탐하기를 멈추지 않는다. 여전히 소년의 눈빛과 시인의 감성을 잃지 않은 건 이런 노력의 결과다.
또박또박 국어책을 읽는 듯한 대사 처리와 뻔뻔스러운 표정연기. 전국의 시청자는 어색함과 천연덕스러움이 기막히게 어우러진 한 남자의 연기에 배꼽을 잡고 쓰러졌다. 디자이너 장광효(50)씨는 MBC 시트콤 ‘안녕 프란체스카’에 출연해 우아한 척하지만 근본은 푼수스러운 ‘장샘’ 역할로 얼굴을 알렸다. 이로써 그는 패셔니스타(fashionista)들의 ‘스타’에서 대중의 ‘스타’로 거듭난다.
서울 강남구 청담동에 있는 장씨의 브랜드 ‘카루소’ 매장에서 만난 그는 드라마의 ‘장샘’보다 훨씬 차분한 모습이었다. 그는 대부분의 디자이너가 수년씩 거치는 무명시절을 경험하지 않았다. 굳이 꼽자면 제일모직 ‘캠브리지’에서 일한 3년을 들 수 있을까. 그의 경쟁력은 당시 ‘정식 공부’를 한 유일한 남자 디자이너라는 점이었다.
“원래 화가가 되려고 미대 회화과에 지원했지만 낙방했어요. 그 뒤 2차시험에서는 그래픽디자인과를 선택했죠. 의상은 부전공으로 공부했어요. 당시 의상과에서는 남학생을 뽑지 않았거든요.”
주먹구구식으로 복장학원을 거쳐 패션계에 입문하던 시절, 패션 전공으로 프랑스 퐁텐블루 예술학교 유학까지 마친 그는 타고난 기질과 뚝심으로 자신만의 디자인 역량을 차곡차곡 쌓아나간다. 귀국 후 국내 기성복업체에 들어갔지만 틀에 맞는 옷을 짓는 건 체질에 맞지 않았다. 그간의 공부가 아까웠다. 고민 끝에 1987년 압구정동에 개인 숍 ‘카루소’를 연다. 아내의 제안에 따라 지은 브랜드 이름은 이탈리아 성악가 엔리코 카루소의 이름에서 따온 것.
청담동 ‘카루소’ 본점 3층 작업실. 그가 디자인한 옷을 입은 모델과 명사들의 사진이 벽면에 가득하다. 외국인 모델에게 작품 가봉을 하고 있다. 디자인 스케치는 선과 색감을 살려 꼼꼼히 해야 한다. (왼쪽부터 차례로)
1987년 설립한 브랜드 ‘카루소’는 최근 인터넷 쇼핑에 진출, 사업 기반을 넓혔다.(좌) 1988년 ‘NEW WAVE IN SEOUL’이라는 남성복 최초 컬렉션 이후 50번 넘게 쇼를 진행한 장광효. 그에겐 ‘국내 최초 남성복 디자이너’라는 수식어가 따라다닌다.(우)
장씨가 디자이너의 필수 자질로 꼽는 것은 ‘끼’와 노력. 그러면서 “나는 끼보다 노력으로 성장한 디자이너”라고 자평한다.
“패션계에서 일하면 대개 잡기에 능할 거라고 생각하는데, 저는 술 담배 못하고 아침 8시에 기상, 밤 11시에 퇴근하는 바른생활을 해요. 일하는 시간이 대부분이고요.”
그의 일상은 생각보다 단조롭다. 대부분의 시간은 작업실에서 보내고, 작업 이외의 것들도 모두 일을 위한 밑거름의 성격이 짙다. 독창적인 디자인 구상을 위해 여행, 책 읽기, 영화 보기 등으로 시야를 넓히고 생각을 자유롭게 한다. 그는 “모든 체험은 내면을 충실히 하는 데 도움이 되지만, 그중에서도 여행만한 건 없다”고 말한다. 그래서 아내와 함께 1년에 두세 차례는 해외로 훌쩍 떠난다.
“‘러시안 블루’라는 색깔이 있어요. 왜 그런 이름이 붙었나 궁금했는데, 모스크바 공항에 밤 9시쯤 도착해 하늘을 바라보니 딱 러시안 블루더군요. 터키에 가서는 하늘과 바다에서 터키 블루를 봤고요. 패션은 지역의 정서와 문화를 보여주는 바로미터예요. 나라의 기후, 문화에 따라 색감, 패션이 달라지죠. 그런 까닭에 밀리터리룩에 관심 있을 땐 러시아, 독일 등지의 갤러리와 거리를 살피고 다녔어요.”
다음 여행지로는 스페인을 염두에 두고 있다. 이미 몇 차례 스페인을 다녀왔지만 이번엔 안달루시아 지방을 구석구석 살피고 싶어서다. 대도시보다는 소도시나 시골마을에 오래 머무르며 그 고장 사람들과 함께 호흡하기를 즐긴다.
패션은 트렌드에 가장 민감하게 반응하는 분야. 장광효의 패션 역시 시대의 흐름을 신속하고 충실하게 좇아왔고, 때로는 흐름을 선도하기도 했다. 최초의 남성복 디자이너가 지닌 디자인 이력을 읽으면 그 시대의 ‘남심(男心)’이 보인다.
먹고살기 바빠 패션에 신경 쓸 겨를이 없던 1970년대에는 화려한 색과 디자인으로 디자인에 대한 관심을 높였고, 10년쯤 뒤에는 클래식으로 돌아왔다. 앞으로는 클래식을 대중화하면서 아트웨어를 하고 싶은 소망이 있다. 반평생을 남성복에 대한 일념으로 보낸 그에게 ‘꿈’을 물었다
“제게는 정년이 없어요. 아마 70세까지는 이 일을 하지 않을까 싶어요. 그러나 감각이 떨어지면 바로 손을 놓을 생각이에요. 은퇴한 뒤에는 아늑하고 청신한 수목원을 만들고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