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북한에 삐라 계속 날려야 한다
- 교류협력과 제재는 수단이지 목표가 아니다
- 사상학습, 생활총화 안 하니 살맛 난다
- 종북(從北)세력, 北 실상 모르거나 교조적이거나
- 민노당에서 강연 초청하면 언제든지 가겠다
- 국가재정에 부담 주는 전면무상급식에 반대한다
● 1959년 평양 출생<br> ● 평양 남산고등중학교, 김일성종합대 졸업<br> ● 김일성대 경제학부 교수<br> ● 1992년 중국 교환교수<br>● 1994년 귀순<br> ● 대외경제정책연구원 통일국제협력팀장, 국제개발협력센터 소장<br> ● 대통령 직속 사회통합위원회 세대분과위원회 위원<br> ● 경남대 초빙교수, 연세대·경희대·중앙대 겸임교수<br> ● 現 통일교육원장
그의 얘기 중에서 가장 큰 울림을 준 말은 ‘자유’였다. 고색창연하고 진부한가? 내 생각엔 그렇지 않다. 그의 자유와 우리의 자유는 다르다. 이론이 아니고 체험이기 때문이다. 대한민국의 가장 큰 고민거리인 북한 문제에 대해 저명한 학자나 시민운동가나 정치인의 얘기를 백 번 듣는 것보다 이런 실존적인 얘기 한 번 듣는 게 훨씬 낫다는 게 내 생각이다. 그는 북한 정권에 분노했지만 북한 주민의 생명과 인권에는 깊은 애정을 나타냈다. 북한에 전단(삐라) 날리는 것에 찬성한 그는 햇볕정책을 비판하면서도 강경 일변도의 대북정책과 통일무용론에 대해선 고개를 내저었다. 그에 따르면 북한은 ‘진화’하고 있다. 다윈의 갈라파고스 섬처럼 오랜 세월 고립된 섬에서.
그가 정신없이 바쁘다는 통에 두 달 만에 성사된 인터뷰는 서울 인수동에 있는 통일교육원에서 2시간 동안 진행됐다. 넉넉한 이마와 동그란 얼굴이 북쪽의 누군가와 닮았다는 느낌을 줬는데 실례가 될까봐 얘기하진 않았다. 안경 너머 날카로운 눈에 짙은 쌍꺼풀이 져 있다.
안보와 통일이 조화 이루는 교육
▼ 뭐가 그렇게 바쁜가.
“일단 업무파악을 해야 되잖나. 먼저 통일교육원이 지금까지 해온 일에 대한 평가를 하고 있다. 성과는 뭐고 문제점은 뭔지. 그런 걸 제대로 하려면 보고 또 봐야 한다. 강의 커리큘럼과 강사 풀, 교재가 어떤지 하나에서부터 열까지 들여다봐야 한다. IPTV나 게임, 인터넷을 통한 통일교육의 콘텐츠도 점검해야 한다. 둘째, 통일교육위원협의회라든지 학교통일교육협의체, 지방자치단체의 교육기관 등 외부 통일교육시스템도 살펴봐야 한다. 그러기 위해선 유관기관 사람들을 만나 대화하고 협조해야 한다. 셋째는 예산이다. 아무리 좋은 아이디어가 있더라도 돈과 사람이 없으면 안 된다. 내년에 획기적으로 도약하려면 예산이 필요하다. 그러려면 혁신적인 계획안을 짜야 한다. 그밖에도 다양한 사업이 있다. 토론회나 강연회를 비롯해 각종 외부 행사에 참가해야 한다. 정말 눈코 뜰 새 없이 바쁘다.”
▼ 의욕이 강한 것 같다.
“의욕을 갖고 왔는데 일이 정말 많아 웬만한 노력과 사색으로는 지금의 수준에서 도약하기가 쉽지 않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는 한 인터뷰에서 앞으로의 통일교육 방향에 대해 “북한의 모습을 있는 그대로 보여주는 교육, 어두운 곳과 밝은 곳을 모두 보여주는 교육, 왜곡되지 않은 교육을 하겠다”고 밝혔다. 그간의 통일교육에 문제가 있었다는 뜻으로 비칠 수도 있는 발언이다. 이에 대해 묻자 그는 에둘러 설명했다.
“우리의 통일교육은 크게 세 가지다. 첫째는 북한의 실상을 알리는 교육, 둘째는 안보교육, 셋째는 통일교육이다. 이 세 가지 교육은 일관성 있고 꾸준하게 진행돼야 한다. 그런데 과거를 돌아보면 정권의 성격과 대북정책에 따라 통일교육이 영향을 받아왔다. 어떤 때는 통일교육만 강조되고 어떤 때는 안보교육만 강조됐다. 하지만 통일로 가기 위해서는 대화와 교류협력, 안보가 다 중요하다. 남북관계나 국제관계의 변화와 상관없이 일관된 교육을 해야 한다. 교육은 원칙과 진리를 가르치는 것이다. 정권이 바뀔 때마다 교육의 틀이 바뀌어서야 되겠는가. 안보와 통일이 조화를 이루는 교육. 그것이 내가 생각하는 통일교육의 기본방향이자 목표다. 그러기 위해선 모든 사람이 수긍할 수 있는 교육체계와 교육내용을 만들어야 한다.”
통일, 비용보다 편익이 크다
평양 시내 지도판을 가리키며 설명하는 조명철 통일교육원장.
“일부러 그런 적이 있었는지는 모르겠다. 그렇더라도 그 원인은 북한의 폐쇄성이다. 북한이 모든 것을 개방한다면 어떻게 거짓교육이 통하겠나. 폐쇄사회다 보니까 누가 뭔 얘기를 하더라도 확인할 길이 없는 거다. 제대로 몰라서 잘못 전파하는 경우도 있다. 북한의 한두 면만 보고 와서 그게 북한의 전부인 양 얘기하는 것이다. 또 다양한 면을 알면서도 자신의 성향에 맞는 얘기만 하는 사람도 있다. 이념적인 편향성이다. 셋째는 통일교육을 정치적으로 이용하는 것, 즉 정권 차원에서 이용하는 경우다.
사실 북한을 제대로 안다는 건 쉬운 일이 아니다. 어떤 때는 대화하자고 달려들고 어떤 때는 도발하고 어떤 때는 거짓말을 하고 어떤 때는 진솔한 말로 뭘 달라고 한다. 우리의 안보정책과 통일정책은 북한의 실상을 정확히 파악하는 데서 출발해야 한다. 북한을 잘못 인식하면 정책이 실패할 가능성이 높다. 그러면 통일교육도 영향을 받는다. 그런 점에서 북한의 실상을 있는 그대로 전달하고 이해시키려는 노력이 통일교육의 첫걸음이다.”
▼ 우리 사회 한쪽에서는 통일무용론도 제기한다. 통일의 천문학적 비용이나 사회적으로 치를 대가를 생각하면 안 하는 게 낫다는 주장이다. 이들은 차라리 서로의 이질적인 체제를 인정하고 항구적 평화체제를 구축하는 게 낫다고 말한다.
그가 천천히 고개를 끄덕이면서 반론을 폈다.
“몇 가지 문제가 있다. 통일무용론이 제기되는 것은 남북한의 정치·경제·사회·문화적 격차와 이질감이 갈수록 커지기 때문이다. 북한도 한국처럼 발전하고 성장했다면 지금보다 통일을 원하는 목소리가 더 클 것이다. 한·미 FTA와 한·EU FTA를 체결한 이유가 뭔가. 다 한국보다 잘산다. 그러니까 경제통합하자는 거다. 자유무역하자고.”
▼ 윈윈(win-win)이 되니까.
“우리가 얻을 수 있는 혜택이 그만큼 큰 거다. 그런데 북한의 경제력은 우리의 38분의 1밖에 안 된다. 해봐야 아무런 득이 없다고 보는 거다. 모든 사람이 자신의 이해관계를 따져 행동하는 게 선진국 문화다. 그러니 그걸(통일에 반대하는 것을) 탓할 수는 없다. 그러나 이 점을 생각해야 한다. 우리가 얻을 이익이 크든 작든 통일은 우리의 숙명이다. 그리고 통일을 하면 우리의 잠재력이 배가된다. 실제로 통일로 얻는 편익이 비용보다 훨씬 크다. 이는 과학적 논증으로 뒷받침된다. 그런데 홍보가 제대로 안 돼 있다. 실상교육, 안보교육, 통일교육 세 가지가 균형을 이뤄야 한다는 것도 그런 이유에서다. 남북한 경제력 격차가 불행이 아니라 더 큰 도약을 이루는 기회가 될 수 있다. 국민에게 적극 홍보해 통일 공포증을 통일 희망증으로 바꿔야 한다.”
북한 국민의 생명 유지가 급선무
▼ 북한에 삐라 뿌리는 걸 두고 말이 많다. 북한을 감정적으로 자극해 남북관계에 도움이 안 된다는 반대여론이 만만찮다. 탈북자 단체도 관여하는 걸로 아는데….
“우리나라에는 세계의 모든 문물이 들어온다. 그게 우리나라의 개방성이고 공개성이다. 그 개방과 공개를 통해 공정을 지향한다. 우리 정부는 국민과 세계 앞에 모든 게 드러날 수밖에 없다. 조금만 잘못해도 비판받는다. 대한민국은 비판을 통한 제도와 정책의 교정으로 북한보다 38배나 성장한 국가가 됐다. 북한을 보자. 정보가 못 들어가는 폐쇄국가다. 국민에게 알 권리를 주지 않는 국가란 말이다. 김씨 일가가 만든 이념, 이론과 다른 걸 알려고 노력하면 범죄자가 된다. 그러면 국민이 뭘 알아서 정부를 비판할까. 외부세계의 합리적이고 선진적인 이론과 정보를 알 수가 없다. 그러니 비판할 능력도 없다. 북한 국민에게 알릴 방도를 찾다보니 자연의 힘을 이용하게 된 거다. 바람이 그리로 부니까, 삐라에 정보를 담아 알리는 거다.”
탈북자 출신인 조명철 위원장은 거리낌 없이 남과 북을 비판했다.
“그렇다. 북한이 중국이나 베트남처럼 개혁개방을 하면 삐라를 뿌릴 이유가 뭐 있겠나. 둘째는 북한당국이 국민을 두려워하게 만드는 수단이 될 수 있다는 점에서도 유용하다. 삐라의 내용이 뭔가. 김정일이 이런 걸 잘못하고 있다, 국민을 굶어죽게 하고 수용소에 처넣는 건 나쁜 일이다… 이 얼마나 공명정대하고 타당한 얘기냐. 국민이 그걸 알면 두렵잖은가. 그러니까 막는 거다, 이놈들이. 그래서 삐라가 효과가 있는 거다. 북한 당국이 국민을 함부로 끌고 가거나 함부로 죽이지 못하게 하는.”
그의 답변이 점점 열기를 띠었다. 절제됐던 감정이 터져 나오는 듯싶었다. 대북 삐라는 북한이 자초한 것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 강경 보수세력은 햇볕정책은 물론이고 상호주의도 반대한다. 어떤 형태로든 북한을 돕는 건 오히려 통일을 방해한다는 주장이다. 북한 정권의 생명을 연장시킬 뿐이라며.
“다양한 주장이 있다. 자유민주주의 세상에서는 누구나 의사표현의 자유가 있으니까. 그런데 나는 이렇게 생각한다. 우리가 통일정책과 대북정책과 안보정책을 추구하는 것의 근저에 뭐가 있나. 바로 북한 국민의 생명 보호와 인권 증진이다. 왜 통일을 하자고 하나. 억압받고 착취당하고 굶주림에 시달리는 사람들을 해방하려는 것 아닌가. 남북한 국민의 삶의 질을 더 향상시킬 수 있다고 보기 때문에 통일 하자는 것 아닌가. 안보는 왜 하나. 싸우면 죽잖나. 안보를 허술히 하면 그놈들이 전쟁을 도발한다. 그러면 얼마나 많은 사람이 죽나. 결국은 생명이다. 안보교육은 곧 생명과 재산을 보호하는 교육이다. 인간의 존엄과 가치를 높이자는 게 목적이다.
그렇다면 첫째, 생명을 지켜야 한다. 생명이 당장 꺼져가는 곳이 북한이다. 대북지원을 통해 북한 국민의 생명을 유지하려는 노력을 안 할 수 없다. 둘째, 그런 의미에서 인도적 대북지원에는 정교한 전략이 있어야 한다. 북한의 취약계층에게 (혜택이) 돌아가도록 확실한 안전장치를 만들어야 한다. 셋째, 통일은 한국이 주도할 수밖에 없는데 그 수단은 다양해야 한다. 교류협력은 수단이지 목표가 돼선 안 된다. 제재나 고립도 목표가 돼선 안 된다. 수단일 뿐이다. 우리의 목표는 뭔가. 통일이다. 그것도 북한의 변화를 통한 통일이다. 북한이 변하지 않고는 통일도 없고 평화도 없고 안보도 없다. 가장 큰 변수는 북한의 태도다. 북한의 태도에 따라 맞춤형 대북정책을 펴야 한다.”
현 정부의 대북정책 방향 옳아
그는 이명박 정부의 대북정책에 후한 점수를 줬다. 현 정부의 대북정책에 실용성이 없는 것 아니냐고 지적하자 역대 정부의 ‘실책’을 거론하면서 옹호했다.
“김영삼 정부는 처음엔 대화와 협력을 해보다가 강경정책으로 돌아섰다. 다음 정권에선 포용정책을 폈는데 국민의 비판을 많이 받았다. ‘퍼주기’라는 표현대로 무원칙한 대북지원이 논란이 됐다. 북한을 변화시키는 게 목적이어야 하는데 대화와 교류 자체가 목적인 양 정책을 폈다. 이명박 정부는 학습을 했다. 과거의 강경정책과 포용정책에 어떤 문제점이 있는지 잘 알기에 실용주의를 표방했다. 북한의 잘못된 행동을 시정하면서 교류협력을 해야 한다고 판단한 것이다. 포용정책을 펴서 많은 지원을 하고 교류협력한 결과가 뭔가. 이 사람들이 고마워할 줄을 몰라. 뭘 가져오라고 큰소리치고 지원받으면서도 (NLL 침범, 핵무기 개발 등) 도발을 계속했다. 국민의 가난과 굶주림을 해결하지도 못하면서 남북협력기금이 자기네 국가 재정인 양 맘대로 쓰고, 더 안 준다고 횡포를 부렸다.”
▼ 요지는 북한에 더 책임을 물어야 한다는 건가?
“그렇다. 교류협력하고 지원하되, 받아낼 것 받아내면서 북한의 변화를 유도해야 한다는 거다. 난 이 정부의 대북정책에 실용성이 있다고 본다. ‘너희가 제대로 행동하지 않으면 우리가 주던 걸 안 줄 수 있어’ ‘너희가 도발하면 우리도 화낼 수 있어’‘국제사회에서 고립시킬 수 있어’… 대한민국이 결코 호락호락한 나라가 아니라는 걸 분명히 보여준 거다. 이보다 더 큰 실용이 어디 있나.”
▼ 어떤 상황에서든 대화는 계속되는 게 바람직한데 현재의 남북관계는 너무 경직돼 있다는 지적도 있다.
“우리 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뺏는 도발을 했는데도 대화를 계속하고 지원을 해야 하나. 그런 대화가 무슨 의미가 있을 것이며 어떤 결과를 낳을 것인가.”
▼ 천안함 사건 사과도 못 받아냈으면서 뒤로는 정상회담을 추진하지 않았나. 그것도 우리가 더 적극적으로 나선 것처럼 알려졌다.
“북한의 일방적 얘기다.”
▼ 추진한 건 사실이지 않나.
“이 험악한 상황에서도 남북관계를 개선하려는 노력의 일환으로 해석할 수 있지 않나.”
▼ 적어도 현 시점에서는 그런 걸 추진하지 않는 게 북한에 확실한 메시지를 던지는 게 아닐까. 천안함 사과도 없는데. 이 정부의 대북정책이 갈팡질팡한다는 비판이 그래서 나오는 게 아닐까. 실용성도 없고.
“두 가지가 있다. 첫째, 우리 사회에는 정부의 어떤 정책에도 문제를 제기하는 세력이 있다. 둘째는 대북정책의 실용성에 대한 기준이 다르다는 점이다. 오늘 당장 대화를 못해도 교정이 이뤄진다면 내일엔 더 큰 교류와 협력을 기대할 수 있다. 지금 이 정권은 가장 힘든 길을 택했다. 이 정권의 큰 공적은 일관성이다. 북한에 강력한 힘을 보여줬다. 한국에서 엄청난 이익을 챙기던 북한으로선 아프지 않을 수 없다. 정신 차리지 않을까. 그 점에서 과거 정권이 못한 걸 현 정권이 해낸 거다. 현 정권에서 못한 건 다음 정권에서 하면 된다.”
감기 걸리면 학교 못 나오게 해
딱딱한 얘기가 길었다. 하지만 지루하지 않았다. 그의 말에 열정과 진정성이 느껴졌기에. 화제를 돌려 북한에서의 삶에 대해 물어봤다.
그는 북한에서 엘리트였다. 김정일과 그 자식들을 비롯한 소수 특권층 자제만 다닌다는 남산고등중학교를 나와 김일성종합대학에 진학했다. 경영업무자동화학부 자동조정학과였다. 북한당국은 박사원에서 기업관리현대화를 전공한 그를 김일성대 경제학부 상급교원(교수)으로 임명했다. 1987년 그의 나이 28세였다.
그는 가정형편과 교육환경이 좋은 편이었다. 부친 조철준씨는 정무원 건설부장을 지냈다. 우리로 치면 장관이다. 모친은 평양인민경제대학 교수를 지냈다. 하지만 출신성분이 좋은 건 아니었다. ‘이남’ 출신이기 때문이다. 충북 보은이 고향인 그의 부친은 일제강점기에 고등학교를 나왔다. 1930년대 중반 부친(조명철 원장의 할아버지)을 따라 간도지방으로 가다가 청진에 자리를 잡았다. 형(조 원장의 큰아버지)이 청진에 있는 신일본제철소에 채용됐기 때문이다. 지금의 김책제철소다. 장남이 좋은 회사에 취직되자 온 집안식구가 청진에 눌러앉았다.
조 원장의 부친은 어릴 때부터 공부를 잘했다. 김일성대에 들어간 후 추천을 받아 소련 유학까지 했다. 전공은 건축공학. 평양 주체사상탑 옆에 있는 국가계획위원회 청사, 평양예술국장 등이 그가 설계한 건물이다. 부친은 일밖에 모르는 사람이었다. 집안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자식이 학교를 어떻게 다니는지도 몰랐다.
“대학 2학년 때다. 점심 때 아버지, 어머니, 나 셋이서 밥을 먹었다. 아버지가 어머니에게 이렇게 묻는 것이었다. 얘, 고등학교 졸업했냐.”
그는 부친에 대해 “가장으로선 빵점이었다”고 평했지만 원망하는 기색은 없었다. 직접적인 표현은 없었지만, 그가 부친을 존경하고 자랑스러워한다는 건 어렵지 않게 짐작할 수 있었다. 그의 부친은 16년이나 장관을 지냈다. 그의 분석으로는 충청도 출신이라 말수 적은 덕을 봤다. 북한에선 말 잘못해 좌천되거나 수용소로 끌려가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그는 김정일의 남산고등중학교 후배다. 김정일 동생인 평일, 영일, 경진과 함께 다녔다고 한다.
“김일성 자식들과 함께 공부하면서 화가 치밀 때가 많았다. 남들이 보기엔 좋은 학교겠지만 결코 우리를 위한 학교가 아니었다. 김일성 자식들을 위해 만든 학교다. 우리는 걔네들과 같이 공부해주고 같이 놀아주고 같이 운동해주고 걔들에게 기쁨을 주기 위한 들러리였다. 일반학교 학생들과 어울려 다니면 큰 처벌을 받았다. 감기 걸린 학생은 학교에 못 나오게 했다. 누군가에게 간염 증세가 있으면 온 학교가 난리였다. 60년대 후반, 70년대 초반에 이미 교실에서 소독형광등을 켰다.”
그에 따르면 김일성 자식들은 수저도 따로 썼다고 한다. 군부대나 협동농장, 공장을 방문해 식사시간이 되면 호위군관들이 대기하고 있다가 은수저를 내밀었다는 것이다. 더 웃기는 것은 김정일 동생들이 졸업하자 학교 자체를 없애버렸다는 사실이다. 그가 평양 지도판을 들고 설명했다. 김정일 관저 뒤쪽에 있었던 학교가 사라지고 그 자리에 공원이 들어섰다면서. 지도엔 건물과 지형이 세세히 나타나 있었다. 나는 그토록 정밀한 평양지도가 있다는 사실에 놀랐다.
해외에 나갔다 오면 괴로워
조명철 원장 휴대전화에 저장된 사진. 사진 속 남녀 노인은 조 원장의 스승으로 북한 최고 수학자인 조주경씨와 그 모친. 모자는 이산가족 상봉 때 만났다.
“두 부류가 있다. 하나는 북한에 머물면서 문제의식을 가진 부류. 또 하나는 해외를 아는 사람들이다. 해외 정보에 밝거나 해외에 나갔다 온 사람들이다. 이 두 부류에는 엄청난 간극이 있다. 특히 해외 경험이 있는 사람들은 너무 힘들어한다. 만약 나도 해외 경험이 없었다면 불만스럽긴 해도 탈북까지는 안 했을 거다. 해외에 갔다 오면 정신적으로 너무 고통스럽다. 북한의 문제점이 뭔지 잘 알기 때문이다. 알면서도 말할 수 없는 답답함과 억울함에 힘들다. 해외에 갔다 오면 늘 감시당한다는 느낌을 받는다. 해외에 1년 이상 나갔다 온 사람은 3년간 인사 대상에서 제외된다. 지켜보는 거다. 수용소에 끌려가는 사람들 중에 유학생이나 해외 경험자가 많은 것도 그 때문이다.”
▼ 북한이 어떤 나라인지는 대충 안다. 그런데 정말 궁금하다. 어떻게 요즘 세상에서도 3대 세습이 가능하고 절대적 우상화가 가능한지.
“첫째는 철저한 정보정치. 누가 어디에서 뭘 어떻게 하는지 다 안다. 2300만 국민의 행동을 다 알 수 있는 시스템을 갖췄다. 이런 건 어느 나라에도 없다.”
▼ 조지 오웰의 ‘1984년’?
“이런 시스템은 과거에도 없었고 지금도 없고 미래에도 없을 거다. 모든 북한 국민은 정치조직에 가입돼 있다. 그 조직을 통해 누가 뭘 하는지 다 안다. 둘째는 강력한 처벌주의. 정적(姃敵)에 대해선 우유부단하지 않고 즉시적으로 강력하게 처벌한다. 박정희, 전두환의 독재는 거기에 비하면 우유부단한 거다. 장관을 하루아침에 총살한다. 그것도 한두 명이 아니고. 셋째는 뭔가 나누어 먹고살 수 있는 내부 생산 및 소비 시스템이다. 비록 굶는다는 소리가 나오긴 하지만 수준 낮은 경제체제가 그런대로 유지되고 있다. 폐쇄적 자립경제, 원시적 자립경제다. 넷째는 중국이 있기 때문이다.”
▼ 하여간 중국이 문제다.
“김정일 정권이 존속하는 데 중국의 역할이 정말 크다. 과거 소련은 독일 통일을 앞두고 동독 지원을 포기했다. 그런데 중국은 북한을 포기하지 않는다.”
▼ 역사적으로 특별한 관계이기 때문에 그런 게 아닐까.
“역사와 안보 때문이다. 중국이 미국이나 일본 수준의 경제제재를 하면 북한은 더 버티기 힘들다.”
왜 자꾸 남한사회처럼 생각하나
그의 탈북은 중국에서 이뤄졌다. 1992년 중국 난카이대 교환교수로 발탁된 그는 2년 뒤 탈북을 감행, 제3국을 거쳐 한국으로 들어왔다.
▼ 나라 이름이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이다. 북한의 엘리트층은 북한이 민주주의 국가가 아니라는 걸 알지 않나.
“북에서 말하는 민주주의는 여기와 다르다. 중앙집권적 민주주의다. 그래서 북한 국민을 계몽하기 위해 삐라를 보내야 하는 거다.”
▼ 자기들 체제가 마르크스 공산주의 이론에서 말하는 궁극적 단계라고 생각하나.
“중앙집권적 민주주의라는 걸 언어적으로 참 아름답게 포장한다. 중앙이 대중의 의사를 받아들여 계획하고 집행하는 체제라고. 그런데 문제는 대중의 의사를 밝히거나 전달하는 시스템 자체가 없다는 거다. 그러니 시작부터 거짓말인 셈이다. 둘째, 중앙의 명령과 계획은 합리적이고 과학적이라고 하는데 그게 아니다. 즉흥적이고 정치적인 명령이 대부분이다. 그러니까 이것도 아니고 저것도 아니다. 다 속은 거다. 그런데 계속 그렇게 교육하니까 넘어가는 거다.”
▼ 세뇌당한다는 건가?
“그렇다.”
▼ 공산주의라는 용어는 안 쓰나?
“최근엔 안 쓴다. 주체사상이니 김일성주의니 이런 용어를 쓴다. 김일성민족, 김일성조선 이런 식이다. 점점 극단적으로 가고 있다. 북한은 연도를 주체조선 몇 년으로 표기한다. 김일성이 태어난 해가 주체조선 1년이다. 조선민족이 아니라 김일성민족이다.”
그는 “북한이 진화하고 있다”고 말했다. 진화라니?
“고립된 섬에 가면 식물이나 동물이 다 따로 진화하지 않는가. 몇 백 년간 고립된 섬에 가보면 문명세계에서 보지 못하는 동물이 있지 않은가.”
▼ 다윈이 말한 섬 말인가?
“그렇다. 갈라파고스 섬. 그렇게 진화하고 있다. 진화하면 할수록 남북 간 이질화 속도가 빨라지는 거다.”
▼ 주체사상의 허구성에 대해 뒤에서라도 얘기하지 않나. 끼리끼리.
“죽으려고? 왜 자꾸 남한사회처럼 생각하나?”
▼ 진짜 궁금해서 그런다.
“사상과 이념을 건드리는 대화는 할 수가 없다. 주변에 있는 사람이 가장 위험하다. 집에서 형제들끼리도 그런 얘긴 못한다. 공포 때문에 체제가 유지되는 거다. 속으로는 싫을지 몰라도 이게 맞다고 얘기해야 자신의 삶이 성장한다. 그래서 가식적 충성을 바치기도 한다.”
어려운 학생에게만 무상급식해야
그의 부친은 몇 년 전 사망했다. 모친도 올 초 사망했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하지만 확인되지는 않았다고 한다.
▼ 북에 남기고 온 가족과 친척이 불이익을 받았을 법한데….
“그렇다. 그런데 확인할 길이 없다. 아내가 지방으로 추방됐다는 얘기도 있는데….”
그의 아픔이 느껴졌다. 1994년 귀순 이후 그는 지금껏 독신생활을 하고 있다.
▼ 북한사회가 남한사회보다 나은 점이 있나. 예컨대 의료체계는 사회주의 국가가 더 낫다는 시각도 있지 않나.
“나는 그런 걸 찾지 못했다.”
▼ 전혀 없나.
“북한 국민의 순박함과 근면함, 강인함은 알아줄 만하다. 전세계 어느 나라 국민보다 강할 것이다. 그 어려움 속에서 갖은 핍박을 참고 견디니. 무상치료? 병원에 가면 약이 없다. 의사들이 부패해서 주사도 아는 사람에게만 놓아준다. 주사약이 모자라니까. 학교 교육도 무상이지만 교육의 질이 말이 아니다. 교육을 제대로 하려면 실험과 실습을 해야 한다. 예산이 없으니 실습기구가 없다. 그러니 입으로만 가르칠 수밖에 없다.”
▼ 많은 탈북자가 한국사회에 적응을 못하고 있다. 우리 사회의 물질만능주의가 심하지 않은가. 양극화도 심하고. 심지어 북한에서보다 살기 힘들다는 얘기도 한다는데….
“화나서 한번 해본 소리일 거다. 말도 안 되지.”
그는 탈북자들에 대해 애정 어린 비판을 아끼지 않았다. 요컨대 자유가 주어진 만큼 더 많이 노력해야 한다는 것이다.
“우리가 가진 게 북한 국민보다 훨씬 많다. 그중에서 가장 중요한 게 자유다. 말할 권리, 이동할 권리, 창업할 권리, 비판할 권리, 할 권리와 안 할 권리. 거창하게 집회시위결사의 자유를 말할 것도 없다. 북한엔 그 모든 자유가 없다. 내가 하기 나름이다. 둘째, 그럼에도 환경이 불리한 건 사실이다. 학연, 지연, 혈연 아무 것도 없다. 지식과 정보력이 뒤처진다. 문화에 적응이 안 된다. 모든 면에서 불리하다. 그런데 불리하다고 안 살 건가. 자유라는 수단이 주어졌는데 여건이 안 된다고 포기할 건가. 북한에서는 그 수단을 달라고 그토록 부르짖지 않았나. 막상 자유를 얻으니까 그 이상을 요구하는 것이다. 현재 (탈북자들에게) 정착지원금도 주고 생활보조금도 준다. 취업도 알선해준다. 물론 그걸로 부족할 수 있다. 그러면 노력을 아끼지 말고 개척해야 한다. 학연, 지연이 없으면 사람을 자꾸 만나 인간관계를 만들어야 한다. 무작정 기다리고 요구하지만 말고. 굶어죽기 딱 좋다.”
▼ 무상급식 논쟁을 어떻게 생각하나.
“돈이 없어 못 먹고 못 배우는 일은 없으면 한다. 그런데 그런 게 지나칠 경우 우리나라의 성장 가능성이 떨어질까 걱정이다.”
뜻밖이다. 탈북자 출신에 대한 선입관인지 몰라도 나는 그가 그런 우파적 경제논리를 펼 줄은 예상 못했다.
무슨 찬양할 여지가 있다고
▼ 전면 무상급식은 우려스럽다는 얘긴가.
“어려운 학생들이 굶지 않도록 하는 조치는 반드시 필요하다. 그래서 나는 전면급식보다는 어려운 학생들만 먹이자는 데 찬성한다. 원래의 취지도 그게 아닌가. 어렵지 않은 학생들에게 먹을 걸 줘봐야 아무런 감동도 없다. 공무원들이 좀더 노력해 어려운 가정이 지원을 받는 시스템을 만들고 재정도 확보해야 할 것이다.”
▼ 무상급식 논란은 한국사회에서 벌어지는 좌우논쟁의 단면이다.
“나는 좌우개념이 없는 사람이다. 전면급식 좋다. 그런데 그에 따른 재정 지출이 결국 국가경제에 부담을 주지 않겠나. 그 비용이 어디로 가나. 국민세금으로 부담해야 하지 않나. 기업에 부담이 돌아가면 기업은 그걸 어디에 반영할까. 원가에 반영하면 가격상승이 일어날 거다. 생산원가가 다른 나라보다 높아지면 가격 경쟁력이 떨어지게 된다. 기업이 이윤을 못 내면 세금을 못 내게 된다. 지금 북한 상황이 그렇다. 기업이 세금을 못 낸다. 왜? 팔리지 않기 때문이다. 가격이 높아서. 이런 식이라면 언젠가 무상급식은 폐기될 거다. 당장은 환영받겠지만. 시간이 흐른 뒤 누가 책임질 건가. 정부와 교육기관에서 진짜 어려운 가정을 제대로 파악해 그 사람들에게 좀더 많은 혜택이 돌아가도록 조치하는 게 우선 필요하다. 그러면 국가 부담도 줄 것이다. 이런 말을 하는 내게 좌니 우니 얘기하는 게 싫다.”
▼ 민주노동당과 진보신당의 노선투쟁도 흥미롭다. 이른바 종북(從北)주의 논란이다. 우리 사회의 종북 또는 친북세력은 북의 실상을 몰라 그러는 걸까.
“두 가지일 거다. 첫째는 실상을 제대로 몰라 그럴 수 있다. 둘째는 교조적인 면 때문이다. 자신이 추구하는 이념과 사상과 논리에 지나치게 교조적으로 충실한 거다. 현실과 안 맞으면 교정을 통해 그것들이 합리화되도록 해야 한다. 그런데 자신의 신념을 절대적인 것으로 여기는 거다. 지금 북한에서 굶는 사람이 얼마이고 죽는 사람이 얼마이고 탈출한 사람이 얼마이고 끌려가 죽은 사람이 얼마인데, 무슨 찬양할 여지가 있고 이해할 여지가 있다고 그러는가.”
▼ 민노당에 가서 강연할 생각은 없나.
“초청하면 언제든지 가겠다. 나는 그 사람들이 마음속으로 북한을 좋아한다고 생각지는 않는다. 자신들이 약자인데 강자라는 사람들이 자신들을 공격하는 하나의 무기로 자꾸 북한 문제를 활용하니 방어적 수단으로 그런 행동을 한다고 이해하고 싶다.”
▼ 꼭 그런 것 같지만은 않은데.
“그렇지 않다면 문제가 있는 거다. 대화가 안 되겠지.”
“천성적으로 자유주의자”라고 말하는 조명철 원장.
“아이고, 우리 사회에서 누가 나한테 부담을 주나. 나는 그런 부담 갖고 살 성격이 아니다. 눈치 보고 사는 사람이라면 여기 오지도 않고 북한에서 그냥 살았을 거다.”
대학생들의 북한 인식, 많이 바뀌었다
그는 연세대와 경희대 등 몇몇 대학의 겸임교수로 강단에 서왔다.
▼ 요즘 대학생들, 북한에 대한 인식이 어떤가?
“예전과 다르다. 많이 바뀌었다. 1994년에 내가 와서 북한 얘기를 했을 때 사람들의 반응은 크게 두 가지였다. 하나는 북한이 설마 그럴까 의심하는 부류. 다른 하나는, 저 사람은 짜인 각본에 따라 얘기한다고 생각하는 부류. 그때는 참 안타까웠다. 다른 탈북자들한테 대학 강연을 강요했는지 모르지만 나는 그런 부탁 받은 적 없다. 싫으면 싫다 하고 살았다. 자유분방하게 살았다. 그래서 행복했다.”
어느새 약속한 두 시간이 지났다. 그는 개의치 않는 듯했다. 지친 기색도 없었다. 배석한 홍보실 관계자는 초조한 기색을 내비쳤지만.
▼ 북한을 탈출해 한국에 들어온 걸 후회한 적은 없나.
“나는 천성적으로 자유주의자인가 보다. 여기가 좋은 걸 보면. 해외도 좋고. 가장 좋은 게 뭔지 아나. 사상학습 안 하고 생활총화(자기비판모임) 안 하는 것이다. 매주 토요일 오전이나 점심 때 생활총화를 했다. 한 주일 동안 자신이 잘못한 것을 고백하는데 이때 같이 생활하는 동료의 잘못도 꼭 비판해야 한다. 기독교인들이 교회 가서 반성하는 것과 같다. 그것을 조직별로 하는 거다. 이런 것만 안 해도 그냥 세상 살맛 나. 진짜다. 경제적으로 어려운 건 작은 문제다. 내가 돈이 없다고 치자. 대한민국 정부가 북한에서 온 나를 굶어죽게 놔둘까. 아니잖은가. 세 끼 밥은 먹이지 않겠나. 지원 시스템이 있지 않은가. 재단도 있고 정부정책도 있고. 내가 욕심을 조절하면 된다. 이건희만큼 살겠다고 생각한다면 얼마나 힘들겠나. 결국 힘든 건 자기 욕심 때문이다, 욕심.”
▼ 여기 와서 꾸준히 안정된 직장생활을 했는데, 돈 좀 모았나.
“차곡차곡. 혼자 사는데 돈 쓸 일이 뭐 있나.”
▼ 절약하는 편인가 보다.
“절약하는 인생은 아니다. 탈북자들 중에 어렵다는 사람들에게 밥도 사주고 학비도 좀 준다. 저축도 한다. 나는 탈북자들에게 이렇게 말한다. 이건희를 바라보지 말고 나중에 통일됐을 때 북에서 넘어 온 가족을 먹일 수 있을 정도의 경제적 능력을 갖추라고. 열심히 일해 번 돈을 착실히 저축하라고. 그러면 대한민국 국민의 부담을 덜어주고 통일이 더 쉽게 될 거라고.”
탈북자의 높은 실업률
▼ 혼자 사는 건 북에 두고 온 부인 때문인가.
“가장 큰 이유가 그거다. 너무 죄스럽고….”
그의 눈시울이 붉어지려나 싶었는데, 사뭇 담담한 표정이다.
▼ 혼자 사는 게 힘들지 않나.
“너무너무 힘들다. 그간 목사님과 사모님을 비롯해 교회 분들이 많이 도와줬다. 주변 사람들이 좋아야 한다. (탈북자들이) 가장 견디기 힘든 게 그런 거다. 늘 따뜻한 눈길, 손길을 주는 분들이 주변에 있는 게 중요하다. 욕심 내지 말라고 충고해주는 사람, 떡 하나라도 나눠 먹는 사람, 함께 시간을 보내주는 사람이 필요하다. 워낙 남과 북이 이질화돼 있어 내가 정말 진실한 마음으로 고개를 숙이고 접근하지 않으면 상대방이 응하지 않는다. 사람을 옆에 두려면 많은 노력을 해야 한다.”
그는 결혼할 뜻이 있음을 넌지시 비쳤다. 마지막으로 “당신이 생각하는 한국사회의 문제점은 뭔가”라고 질문했다. 한국사회의 구조적 문제점에 대한 의견을 물은 것인데 그는 탈북자에 초점을 맞춘 답변을 했다.
“우리나라의 기업이 몇 십만 개다. 그중 지금 당장 사람을 받을 수 있는 기업이 몇 만 개는 될 거다. 우리 탈북자가 2만이다. 연말이면 2만3000명쯤 된다. 잘나가는 기업에서 한 명씩만 받아줘도 실업 걱정 안 해도 된다. 2만명이라 해도 노동가능인구는 60%밖에 안 될 거다. 어린이도 있고 노인도 있으니. 실업률이 높다.”
▼ 탈북자의 실업률 말인가?
“그렇다. 탈북자 실업률이 한국사람들보다 높다. 그건 정부정책의 문제라기보다는 탈북자에 대한 한국 국민의 관심과 이해가 부족하다는 걸 뜻한다. 내가 지난해 대통령 모시고 회의할 때 건의했다. 지금 말한 그대로. 대통령께서 회의 끝나고 나오면서 내게 말하더라. 취직을 하려면 직업교육 같은 걸 강화하는 방안을 만들어보라고. 탈북자 지원재단의 예산 규모가 엄청 늘었고 통일부도 다양한 지원프로그램을 만들고 있다.”
그가 대통령에게 탈북자 문제를 언급한 건 사회통합위원회 회의석상에서였다. 그는 이 위원회의 세대분과위원이다.
“정부 차원에서만 한다고 될 일이 아니다. 우리 시민사회의 생각이 바뀌어야 한다. 그리고 탈북자들은 눈높이를 현실에 맞춰야 한다. 공무원들은 지원예산이 효율적으로 쓰일 수 있도록 지원시스템을 잘 만들고 어려운 탈북자들 찾아가 맞춤형 서비스를 해야 한다.”
인터뷰를 시작할 때는 “두 시간이나?” 하고 부담스럽다는 반응을 보였건만 끝날 때가 되자 자세가 다르다. 시간만 되면 언제까지라도 얘기하겠다는 태도다. 그에게 결재를 받으려는 직원 여럿이 밖에서 대기하고 있었다. 결재가 끝난 다음 밖으로 나가 사진을 더 찍었다. 그가 포즈를 취할 때 참았던 얘기를 그예 꺼냈다.
“김일성 닮았다는 얘기 안 듣나.”
그가 “너무한다”며 웃었다. 오후 햇살처럼 넉넉한 웃음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