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신동아’는 창간 80주년 기념으로 한국 대표 지성들의 릴레이 강연회를 마련했다. 지난 5월부터 시작된 이 행사는 2012년 4월까지 1년간 계속되며 강연 내용은 신동아 지면에 실린다. 첫 회 연사는 김지하 시인이다. 김 시인의 강연회는 5월23일 오후 7시 반 서울 신문로 문호아트홀에서 열렸다. 강연에서 김 시인은 여성상위의 남녀평등을 강조하며 여성을 모시는 길이 후천개벽 시대에 인류가 사는 길이라고 설파했다. (편집자)
열기(熱氣)
그날
경기도 주최
세계생명문화포럼에서 호주여자
생태학의
발 플럼우드는
다섯 번을 똑같이
똑같은 말을 되풀이했다.
-인류와 지구의 대혼돈을 넘어서는 길은 단 한 가지. 인격-비인격, 생명-무생명을 막론하고 일체 존재를 다 같이 우주공동주체로 거룩하게 드높이는 모심의 문화, 모심의 생활양식으로 현대인간의 모든 생활을 철저히 변혁하는 길 그것뿐이다.
나는
그 뒤부터 어쩌면
발 플럼우드의 충실한 똘마니
어떠랴
서양의
한 젊은 여성의
뒤를 따라 동양의 한 늙은 남자가
중국이 세계에서
돈을 제일 잘 번다는 이 시기에 도리어
철저히 따라감이
얼마나 보기 좋으냐!
불교도 동학도 개벽역학도 모두 다
그 뒤다
나는
이제
한 여자의 피끓는 모심의
세계문화대혁명 주장을 따라
가다가 가다가
몇 번이나 죽을
각오가 돼있다
熱情 없이는 삶은 아예 없는 것.
(‘흰그늘의 산알소식과 산알의 흰그늘 노래’ p.211. 2010년 7월 ‘천년의 시작’ 刊)
이 강연은 신동아가 기획한 지식인 대상의 교양강좌로서 강연자 자신의 전공에 토대를 둔 현대적 교양, 인류역사상 그 유례를 찾아볼 수 없는 대혼돈, 대변혁의 시기인 현대의 동아시아·태평양 한반도의 한 개인의 삶에서 가장 핵심적 도덕인 ‘모심’으로 가는 길과 그 길에서 조심할 것 몇 가지를 본인의 최근 열흘간의 일정을 통해 간략히 찾아보는 것이다.
현대 인류 최고의 도덕률
‘모심’이 무엇인가?
나는 천도교가 아닌 ‘나홀로 동학당’이다. 동학의 핵심교리는 후천개벽(後天開闢)이고 그 실천윤리는 철저한 모심(侍)이다. 그러나 모심은 단지 동학만의 윤리는 아니다. 2000년 전 나사렛 예수의 필사적인 사랑의 형식은 ‘섬김’이라는 이름의 모심이었고, 그보다 500여 년 전 석가모니 부처가 펼친 ‘나무(南無)’라는 이름의 회향(回向) 역시 모심이었다.
공자의 사단(四端)에서 인(仁)은 의(義)에 앞서고 퇴계·남명의 영남학에서는 하늘로부터 인간에게 오는 성실(誠)보다 인간이 하늘을 향해 바치는 공경(敬)이 훨씬 중요하다.
이슬람은 아니 그런가?
이슬람 여성과 아기들은 지난 50년간의 지하운동을 통해 무하마드의 거룩한 첫 번째 메카시대 부인의 별명인 아크발라이 쇼크니아바(저 어둠 위에 참빛을!)의 한마디와 그에 대한 무하마드의 코란 제63절 하단의 기도 ‘저 어둠에 대해 진정한 존경심을 갖게 해주소서’의 둘째 마디를 끊임없이 외우는 ‘쎄벨리온(별)’ 운동을 통해 오늘 쎄벨리온과 똑같은 뜻을 갖는 재스민혁명의 놀라운 모심의 실천을 세계에 알리고 있다.
과격한 젠더투쟁의 실패로 인해 이미 낡아빠진 남성가부장적 에코파시즘을 복권시킨 유럽 페미니즘은 오늘 도리어 그 고전적 신성성(神聖性)의 생동하는 해석방향에서 공양(供養)과 양육(養育)을 포함하는 ‘새크라리온(Sacralion)’이라는 ‘모심’을 들어올림으로써 유럽을 다시 한번 신선하게 하고 있다.
현대 유럽 최고의 영지주의자요 대안영성학교 발도르프의 창시자인 루돌프 슈타이너는 현대 인류 최고의 도덕률을 단 한마디로 ‘모심’으로 규정한다.
종말 뒤의 새 시대
모심!
종말적 개벽사태인 대혼돈 극복의 유일한 길을 모심으로 단정한 발 플럼우드는 이미 이세상 사람이 아니다. 바로 그 모심 때문에 독거미의 희생양이 된 것이다. 그러나 과연 그 희생을 설명하는 ‘온난화’는 정당한 우주관인가?
지난해의 강추위나 지금의 일교차는 무엇이며 남극이 추워지고 북극이 더워지며 적도와 경도의 일치, 일본의 대지진, 화산 폭발, 쓰나미와 원전 방사능 누출과 지면침강, 미국의 토네이도와 사방에 번지는 수질오염과 해파리 등 죽지 않는 생명체의 등장, 이유 모를 심장해체로 갓난아기들이 돌발적으로 떼죽음당한 것과 며칠 전 보도된 바 제주에서 강남 가기 직전의 제비 3만마리가 한 군데 전선줄에 함께 모여 앉은 현상은 또 무엇인가?
개벽(開闢)이란 어휘 이외에 도대체 무엇으로 이 사태를 설명할 수 있는가?
그러나 짐승마저 모심을 지키는 이 현상은 또 어찌 해명해야 되는가?
3만마리 제비가 모여 앉은 그 앉음새의 철저한 간격을 어찌 봐야 할 것인가? 그것은 모심의 한 형식이 아니던가?
김지하 시인의 강연회는 200여 명이 참석해 성황을 이뤘다.
김지하 시인은 1974년 민청학련사건으로 구속돼 사형선고를 받았다. 이듬해 2월15일 형집행정지로 그가 석방되자 동료와 가족들이 목말을 태우며 교도소 앞을 돌고 있다.
왜?
‘준비하는 마음의 뜻으로!’
아항!
저 기괴한 한계령과 얼마나 다른가?
공부하고 글 쓰는 시간 이외에는 며칠 동안 이 한계령과 비로봉과 매화산 이야기가 내 머리에서 떠나지 않았다. 역시 모심의 비밀이겠다. 특히 내가 최근에 몰두하고 있는 ‘서기(瑞氣)의 미학’에 대한 미의식의 조건으로서의 ‘모심’과 연계된 것이다. 여기에 괴기(怪奇), 산숭해심(山崇海深)의 숭고와 심오 등이 모두 직결된다. 거기에 여성성과 모성의 현빈(玄牝)과 어린아이의 현람성(玄覽性)이 마땅히 그 기초를 이룬다. 머리에서 떠날 까닭이 없다.
이후 14일, 16일, 17일 이외에도 모심은 여러 형태로 나를 붙들고 있었다. 이 다음 모심에 관한 본격적인 글을 쓸 때 상세히 밝힐 것이다.
4월14일.
나를 치료해온 장병두(張炳斗) 선생이 서울에서 나를 아내와 함께 불렀다. 만나뵙자마자 대뜸 모심 이야기다.
“왜 화를 내는 거요. 왜?”
“예.”
“부인한테 왜 고분고분하지 않는 거요?”
“때에 따라서 그런 일도….”
“절대로 안 돼요. 부인은 큰 어른이고 선생은 아기요. 그것도 계집아이.”
“그거….”
“그래야 다 잘돼요! 몸도 낳고 일도 잘되고. 선생은 운이 커서 부인에게 화내기 십상인데 한번 화내면 그만큼 망해요 망해. 명심하세요.”
‘내 잔이 넘치나이다’
웬일일까?
전 같으면 그 말에 화가 벌컥 났을 터인데 자꾸 웃음만 나고 화가 전혀 나질 않는다. 웬일일까? 생명이 예절을 좌우하는구나! 아하하!
이날 내 생각이 아니라 내 몸이 바로 ‘모심’을 익힌 것이다. 좌우간 그런 마음이 들기 시작했다.
4월16일.
돌아가신 이화여대 총장 김옥길(金玉吉) 선생을 생전에 나는 꼭꼭 ‘누님’이라고 불러 모셨다. 그 누님의 동상제막식 소식을 들었다.
문경새재 고사리 별장의 분수동산이었다.
아내와 함께 갔다. 200명 가까운 분이 오셨다. 김동길 교수의 주재로 기념예배가 있었다. 회식도 있었다. 많은 분이 참 친절하게 우리를 대해주었고 특히 아내에겐 얼마 전 조선일보 인터뷰 기사 때문인지 참으로 애틋했다.
나는 떠나도록 내내 한 가지만 생각했다.
‘지족(知足)’이라는 말이었다.
누님은 내가 원주에서 출옥한 뒤 남모르는 집안고통을 겪고 있을 때, 그중에도 아내가 말 못할 괴로움을 한껏 겪고 있을 때 고사리 별장으로 나를 부르셨다.
식사 후 누님은 분수가에 서서 곁에 있는 내게 이리 말씀하셨다.
“김 시인, 내가 저 분수 앞에서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아나?”
“무슨 생각을 하십니까?”
“내 잔이 넘치나이다.”
“성경 속의…?”
“음, 김 시인, 한자로는 그걸 뭐라고 하지?”
“‘지족’입니다.”
“그래 지족. 김 시인. 이제 지족할 수 없겠나?”
“네에?”
“최고의 시인, 최고의 혁명가, 최고의 사상가가 되었어. 이젠 그만 만족하라고.”
“무얼 말씀하시려는 겁니까?”
“우리 영주(나의 아내) 언제 행복하게 해줄 건가?”
“….”
“언제 분가(分家)할 거야? 바로 지금 독립 안 하면 영주 죽어! 머리 빠지는 것 봐! 두 번이나 약 먹었잖아! 죽어. 이 사람아! 김 시인. 독립 안 하면 나 누님 안 할 거야!”
벽력이었다. 누님은 그런 분이었다.
모심은 지족의 산물
나는 잔뜩 얼어서 늘 나를 위해 비워놓는 아래 뜰의 조그마한 골방 침대에 가서 누웠다. 나도 모르게 잠이 들었다. 꿈결에서다. 문경새재 꼭대기 신선봉에서 도적떼 애꾸눈 부자(父子) 난쟁이가 내려와 하나는 내 머리를 잡고 하나는 내 다리를 붙잡아 기운껏 위아래로 잡아당겼다. 찢어 죽이자는 거였다.
“아아악-.”
소리 지르며 깨어 벌떡 일어났다.
‘이게 무슨 일인가?’
생각이 금방 들어왔다.
‘떠나라는 것이로구나!’
머뭇거릴 틈도 없었다. 누님께 ‘떠난다는 것’ ‘독립한다는 것’ ‘지족한다는 것.’ 세 마디를 작은 쪽지에 써놓고 바로 일어서서 수안보 쪽으로 터덜터덜 걸어 내려갔다. 거기서 바로 버스를 타고 전라도 광주로, 광주에서 해남으로 달렸다. 해남 작은 여관에서 원주의 아내에게 전화를 걸어 당장 아이들만 데리고 내려와버려라. 차일피일하면 못 온다. 빨리! 그리고 단호하게!
마침 나의 모친은 하와이에 있었다.
이튿날 아내와 아이들이 왔고 해남 후배들을 시켜 낡은 고가(古家)를 얻기로 했다. 그 뒤로 곧 장모님과 함께 누님이 오셨다.
나를 보고 빙긋 웃고는 아무 말씀 없이 떠나셨다. 그것이 마지막이었다.
지족.
그렇다.
한계령은 내 마음속에 아직도 배회하는 꿈들, 야망들, 울분과 노여움들이었고 그 다음날의 비로봉은 바로 지족이었다.
아하 답은 나왔다.
모심은 지족의 산물이다. 내가 옛 꿈들, 야망들, 울분과 노여움을 다 털고 만족해야만 모두를 모시고 아내를 모시고 아기들과 여성들과 쓸쓸한 사람들과 고양이, 강아지, 풀, 꽃, 산과 강물, 그리고 기계와 물건들. 끝내는 내 마음마저도 다 모실 수 있는 것이었다. 그리고 모심은 립 서비스가 아니다! 먼저 남성 가부장제 전체의 역사적 한계에 지족해야 한다. 물론 진리 공부에 지족 따위는 아예 있을 수 없지만!
오일장의 즐거움
4월17일.
내가 원주에 내려간 뒤 새벽과 아침의 공부시간 이외에 가장 좋아하는 일은 세 가지. 토지문화관이 있는 회촌의 양안치(兩岸峙) 아래 오봉(五峰)에 가끔 가는 일. 원주 주변 산천들을 돌아다니며 공부하는 일, 그러고는 옛날 나 열세 살 때 목포를 떠나온 뒤 대학 때까지 내내 살았던 평원동, 봉천 냇가의 시궁창 판자촌, 그 가난뱅이 동네에 요즘 들어선 오일장에 닷새마다 꼬박꼬박 장보러 가는 일이다.
그 일이 그렇게 신나는 일이다.
나도 전에는 몰랐다.
옛 어른들은 그 오일장을 ‘희비리(喜悲離)’라고 부르셨다. ‘기쁨과 슬픔이 넘나드는 한울타리’의 뜻이다. 마치 내가 떠나온 목포의 밑바닥 뻘마당 하당(下?)과 같은 희비리에서 서기 어린 백운산과 탈속한 미륵산 사이, 신라 마지막 왕 경순왕이 와서 살다간 귀래(歸來)와 원주의 대학들, 고등학교들이 밀집해 있는 흥업(興業) 사이의 토지문화관이 있는 양안치까지가 어찌 보면 나의 지난 삶 전체의 파노라마다.
바로 이 희비리 장바닥에 와 이빨 빠진 귀머거리 할머니들에게 들나물이며 고사리며 이것저것 반찬거리를 사들고 절룩절룩 집으로 돌아갈 때 나 스스로 깜짝 놀라곤 한다.
‘아! 이것이 참 모심이로구나!’
여성상위의 남녀평등
그 뒤에 생각해보니 그럼 남자가 이제부터 여성 모심 뒤에 해야 할 일은 무엇인가? 달과 물과 그늘의 시대에 그 밑에 쭈그리기만 할 것인가?
바람직한 것은 ‘여성상위의 남녀평등’이다. 이 구조에서 남성이 창조해야 할 자기 일거리의 원칙은 어디에 있을까? 생각하고 생각한다.
유럽의 저명한 과학철학자 라이프니츠는 그의 논문 ‘세 개의 태양에 관한 상상력’에서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바람직한 해의 기능은 앞으로 불의 추진력과 온도 중심의 Energy Bubble이 아니라 투명한 빛과 예감으로 가득 찬 Symtomm Aura로 변해야 한다.”
그렇다.
동양에서는 예부터 이것을 태평성대라고 했다. ‘태양지정(太陽之政)’이다. 우리나라 고대의 천부경은 이것을 ‘태양앙명(太陽昻明)’이라 불렀고 이것을 화엄과 같은 뜻인 ‘인중천지일(人中天地一)’의 조건이라 했으며 그러한 개벽의 실행조건을 바로 ‘묘연(妙衍)’ 즉 여성과 아기의 생명, 생활 가치성, 즉 ‘달과 물과 그늘’의 생활창조의 적극성이라고 했다. 남성은 이제부터 많은 생각을 해야 한다. 그리고 훨씬 더 지혜롭고 훌륭해져야 한다. 버블이 아닌 아우라의 차원에서 말이다.
이 모든 나의 모심, 여성 모심이 꼭 어떤 여성 대권(大權) 지망자의 선전전 비슷하기도 하다. 그러나 정말 그럴까? 이럴 때 쓰는 한마디 시구절이 있다. 명말 중국의 한 떠돌이 중이 지은 환조판이환서면(還肇判而環瑞面). 허허허허허. 뜻은 ‘그거나 그거나가 아니다.’ 오대산 간통수(干筒水) 같다.
작자 이름은 ‘개미화(改微花)라 하는데 법명(法名) 같지 않다.
에에잇!
또 유식한 척! 헤헤헤헤헤. 끝.
제임스 러브럭은 한때 내가 존경하던 인물이다. 그러나 그의 ‘가이아 복수설’은 정당했는가? 북극 대피설은 온난화를 강조한 그가 내린 결론이었다.
그러나 그 결론 직후 북극은 더워지기 시작했다.
그가 원자력 대체에너지론을 편 지 몇 년이나 되었는가? 일본 원전사태에서 그리도 아득한 옛날 일인가?
스티븐 호킹의 ‘외계 도피설’은 또 어떤가? 그는 현대과학의 유럽적 상징이다. 그러나 제주 제비 떼 3만마리보다 더 나은가?
인간이 제비보다 더 모심의 능력이 없는 것인가? 제비보다 더 진화된 영성적 능력을 가졌다면 인간은 당연히 이 지구를 스스로 지키고 살려야 한다. 어디로 도피하겠다는 건가?
그 살림의 힘은 모심에 있고 모심과 살림만이 진정한 화엄개벽의 깨침으로 우리를 이끌 수 있다. 그래야 종말 뒤의 새 시대를 맞는다.
전 국토의 도시화
나는 지난 4월6일 아침 중앙고속도로를 통해 버스 편으로 부산에 가는 도중 바로 이 ‘모심으로 가는 길’을 내내 생각했다. 똑같은 길을 그 지난해 2010년 봄 지인들과 함께 승용차로 간 일을 기억한 것이다. 무엇 때문이었나.
강원도 원주에서 경상도 청량산에 이르기까지 단 한 건의 생태파괴와 환경오염 사태가 보이지 않았던 것이다.
기적인가? 내가 미친 것인가? 아니면 박정희씨가 제 고향이라고 특별히 봐준 것인가? 아니라면 그가 너무 빨리 세상을 떠나서인가? 도대체 그가 한 일에 천하의 욕쟁이 김지하가 이렇게 감격하는 사건이 일어나도 좋은 것인가?
길게 전문적 설명을 늘어놓지는 않겠다.
나는 박정희씨가 시작한 국토개발 이후 그 추종자들의 일관된 개발 방향을 명백히 알고 있었다. 이미 오래전에 당시의 중앙정보부장과 독대했을 때 그 방향에 대한 나의 질문에 단 한마디의 명쾌한 답변을 분명히 들었기 때문이다.
‘전 국토의 도시화.’
물론 십승지(十勝地)가 많은 양백간(兩白間)에 동해안 쪽으로 중앙고속도로가 뚫린 것이 불과 4~5년 전 일이다. 그러니 당시는 개발이니 나발이니 따위가 아직 들어설 때가 아니었던 것도 안다.
그러나 서부 중부 남부 등 그야말로 전 국토의 너덜너덜한, 이른바 ‘도시화’니 ‘개발’이니 ‘혁신’ 따위에 진저리가 난 내 입맛 때문이었을까?
한마디로 ‘서기권풍수(瑞氣圈風水)’였다.
현대생태학에서 극히 이례적으로 모시듯 취급하는 ‘과밀초류지역(過密超留地域)’ 또는 ‘과소개활지구(過疎開豁地區)’ 요소들이 도처에서 발견되었다. 도대체 웬일인가? 나는 좀체 현상에 감동할 줄 모르는 평소와 달리 몇 번이고 차를 세웠고, 몇 차례고 무릎을 쳤다. 금방 현대생태학에서 관행적으로 쓰는 ‘모시듯 취급’이라는 표현을 썼다. 그렇다! 내 마음 안에 잃어버렸던 내 조국의 산천에 대한 상서로운 모심의 기이한 싹이 돋아나고 있었다. 이런 일도 있을 수 있는가! 그 모심은 쑥쑥 자라기 시작했다.
일본 여성들의 해방운동
대표적 십승지인 풍기(豊基)의 그 서늘한 소백산 바람과 아파트 따위 걸레조각이 일절 없는 민들레 벌판의 그 애틋함이 함께 노래 부르는 상서로운 감격으로부터 시작해서 영주 봉화 뒷산의 낭떠러지 초미(初眉)와 그 앞 벌판의 현불사(現佛寺), 그리고 그 날 그 길은 아니지만 역시 한 현상이라 할 양양 구룡령(九龍嶺) 아래의 미천골, 제천의 박달재를 싸고 있는 ‘천등산(天登山)’과 ‘지등산(地登山)’ ‘인등산(人登山)’의 각기 다른 기반강물들과의 기이한 풍수(風水)!
이들이 모두 다 동서양 생태학과 풍수학자들의 현장보고들을 훌쩍 뛰어넘은, 거의 기적 수준의 서기(瑞氣)였으니 모심의 대상이 아니려야 아닐 수 없었다.
이조 중·후기의 지질서인 신경준(申景濬)의 ‘산경표(山經表)’에 대강 이런 내용의 기사가 있다.
‘영주·봉화 뒷산의 낭떠러지 초미는 동해안에 첫 해가 떠오를 때 그 햇빛을 받아 바위 속의 광석들이 수많은 빛으로 반짝이며 은은한 음악을 일으키며 숨어 있던 웬 기운을 뿜어내 주변에 가득 찬 독기와 탁기들을 모조리 정화한다.’
충북 제천의 관문인 박달재의 목조각 공원.
인간에 의한 저 너스레 많은 환경운동 따위가 아닌, 자연 스스로 자연을 정화하고 치유하는 새롭고 진정한 생태자기치유운동의 압도적인 가능성이다. 어디 초미가 우리나라에만 있겠는가? 나는 지난해 언젠가 젊은 풍수학자 김두규 교수의 ‘조선풍수, 일본을 논하다’ 출판기념회에서 그 축하연설을 겸해 한·일 간 공동의 초미운동을 제안한 바 있다.
바로 그 초미운동을 통해 특히 일본열도의 지진, 화산과 지면 침강 경향을 원천적으로 반전시킬 수 있는 자연 스스로의 자연융기 가능성을 찾으라고 강하게 제안하고, 그것이 바로 이제껏 억압당해온 일본여성들의 창조적 해방운동의 시발점이라고, 왜냐하면 일본의 유명한 여황(女皇)들인 덴무·지토 천왕들의 능혈과 똑같이 초미가 음혈(陰穴)이고 또 그 연속선상에 신라 역사가 선덕여왕을 포함한 삼대(三代)의 여왕 전통을 창조했다고 강조했으나 대답은 코웃음과 지금의 저 수만명 죽음의 난리인 것이다. 그리고 이어서 아니나 다를까! 지금 일본의 그 동해안 마을들이 바닷속으로 가라앉기 시작했다. 나의 잘못인가? 그러고는 그 대답이 겨우 ‘독도는 일본땅’인가?
죽음의 바다, 구제역, 조류인플루엔자
엄밀한 풍수운기설(風水運氣說)에 의하면 독도는 분명 양혈(陽穴)이다. 그것이 우리 민족의 잘못인가? 양혈이라면 당연히 그 위에 초미운동이 배합되지 않을 때 지금 진행 중인 개벽의 첨예한 시기에 가서 몇 번이고 또 폭발할 수 있다. 독도의 폭발은 일반적인 바람과 물의 관성대로인 이른바 ‘사할린의 평화’를 여지없이 교란하고 일본의 자랑인 ‘근역성수(謹域聖水)’의 신화는 자취 없이 사라져버린다. 그래도 값싼 국토영유권 내셔널리즘밖에 갈 길이 없다고 믿는가?
반대로 초미의 음혈은 지금 ‘죽음의 바다’라고 하는 오호츠크해와 동해안과 일본해 현해탄(玄海灘)을 도리어 여름의 서늘함과 함께 겨울의 온화함을 유지하는 정역(正易)의 이른바 4000년 동안의 ‘유리(琉璃)의 세계’로 바꿀 강력한 조짐이기도 하다. 사철 해수욕은 물론이고 없어진 북어 대신 귀한 민어와 참치의 시절이 올 수도 있다.
서기(瑞氣) 아닌가! 모심은 자연스러운 솟아오름이다. 초미 앞 경건한 ‘우바이’(출가하지 않은 여성 불제자)들의 오랜 성지(聖地)인 현불사 또한 그렇다. 소의경전인 법화경(法華經)은 화엄경(華嚴經) 이전 최고의 생명의 약속이다. 이 괴질(怪疾)과 죽음의 시절에 땅 밑으로부터 솟는 거룩한 보살들이라 할 신성한 약초의 무성함을 계시받은 명말(明末) 서남부 중국의 ‘시공종(時工宗)’의 의학적 기적을 화엄경과 함께 일으킨 믿음이기도 하다. 캄보디아 정글에, 황량한 남아공(南阿共)의 밀림에, 심지어 로키와 안데스에서까지 약초 채취를 시도하는 유럽과 미국의 의료재벌들, 그 슈퍼박테리아의 참담함과 중국의 화학적 재배 복약물의 공포를 생각해보자.
오늘 구제역과 조류인플루엔자의 원천지가 왜 하필이면 저 깔끔한 선비의 땅 안동인가? 독과 약의 상관은 신비에 속한다 하니 이 또한 모심의 조건이 아닌가! 그리고 이 또한 ‘우바이’들의 샘물인 법화경의 꽃 ‘종지용출품(從地湧出品)’이 상서롭게 흐르는 현불사의 존재 아닌가!
어떤가?
경상도 아첨이 너무 심한가?
천왕, 지왕, 인왕
그러면 강원도와 충청도 이야기도 한번 해볼까? 양양 구룡령 아래 깊이 감추어진 골짜기 끝의 약수구멍 ‘불바라기’의 미천골은 어떤가? 시뻘건 약수가 불치의 아랫도리 결림과 다리 저는 병 따위를 깨끗이 고친다. 전문 풍수는 이 역시 미천골이 사실은 미친골로서 음혈인 데서 발원한 기적이라고 주장한다. 어찌 생각하는가?
나는 이미 신문에 공개된 대로 정신병원에 열두 번 드나든 고질 정신질환자였다. 나를 완치시킨 것은 위대한 유럽과 위대한 중국의 술이 아니다. 백두산 천부의학을 배운 전라도 출신의 조선의술이다.
그 의술의 대강은 이렇다.
“생명도 조국도 세상도 천왕(天王)과 지왕(地王)과 인왕(人王)이 하나(一)로 통일돼야 건강해지고 좋아지고 해방되는데 문제는 삼왕(三王)이 다 있어도 맨 밑바닥에 있는 작대기 하나(一), 즉 ‘물’, 수왕(水王)이 단단히 받쳐주지 않으면 삼왕통일(三王統一)은 불가능하다.
물, 수왕은 무엇인가?
바닷물 속 깊은 곳에 숨어 있는 우주생명의 비밀로서 이 힘이 물 위로 올라와야만 삼왕이 통일되는데, 마치 자라 입안에 먹이가 들어가서 오랜 세월 숨어 있다가 참으로 신묘한 힘을 가진 진국으로 변해서 밖으로 나와야 그 것이 곧 신약(神藥)이 된다.”
박달재 이야기다.
박달재는 제천에서 충주로 가는 길목에 놓인 500m 높이의 고개다. 그런데 이 고개는 세 개의 산에 의지하고 있다. 800m 정도의 천등산과, 750m 정도의 지등산과, 600m 정도의 인등산이 그것인데 세 산은 거의 연속된다. 문제는 천부경처럼 천지인(天地人)의 이름을 가진 세 산이 모두 다 산 밑에 따로따로 세 개의 서로 다른 물길에 의지하고 있는 점이다. 천등산은 남한강, 지등산은 충주호, 인등산은 삼탄강을 끼고 있다. 이른바 천왕, 지왕, 인왕이 세 개의 서로 다른 수왕의 밑바닥을 얻어서 서로 연결하며 500m의 박달재를 유지하고 있다는 점이다.
재스민 혁명과 ‘촛불’
이것이 무엇을 뜻하는 것인가?
박달재의 박달나무는 단군의 나무, 바로 그 ‘단(檀)’을 말한다. 고조선 역사에 의하면 바로 박달나무 아래에서 신시(神市)의 제사와 호혜시장 및 풍류, 화백의 모임, 바로 그 ‘모심’을 열었다.
미국발(發) 금융위기 이후 소수이지만 유럽과 미국의 중도혁신 경제학자들과 일본의 경제통 요사노 가오루, 교텐 도요오, 이나모리 가즈오 등은 ‘따뜻한 자본주의’ ‘착한 경제’ 또는 ‘축적순환과 장기 지속’ 그리고 ‘자비를 근본으로 하는 자본주의’ 등 카알 플라니나 페르낭 브로델, 그리고 화엄경의 ‘동진부염 이생상도(同塵不染 利生常道)’ 등을 앞세워 ‘호혜, 교환, 획기적 재분배’를 추구한 옛 아시아의 신시 시스템의 현대화를 외쳐댔다. 그리고 일본 여성들은 ‘용녀(龍女)’ ‘역녀(歷女)’ 아메 요코와 같은 여성 중심의 경제사회 혁신을 들어올렸으며 미국 힐러리 그룹의 커피 파티나 유럽의 조안나 안젤리카의 ‘신의 우물’, 또는 뤼스 이리가라이의 ‘새크라리온’, 그리고 이슬람의 ‘아크발라이 쇼큐니아바(저 어둠 위에 참빛을!)’라는 이름을 가진 ‘쎄벨리온(별)’ 지하운동을 기초로 한 여성과 아기들의 ‘재스민 혁명’이 마치 우리나라의 2008년 ‘촛불’집회의 직접 영향을 받은 듯 거의 똑같은 유행을 보이고 있다.
이것이 무엇인가?
이것이 또 하나의 박달재 아닌가!
박달재에는 정도령이라는 이름의 골짜기 사당이 있다. 지금은 말라 있지만 깊은 물못이 있어 옛 신시나 솟대의 산상지유수(山上之有水), 즉 산 위의 물과 똑같다. 그리고 그 못 위에 서방대장군(西方大將軍)과 동방대장군(東方大將軍)의 두 장승 사이에 세 개의 놋잔(호혜, 교환, 획기적 재분배의 삼태극(三太極))을 세운 상석이 있고 사방에 돌덤부락을 쌓아올렸다. 의미심장하다.
옛 단군 무속 위에 동서양 융합과 삼태극이 결합되고 그 주장을 오두막에 사는 젊은 여성이 한다.
이것은 무엇일까?
박달재의 금봉이
예부터 박달재는 여성들의 통로였다. 여성들의 장터나 토속신앙의 통로를 천지인과 수왕이 지키는 것이다. 그리고 그 주장이 젊은 여성이다. 휴게소에는 여성장승들이 가득하다. 노래까지도 그러하다.
‘천등산 박달재를 울고 넘는 우리 님아…박달재의 금봉이야….’
출세하려는 과거꾼이 그 고개에서 금봉이라는 한 여인에게 붙들려 출세를 포기한다는 노랫말의 뽕짝이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바로 이 정도령의 산시(山市·신림 쪽의 여성무속인들이 찾는 안덕사 굿당 등 치악산 산계열 등)와 반대편 남한강가 목계 선창마을의 유명한 파시(波市), 즉 산과 물 사이의 신시(神市) 여관이다. 이것은 현재 원주를 비롯해 전국 여기저기에서 다시 활발해지는 재래시장 5일장의 유행과 함께 앞으로 동아시아 태평양 신문명의 호혜시장(互惠市場)과 그 여성 주도의 시장소비판단력이 생산체제에 미치는 영향을 어떻게 창조적 방향으로 이끌 것인지 생각하지 않을 수 없게 한다. 그리고 이곳은 강원, 충청, 경기 세 지역의 물, 산, 길의 초점이다.
역사적으로는 신라, 예맥, 백제, 고구려, 발해 및 궁예의 태봉과 고려의 왕건이 서로 차지하고자 오래도록 갈등하고 또 융합했던 바로 그 땅이다.
그러나 막상 가장 중요한 것은 바로 그 금봉이다. 과거 정치를 뛰어넘는 금봉이의 정치력은 무엇인가?
하도 커서 모심이니 서기(瑞氣)니 하는 말은 줄인다. 나는 치악산 구룡사는 물론이고 궁예의 둔거지였던 영원산성, 신라 최후의 왕 경순왕이 마지막까지 머물렀던 귀래 미륵산 아래와, 문막후용의 견훤길과 삼거리의 중용 고구려탑, 황사영이 잡혀가 죽은 배론, 동학 지도자 해월 최시형 선생의 피체지 호저 고산리와 임윤지당의 자리, 무장의 신평못과 박달재를 나의 학교로 생각하고 산다.
역시 금봉의 정치력 공부가 핵심이다. 왜 박달재의 이쪽저쪽, 박달재의 산시와 목계의 파시 사이에 그리도 환하고 유려한 유교 예절의 ‘모심’이 빛나는 성취들과 모심의 증좌들이 농후한가? 목계 입구의 수많은 마을 이름이 왜 서계(書契)며 율리(律里)며 엄정(嚴正)이며 원월(圓月)인가? 왜 박달재의 제천 쪽 한말 선비 의병들의 본거지로 유인석(柳麟錫)과 유중교(柳重敎)의 고장인 공전리에 자양영당(紫陽影堂)이 그리도 거룩한가! 왜? 신시, 호혜시장, 비단 깔린 장바닥은 그런 곳이다. 그래서 돈 가는 데에 마음 간다고 했다. 그런 유형들은 중조선 일대에 많고도 많다. 나는 그곳, ‘모심’의 자리들을 찾아다닌다.
여성은 소비와 생산의 주역
무슨 공부를 하나?
표현은 그저 ‘모심으로 가는 길’이지만 자세한 것은 지금은 말할 수 없다. 차차 ‘모심으로 가는 길’ 시리즈로 발표할 것이다. 다만 박달재와 세 산과 세 물과 목계 선창마을을 다니며 항상 기억하는 경제학의 한 부분이 있음을, 그것이 금봉이와 연결돼 있음을 미리 말해두고 싶다.
폴 크루그먼의 ‘새로운 경제학 이야기’다. 여성은 현대경제학에서 소외돼 있다는 말은 전혀 옳지 않다. 왜냐하면 현대 경제에서 사실상 가장 중요한 영역이 소비이고 소비판단이며 그 영역에서 가장 중요한 역할을 여성이 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한걸음 더 나아간다면 그 역할의 창조적 확장과 유기적 연관의 확보과정에서 여성이 얻을 수 있는 생산적 기능은 또한 엄청난 것이다. 우리는 아직도 거의 원시적 상태에 가까운 경제학 가부장제 아래 묶여 있는 셈이다.
또 기억난다. 나의 전공 이야기다.
유럽 미학의 새 바람이다.
유타 베름케의 ‘미학과 경제’다. 그의 말이다. 오늘날 미학의 최전선을 이루는 것은 문화자본주의다. 문화자본주의는 문화를 원료로 하는 돈벌이나 문화적 의장이나 홍보수단 또는 브랜드를 일컫는 게 아니다. 그것은 칸트 미학의 이른바 판단력 비판의 영역인 것이다.
판단력 비판이 카를 폴라니가 신시의 현대화, 호혜시장 실현에서 제일 어려워한 획기적 재분배라는 정치적 중심성, 남녀 이원집정제 해결의 열쇠였기 때문이다.
또 있다.
바로 그 점에서 본다면 칸트로서는 족탈불급의 차원이 있으니 다름 아닌 우리나라 원효(元曉)의 판비양론(判比量論)이다. 나는 박달재의 바로 그 서방대장군이 다름 아닌 칸트이고 동방대장군이 곧 원효라고 생각하는 때가 많다.
농담 아니다.
그만큼 앞으로의 경제에서 핵심 미스터리는 획기적 재분배이고 그에 의한 호혜와 교환을 객관적 시장 패턴 속에서 현실화하는 것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경제적 화엄사상
지금도 세계 시장의 숨은, 그러나 곧 드러날 차원이 다름 아닌 섬세한 미학적 취미 판단 차원으로까지 발전한 여성 소비판단력이고 그에 토대를 둔 근원적인 재분배의 날카로운 획기성, 세목성, 혼돈성과 개체성, 그리고 심지어는 우연성이기 때문이다. 판단력과 비판력의 융합이 문화자본주의의 핵심이 된다. 그렇다면 나의 경제미학적 박달재는 농담은커녕 바로 서기, 그 자체요 당연한 모심의 차원인 것이다.
평등, 균등, 대동(大同) 위에 각자의 경제적 삶에 요구되는 천차만별이 이제는 하나로 이루어져 호혜와 교환의 이불이(移不移), ‘개체화하되 개체화 못함’의 이른바 월인천강(月印千江·달이 천 개의 강물에 다 따로따로 비침)과 일미진중함십방(一微塵中含十方·한 톨의 작은 먼지 속에 우주가 살아 있음)의 경제적 화엄사상이 반드시 와야 하기 때문이다.
새삼스러운 이야기지만 나의 전공은 미학이다.
간다.
부산으로 간다.
부산 경암(耕岩)교육문화재단 특강이다.
4월7일.
특강 내용의 몇 줄기를 요약한다.
“신령한 거북이 먼 바다를 바라본다(靈龜望海). 경암학술상 시상식이 열린 부산진 앞바다 동백섬의 풍수학적 비의(秘義)다. 조선조 정조 때 동래사람 정조신(鄭朝臣)의 ‘순수역수기(巡修歷水記)’ 중 ‘가변도서록(嘉邊島嶼錄)’에 다음 구절이 보인다.
신령한 거북이 먼 바다를 바라본다는 문구는 신령한 거북은 아득한 깊은 바다의 나이 많은 거북으로서 문득 햇빛 아래 떠올라 제 속에 가득 찬 것을 토해서 그윽한 먼 바다로, 바다 바깥의 푸른 새 하늘에까지 널리널리 그것을 퍼뜨린다는 뜻이다.
거북은 여성이고 그 속에 든 것은 오랜 고통이 약이 된 것을 뜻하며 먼 바다는 태평양이고 바다 바깥은 미래요 우주다.”
아기들의 떼죽음
“나는 지난 시상식에서 박경리 선생의 소설 ‘김약국의 딸’ 중 넷째인 용옥이 가덕도 앞바다에서 배가 침몰해 빠져죽고 그 뒤 시체가 인양되었을 때 가슴에 끌어안은 아기와 함께 그 품속 깊은 곳에서 십자가가 뚝 떨어지는 장면을 이야기한 바 있다. 그리고 그 장면의 예언성을 오운육기론(五運六氣論)의 ‘거북신령의 기운(龜靈跡)’으로, 그리고 그것을 표현하는 미학원리를 ‘초ㅐ탁성(口卒啄性)’으로 설명했다.”
“나는 또 대천재 김범부(金凡夫) 선생이 동래 국회의원 시절 하신 기이한 말씀 한 가지를 붙였다.”
“정조신이 동백섬을 두고 먼 바다를 개척하는 거북이라 말한 것은 먼 바다가 독물로 들끓는 훗날 한울의 신약(神藥)을 거기 풀어 온 세상을 구할 여자와 아기들이 나온다는 뜻이었다.”
“그 자리엔 소설가 김동리(金東里)와 시인 서정주(徐廷柱)가 함께했다고 한다.”
“한울의 신약이 무엇일까? 바다는 지금 독물로 들끓고 있다. 일본의 대지진, 화산 폭발, 지면침강, 쓰나미에 원전방사능 누출까지 덮쳐 새떼와 물고기떼, 고래들이 무더기로 죽어간다. 사람만 죽어가는 것이 아니다.”
“지금 인도는 서양에서 달려온 이른바 ‘현자(賢者)’들로 만원이라 한다. 그들의 소망은 딱 두 가지.
-마야 달력이 끝나는 내년 2012년 겨울 갑자기 전세계를 가득 덮을 거라는 무수한 아기들의 떼죽음에 어떻게 대응하며 또 그와 함께 시작될 인류문명사 전체의 대전환을 어떻게 맞이해야 하는가.”
“현대세계의 문명 중심 허브는 분명 동아시아·태평양이다. 금융위기 직후 미국의 국가정보위원회는 전 세계 신문과의 공식 회견에서 다음과 같이 규정했다.
-현실세계의 특징은 두 가지다. 하나는 세계 권력과 자본의 중심이 서쪽(대서양)에서 동쪽(태평양)으로 이동하고 있다는 것, 둘은 그럼에도 각 지역의 위상은 그대로 유지되는 다극체제가 형성돼가고 있다는 것.
모심의 주체는 여성과 아기들
똑같은 내용이 7년 전 미국, 일본, 중국, 북한, 남한의 동아시아 경제통 다섯 사람이 다섯 번에 걸친 장시간 비밀 경제회의에서 다음의 결론을 얻었다는 점에서 확인된다.
‘EAST Rotterdam -the integrated network’
‘동(東)로테르담’이란 네덜란드의 대서양 경제 문명의 허브인 로테르담이 동아시아로 옮겨왔다는 뜻이다. ‘동로테르담’이 어디인가? 한반도의 동남해안, 서남해안, 동지나해, 그리고 현해탄이다. 그 동남해안이 어디인가? 바로 이곳 부산이다. 그 밑의 설명구인 ‘the integrated network’는 무슨 뜻인가?
‘중심성이 있는 탈중심’이다
미국 쪽 공식 견해와 하나도 다름없다.
나는 7년 전 그 소식을 접한 순간부터 화엄경과 후천개벽의 정역(正易)과 그것을 실천하는 동학과 예수의 ‘모심’과 그 ‘화엄개벽모심’을 제대로 해석하고 정확히 전망하는 방법으로서 통치와 처신 중심의 주역 ‘추연법(推衍法)’ 대신 ‘여성과 아기들의 생명 및 생활 중심성의 법칙’인 천부경 81자의 ‘묘연법(妙衍法)’으로 상호 결합하는 공부를 해왔다. 이것이 곧 ‘모심 공부’다.”
부산 특강의 요약을 끝낸다.
화엄경의 핵심은 ‘이불이(移不移)’의 ‘탈중심이로되 중심성의 법칙’이 ‘월인천강(月印千江)’의 ‘달은 하나인데 천 개의 강물에 다 따로따로 비침’이다.
그야말로 ‘획기적 재분배’의 신시는 호혜시장의 경제원리이며 ‘호혜와 교환’이 함께 움직이는 한 사회경제 아닌가! 이것이 ‘동로테르담’에 주어진 새로운 세계의 사회경제적 요구 아닌가!
이러한 화엄이 지금 다가오고 있는 개벽을 타고 진행되어야 하는 것이 동아시아·태평양 신문명의 실재라면 이것을 실천하는 길은 어디에 있으며 이 길의 주체는 누구인가 하는 것이 핵심 문제다.
모심! ‘모심’ 아닌가! 또 그 주체는 ‘여성과 아기들’ 아닌가. 그리고 다중(多衆)과 중생 아닌가!
4월8일.
“여성도 성인이 될 수 있다”
나의 아내인 토지문화관 김영주 관장으로부터 바로 지금 쓰고 있는 이 글과 강연에 대한 잡지 ‘신동아’의 요청을 전달받았다. 나는 즉각 거절했다. 왜냐하면 아내의 요구는 주역이니 정역이니 또는 ‘산알’ 같은 경락학 따위, 그리고 ‘복승론(復勝論)’ 같은 동양생명철학 얘기는 빼고 하되 지금 우리나라의 문화나 지식인 상황으로 보아 이것은 중요한 의미를 갖고 있으니 꼭 하는 것이 좋겠다는 것이다.
나는 화를 내며 거절했다.
뒷이야기는 좋은데 그것에 맞추려면 앞 이야기는 도리어 그 반대가 옳다는 내 속 의견이 있지만 평소 아내가 늘 하는 다음과 같은 말,
‘만날 민중, 민중 하면서 여성이나 아기들, 또 쓸쓸한 사람들 그 누구더러 들으라고 주역이니, 정역이니 산알이니 그 어려운 얘기를 혼자서 즐기느냐?’
또 그 말이었기 때문에 우선 벌컥 화부터 냈다.
이것이 사단이었다.
‘모심으로 가는 길’의 정반대였기 때문이다.
화엄경도 후천개벽도 동학도 정역도 예수의 섬김도 천부경 81자도 사실은 모두 다 노자나 장자처럼 ‘여성 모심’을 전제로 하고 있고, ‘여성적 생명과 생활가치’를 그 해석과 전망 방향으로 이미 못 박고 있으며 동로테르담 허브의 ‘탈중심적 중심성’으로 마치 달과 물의 시대인 현대의, 태양력 중심의 윤달 체제, 즉 365일 4분의 1의 슈퍼버블시대가 아닌 정력(正曆), 달력 중심의 360일 무윤력 시대이고, 그러나 ‘달그늘’ ‘물개현상’ 그리고 ‘소산지기(疎散之氣)’의 용납 아래에서 파악되는 ‘흰그늘’의 시대이니 다름 아닌 ‘혼돈의 질서’요 왈, 동학의 ‘강태극(弓弓太極)’의 시절이라!
원주 주변 내 공부하는 산천 중 무장리(茂長里) 신명못가에 묻힌 여성 기철학자 임윤지당(任允持堂)은 가라사대.
‘여성도 열심히 공부하면 성인이 될 수 있다.’ ‘인의예지(仁義禮智) 사단(四端)도 칠정(七情) 가운데 하나에 불과하다’는 폭탄발언을 한 정조 때 사람, 저 유명한 기철학의 호랑이 임성주(任聖周)의 누이동생이다.
아내와 장모님이 모두 좋아하던 여성 사상가다.
나홀로 동학당
원주에 돌아와서다.
오래도록 나 혼자 끙끙대며 애써온 ‘화엄개벽을 위한 여성 모심의 길’이 순식간에 산산조각으로 박살이 난 것이다.
4월8일 오후.
집에서 정신없이 나와 택시를 잡아타고 앵산(鶯山)으로 달린다. 앵산이 어디이며 무엇 하는 곳인가? 나는 애초 ‘나홀로 동학당’이라고 했다.
1894년 겨울 갑오동학혁명이 실패하자, 동학 제2대 교주인 해월 최시형 선생은 남도권을 떠나 경기도 이천군 설성면 수산1리 앵산동에 숨는다.
왜?
단순한 피신이 아니었다.
그 이전 제1대 교주인 수운 최제우 선생의 시 ‘남진원만북하회(南辰圓滿北河回·남쪽 별이 원만을 얻으면 북쪽 은하수가 제자리에 돌아온다)’의 가르침을 따른 것이다. 은하수 이야기는 후천개벽의 완성이고 별은 개벽행동의 첫 시작이다. 칠언절구(七言絶句)에서 시작과 끝에 남과 북이 있으면 가운데는 자연히 중(中)이 된다. 그러니 중조선의 원만한 조건을 말한다. 해월의 피신지가 그 뒤 이천, 여주, 양평, 남양주와 원주인 것은 결코 우연이나 단순한 피신 사정이 아니다. 바로 원만이다. 지형적 조건, 역사, 사람, 종교, 문화 등이 모두 연결된다. 정말 그런가?
날더러 과장이 심하다고 흉보는 사람이 있다고 한다. 내 직업이 시인인 것을 잠깐 잊어버린 사람의 주책이지만, 그것을 인정한다 해도 이것은 사실이다. 나는 최근 사람을 안 만난다. 그 대신 내가 만나는 것은 바로 소나무, 흙, 강물과 벌판과 산이다. 이것도 거짓말 같은가? 외로운 삶의 형태에도 과장이 통하는가?
해월이 원주에서 체포당한 것, 탄허의 월정사 입정, 궁예의 영원산성 입산, 남조선 뱃노래의 주인공 강증산의 제자들 모임인 대순진리회 본부가 여주와 원주 사이에 자리 잡음. 모두 그렇다. 모두가 후천개벽과 화엄 연관행위다.
여성 월경과 ‘엄마를 부탁해’
‘원만’에서 가장 민감한 인간적 조건은 무엇일까? ‘여성 모심’이다. 해월의 중요한 가르침 중 두 가지가 이것이다
여성의 뾰족한 성질은 수천 년간 억압의 산물이니 이때마다 큰절을 하라. 절하면서 그 긴 세월 동안 쌓인 남자들의 죄업을 씻으라.
여성과 아기들은 후천개벽의 타고난 도인(道人)들이니 깊이 모셔라. 후천개벽은 북극의 태음(대빙산) 물의 변동(해빙)이고 그 물을 변동시키는 것은 여자들 몸속의 월경의 변동이다. 이를 모셔라.
마음에 안 들 것이다. 그러나 듣거나 말거나 개벽은 개벽이다.
어째서 최근 텔레비전 드라마 여자주인공들 가운데 악녀와 마녀가 그리도 많은가? 왜 소와 돼지, 닭과 오리, 물고기, 새떼가 그리도 많이 한꺼번에 죽는가? 이 두 가지는 무슨 관계인가? 왜 건강유지에 물이 가장 중요해지는가? 달에 6억t의 얼음이 있고 혹성과 혹성 사이에 그린 포플러, 옐로 보넛 따위 수성(水性) 안개띠 같은 화이트홀이 압도하는가? 왜 태양흑점은 140일 이상 다운되는가? 유럽 통합천문대는 작년, 왜 지난 12년간 태양열이 최저로 내려갔다고 발표했는가? 왜 현대를 물의 시대라 하는가? 작년 늦가을 신문 보도에 따르면 ‘비경제권 여성 리더십이 전 인구 중 1270만명의 여성’이라고 한다. 왜 그렇게 기록되는가? 반장, 이장, 동장 등을 여성이 맡기 때문이다. 그리고 어째서 신세대 사이에 ‘엄마’가 아이콘이 돼가고 신경숙의 소설 ‘엄마를 부탁해!’가 미국에서 저리도 인기인가?
나는 그날 앵산동의 앞 논 한가운데 있는 조그만 봉우리 ‘앵봉(鶯峰)’에 섰다. 해월 선생의 목소리가 들리는 듯했다.
“여자의 못난 점, 그 뾰쪽한 편성(偏性)은 ‘그늘’이고 여자의 잘난 점, 부드러운 엄마와 시장판에서의 날카로움은 ‘흰빛’이다. 네 미학사상은 바로 ‘흰 그늘’이고 ‘흰 그늘에 대한 모심’은 바로 너의 아시안 네오 르네상스의 ‘비결’이자 세계 문화대혁명의 ‘모토’다. 왜 안 지키느냐?”
“권세를 여자에게 넘겨라”
아하!
나는 그길로 양평장터와 그 근처의 남한강 ‘두물머리’로 갔다. 장터는 해월 선생을 수발하던 28세의 동학당 여성 ‘이(蝨·본명 李水仁)’가 붙잡혀 반항하다가 찢겨 죽은 장소이고 두물머리는 그때 거기 숨어 있던 선생이 그 소식을 듣고 강 위에 뜬 희미한 초생달을 보면서 ‘이가이다(蝨爲李)’라고 울부짖었던 곳이다.
‘이가이다’란 말은 ‘밑바닥이 임금자리에 되돌아온다(已位親政)’라는 소리다. 먼저 ‘이’는 그 여성이 스스로를 낮춰 부른 별명이고, 나중 ‘이’는 그 여성의 본래 성(姓)이 왕족(王族)이었던, 쫓겨난 전주이씨(全州李氏)란 뜻이다.
자!
내가 두물머리 나루터에 서서 가슴에 칼이 꽂히는 아픔으로 기억한 말이 이것이었다.
기위친정.
2008년 시청 앞 ‘촛불’에서, 튀니지와 예멘 등의 재스민혁명 기사에서 그 재스민이 곧 쎄벨리온(별)과 같은 뜻의 꽃이름임을 알았을 때 느낀 것이 모두 이것이다.
2005년 정읍 대흥리 차경석의 집에서 강증산이 여러 남성 제자가 둘러앉은 바로 그 한가운데에서 그의 아내 고수부(高首婦)에게 식칼을 들고 누운 자기 배 위에 올라타고 ‘지금 당장 하늘, 땅, 사람의 큰 권세를 나에게 모두 넘기시오!’라고 부르짖게 하고 자기는 밑에서 두 손을 싹싹 빌며 ‘네에, 잘못했습니다. 지금 당장 다 드리겠습니다’라고 약속한 뒤 일어나 제자들에게 가라사대
‘이제부터 꼭 이렇게 하라!’
이리 가르친 것이 모두 이것이다.
모심이다.
두물머리 곁이 저 유명한 다산 정약용의 ‘마재’다. 그가 평생 집착한 ‘정전법(正田法)’이 무엇인가? 마재에서 남한강을 끼고 원주로 원주로 한없이 오다 들른 강천면 부평리의 쓸쓸한 한 묘지, 선조 때 사람 한백겸(韓百謙)의 묘지임을 기록한 두 개의 돌비석 앞에 선다. 둘 다 무덤 아래의 돌거북이 기이하게도 머리를 획 꼬아 비틀고 있는 모양새다. 이상하다. 그가 반역자 정여립의 시체를 거두었기 때문인가? 그러나 나는 그보다도 그의 이름 ‘백겸(百謙)’이 곧 ‘지극한 모심’이리는 생각에 부딪힌다. 나의 한때 아호가 ‘노겸(勞謙)’임도 뒤따른 생각이다.
시루봉에서 비로봉으로
마재 정약용의 정전제(正田制)와 부평 한백겸의 기전제(箕田制)는 이제부터 나도 여러 지식인도 필히 비교 연구해야 할 ‘공(公)’과 ‘사(私)’ 사이의 올바른 ‘중도적(中道的) 경제구조’의 원형이다. 거기에 아마도 참다운 삶의 살아 있는 ‘모심’이 있을 것이다. 그러나 우선 내게는 그 이름 속의 ‘모심’이 아프게 새겨져온다.
4월9일.
박달재다. 느끼고 생각한 것은 역시 대장군 상석 위의 세 개의 놋잔. 이른바 ‘삼태극’이요, 삼태극의 주인이며 밑받침인 물, 수왕, 이른바 과거꾼을 붙든 금봉이에의 모심이다.
4월10일.
횡성을 지나 서석(瑞石)의 태기산을 지나 양양 구룡령 밑 미천골로 향했다. 모심을 새기기 위해서다. 그러나 ‘불바라기’는 공사 중이라 한다.
그곳에 공사라니 우습기 짝이 없었으나 돌아오는 길에 인제 쪽 한계령으로 들었다.
한계령.
기괴하고 무서운 산괴(山槐)다. 돌아오면서 내내 산이 내 넋에게 불편했다. 도저히, 산을 그리도 좋아하는 나지만 빈 마음으로 ‘모실 수가 없다.’
두려움은 모심이 아니다. 조심과 무심이 모심임을 상식으로도 알지만 이 두려움만은 어쩔 수 없다. 결국 이것이 문제가 되었다.
생각해보자. 큰 문제가 아닐까.
4월11일.
숙제는 나를 항상 분주하게 한다. 그러나 새벽 글쓰기와 아침나절 세 시간의 공부는 단 하루도 빠진 적이 없다. 오후 치악산 구룡사로 들어간다. 구룡사 뒤편의 치악산 왕초 비로봉(毘盧峰)은 참으로 아름답고 우아한 산이다. 마치 화엄경처럼. 그 근처의 학곡리 출신 사람에게 비로봉에 대해 듣는다.
‘왜 비로봉인가?
일반적으로 시루봉인데… 왜?’
“왜 부인한테 화를 내는 거요?”
이야기는 이렇다.
‘본디는 아홉 용이 절자리와 봉우리 근처에서 들끓었다. 물이 흥건해 시루봉이라 불렀는데 창건자 의상(義湘)스님이 큰 기도를 해서 흥건한 물이 빼어난 봉우리로 변했다. 그 뒤로 화엄경 주불(主佛) 비로자나 사상을 말없이 가르치는 비로봉으로 바뀌어 우아한 산이 되었다.’
이 비로봉으로 오르기 위해 산길까지 이름이 바뀌었다. 어떻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