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년 4월호

안병태 전 해군참모총장의 ‘국방개혁 307계획’ 직격 비판

“육군 출신 이너서클에 갇힌 MB, 최악의 개악 하고 있다”

  • 황일도│동아일보 신동아 기자 shamora@donga.com

    입력2011-03-21 16:1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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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말만 합동군일 뿐 사실상 통합군제… 해·공군 전문성 사장될 것
    • ‘전군 지휘하는 한 사람의 군인’은 문민통제·헌법정신 위배
    • ‘육군 일색 합참’이 문제였는데 어째서 통합군이 답인가
    • 천안함·연평도로 합동성 공감대? 책임회피 위한 정치술수
    • 군수·교육 통합사령부는 육군 자리 늘리기 되고 말 것
    • 경호처장·안보특보·국가위기관리실장·국방비서관 …
    • 진급에만 신경 쓰는 관료화 군대가 패배 부른다
    안병태 전 해군참모총장의 ‘국방개혁 307계획’ 직격 비판
    천안함과 연평도 사건을 거치는 동안 관심이 폭증했던 국방개혁 문제에 대해 이명박 정부가 드디어 답을 내놓았다. 2010년 1월 구성된 국방선진화추진위원회와 넉 달 뒤 출범한 국가안보총괄점검기구에서 논의를 거쳐, 3월7일 국방부가 73개의 개혁과제를 대통령에게 보고한 것. 이튿날 발표된 이 장기플랜의 명칭은 대통령 보고 날짜를 딴 ‘307계획’이다. 청와대와 국방부는 군 상부구조 개편으로 육해공군의 합동성을 강화하고 북한에 대한 적극적 억제능력을 갖추겠다며 비장한 표정을 감추지 않았다.

    그러나 오랜 진통 끝에 나온 결과물치고는 비판도 만만찮다. 부대구조 개편과 장군직위 하향 조정을 통해 444명인 전체 장군 숫자를 2020년까지 15% 줄이기로 했다지만 정확한 감축 내역은 여전히 불확실하고, 보병사단, 지역군단, 기계화부대 개편과 병력규모 조정 등 육군이 수행해야 할 과제를 대부분 2016년 이후 2030년까지 진행될 장기과제로 미룬 것도 개혁의지를 의심케 한다며 비판의 도마에 올랐다.

    특히 이번 계획안의 핵심이라 할 상부구조 개편 계획에 대한 해·공군 인사들의 반발은 예상을 훌쩍 뛰어넘는다. 현재의 합동참모본부에 합동군사령부의 기능을 추가하고 사령관을 겸하는 합참의장에게 군령(작전지휘)권을 뒷받침하는 군정(작전지원)권을 부여하겠다는 기본구조가 1992년 818계획 당시의 개념과 흡사하다는 것. 국방참모의장(현 합참의장)에게 각군에 대한 군령권과 군정권을 모두 부여하려 했던 이때의 그림은 해·공군과 여론의 강한 반발로 무산된 바 있다.

    해·공군 관계자들은 이러한 상부구조 개편이 사실상 육군 중심의 통합군을 만들겠다는 것 아니냐는 비판을 공공연히 표출하고 있다. 전시작전통제권을 돌려받은 뒤 작전지휘 기능이 각군 총장으로 이관된 후에는 합참의장과 각군 총장이 수직관계에 놓이게 되는 것이나, 각군이 나누어 맡고 있는 군수와 교육 등을 하나의 기능사령부로 통합하는 방안에 대해 의구심 어린 눈초리를 거두지 않고 있는 것이다. 해당 예비역 고위인사들이 연쇄회동을 갖고 대응책 마련을 논의하는 등 상황이 심상찮게 돌아가자 청와대와 국방부 역시 긴장하는 기색이 역력하다. 최근에는 역대 해군참모총장 전원이 서명한 건의서가 정부에 제출되기도 했다.

    3월10일 서울 해군호텔 영빈관에서 안병태 전 해군참모총장을 대표로 다섯 명의 예비역 해군 고위장성이 ‘신동아’와 마주했다. 이 자리에서 이들은 307계획이 “청와대와 국방부 관계자들의 ‘육군 중심주의’가 잉태한 최악의 개악”이라며 목소리를 높였다. 해군사관학교 17기로 2함대사령관과 작전참모부장, 작전사령관 등 요직을 두루 지낸 안 전 총장은 재임시절 ‘대양해군’이라는 모토를 처음 공론화한 인물로 해군에서 가장 존경받는 예비역 인사로 손꼽힌다. 미 해군대학 연수 등을 통해 외국군의 현황과 전략개념을 연구하기도 했다.



    마침 이날 아침에는 3월7일 307계획 보고 직후 이명박 대통령이 군 수뇌부와 면담한 자리에서 남긴 발언이 ‘동아일보’에 보도돼 군 관계자들 사이에서 화제에 올랐다. 일부 참석자가 국방개혁이 잘못된 방향으로 추진될 경우 해·공군이 육군의 ‘기능부대’가 될 수 있다는 견해를 밝히자 이 대통령이 이를 강하게 질타했다는 것이 그 골자. 단도직입, 첫 질문으로 먼저 대통령의 이러한 언급에 대한 생각을 안 전 총장에게 물었다.

    문제와 다른 답

    ▼ 기사가 전하고 있는 대통령 발언의 골자는 “해·공군 총장의 얘기는 내가 지금까지 만난 많은 예비역의 의견과 똑같은데, 예비역들의 압력에 휘둘려 국방개혁의 발목을 잡는 우(愚)를 범해선 안 된다”는 겁니다.

    “그걸 참 뭐라고 해야 할지…. 국가 지도자를 함부로 비판해선 안 되겠지만, 군에는 나름의 전통과 전문성이 있는 겁니다. 현역과 예비역이 의견을 나누는 것이지 현역들이 예비역들 하라는 대로 무조건 따릅니까. 오히려 국방개혁 같은 중요한 과제를 수행할 때는 여러 사람의 말을 듣고 소통을 하는 게 중요하죠. 대통령 본인부터 많이 들어야 하는 겁니다. 정확한 결론에 도달하기 위해 많은 이의 의견을 듣고 종합하고 조정하는 것, 그게 민주주의의 과정 아닙니까. 군인은 거기서 제외되는 건가요.

    대통령은 이전 정부에서 국방개혁 논의가 예비역을 중심으로 하는 각군 이기주의 때문에 실현되지 못했다고 인식하는 듯한데, 나는 그런 생각이 잘못됐다고 봅니다. 이기주의 때문에 개혁이 좌절됐다면 그건 육군의 이기주의 때문이었죠. 이기주의는 자신의 이익만을 추구하는 겁니다. 해·공군은 갖고 있는 것도 빼앗겨왔어요. 이건 자존을 위한 처절한 투쟁이죠. 지금 우리가 전하고 싶은 뜻은 한쪽 얘기만 듣고 그 말이 옳다고 믿어버리면 큰일이 날 수 있다는 겁니다.”

    안병태 전 해군참모총장의 ‘국방개혁 307계획’ 직격 비판
    ▼ 307계획에 포함된 상부구조 개편안에 대한 비판도 그런 차원인가요? 육군이 해·공군이 갖고 있는 것마저 빼앗으려 한다는?

    “말은 합동군제지만 꼼꼼히 들여다보면 이건 통합군제입니다. 한 사람에게 3군의 군령권뿐 아니라 군정권도 일부 주겠다는 건데 헌법정신에 어긋날 뿐 아니라 문민통제 정신에도 맞지 않아요. 미국도 합참의장이 실질적으로 전군을 지휘하지만 공식적으로는 지휘관이라고 하지 않습니다. 최고사령관은 대통령 한 사람 뿐이니까요. 그러한 체제에는 유서 깊은 함의가 담겨 있는 겁니다. 미국이라고 당장 쿠데타가 일어날까 싶어 그러는 걸까요. 오랜 기간 군을 운영한 뒤 나라를 지탱하는 최선의 방법으로 내린 결론이라는 겁니다. 65만이라는 대군을 가진 우리가 조그마한 군대를 가진 나라들처럼 통합군을 하겠다는 건 난센스예요.

    국방개혁의 목표가 뭡니까. 현재의 문제점을 바꿔서 가장 잘 싸울 수 있는 군대로 만드는 것 아닙니까. 천안함과 연평도 사건을 거쳐 오면서 지적된 가장 큰 문제점은 합참 주요 지휘계선이 육군 일색이어서 서해나 공중에서 위기가 발생할 경우에 전문성 있는 대응이 어렵다는 것이었습니다. 천안함 폭침 당시 초기대응에 문제가 많았던 것도 그 때문이었고요. 합참 지휘선상에 브리핑할 사람이 마땅치 않아서 업무상관성이 별로 없는 해군 준장을 불러다가 카메라 앞에 세웠잖아요. 확인된 문제점을 고칠 생각은 않고 엉뚱한 얘기를 하고 있다는 겁니다.

    대한민국 국방부와 합참은 이미 머리가 너무 무겁습니다. 합참에만 요원이 1000명이에요. 전세계 어디에도 이런 가분수가 없어요. 시대정신은 분권화, 전문화를 향해 가고 있는데 우리 군만 날이 갈수록 중앙집권화 경향이 심해지고 있는 겁니다.”

    ▼ 그렇지만 현대전이 이른바 네트워크 중심전(Network Centric Warfare)으로 변화하면서 육해공 전장을 통합하는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는 것도 사실 아닙니까. 정보를 중앙으로 집중해 통합적으로 결정하는 게 효율적이라는 반론도 만만치 않습니다.

    “그건 네트워크 중심전을 잘못 이해한 거예요. 네트워크의 핵심은 정보의 유비쿼터스예요. 각군이 구성하고 있는 전력을 통합적으로 네트워크화하는 게 가장 중요하죠. 육해공군 모든 작전부대에서 나오는 상황을 모두가 동시에 한 화면으로 공유할 수 있으면 문제를 어떻게 해결할 수 있을지도 자동적으로 답이 나와요. 어디서든 정보를 보고 행동할 수 있는데 왜 한곳에 모읍니까. 네트워크 중심전이라는 개념 자체가 분권화를 뒷받침하는 모토예요. 이걸 중앙집권화에 써먹는다는 건 개념 자체를 이해 못했다는 뜻이죠. 통합군제를 택한 나라들을 보면 각 구성군의 특성이 전혀 없습니다. 합참의장에게 인사권을 주고 교육·군수 기능마저 통합해 직할로 두면 합참의장 입맛대로 할 수는 있겠지만 전쟁을 수행하는 능력은 훨씬 떨어질 수밖에 없어요.”

    하수 중에 하수

    ▼ 현재의 계획에 포함돼 있는 합참의장의 인사권은 합참 조직 구성원에 국한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합참의장이 자기가 쓸 사람을 자기가 인사하는 게 자연스러운 것 아닌가요. 합참에서 오랜 기간 일하며 전문성을 키울 수 있다는 장점도 있을 텐데요. 그간 ‘합참에서 쓸 만하면 각군 예하부대로 인사가 나더라’거나 ‘각군에서 최고 인재는 합참에 보내지 않는다’는 비판도 있었고요.

    “합참 조직에 국한된다는 건 시작일 뿐이에요. 합참의장이 최고지휘관이기 때문에 각군 총장은 그 부하가 됩니다. 결국 전군 인사를 다 하는 거예요. ‘제한된 인사권’이라고는 하지만 그 경계가 불분명합니다. 내가 총장을 할 때 절감한 것이지만, 각군은 최고의 인원을 뽑아서 합참에 보냅니다. 그들이 잘못하면 해군 전체가 시원치 않다는 평가를 받을 텐데 적당히 하겠다고 빠질 사람이 있겠습니까. 어떻게 활용하느냐는 합참의장의 리더십에 달린 겁니다. 더욱이 지금도 합참 인원을 발령 내려면 협의를 거쳐야 해요.

    합참 직위의 전문성을 위해서라면 오히려 필요한 건 합참에서 경력을 발전시킬 수 있는 제도적 장치죠. 합참이나 국방부에서 근무한 경력이 없는 사람은 장군 진급이 안 된다고 못박아두면 서로 가려고 나설 수밖에 없고 가서도 몸이 부서지도록 일할 수밖에 없습니다. 실제로 미국이 그렇게 하고 있잖아요. 좋은 대안이 있는데 왜 부작용이 뻔한 인사권 부여를 택합니까. 이건 하수 중에도 하수예요.”

    ▼ 합참 주요 직위에 대해 각군의 비율을 엄격히 적용하겠다는 것도 흐지부지될 수밖에 없다고 보는 건가요.

    “역사적인 배경이 그렇습니다. 법령에 규정된 육해공군 2대1대1 비율을 지킨 적이 과연 있습니까. 신뢰하려고 해도 할 수가 없어요. 천안함 사건 직후에 합참 작전부장을 해군에 맡겼다가 몇 달 후 다시 육군으로 바꾼 일이 있지요? 문제가 불거지면 지키는 척하다가 시간이 지나면 어디론가 사라지고 없어져버려요. 꼭 비율이 어때야 한다고 말하는 게 아닙니다. 일단 정해지면 지켜야지, 이제까지 안 지켜놓고 믿으라고 강요하면 그걸 어떻게 믿겠습니까. 각군의 교육과 군수 기능을 통합해 기능사령부로 만들고 나면 그 사령관은 누가 맡습니까. 결국 육군이 하지 않겠습니까. 육군 자리를 늘리려는 숨은 의도를 대통령을 비롯한 정책결정자들이 정확히 꿰뚫어보지 못한 거예요.”

    배석한 한 예비역 제독이 보충설명을 이어나갔다. 평소와는 달리 사뭇 격한 어투다.

    “대통령 앞에서는 비율을 지키겠다고 하죠. 그렇지만 육군은 해·공군이 장교 숫자가 부족하다는 걸 뻔히 압니다. 정원을 늘려줘야 그 자리에 갈 인력이 생기는데 절대로 늘려주지 않아요. 대신 나중에 가서 ‘해·공군은 올 사람이 없으니 육군을 임명할 수밖에 없다’고 하는 거죠. 그렇게 될 걸 알고 있으면서 대통령을 속이는 겁니다. 그 사기를 수십 년간 지켜봐 왔기 때문에 속이 훤히 들여다보이는 거죠.”

    전문성이 사라진다면

    ▼ 말씀하신 대로 현재의 계획안이 육군 중심의 통합군으로 가는 길이라고 해도, 평범한 국민 입장에서는 그게 과연 문제가 되는지 잘 모르겠습니다. 오히려 해군 이기주의가 아니냐는 생각도 들 수 있고요. 한반도에서의 전면전을 상정하면 결국은 지상군 중심체제가 될 수밖에 없다는 게 상식에 가까운데요.

    앞서의 배석자가 답변을 이어나갔다.

    “문제는 그렇게 될 경우 각군의 전문성이 사장될 수 있다는 거죠. 천안함 사건 직후에 북한 함정이 중국 어선에 붙어서 북방한계선(NLL)을 넘어온 일이 있는데, 당시 궁지에 몰려 있던 합참 지휘선상에서 해군 작전사령관에게 무조건 쏘라고 명령한 일이 있습니다. 사실 이건 까딱 잘못해서 중국 어선이 가라앉으면 외교분쟁이 일어날 수 있으니까 매우 민감한 일이죠. 작전사령관이 의장 명의로 만들어진 작전예규를 찾아다가 읽어주니까 그제서야 정리가 됐다더군요. 합참에서 의장이 지시한 예규도 모르고 지휘를 하는 겁니다.

    더욱이 걸프전이나 이라크전에서 봤듯이 현대전은 해·공군이 사전에 주요 전략목표를 타격해야 아군의 피해를 최소화할 수 있습니다. 이런 식으로 지상군 중심으로 귀결될 게 뻔한 통합군을 만들어서 해·공군의 전문성이 사라져버리면 한국군은 영원히 옛날식 전쟁밖에 못하는 겁니다. 검증도 되지 않은 경제성 논리 때문에 헤엄도 못 치고 날지도 못하는 옛날식 군대로 돌아가는 거예요.

    해·공군이 살아야 육군도 산다

    지상군만 비대해진 군대가 되고 나면, 전면전이 벌어졌을 때 1200발에 달하는 북한의 지대지 미사일이 전부 민간인이 많은 육지로만 떨어집니다. 해상 무기체계를 강화하면 미사일들이 바다를 향해 날아오도록 유인할 수 있죠. 최근 북한이 강화하고 있는 특수전 병력도 마찬가지입니다. 바다에서 이를 막아내지 못하면 전쟁을 수행할 수가 없어요. 3군이 전문성을 갖춘 채 균형발전을 해야 하는 이유입니다.”

    ▼ 최근 청와대나 정부 핵심관계자들은 북한의 급변사태를 대비하기 위해서라도 지상군 규모를 유지할 수밖에 없다는 인식도 갖고 있는 것 같습니다. 전면전 못지않게 급변 시 북한에서의 민사작전 수행을 위해서라도 큰 규모의 지상군이 필요하다는 거죠. 말씀하신 이라크전에서도 미군이 민사작전에서 헤매느라 희생이 늘어났고, 미군 내부에서도 그에 대한 비판이 상당했습니다.

    다시 안 전 총장이 말을 이어나갔다.

    “그건 내가 얘기할 부분이 있습니다. 물론 육군 중심의 사고가 모조리 틀렸다는 건 아닙니다. 민사작전을 해야 할 상황도 올 수 있고, 전면전이 벌어지면 지상에서 재래식 전선이 형성될 가능성도 충분히 있죠. 많은 이가 미래전에서는 FEBA (Forward Edge of the Battle Area·전투지역전단)를 유지할 필요가 없다고들 하는데, 개인적으로 한반도의 지형 특성상 그런 일이 벌어질 가능성도 있다고 봅니다. 그 경우 전쟁 주도권은 육군이 가져야 한다는 것도 인정합니다. 그러나 그러기 위해서는 해·공군이 사전타격을 통해 적의 전쟁수행의지를 꺾어야 합니다. 육군이 지상전을 잘 수행하기 위해서라도 해·공군이 잘 싸울 수 있는 여지를 없애서는 안 된다는 거죠. 육군의 주도권을 부인할 수는 없지만, 지금 가는 방향은 이를 지나치게 기형적으로 만들 게 뻔하다는 겁니다.

    다시 돌이켜 봅시다. 연평도 사건 당시 각군 사이에 협조가 안돼서 대응이 늦었습니까? 이미 함정이 근처에 있었고 공군 전력도 떠 있었습니다. 위에서 결심을 못했기 때문에 해군이나 공군이 개입하지 못한 거지, 합동성이 부족한 탓이 아니었다는 말입니다. 육군은 오랜 기간 권력을 누려왔던 사람들입니다. 정치적인 문제가 발생했을 때 이를 어떻게 하면 자신들에게 유리한 방향으로 활용할 수 있는지 판단하는 데 능합니다. 또 다른 예를 들어볼까요. 제2연평해전 당시 해군도 잘못한 게 많지만 합참의 잘못된 판단도 큰 몫을 했죠. 그렇지만 마치 전력부족이 문제였던 것처럼 돌려서 윤영하함을 만들었습니다. 최대 약점을 고민하고 대책을 만드는 게 아니라 다른 부분에 문제가 있는 것처럼 방향을 돌려 책임을 흐리는 겁니다. 기가 막히죠. 사실을 사실대로 말하지 않고 다른 방향으로 돌려야만 질책을 피할 수 있다는 정치적 감각이 작동한 결과물입니다.”

    또 다른 배석자가 말을 이어나갔다.

    “3월7일 김관진 국방장관이 대통령에게 보고한 걸 보면 ‘천안함 연평도 사건으로 합동성 강화에 대한 공감대 형성’ 이렇게 돼 있습니다. 합참의장이나 장관이 임무를 제대로 수행하지 못했던 게 문제였지만 마치 합동성이 문제였던 것처럼 거짓말을 해서 통합군으로 가는 핑계로 삼은 거죠. 까놓고 말해 연평도를 핑계 삼아 육군 잇속 챙기려고 그런 것 아닙니까. 육군 중심의 국방부가 잘못된 문장을 들고 대통령에게 보고한 겁니다. 엄격하게 말하면 이건 대통령을 속이고 국민을 속이는 겁니다. 그야말로 국가에 위해(危害)를 가하는 거짓말입니다.

    합동성의 핵심은 각군의 장점을 살려 국가방어에 활용하는 겁니다. 예를 들어 북한의 장사정포 위협을 전쟁 초기에 무력화할 수 있는 가장 경제적인 방법이 무엇인지, 육군이 요구하는 다련장포나 K-9, 아파치 헬기, 공군이 말하는 전폭기 등을 조합해 최적의 구성비를 찾아내는 거예요. 이상희 장관 시절에 장사정포에 대응하는 대화력전 강화를 위해 2020년까지 30조원을 빼놓으라고 했습니다. 당연히 육군이 요구한 사항이었죠. 30조원이면 F-15K 300대예요. 육군 뜻대로 다 쓰는 게 맞겠습니까, 절반을 돌려 F-15K 150대를 사는 게 맞겠습니까. 어느 게 북한 장사정포를 무력화하는 데 더 경제적이면서도 효과적일까요. 이런 걸 국가 수준에서 판단하는 게 바로 합동성의 핵심입니다. 이런 얘기는 전혀 하지 않고 지휘체계만 일원화하면 합동성이 구현된다고 생각하는 게 지금의 307계획이라는 겁니다.”

    실적보고용 통합?

    다시 안 총장의 말을 들어보자.

    “아마도 합동성이라는 단어가 요즘 국민에게 가장 설득력 있는 말인 듯한데, 합동성은 각군의 전통과 전문성을 인정하고 최대한 발휘될 수 있도록 하는 것이고, 통합성은 ‘딴소리하지 말고 내 말 들어’ 하면서 획일적으로 움직이기를 강요하는 겁니다. 지금 가는 방향은 분명 통합성이죠. 각군의 전문성을 잘 발휘할 수 있게끔 통제하는 미국식 합참의장이 바로 합동성의 이상적인 모델이에요. 무조건 한 사람이 다 쥐고 흔들 수 있어야 효율적이라고 생각하는 건 전근대적인 사고방식입니다.”

    ▼ 그렇지만 흩어져 있는 기능을 통합하면 분명 조직이 간소화되고 인원이 줄어드는 효과가 있을 텐데요. 이명박 정부가 내건 국방개혁의 핵심목표인 경제성과 효율성이 그래서 나온 것으로 알려져 있고요. 각군의 군수와 교육기능을 합쳐 통합사령부로 만들겠다는 게 대표적인 사례일 듯합니다만.

    한 배석자의 말이다.

    “언뜻 그럴 것 같지만 실례는 다릅니다. 계룡대 3군 본부의 시설관리와 경계를 담당하는 본부사령을 통합해 근무지원단을 만들었죠. 이게 과연 경제성이 있었느냐, 그렇지가 않습니다. 통합준비과정에서 각군 지원부서 위에 상부조직이 하나 더 만들어진 꼴이 돼서 예산이나 인력이 더 많이 소요된다는 결론이 나왔어요. 그런데도 상부에서 청와대 실적보고용으로 상징적인 차원에서 밀어붙인 겁니다. 수송사령부도 마찬가지죠. 원래는 참모나 부대가 필요 없는 수송감실 체제였는데 통합해 사령부를 만들려니까 부지도 필요하고 건물도 지어야 합니다. 이게 과연 효율적입니까. 이제껏 만들어진 합동부대가 대부분 그런 식입니다.”

    “문제는 자리 욕심”

    ▼ 이명박 대통령 본인이나 청와대 참모들의 시각은, 당장 효과가 생기기는 어렵다 해도 일단 조직을 합쳐놓으면 장기적으로는 융합되지 않겠느냐는 것인 듯합니다.

    “오로지 육군 얘기만 듣고 그렇게 생각하는 겁니다. 지금 대통령 주변의 참모들 중에 해·공군 출신은 한 명도 없어요. 합동부대 중에 해·공군이 지휘관하는 부대가 어디 있습니까. 각군 복지단이 통합되기 전 육군은 준장이 단장이었습니다. 통합되고 나서 육군 소장이 단장이 됐고 해군은 자연스럽게 없어졌죠.”

    또 다른 배석자의 설명이다.

    “현대전의 특성상 점차 해·공군의 비중이 커질 수밖에 없다는 걸 육군도 잘 압니다. 장차 북한의 위협이 어떤 식으로든 줄어들 경우 지상군을 중심으로 감축되리라는 것도 마찬가지고요. 이러한 흐름에 지상군은 분명 위협을 느끼죠. 그런 위기를 피해 자리를 유지하려고 통합군을 만들려고 하는 겁니다. 뻔해요.

    육군의 현재 계급별 장교 수가 정원보다 많습니다. 또 그 정원은 편제상 필요한 인원보다 많고요. 자리가 부족하니까 자꾸 또 다른 자리를 만들어서 남는 인원을 집어넣으려고 하는 거예요. 육군의 남는 병력을 치우려는 계산에서 이번 군제 개편이 나왔다는 겁니다. 육군 장성 수십 명을 줄인다? 얼마든지 할 수 있습니다. 대령이 되도 갈 자리가 없으니까 사단장 밑에 부사단장을 행정부사단장 작전부사단장 등등으로 쪼개서 많게는 네 명까지 둡니다. 육군에서 진급이 전쟁이라는 말이 괜히 나왔겠습니까. 반면 해·공군의 경우는 자리는 있는데 사람이 없어요. 이러니 합동군 사령부를 만들면 육군이 대다수를 차지할 수밖에 없는 거예요.

    중요한 것은 국방입니다. 미래전을 위해 어떤 파이를 어떻게 키워야 할지를 먼저 고민해야 정답이 나오죠. 이렇게 해·공군의 전문성을 자꾸 무력화하면 결국 해·공군은 있으나마나 한 군이 됩니다. 균형 있는 전력 발전이 안 되면 국방이 안 되고 안보가 위험해지는 겁니다. 육군 출신들에게만 둘러싸여서 그런 결정을 단시간에 내린다는 건 위험한 발상이고, 국민적인 합의가 먼저 이뤄져야 하는 사항인 겁니다. 이건 잘못하면 나라가 망할 수 있는 일입니다.”

    ‘다른 생각’을 허용치 않으면

    ▼ 그렇지만 벌써 논의가 꽤 길었습니다. 총괄점검회의와 선진화추진위에서 벌써 1년 가까이 논의했고, 그전에 청와대에서 검토한 것까지 포함하면 3년이 넘은 셈인데요. 5년 단임제 대통령이 이 정도 했으면 논의는 충분한 것 아닌가요.

    앞서의 배석자가 답변을 이어나갔다.

    “문제는 얘기를 들으면 들을수록 논의과정이 부실하기 짝이 없었다는 결론이 나온다는 겁니다. 선진화추진위에서 내놓은 합동군 사령부 콘셉트는 누가 봐도 이론적으로, 학자적 관점에서 만들어진 겁니다. 육해공군을 1대1대1로 보임하면 균형이 잡힐 것이라고 생각했다는 거죠. 그런데 이게 국방부로 넘어간 뒤에는 합동군사령관이 각군 총장을 지휘한다는 틀만 남겨놓고는 균형보임 비율이 어디론가 사라져버렸어요. 선진화추진위원회에 주도적으로 참여했던 분이 나중에 ‘우리가 속았다, 이건 막아야 된다’고 그러셨다더군요.

    국방부나 합참은 물론 국회나 청와대에도 육군 출신들밖에 없습니다. 정책 결정과정에서 해·공군의 의견이 반영될 여지가 없는 거예요. 대통령에 대한 군사적 조언자가 합참의장으로 돼 있죠. 육군 출신 의장들이 이걸 무척이나 강조하다 보니 해·공군 참모총장이 업무적으로 대통령을 만날 일이 없어요. 모든 건 장관과 합참의장이 보고하는 겁니다. 육군에만 수십 년 근무한 사람들이 해·공군 관련 사항을 어떻게 속속들이 압니까. 현역 시절에 전력증강에 대해 대통령 보고에 들어가 보니 배석자가 외교안보수석, 장관, 합참의장, 전력본부장, 방위사업청 사업관리본부장, 국방비서관입니다. 모두 관료 아니면 육군 출신이에요. 균형 잡힌 토론이 가능하겠습니까. 이런 식으로 대통령을 보좌하면 안 됩니다. 이건 나라를 망치는 길이에요.

    천안함 사건 초기에 청와대에서 ‘북측 소행이라고 단정할 수 없다’는 말이 나온 건 해상 전장에 대해 전문성이 있는 사람이 없기 때문 아니었습니까. 대통령 주변에 해군을 아는 사람이 한 명이라도 있었으면 국민의 의혹을 살 일도 없었을 겁니다. 대통령이 해·공군 총장에게 예비역들 말 듣지 말라고 하기 전에 전문가들을 불러 토론을 해야죠. 군대를 안 갔다 와서 전문지식이 없으면 소통을 해야 판단할 수 있을 것 아닙니까. 육군 출신 인사들에 둘러싸여서는 그런 식으로 자를 때가 아니라는 겁니다.”

    다시 안 전 총장의 말이다.

    “정리해보면 결국 이건 이너서클의 문제예요. 지금 대통령을 둘러싸고 있는 사람들이 지독한 이너서클을 구축하고 있는 거죠. 이너서클이 너무 강하다 보니까 다른 사람은 들어갈 수가 없는 겁니다. 사실 이건 이명박 대통령이 인사문제 등에서도 누누이 지적받은 부분이잖아요. 다 같은 뿌리에서 나온 문제라고 봐요. 이걸 깨뜨리기 전에는 달라질 리가 없어요.”

    ‘이너서클’의 정체를 묻자 배석자들은 “청와대 경호처장부터 시작해 안보특보, 국가위기관리실장, 국방비서관 등 대통령이 군사문제를 의탁하는 사람들은 모두 육군 출신들”이라고 입을 모았다. 누가 먼저랄 것도 없는 이구동성이었다.

    러일전쟁을 떠올리는 이유

    어느새 이야기가 시작된 지 세 시간 가까이 흘렀다. 안 전 총장이 마지막 말이라며 무겁게 입을 열었다.

    “물론 참모를 고르는 것은 대통령의 인사권이고 그걸 왈가왈부할 수는 없겠죠. 그러나 제한된 인력 풀에서 사람을 쓰면 답도 제한될 수밖에 없어요. 군사적 위기가 서해에 집중되는 최근 상황을 심각하게 인식한다면, 당연히 바다를 아는 사람을 국가위기관리실장에 임명해야 훨씬 빠르고 정확하게 대응할 수 있는 거죠. 그런데도 왜 일이 터지면 늘어나는 청와대의 안보관련 자리는 모두 육군 출신으로만 채워지는지 이해가 안 되는 겁니다. 위기관리실장이 지상전 전면전 대비하자고 만든 자리가 아니지 않습니까.

    결국 따지고 들어가면 대통령의 사고방식을 얘기할 수밖에 없어요. 아는 사람 얘기만 들으려고 하는 성향은 해결하기가 힘들 거예요. 아마 이 정부 끝날 때까지 계속될 겁니다. 그게 걱정인 거지 해군의 이해관계 때문에 이러는 게 아닙니다. 흔히 육군에서는 해·공군을 가리켜 소군이라고 말합니다. 그렇지만 새끼손가락에도 상처가 나면 엄청난 고통을 줄 수 있고 생활을 불가능하게 만들 수 있습니다. 해군의 의견은 단순히 피해의식이나 이기주의일 뿐이라고 생각하면 안 되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해군의 특성을 무시해버리면, 그래서 그 전문성을 발휘할 수 있는 기회를 날려버리면 안보에 결정적인 약점으로 작동할 수 있다는 겁니다.

    러일전쟁 당시에 러시아의 군사력 총량은 일본에 비해 훨씬 거대했습니다. 대제국 러시아의 막강한 군대가 그렇게 어이없게 무너진 건 오로지 황제 니콜라이 2세의 뜻에만 신경 쓰는 지독히도 관료화된 군대였기 때문입니다. 몸은 전선에 와 있지만 영혼은 진급과 보직을 결정하는 사람들 옆에 남아 있었던 것이죠. 반면에 일본 연합함대를 이끌었던 도고 헤이하치로(東鄕平八郞)는 정치에는 무관심한 채 뛰어난 전문성을 갖추는 데 진력한 지휘관이었습니다. 그 차이가 승패를 가른 겁니다.

    지금의 군과 청와대를 보면 저는 그때의 러시아 군대가 떠오릅니다. 눈앞에 와 있는 위협이나 그에 대한 대비책보다는 개인의 진급이나 영향력을 더 중요시하는 사람이 너무 많다는 겁니다. 그런 사람들로 이뤄진 이너서클에서 대통령이 빠져 나오지 못한다면 결과는 뻔하지 않겠습니까. 바로 그게 가장 큰 걱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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