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국이 보복은 못하고 대응만 하는 나라가 된 데는 이유가 있다.
- 보복할 능력을 못 갖췄기 때문이다.
- 그러면서도 평소 북한을 우습게 보고 국방력 증강을 소홀히 한다.
- 이스라엘은 그런 한국을 보며 “한국처럼 되지 말자”고 다짐한다.
- 천안함 사건 당시 안보를 책임졌던 군 고위관계자가 격동의 시기를 겪으며 바라본 대한민국의 안보 현실을 공개한다.
2010년 천안함 사건 직후 청와대 벙커에서 이명박 대통령이 긴급히 주재한 안보장관 회의.
기자는 ‘천안함 정치학 : 이명박식 보수는 왜 실패했나’라는 저서를 출간한 바 있다. 이 책을 준비할 때부터 이명박 정부에서 안보를 담당하는 자리에 있던 사람들을 집요하게 추적했으나 만나기가 쉽지 않았다. Q씨도 천안함 및 연평도 사건 때 대한민국 안보를 책임지는 자리에 있었다. 책을 낸 뒤 그와 여러 번 만났다. 뒤늦게라도 당시의 실상을 기록으로 남기고 싶어서였다. 그러나 그는 정식 인터뷰를 사양했다.
여러 차례 밀고 당기는 승강이를 하다 3차 핵실험 후 북한의 도발 징후가 노골화한 시점에서 익명을 전제로 한 대담이 이뤄졌다. 그는 천안함과 연평도 사건에 대해서는 “‘천안함 백서’등을 통해 사실이 다 공개됐다”며 그만이 알고 있는 비화를 털어놓지 않았다. 하지만 안보 위기를 맞은 지금 우리가 참고할 중요한 교훈을 들려줬다.
‘한국처럼 되지 말자’
▼ 3차 핵실험 후 북한에 대한 국제사회의 제재가 강화되자 북의 위협이 노골화하고 있습니다.
“북한이 그런 위협을 한두 번 했습니까. 너무 민감하게 대응할 필요는 없습니다. 지금은 미군이 와서 키리졸브 훈련을 하고 있으니 도발하지 못할 겁니다. 전시(戰時)에 가동할 시스템을 연습하고 있는데 도발할 리가 없지요. 도발하면 우리야 좋죠. 다 준비하고 있으니까, 바로 대응하면 됩니다.”
▼ 미군이 없으면 대응하지 못합니까.
“그게 문제입니다. 말로는 ‘부족한 것을 채우고 잘못된 것을 고치자’는데, 실천이 따라주지 않아요. 이율곡이 나라 방비를 위해 10만 양병을 주장했고, 그것이 일리 있다고 봤다면 5만이라도 양병해야 하는데 어떻게 했습니까. 병력을 늘리면 중국(명나라)을 자극한다고 갑론을박만 했잖아요. 우리는 말만 좋아하는 민족 같아요. 논쟁만 하고 실제로 무력은 키우지 않아요. 국민성이 잘못된 것 같습니다.”
▼ 국민이 왜 그렇게 됐다고 봅니까.
“무관심이에요, 무관심. 뭔가 터지기 전까지는 내 일이 아니라고 보는 미련한 무관심이 이 지경을 만들었어요. 주인의식이 없는 거죠. 얼마 전 외국에서 오래 살다가 귀국한 김대식 카이스트 교수가 이런 요지의 칼럼을 썼어요. ‘북한의 3차 핵실험 후 주변 사람들에게 큰일이라고 걱정했더니 놀랍게도 무관심하거나 어쩔 수 없는 운명으로 받아들이는 분위기였다. 일부는 ‘김 박사도 여기서 살다보면 적응될 거야’라고 했다. 연평도 포격전 직후 이스라엘 친구가 전화를 걸어와 ‘이스라엘 국방·외교 정책의 핵심은 한국처럼 되지 말자’는 것이라고 했다. 이스라엘 사람들은 말한다. ‘수백만 명이 동시에 통화하고, 말춤 추는 가수의 동영상을 실시간으로 손바닥 안에서 볼 수 있는 기계와 인프라를 만들 수 있는 나라가, 정작 자신의 가족과 재산을 지켜줄 방어 시스템 하나 제대로 못 만든다는 건 정상이 아니다’…. 북한이 정전체제와 불가침합의를 파기하겠다고 해도 한국 증시의 주가(株價)는 떨어지지 않아요. 생필품 사재기도 없어요. 무관심이지 무관심. 운명이라고 체념하는 것….”
▼ 북한의 방사포 공격을 막을 방법이 없지 않습니까.
“김 교수도 썼지만 2006년 2차 레바논 전쟁 때 이스라엘은 팔레스타인 자치구역 가자지구에 침투한 헤즈볼라가 쏘아대는 소형 로켓탄을 막지 못해 전전긍긍했습니다. 하늘은 배경이 단순해 레이더가 날아오는 비행기를 금방 탐지하지만, 지상은 산과 들, 새 등 숱한 장애물이 있는 데다 로켓탄은 비행기보다 훨씬 작아서 탐지하기 정말 어려워요. 그런데도 포기하지 않고 노력해 5년 만에 ‘아이언돔’을 개발했잖아요. 그걸로 지난해 11월 가자지구에서 날아온 로켓탄의 90% 이상을 막아냈습니다. 우리는 IT(정보기술)가 세계 최고면서 왜 그런 것 만들 생각을 못합니까.”
“공중급유기 없이 보복 어려워”
▼ 천안함 사건은 키리졸브 연습이 끝나고 독수리 연습을 할 때 일어났습니다. 이번에도 그럴 가능성이 있을까요.
“그럴 수도 있지요. 천안함 사건은 사상 초유의 일이라 상황 파악이 제대로 되지 않았습니다. 천안함의 한 장병이 어뢰를 맞은 것 같다는 연락을 해왔지만, 그때까지 어뢰를 맞고 함정이 침몰한 경우가 없으니 믿을 수가 없었어요. 우리 영해에서 사건이 일어났으니, 북한 잠수함정이 우리 영해로 침투해 어뢰를 쐈다고 보기 어려웠습니다.
그때는 저도 무지했습니다. 어뢰는 배를 직격(直擊)해서 침몰시키는 줄 알았으니까. 나중에 보니까, 근처에 터져서 버블링(bubbling)으로 배를 들어올렸다가 밑으로 끌어내리면서 꺾어버리더군요. 그때 이명박 대통령이 정말 잘하셨습니다. 속단하지 말고 제대로 파악하자며 한국군뿐 아니라 민간 과학자와 외국 조사단까지 참여시켜 진상을 정확히 밝혀내게 했습니다.”
▼ 진실을 밝혀낸 뒤 왜 보복하지 못했습니까.
“북한은 사거리가 짧은 미사일은 전방에, 중간 정도 되는 것은 그 뒤에, 전략 미사일은 종심의 깊은 후방에 배치해놓았습니다. 그런 미사일을 다 잡아야 북한이 대응하지 못하게끔 제대로 보복할 수 있어요. 북한 미사일을 잡을 수 있는 무기는 미사일과 공군기입니다. 그중에서도 좋은 게 공군기입니다. 종심 깊은 곳에 있는 북한의 전략 미사일을 잡으려면 F-15K 같은 대형 전투기를 출격시켜야 합니다.
명령을 받은 F-15K는 많은 폭탄과 미사일 달고 출격하므로 기체가 무거워 이륙 때 연료를 많이 소비합니다. 그런데 많은 무장을 탑재하느라 보조 연료탱크를 장착하지 못해 북한 종심까지 침투할 수 없어요. 그때 급유기가 하늘에서 대기하고 있다가 연료를 공급해 종심 침투를 지원하는 겁니다. 작전을 마친 F-15K는 애프터버너까지 켜면서 전속력으로 귀환해야 하므로 금방 연료가 떨어집니다. 그때도 휴전선 남쪽에 급유기가 떠서 기다리고 있다가 급유를 해줘야 후방 기지에 무사히 착륙할 수 있습니다. 이처럼 꼭 필요한 공중급유기가 없어요.”
▼ 급유기는 1993년 소요를 결정하고 2000년 사업에 착수했는데 계속 순연됐습니다. 이명박 대통령도 급유기 도입을 거부했습니다. “미군 것을 빌려 쓰면 된다”면서….
“(이 대통령은)기업을 오래 경영했기 때문인지 경제적인 면을 중요시하는 측면이 있어 그렇게 한 것 같습니다. 정치하는 분들은 한미동맹으로 풀 수 없는 문제가 있음을 알아야 합니다. 미군 급유기로 급유를 받는 건 아무나 할 수 있는 일이 아니에요. 오랜 훈련을 통해 자격이 있는 조종사만 할 수 있어요. 우리도 급유기를 갖고 있어야 급유 훈련을 할 수 있어요. 그래서 실전이 벌어지면 급유기가 동원되는 종심 타격은 미군 전투기만 하고, 우리 공군기는 급유기가 없어도 할 수 있는, 침입한 적기를 잡는 방어 요격 작전만 합니다. 이런 현실에서 어떻게 보복을 합니까. 우리는 준비가 안 돼 있어요.”
PAC-3 도입 반대한 DJ 정부
▼ 우리 미사일로 보복을 할 수는 없나요.
“종심 깊은 곳의 북한 미사일은 제대로 격파하지 못하니, 오히려 북한이 미사일 공격을 할 수 있는 빌미만 줍니다. 그렇다면 날아오는 적 미사일을 요격하는 PAC-3(최신 개량형 패트리어트 미사일)가 있어야 하는데 그것도 도입하지 않았습니다. 우린 말로만 국방을 했어요.”
▼ 김대중 정부 때 PAC-3 도입을 놓고 논쟁이 있었지요. 김대중 정부는 PAC-3를 사면 미국이 주도하는 미사일 방어체제(MD)에 들어가게 된다며 반대했습니다. PAC-3를 도입하면 북한이 우리를 의심해서 남북관계가 경색될 거라고도 했습니다.
“MD는 적 미사일이 발사됐을 때 요격하는 것, 적 미사일이 대기권 밖으로 나가 비행하고 있을 때 요격하는 것, 그리고 대기권 안으로 다시 들어와 표적지역에 떨어질 때 요격하는 것 세 단계로 나뉩니다. 미국이 MD를 구축한 것은 중국을 의식해서인데, 지정학적 여건상 한국은 중국 ICBM(대륙간탄도미사일)을 발사 단계에서 요격하는 기지가 됩니다.
그러나 우리가 도입하려던 PAC-3는 세 번째, 즉 종말(終末) 단계의 요격 미사일입니다. 한반도는 종심이 짧아 북한이 쏜 미사일은 바로 떨어지기 때문에 우리는 발사 단계 요격이나 대기권 요격 같은 것을 할 필요가 없어요. PAC-3 도입은 미국 MD에 들어가는 게 아닙니다. 김대중 정부는 중국을 너무 의식했습니다. ‘중국과는 무관하다, 북한의 미사일 위협 때문이다’고 하면서 PAC-3를 도입했어야 해요.
PAC-3를 갖고 있어도 북한이 미사일 쏜 것을 알아야 대응할 수 있습니다. 그건 미국의 조기경보위성인 DSP나 SBIRS로 탐지할 수 있기 때문에 미국 MD망에 어느 정도는 연결돼 있어야 합니다. 그때 우리는 북한의 심기를 건드리는 것을 중국의 심기를 건드리는 것으로 표현한 것 같습니다. 북한을 지원하더라도 우리에게 필요한 건 갖춰가면서 했어야죠.”
▼ 김대중 정부에 이은 노무현 정부가 국방개혁법으로 육군 의무병의 복무기한을 18개월로 줄이기로 한 것은 어떻게 봅니까.
“북한의 병력은 여전히 119만입니다. 안보 위협은 줄어들지 않았는데 정치인들은 국방비, 병력, 복무기간 줄이는 것을 국방개혁이라고 생각합니다. 급속히 줄어들던 의무병 복무기간을 이명박 대통령이 천안함 사건 후 21개월로 멈춰 놨지만 박근혜 대통령은 다시 18개월로 줄인다고 했습니다. 정치인들은 표 때문에 국방비나 복무기간을 늘리자고는 못해요. 복지예산은 늘리자고 해도…. 북한 병사들은 12년 복무합니다. 우리는 18개월로 하겠다고 하고요. 12년을 뛴 선수와 18개월짜리 선수는 프로와 아마추어의 차이예요. 그런데 프로는 119만 명이고 아마추어는 50만 명으로 줄인다고 했으니, 프로 선수 11명을 아마추어 선수 6명으로 맞서 싸우라는 얘깁니다.”
“MB에게 여러 번 건의했지만…”
▼ 그런 북한군의 도발을 막을 방법이 있겠느냐는 겁니다.
“11대 6은커녕 11대 8 시합만 돼도 인원 부족으로 맨투맨 방어를 할 수 없습니다. 지역방어를 할 수밖에 없는데, 적은 병력으로 지역방어를 하려면 기동력이 좋아야 합니다. 우리 군은 고지전을 하겠다며 거점에 틀어박혀 있을 게 아니라 기동화한 군대가 돼야 합니다. 적의 움직임을 먼저 보고 대응할 수 있도록 충분한 정보자산도 가져야 하고요. 정보자산과 기동장비를 도입하는 데는 많은 돈이 들고, 그런 장비를 다루는 기술을 익히려면 충분한 복무기한이 필요합니다. 기동방어를 하려면 공간이 필요한데 휴전선에서 서울까지의 거리가 40km밖에 안 돼요. 그래도 지역방어를 해야 하니 기동군을 만들어야 합니다. 그런 능력을 갖추면 11대 6의 싸움이라도 골을 먹지 않게 해볼 순 있겠죠.”
▼ 그런 의견을 대통령께 건의한 적이 있습니까.
“급유기는 필수품이다, 북한이 미사일을 쏘려고 할 때 선제타격을 하기 위해 꼭 필요하다, 북한 도발에 보복하는 데도 필요하다고 말씀드렸지만….”
▼ 이명박 대통령을 면담한 분의 얘긴데, 이 대통령이 빠른 말로 대화를 주도하다가 갑작스럽게 수치와 연도를 물어 대답을 못해 혼났다고 했습니다. MB는 참모진을 주눅 들게 하는 사람인 것 같아요.
“듣는 사람이 면박을 주면 아랫사람이 바른말을 하지 않게 됩니다. 그저 그런 보고일지라도 ‘좋은 착안인데’라고 해줘야 보좌진은 더 좋은 아이디어를 올립니다. 지도자는 좀 부드러워야 하고 예스맨을 쓰지 말아야 해요. 그래야 자신의 실수를 바로잡아주죠. 그렇게 해도 말년으로 갈수록 자기 말이 많아지고, 직언해주는 사람이 없어 고립돼가는데…. 그래도 이 대통령은 얘기를 잘 들어주는 편이었습니다.”
▼ 노무현 정부는 국가안전보장회의(NSC)를 햇볕정책을 펴는 도구로 썼습니다. 그래서인지 이 대통령은 NSC를 제대로 활용하지 않았어요. 안보를 잘 모르는 대통령이니 NSC를 통해 국방부 장관, 국정원장, 합참의장, 각군 총장 등 안보 책임자들과 자주 접촉했어야 했는데 말입니다.
“안보장관회의는 자주 했습니다.”
▼ NSC는 헌법이 보장한 안보분야 최고 결정체이고, 안보장관회의는 청와대 외교안보수석이 주도하는 회의일 뿐입니다. 그 회의에 군 수뇌부가 참가하는 것도 아니지 않습니까.
“…천안함 사건 이후론 여러 번 연 것으로 압니다. 그 문제 때문에 박근혜 대통령이 청와대에 안보실장 직책을 만들었습니다.”
“안보는 생물이다”
▼ 우리는 안보 수요가 많은 나라인데 지도자와 정치인들은 왜 안보를 경시하게 됐을까요.
“미국과 유럽은 군을 바탕으로 일어선 나라들입니다. 그래서 군 경험이 없는 지도자도 군의 목소리에는 귀를 기울일 줄 압니다. 우리는 반대예요. 안보가 가장 위험한 나라인데도 군을 별종(別種), 이종(異種)으로 취급합니다. 안보는 당연히 주어진 것으로 여기고 무관심해요. 북한을 무시하면 안돼요. 북한은 전면전은 하기 어려울지 몰라도 순간적으로 강력한 도발을 할 수 있습니다.”
▼ 2015년 전시작전통제권을 환수하는 것을어떻게 봅니까.
“정치만 생물(生物)이 아니라 안보도 플렉시블(flexible)한 활물(活物)입니다. 전시작전통제권을 2015년 환수하는 것으로 결정됐으니 일단은 받을 준비를 해야겠지요. 하지만 안보 상황이 변했으면 미국과 협의해서 안보 상황이 좋아질 때까지 연장할 필요는 있어요. 전시작전통제권을 환수하게 된 것은 노무현 정부 때 미국과의 관계가 틀어진 게 가장 큰 원인입니다. 노 정부가 하도 삐딱하게 나가니 미국도 성질이 나서 ‘잘 먹고 잘 살아봐라’는 식으로 동의해준 측면이 있어요.”
▼ 한미연합사는….
“한미연합사는 유지하는 것이 좋습니다. 한미연합사 사령관은 미군 대장이 맡지만 부사령관은 한국군 대장이 맡고 있어요. 모든 참모는 5대 5로 구성합니다. 지금은 미국이 51대 49 정도로 2%p 많은 주도권을 쥐고 있다고 볼 수 있죠. 따라서 우리의 자주권을 강화한다면 우리가 51%를 갖는 정도로만 변화를 주면 돼요. 한미 양국군은 작전계획(작계)을 따로 만들 필요가 없습니다. 기본 작계를 함께 만들어놓고 누가 주도하느냐만 결정하면 돼요. 제가 이런 아이디어를 제안하자 버웰 벨 당시 한미연합사령관도 호응했습니다. 모든 건 사령관과 부사령관이 합의해서 하면 됩니다. 서로 컨설팅을 받는 거예요. 상황을 똑같이 인식하면 해법도 비슷할 거니까.
평택에 미군기지를 만들 때 미국은 미군들이 가족을 데리고 2~3년 근무하게 하는 복무 정상화 계획을 추진했습니다. 미군이 가족과 함께 한국에 근무하면 한국 문제에 더 깊이 개입하게 되잖아요. 미국은 그렇게 하려면 장병 아이들을 위한 학교가 있어야 한다며 학교를 지어달라고 했습니다. 그때 우리 정부가 ‘기지는 지어줘도 학교는 못 지어준다’고 거절했어요. 미국은 한국 학생을 30%쯤 함께 다니게 하겠다고 했는데도 결연히 ‘노’를 했습니다.
미군을 한국에 주둔시키는 이유가 뭡니까. 위기 시 자동 개입시키려는 것 아닙니까. 그렇다면 더 깊게 개입하도록 해야 하는데 반대로 간 겁니다. 주일미군은 우리에게 기지를 안내하면서 ‘이 시설은 일본 정부의 지원으로 건축됐다’고 설명합니다. 일본은 그렇게 해주면서 미군을 붙잡아놓고 있어요. 우리는 비용은 따질 줄 알아도 실익은 챙길 줄 몰라요.”
보복할 수 있는 능력
2010년 북한의 어뢰 공격으로 침몰한 천안함. 우리는 아직도 안보를 소홀히 하고 있다.
“남북 교전 시 세 가지 형태로 대응할 수 있습니다. 첫 번째는 현장 지휘관의 대응입니다. 대응은 교전규칙을 따르면 됩니다. 자위권을 행사하면서. 하지만 대응은 정전체제를 유지하기 위한 것이라 전면전으로 가지 않도록 해야 합니다. 자위권에는 한계가 있는 겁니다. 두 번째가 보복인데, 이건 현장 지휘관이 아닌 상급 부대에서 결정합니다. 1976년 도끼만행 사건 때 미군 장교 2명이 숨지자 미국이 미루나무를 자르기 위해 ‘폴 번연’ 작전을 준비한 것이 그런 예죠. 보복은 준비해서 하는 것이라 사건이 일어난 후에 합니다. 보복은 전면전이 아니라 불법한 행위에 대한 응징입니다. 잘못했다고 시인할 때까지, 상대가 고개를 숙일 때까지 때리는 것입니다. 그리고 세 번째가 전쟁입니다. 전면전이죠.
천안함·연평도 사건 때 우리 국민이 원했던 것은 보복입니다. 보복을 하려면 준비된 능력이 있어야 합니다. 미국은 폴 번연 작전을 위해 엔터프라이즈 항모와 오키나와의 제3 해병대 원정군을 출동시켰습니다. 숱한 정보자산도 가동했죠. 그런 준비를 하고 들어가니까 김일성이 유감을 표명했잖아요. 우리도 그런 능력을 갖게 해달라는 겁니다. 급유기 같은 필수품을 갖추고 병사들도 프로가 되도록 해달라는 말입니다.”
▼ 우리가 능력을 갖춘다고 보복할 수 있을까요. 미국이 ‘정전체제를 유지해야 한다’며 말리면 주저앉지 않을까요..
“우리가 확실한 전력을 갖고 보복을 결심하면 미국도 우리가 이기도록 지원해 줄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미국의 전폭적인 지원이 없으면 보복할 수도 없다는 게 문제죠.”
▼ 우리는 중국을 너무 두려워합니다. 천안함 사건 때 중국이 북한 편을 들어도 찍 소리 하지 못했어요. 축구에선 중국이 공한증(恐韓症)을 갖고 있다는데, 그 외의 분야에서는 우리가 차이나 포비아(China phobia·恐中症)를 갖고 있는 것 같아요.
“중국은 북한과의 관계를 순망치한(脣亡齒寒)으로 보는 게 분명합니다. 한반도가 통일되는 것보다는 분단돼 있는 것이 중국에 낫다고 보는 겁니다. 그런 중국을 돌려세우려면 동북아에 장차 북대서양조약기구(NATO)와 같은 것을 만들자고 해야 합니다. 중국과 동북아판 나토를 만들려면 북한이 문제를 일으키지 말아야 합니다. 중국이 자꾸 북한을 다스리게 해야 합니다.”
서독군 49만 對 동독군 18만
▼ 북한의 3차 핵실험 후 불거진 한국의 자위적 핵무장론에 대한 견해는.
“그 얘기는 언론이 자꾸 해줘야 합니다. 정부는 그 말을 할 수 없으니까요. 우리가 핵무장하는 것이 걱정돼 미국은 확장억제(extended deterrence)를 해주겠다는 것 아닙니까. 미국뿐만 아니라 중국도 한국이 핵무장으로 가는 것을 걱정하고 두려워하게 만들어야 합니다. 그래야 북한을 비핵화로 이끌죠. 자위적 핵무장론은 공론화할 필요가 있습니다. 아주 강력하게.”
▼ 공군은 북한 영공인 휴전선 북쪽에 전술조치선(TAL)을 설정하고 북한 공군기가 그 선을 넘으면 바로 대응하기 때문에 북한 공군기가 휴전선을 넘을 생각을 못합니다. 그런데 바다에서는 반대입니다. 우리는 북방한계선(NLL) 남쪽에 옐로라인을, 그 남쪽에 레드라인을 설정해놓았습니다. 북한 경비정이 NLL을 넘어야 고속정을 출동시키고 옐로라인을 넘으면 경고방송, 레드라인을 넘으려 하면 막습니다. 해군도 공군처럼 NLL 북쪽에 옐로라인, 레드라인을 설정하고 지키도록 압박해야 하지 않을까요. 육군도 북방한계선 북쪽에 전술조치선 같은 것을 설정해야, 북한이 전방에 전개해둔 방사포 등을 뒤로 물리지 않겠습니까.
“공군이 그렇게 하는 건 서울이 휴전선에서 40여 km밖에 떨어져 있지 않기 때문입니다. NLL은 본래 우리 선박의 북상을 제한하는 선이었습니다. 그래서 ‘북방한계선’이라 이름 붙였죠. 6·25전쟁 직후에는 3해리를 영해로 했기에 NLL을 그어 우리 선박의 북상을 막아야 했습니다. NLL 북쪽으로 옐로·레드라인을 설정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어려울 것 같습니다. 지금도 썰물 때는 NLL 이북에서 북한 선박들이 다니는데 어려움이 있는 것으로 압니다. 지상에서의 충돌을 피하기 위해 정전협정은 DMZ(비무장지대)를 설정해 남북한군이 4km 떨어지게 해놓았습니다. 지상은 탐지하는 데 어려움이 많아 DMZ 북쪽에 전술조치선을 설정해도 유지하는 데 한계가 있을 거예요.”
▼ 1994년 김일성이 죽었을 때 북한 붕괴론이 제기됐지만 김정일이 이끄는 북한은 건재했고 핵실험까지 했습니다. 김정일이 죽자 또 북한 급변사태론이 나왔으나 3차 핵실험을 했습니다. 북한 급변사태가 일어날까요.
“북한 붕괴론은 1989~90년의 동독 급변사태를 모델 삼아 나온 것으로 압니다. 1989년 동독에서는 호네커 정권이 무너지고 보다 유화적인 정권이 들어섰어요. 그러자 국가 기강이 무너져 동독군 탈영자가 속출했습니다. 병력이 18만 명에서 9만여 명으로 줄었죠. 하지만 동독엔 30만 명의 소련군이 주둔하고 있었습니다. 그때 서독의 콜 총리가 소련의 고르바초프 서기장을 만나 소련군을 철수시키는 비용을 대고 소련 경제를 지원하겠다고 제의합니다. 소련은 위성국을 지켜주느라 많은 비용을 쓰고 있었는데 그 부담도 없애고 소련 경제도 재건할 수 있게 됐으니 이를 수용했죠. 소련군이 철군하자 동독은 더욱 빨리 무너져 내리면서 급변사태가 일어났습니다.
우리가 분명히 알아야 할 게 있습니다. 동독 급변사태 전 서독군은 49만 명, 동독군은 18만 명이었다는 사실입니다. 지금 우리 처지와는 정반대였어요. 동독의 부족한 병력을 소련이 채워주고 있었지요. 북한 급변사태를 얘기하는 분들은 이걸 놓치지 말아야 합니다. 북한군 119만 가운데 50만~80만이 결사 항전하겠다고 하면 우리는 개입하지 말아야 합니다. 63만밖에 안 되는 우리 군으로는 북한을 안정화할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그들끼리 싸우게 내버려둬야 합니다.
동독 급변사태 같은 상황은 그 단계를 지나 거듭된 탈영으로 북한군이 와해될 때 비로소 발생합니다. 동독은 국가 기강이 형편없이 무너져 더 이상 국가를 통치할 수 없다고 판단됐을 때 서독과의 합병을 결의합니다. 그때 서독이 개입했습니다. 전쟁을 하겠다고 펄펄 뛰는 북한을 보고 북한 급변사태를 기대하는 것은 우물에서 숭늉 찾는 격입니다. 전형적인 ‘소망(所望)적 사고(wishful thinking)’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