것도 직원들이 자신의 장점을 드러낼 기회를 더 많이 갖게 하기 위함이다.
해외에서 활로 찾아야
올해 제2의 벤처붐이 일 것이라는 기대가 커지고 있다. IT 경기 사이클이 회복세로 돌아서리라는 전망이 나오는 가운데 정부는 지난해 12월24일 ‘벤처기업 활성화 대책’을 내놓았다. 하지만 안 회장은 이에 대해 “국내 IT는 이미 포화상태이기 때문에 해외에서 활로를 찾아야 한다”고 잘라 말했다.
“무엇보다 수출이 중요합니다. 우리의 앞선 인프라를 해외에 내다 팔아야죠. 우리 회사도 올해 미국 현지 회사들과 합작해 사업을 벌이려고 합니다. 하지만 중소기업이 독자적으로 외국에 나가기란 쉽지 않아요. 정부는 좋은 기술을 가진 벤처의 해외 진출을 지원해야 합니다. 예전처럼 옥석을 가리지 않고 무분별하게 자금만 지원한다면 제2의 벤처붐이 아니라 제2의 거품을 만들어낼 뿐입니다. 그리고 IT가 단순히 정보를 뿌려주는 시대는 지났다고 봅니다. 이젠 인프라나 기술이 아닌 콘텐츠 면에서 접근해야 합니다.”
안형기 회장은 컴퓨터공학을 전공한 후 IBM에 입사, 16년간 기술직과 영업직으로 근무했다. IBM에서는 10년 가까이 엔지니어로 일하다가 영업직이 적성에 맞을 것 같아 과감히 영업직 ‘신입사원’으로 변신했다. 그 후 영업팀장으로 엄청난 실적을 올리며 활약하고 있을 때 벤처붐이 꺼진 것을 알면서도 사업 아이템의 성장 가능성만 믿고 IT업계에 뛰어들었다.
주변에선 무모하다고 했지만, 그의 생각은 달랐다. 보편적이고 합리적인 눈으로 상황을 제대로 분석한 후 내린 결론이기에 성공을 확신했다는 것. 안 회장은 저서에서 밝힌 ‘이민 가고 싶지 않은 나라’ ‘다시 태어나고 싶은 나라’가 되기 위한 제안들도 당장 실행에 옮길 수 있는 현실적이고 효율적인 내용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그는 “내 제안 중 하나라도 이뤄져 지금 중학생, 초등학생인 두 아이에게 ‘꼭 살고 싶은 나라’를 물려줄 수 있으면 좋겠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