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년 4월호

진대제 전 정보통신부 장관

“삼성전자, 운영방식이나 일하는 패턴은 여전히 벤처회사”

  • 구자홍│동아일보 신동아 기자 jhkoo@donga.com│

    입력2010-04-01 17:5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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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정상에 오르는 것보다 정상을 지켜내는 것’이 더 어렵다고 한다. 2009년 매출액 136조2900억원, 영업이익 10조9200억원을 기록한 삼성은 이제 남이 간 길을 따라가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갈 길을 개척해야 하는 자신과의 싸움이 남아 있다. 정상에 오른 삼성은 과연 그 자리를 지켜낼 수 있을까.
    • 삼성전자 디지털총괄 사장을 지내고 최장수 정보통신부 장관으로 재직한 바 있는 진대제 전 장관으로부터 삼성전자가 세계 최대 전자회사, 반도체 최강자의 지위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어떤 노력이 필요한지 들어봤다.
    진대제 전 정보통신부 장관
    진대제 전 장관과의 인터뷰는 2월8일 서울 도곡동에 위치한 스카이레이크인큐베스트 사무실에서 진행됐다. 그는 현재 정보기술(IT)회사에 주로 투자하는 스카이레이크인큐베스트 대표이사로 재직 중이다. 당초 인터뷰의 목적은‘메모리카드 시장에서 고전하고 있던 삼성전자’(신동아 3월호 참조)를 취재하기 위해서였다. 그런데 인터뷰는 자연스레 정상에 선 삼성이 앞으로 극복해야 할 도전, 친정인 삼성에 대한 충고로 이어졌다.

    기업과 정부에서 승승장구하던 그는 2006년 경기지사 후보로 출마했다가 낙선하기도 했다. 이후 스카이레이크인큐베스트를 설립해 벤처투자가로 변신했다.

    ▼ 삼성전자가 현재 정상에 있습니다. 정상에 있을 때 자칫 잘못 판단하면, 혹은 오만하거나 안주하면 갑자기 어려워질 수 있습니다. 삼성이 냉정하게 스스로를 돌아봐야 할 때가 아닌가 싶습니다.

    “삼성전자의 다른 부문도 마찬가지지만 삼성전자 반도체가 1983년부터 오늘에 이르기까지 거의 30년이 다 돼가요. 그런데 지금까지 회사의 운영방식이나 일하는 사람의 행동패턴이 거의 벤처회사예요. 진짜로 힘들게 일해요. 말씀하신 것처럼 거대기업이 되어서 오만한 생각을 하기보다는 거기 있는 사람들이 진짜 죽을 정도로 열심히 일하는 겁니다. 삼성전자는 회사의 컬러가 아직도 진짜로 벤처예요. 언젠가 1994, 1995년쯤 우리가 돈 잘 벌고 할 때도 삼성에서 일하다 나간 사람이 바깥에서 저를 만나면 ‘너는 아직도 벤처같이 일하냐’ 이런 소리를 했어요. 그런데 내가 밖에 나와서 보니 삼성은 아직도 옛날의 벤처 같아요.”

    ▼ 한 달에 이틀 쉰다던가요?



    “그러니까요. 요즘 그런 회사가 어디 있어요. 세계 1등을 한 지가 1993년이니까, 지금 17년째 세계 1등인데, 아직도 그런 소리를 들어요. (삼성의) 내부에서는 보통의 긴장상태가 아니에요. 생산하다가 조금만 방심하면 그냥 수율이 떨어지잖아요.”

    ▼ 극도로 긴장하지 않으면 안 되는 여건에서 일하는군요.

    “극도의 긴장상태예요. 이제는 그렇지 않겠지만, 전에는 사무실에서 일하다가 형광등이 깜빡깜빡하면 다들 놀라서 뛰어나갔어요. 전기 한번 깜빡하면 100억이 날아가니까요. 항상 긴장하고 있으니, 스트레스가 많지요. 생산라인이 강물처럼 흘러가는데, 무슨 암초에 걸려서 파도가 일지 모르거든요. 지금은 사고 한번 나면 돈이 1000억원대가 왔다갔다 할 거예요. 순간적으로. 보통 노이로제가 아니죠.”

    ▼ 삼성이 돈을 쉽게 많이 벌고 있는 것만은 아니군요.

    “그런데 그걸 당연한 것으로 여겨요. 삼성이 모든 걸 다 잘할 수는 없어요. 그래서 국제협력이 필요합니다. 삼성이 오히려 경계해야 할 대목은 혼자서 모든 것을 다하려는 것이에요. 이것이 문제가 될 수 있어요. 오히려 다른 데의 좋은 아이디어들을 빨리 습득하고 거기와 파트너십을 형성하는 등 개방성이 더 필요하지요. 아이팟이나 아이폰 이런 것들이 인터넷을 기반으로 하는 협업이거든요. 협업이 점점 더 중요해지는 시대가 오는데, 독야청청하려 해서는 안 되지요. 삼성이 오히려 다른 회사들하고 파트너십을 잘 맺어야 지금의 위치가 더 공고해질 수 있지요.”

    삼성도 얻어맞을 수 있다

    ▼ 잘나갈 때 인심을 잃으면 조금이라도 어려워졌을 때 다 등을 돌리게 되지 않습니까. 삼성이 스스로 돌아봐야 할 대목이 아닌가 싶습니다.

    “혼자 너무 잘나가면, 위기가 찾아왔을 때 모든 사람이 돌아서죠. 지금 여기저기서 도요타 때리기를 하는 것도 그렇고. 앞으로 삼성도 얻어맞을 수 있어요.”

    ▼ 삼성이 중소기업이나 해외 업체와 체결하는 계약관계도 유심히 들여다봐야 할 필요가 있겠더군요. 삼성의 이익을 지나치게 극대화하는 데 계약 내용이 치중돼 있지 않나 하는….

    “그런 점이 있을 수 있지요.”

    ▼ 제가 보기에는 ‘어떻게든 쥐어짜서 회사에 한 푼이라도 더 들어와야 내가 좋은 평가를 받는다’ 이런 문화가 팽배한 것 같아요. 이런 구조는 오래가지 못 할 텐데요. 지금은 워낙 큰 회사여서 거래처나 협력업체들이 무서워서 입을 닫고 있지만, 작은 허점이라도 보이면 다들 들고 일어나지 않을까요.

    “(웃음) 진짜 그런 점은 있어요. 그런데 최고경영자(CEO)가 자기 재량으로 그걸 바꿀 수가 없어요. 삼성뿐 아니라 어느 대기업도 마찬가지예요. 우선은 이익을 많이 내고, 그게 바로 실적에 연결되어서 자기 연봉에도 관계가 되고, 그게 다 주가에도 영향이 있고, 그게 주주들하고도 관계가 되고 다 연결돼 있어서 어느 누구도 ‘우리 이익 좀 덜 내고 나눠줘라’ 그렇게 할 수가 없어요.”

    ▼ 불공정하다고 느끼는 사람이나 거래처가 많아지는 것은 결국 회사를 위태롭게 하는 일이 될 수 있지요. 대기업과 중소기업이 상생해야 한다고는 하지만, 균형 잡힌 계약조차 이뤄지지 못하는 게 현실이 아닌가 싶습니다.

    “(정보통신부 장관 재직 때) 대통령하고 재벌 총수들이 모여서 상생 협약한다고 하는 그런 일이 있었어요. 그때 내가 입바른 소리를 좀 했지요. ‘대통령하고 회장님들께서 상생을 얘기하셨지만, 이것은 잘 안 되는 얘기입니다’고 했죠. ‘회장님께서 하자고 총론적으로 말씀하시지만, 그게 저 일선 구매담당이나 임원의 업무보고 때까지 가기는 어려울 겁니다’라고. 예를 들어 임원이 매년 15% 원가 절감, 구매가격 절감 이런 업무 목표를 세웠을 텐데, 이 목표를 바꾸지 않으면 (상생이) 안 되거든요. 그런데 그 목표를 누가 바꿔요? 못 바꿔요. 그건 회사 전체의 이익이니까. 삼성전자가 100조원 팔면 얼마쯤 구매하느냐 하면 50조원은 사거든요. 그런데 거기서 10%만 줄이면 얼마예요. 5조 이익이 더 나는 걸 누가 하지 말자 그래요?”

    ▼ 상생의 뜻은 원론적으로 다 이해하지만, 이것을 현실화하는 것이 어려운 문제라는 말씀이군요.

    “그래요. 상생하자는 소리는 10년 전에도 있었어요. ‘중소기업 다 죽는다. 대기업에서 봐줘야지’ 하면서 현금 결제하도록 했어요. 그렇지만 대기업은 돈에 관해서는 철저하게 깎거든요. 겨우 먹고살 정도로 놔두거든요. 그래도 삼성전자와 거래하는 사람들은 먹고는 살아요. 다른 회사 납품업체는 더 죽을 맛이에요. 대기업이 휘청하면 전부 갹출해서 적자 같이 메우고, 그렇게 또 살아가요. 일본도 그래요. 일본도 대기업에서 적자 나고 그러면 납품업체들 다 불러서 전부 갹출시키고 하거든요. 참 어려운 문제예요.”

    미국 사람들, 시장 훨씬 잘 다뤄

    진대제 전 정보통신부 장관

    2006년 청와대 대중소기업 상생협력 보고대회에 참석한 노무현 대통령(가운데)과 재벌 총수들.

    ▼ 삼성이 반도체 양산체제 구축에는 성공적이었지만 원천기술 확보 부분은 등한시한 것이 아닌가요?

    “그건 꼭 그렇게 얘기할 수 없어요. (반도체 분야가) 너무 다양하거든요. 그러니까 삼성전자 혼자서 전자산업 분야에서 사용하는 반도체를 다 만들어낼 방법이 없어요. 제조는 가능할지 모르지만 응용이라든지 소프트웨어라든지 이런 것을 다 감당할 수 없거든요. 삼성에서도 얼마나 하고 싶겠어요. CDMA의 경우는 우리(삼성)도 자체적으로 CDMA칩을 만들었어요. 1998년에 만들어서 그 공로도 삼성경영 금상도 받았어요. 대상 다음가는 상을 받았는데…. 퀄컴이 먼저 만든 것을 여러 가지 특허 문제도 있었지만 유사하게 만들었는데, 결국에는 미국 사람들이 시장을 훨씬 잘 다룬 셈이죠. CDMA 서비스 시장이라든지, 이런 것을 판촉해서 우리가 만들었어도 팔지 못하게 됐죠. 결국 삼성 안에서도 쓰지 못할 정도가 됐고, 하나는 만들어냈지만, 그 다음에도 지속적으로 만들어내지는 못하니까….”

    ▼ 메모리카드 분야에서 MMC카드와 SD카드도 그런 양상이 있었던 것으로 볼 수 있겠네요.

    “그런 셈이죠. 우리가 시도해볼 수 있지만, 지속적으로 하기에는 힘에 부치죠. (소니가 만든) 메모리스틱 같은 것도 안 되잖아요.”

    ▼ 소니도 (메모리스틱 사업을) 올해 공식적으로 접었다는 보도가 있습니다.

    “(메모리스틱에) 무지무지하게 돈을 많이 들였어요. MMC에 삼성은 돈도 별로 안 들였죠. 삼성에서 플래시메모리를 만드니까, 조금 시간을 끌다 그냥 안 되겠구나 판단했던 거지요. 메모리스틱에 소니가 돈을 엄청나게 퍼부었어요. 결국 돈만 까먹은 셈이 됐죠.”

    진대제 전 정보통신부 장관

    삼성전자가 지난해 말 양산에 들어간 32GB 낸드플래시 메모리.

    ▼ 메모리카드 시장이 재편되는 과정을 살펴보니, 칩을 만들어내는 능력과 기술도 중요하지만, 무엇보다 시장을 만들어내는 시장 창출 능력이 더 중요한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맞아요. 그런데 메모리 자체는 시장을 만들 필요가 없어요. 저장소가 커져야 되고 스피드가 빨라야 되고 가격이 떨어져야 되기 때문에 메모리 분야는 더 빨리, 더 많이 만드는 사람이 이기는 거예요. 메모리 같은 것이 우리한테는 기가 막히게 잘 맞는 사업이죠. 메모리 아닌 다른 것은 우리나라가 잘못했지요. 그래도 비메모리가 지금 삼성 혼자서도 3조5000억원 정도로 커졌지요. 나도 비메모리 3년 정도 해봤는데, 워낙 다양하고 급변하고 하니까 어려움을 많이 겪었어요. 그래도 그동안에 많이 커진 거예요.”

    시장 재편한 사업자가 다 먹게 돼

    ▼ 삼성이 MMC카드를 접을 수밖에 없었던 배경 중 하나가 당시 삼성으로부터 대량으로 칩을 구매했던 노키아가 SD로 전환한 것이 계기가 됐더군요.

    “소니의 베타도 VHS에 지지 않았습니까? 소프트웨어나 이런 쪽에서는 단일화 경향이 더 심해요. 호환성 때문에. 메모리카드도 소비자의 소비 성향이 한쪽으로 모아지는 것이지요. 그렇게 표준화되는 거죠. 결국 이기는 사업자가 시장을 다 먹게 돼 있어요. 삼성이 모든 분야에서 독주할 수 있는 방법은 없어요. 세계적으로 똘똘한 사람이 얼마나 많이 있는데요. 로열티 준다고 아까워할 필요 없어요. 그런 원천기술을 확보하려면 연구개발(R·D) 비용이 또 들거든요. 예를 들어 CDMA를 퀄컴에서 사오면서 로열티 4%, 5%씩 주잖아요. 그 로열티 주는 것 무척 아깝죠.”

    ▼ 그렇지만 로열티를 안 주면 이익이 더 나는 것 아닌가요.

    “그러면 사업을 못해요. 로열티 주는 게 좀 아깝더라도 사업을 하기 위해서는 당연히 지급해야 하는 거예요. 또 원천기술을 확보하기 위해 노력한 사람들도 있고. 로열티를 주지 않으려면 삼성이 그만큼의 R·D 비용을 써야 하거든요. 퀄컴은 CDMA 하나 성공하기 위해서 그것보다 열 배, 스무 배의 돈을 썼을 것 아닙니까. 여럿 중에 하나 성공했는데, 로열티 준다고 전부 억울해하고 그러면 안 돼요. 우리가 지금 휴대전화를 연간 300억 달러어치 팔지요. 로열티는 그중에 10억 달러 정도 주는 것이고 국가 전체에 300억 달러의 수출이 생기는 건데요. 휴대전화 하나에 150달러쯤 하면 그중에 퀄컴에는 한 6달러 정도 가나. 그것밖에 안 돼요.”

    샌디스크 인수했으면 좋았을 것

    ▼ 2008년에 샌디스크가 자금난을 겪을 때 삼성이 인수를 추진한 적이 있지 않습니까?

    “그때 인수했으면 좋았는데….”

    ▼ 인수했으면 로열티를 물지 않아도 되니까 시너지 효과를 기대할 수 있었겠죠.

    “그때 인수했으면 좋았을 뻔했는데, 안 판다고 하니까 할 수 없는 일이고…. 삼성전자는 시대적인 흐름에서 미래를 준비해야 해요. 예를 들어 샌디스크 같은 메모리카드가 시간이 좀 더 지나면 새로운 디스크 형태로 또 나타나거든요. 다른 것이 나타나면 지금의 메모리카드는 별것 아닐 수도 있어요. 이런 새로운 변화를 잘 봐야죠. 지금은 휴대전화가 거의 컴퓨터 기능을 할 정도로 강력해지고 있잖아요. 그러면 샌디스크 정도의 메모리가 아니고, 그야말로 Solid State Disk 수준까지 가야 되는데, 그때는 다른 사람이 특허를 갖고 있을 수 있어요. 그런 변화의 과정에 삼성전자도 응용이라든지, 앞을 내다보는 소프트웨어라든지 운영체계라든지 이런 관련 서비스들에 대한 새로운 특허라든지 이런 것을 만드는 것이 필요하지요. 삼성전자는 지금까지 양산체제에 역량이 있었는데, 이 같은 역량은 샌디스크나 아이폰, 아이팟 만든 스티브 잡스가 갖고 있는 능력과는 다르거든요. 그런데 수학 잘하는 사람에게 왜 영어는 잘 못하느냐고 야단치면, 영어, 수학 다 잘하려다가 둘 다 놓칠 수 있어요. 소니도 삼성 같은 제조업을 하다가 다른 것 한다고 하다가 제조업이 날아간 거잖아요. 그러니까 너무 그렇게 이것저것 다 잘하려고 할 필요가 없어요. 자기가 잘하는 것을 계속 하면서 조금씩 역량을 펼쳐나가는 게 중요하지요. 삼성전자로서는 샌디스크 인수가 새로운 역량을 하나 추가할 수 있는 기회였는데, 인수했다고 해도 꼭 성공적으로 됐을 것이란 보장은 없어요. 삼성이 샌디스크를 인수해서 독점을 한다고 쳐봐요. 그러면 다른 사업자들은 다른 방향으로 나갈 거라고요. 다른 형태로. 절대로 세상은 어느 한 사업자가 독주하도록 놔두지 않거든요. 정반합이 있는 거지요.”

    메모리, 아이팟과 차원 다른 얘기

    ▼ 더 저렴하게 더 많이 생산할 수 있는 공정을 만들어내는 것이 그렇게 힘든 일인가요.

    “그건 하나님이 주신 세계하고 싸우는 거예요. 재료 자체와 빛의 파장 등 물리적인 세계를 극복해내야 가능한 일들이에요. 프로그램 응용해서 무슨 아이팟 하나 만들었다는 것하고는 차원을 완전히 달리하는 얘기예요. 반도체 제조 공정이 잘 안 보이는 것이라서 뭐라고 말을 못해서 그러는데, 어느 날 반짝 뭐 하나 만들어내는 것하고는 아주 차원이 다른 거라고요. 감히 따라오지 못할 일들을 하는 거예요. 새로운 일들을. (반도체 생산이라는) 그 본류의 세계가 정말 중요하거든요. 삼성이 그렇게 잘하고 있는 것은 얘기도 안 하지요. 뭐라고 할 필요도 없는 거고.”

    ▼ 2009년 매출액 기준으로 삼성이 명실상부하게 세계 최대 전자회사로 올라섰지만, 정상에 서 있을 때가 가장 위태롭다는 얘기가 있습니다. 삼성이 30나노 공정을 성공해서 양산체제를 구축한다고 발표하니까, 일주일 만에 IBM하고 합작한 회사에서 25나노 공정에 성공했다는 발표가 나오더군요. 그만큼 거센 도전과 추격을 받을 텐데요.

    “그것(IBM 합작사에서 만든 공정)은 메모리에다가 못 쓰는 겁니다.”

    ▼ 그건 다른 공정인가요?

    “비메모리 쪽에 쓰는 겁니다.”

    ▼ 비메모리 공정에서 25나노이고, 삼성은 메모리 분야에서 30나노 공정을 성공한 거군요.

    “IBM 같은 데서 먼저 하면 좋아요. 그것은 물리적인 한계를 극복했다는 얘기거든요. 그러면 근본적인 기술은 삼성에서 쓸 수 있어요. 그러니까 누가 돈을 많이 들여서 개발하는 것은 좋은 일이에요. 그렇다고 그 회사에서 메모리를 만들지는 않으니까. 전세계가 그렇게 왔다갔다 하면서 발전하는 거지요. 아무도 연구 개발하는 데가 없으면 삼성 혼자서 해야 하는데, 그게 가능하겠어요. 옛날에는 모든 반도체를 IBM이 개발했어요. 20여 년 전에 IBM하고 AT·T가. 그것을 인텔이 맞서서 했어요. IBM하고 인텔이 없는데 삼성 혼자서 메모리 개발해서 20나노를 하라고 하면 못합니다. 그 인프라를 만들 수가 없어요. 돈이 너무 많이 들어서 못하는 겁니다. 그러니까 마이크로프로세서라든지 IBM이 무슨 군사용 반도체 같은 것이 필요해서 만드는데, 그렇게 만든 것들이 나중에 원용이 돼요. 좋은 일이지요. 지금은 재료의 성질, 빛 등 물리적 한계를 하나씩 극복해 가는 과정에 있거든요. 그런데 요즘 아이폰이 나왔는데, 삼성 스마트폰이 전혀 못한다는 것은 문제예요. 그것은 별로 돈 안들이고 만들 수 있는 일들이에요. 그런데 시기적으로 늦으니까. 그것도 시간이 지나면 하겠지요. 스마트폰이 뭐 별거라고. 그건 어려운 일이 아니에요.”

    ▼ 그래서 구글폰이라고 하는 안드로이폰 쪽으로 제품을 만들어서….

    “스티브 잡스가 혼자 독식하게 놔두겠어요? 수많은 사람이 그런 생각들을 하고 사는데….”

    아이폰으로 노키아 타격 받을 것

    ▼ 휴대전화 하면 삼성 애니콜이라는 명성이 있었는데, 휴대전화의 아성을 놓치는 것은 리스크가 큰 일이라는 시각도 있습니다.

    “노키아가 더 타격을 받을 거예요.”

    ▼ 노키아가요?

    “노키아가 한 10여 년 전부터 스마트폰 만든다고 그랬는데, 지금까지 별로 못 하거든요. 어쨌든 새로운 강자가 나타나면 1등이 손해를 가장 크게 보게 되죠.”

    ▼ 1등이 아무래도 가장 많이 위협을 받겠지요.

    “노키아가 흔들흔들하게 돼 있지요. 그렇다고 아이폰 같은 게 엄청난 규모로 커지지는 않아요. 마니아층에서 쓰는 것으로 한정돼 있어요. 모든 사람이 스마트폰을 다 쓸 것 같아요?”

    ▼ 글쎄요. 좋아하는 사람이야 좋아하겠지만, 불편해서 안 쓰는 사람도 있을 것 같은데요.

    “그럼요. 90%가 안 쓰는데요.”

    ▼ 정통부 장관으로 취임하기 전에 삼성에서 사장도 지내셨는데, 그전에도 시스템LSI사업부가 있었나요?

    “그럼요, 마이크로사업부를 시스템LSI사업본부로 이름을 바꿔서 내가 대표이사 부사장을 했지요. 한 3년 했어요.”

    ▼ 그게 파운드리라고 하던데….

    “파운드리하고는 좀 다르지요. 파운드리는 남이 설계한 것을 생산만 해주는 것이고, 나도 그때 파운드리를 일부 했는데, 그것보다는 우리 자사 브랜드를 더 많이 했지요.”

    ▼ 시스템LSI사업부에서요?

    “그때 매출이 1조원 정도 됐는데 파운드리 비중은 한 20% 안됐던 것 같아요.”

    ▼ 1990년대 초중반 삼성에서 반도체를 최초로 개발했다는 얘기가 나올 때마다 이름이 거론되곤 했는데요.

    “내가 최초로 한 것도 있지만, 내 밑에 있던 사람들이 많이 했지요. 권오현 사장, 황창규 사장이 다 내 밑에 있던 사람들이에요.”

    ▼ 같은 팀에서 한 것이니까, 팀의 리더이고 하니까 이름이 오른 거군요.

    “그럼. 내가 독식한 거지. (웃음) 다 내 밑에 있는 사람들이니까. 시스템LSI에 갔을 때에는 내가 최초로 1GHz마이크로프로세스 알파칩을 만들었지요. 전세계 기록이었죠. 1GD램에 1GHz 알파칩. 그때 인텔의 펜티엄이 400MHz쯤 됐나.”

    ▼ 속도를 엄청나게 높인 거네요.

    “그럼요. 알파칩은 영화 ‘타이타닉’만드는 데 들어가고 그랬지요. 그런 기록을 갖고 있어요. 그러다가 디지털총괄로 간 거니까.”

    ▼ 저 개인적으론 이원성 부사장의 죽음으로 반도체 분야에 관심을 갖게 됐는데요. 그분이야말로 R·D만 하셨던 분 아닙니까.

    “그렇지요.”

    ▼ 반도체연구소장을 하면서 전무에서 부사장으로 승진했고, 그 다음에 시스템LSI사업부로 갔더라고요. 연구할 때야 자기 분야만 신경 쓰면 되지만, 경영자가 되면 회계부터 조직, 인사 등 모든 것을 다해야 하니까, 그런 것에 부담이 크지 않았나 하는 시각이 있더군요.

    “그런 것 같아요. 그런 부담 때문에…. 그 친구 내가 데려다놓은 친구인데…. 회사가 싫으면 회사를 떠나면 그만이지, 세상은 왜 떠나냐.”

    ▼ 스탠퍼드대 후배이죠?

    “그렇지요.”

    15개 사업부 중 꼴찌에서 4등으로

    ▼ 시스템LSI를 처음 맡았을 때 상황은 어땠어요?

    “1998년에 삼성의 사업부 15개에 사업팀 1개 해서 16개였는데, IMF 외환위기라 어렵고 하니까 사업부끼리 경쟁시켰어요. 그래서 매출하고 이익이 많은 순서대로 쭉 서서 사장단, 사업부장들 회의를 하는데 순서대로 발표하는 거예요. 그때 사업팀은 매출이 2000억밖에 안돼 논외로 하면, 15개 사업부 중 내가 맡은 시스템LSI가 15등이었어요. 시스템LSI가 그렇게 설움 받는 데였어요. 그런데 내가 그만둘 때쯤에는 4등으로 올라섰어요. 메모리, 휴대전화, 캐피털CD, 시스템LSI 순으로 4등까지 했죠. 시스템LSI를 화끈하게 뜯어고쳤죠.”

    ▼ 그런 신화가 바탕이 돼서 장관에도 발탁되고 하신 것 아닌가 싶군요.

    “(웃음) 하여간 큰 시각에서 봐줘요. 지엽적인 것으로 하나씩 하지 말고, 이만한 것을, 조그마한 것을 하나 갖다 이렇다저렇다 하는 것보다 큰 흐름에서 이런 것도 있고 저런 것도 있고, (삼성이라고)다 잘하지는 못해요. 메모리카드는 메모리를 파는 것 가운데 한 10% 정도 될까? 메모리카드 아닌 것이 더 많잖아요.”

    ▼ 반도체에 대한 삼성의 전체 비즈니스 모델이나 시장에서 성공하기 위한 여러 노력과 노하우도 간과해선 안 된다는 말씀이군요.

    “맞습니다. 지금 삼성으로선 feature size(나노공정)를 줄이는 것이 제일 큰 일이에요. 메모리카드 같은 것은 어떤 응용이라든지, 시장 측면에서 볼 때 큰 패러다임 시프트가 일어날 수 있어요. 이제는 물리적인 한계를 벗어나지 못하는 것이 많아지거든요. 그러면 그것을 뛰어넘는 다른 패러다임이 나타날 수 있어요. 이를 테면 고분자 반도체라든지 이런 것이 나오는 시점, 지금의 D램과 플래시메모리의 성격을 동시에 다 갖추고 있는 특별한 재료를 이용한 메모리가 나온다든지 이런 것들이 경계해야 될 대상이에요. 메모리카드가 이런 거 저런 거 더 나오는 건 그럴 수도 있겠구나 싶은 건데, 오히려 지금은 그 본류가 흔들리는게 큰 문제예요. 더 이상 feature size를 줄여가지 못하게 되면 다른 재료라든지 재료를 다루는 방법, 이런 것들이 더 큰 문제가 되거든요. 그런 것을 하려면 장비라든지 장비 기술이 있어야 하는데, 다른 데 의존하잖아요. 그러니까 그런 부분에 대한 것도 확실하게 해야 하고, 반도체에 들어가는 신소재 이런 것들도 국가적으로 연구해야 하죠. 그런 점에 더 관심을 가져야 해요.”

    진대제 전 장관은….

    “세계 최초로 16M D램을 개발한 엔지니어, 삼성 반도체 신화를 이끌어낸 CEO, 그리고 정보통신부 장관에 이르기까지 IT시대의 핵심인재로 살아온 진대제”.

    2006년 펴낸 자전적 에세이집 ‘열정을 경영하라’에 소개된 진대제 전 장관에 대한 소개다.

    미국 실리콘밸리의 IBM에서 근무하던 중 “조국의 반도체 신업을 일으켜 일본을 집어 삼키겠다”는 포부로 삼성전자로 자리를 옮긴 그는 1987년 4M D램 개발에 이어 1989년에는 세계 최초로 16M D램을 개발, 삼성 ‘반도체 신화’의 주역이 됐다. 2000년 삼성전자 디지털미디어총괄 사장에 오른 뒤 소니와 정면승부를 벌여 소니의 아성을 무너뜨림으로써, 삼성 브랜드 가치가 소니를 따라잡는 기반을 마련했다.

    삼성전자 사장 시절 탁월한 추진력과 판단력, 위기관리 능력을 가진 테크노 CEO로 승승장구하던 그는 2003년 정보통신부 장관에 임명돼 3년여 동안 IT강국 코리아의 입지를 굳혔다. 현재는 토종펀드 투자사인 스카이레이크인큐베스트 대표로 재직 중이다.

    경남 의령 출생으로 경북중과 경기고를 졸업했고, 서울대와 미국 매사추세츠 주립대 전자공학과를 거쳐 스탠퍼드대학에서 전자공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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