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누드모델도 어엿한 직업…당당해지려 협회 만들어
- 돈 목적 아닌 ‘예술작업 동반자’ 자부심이 매력
- 벗었다고 성적 매력을 보여준다는 생각은 편견
- 섹스는 해봤어도 연애는 못 해봤다
누드모델은 회화, 조각, 사진 등에 나체를 표현하기 위한 대상으로 발가벗은 모델을 말한다. 스스로 보편적 규범에서 벗어난 것이다. 그들은 왜 남 앞에서 알몸이 되는 걸까. ‘누드모델 1호’로 불리는 하영은(46) 한국누드모델협회장을 만난 이유다. 그의 말 한마디 한마디는 누드모델에 대한 편견을 깨고, 누드의 미학을 일깨워주기에 충분했다. 1988년 데뷔 이후 26년째 누드모델의 길을 걸어온 내공이 느껴졌다.
당찬 목소리 직설적인 말투
지하철 홍대입구역 인근 건물지하에 위치한 한국누드모델협회 사무실. 삐걱, 문을 열고 들어서자 젊은 여성 대여섯이 몸을 푼다. 어떤 이는 무용 동작을 하는가 하면, 어떤 이는 요가를 하듯 천천히 움직이면서 신경을 곧추세워 근육 하나하나의 움직임을 느끼는 듯 보였다. 묘하게도 저마다의 동작이 실내에 흐르는 음악과 조화를 이루는 듯했다.
걸걸한 목소리의 여성이 다가왔다. 하영은 회장이다. 자신감 넘치는 목소리, 직설적인 말투가 첫인상에도 ‘당차다’는 느낌을 준다. 그가 마시라며 건네준 커피도 진한 블랙이었다.
▼ 원래 성격이 괄괄하고 개방적인가요.
“‘여자가 많이 배우면 콧대만 높아진다’며 대학도 안 보내는, 남성우월주의가 뿌리 깊은 집안에서 자랐는데 개방적일 수 있었겠어요. 고등학교 졸업할 때까지 남자 손 한 번 못 잡아 봤는 걸요. 학교에선 괄괄한 편이었지만, 학교 밖에서는 내성적인 스타일이었죠.”
▼ 그런데 어떻게 누드모델의 길에 들어서게 됐나요.
“고등학교 졸업하자마자 시집가라고 성화였어요. 형부가 서울에 직장을 얻어준 덕분에 독립했죠. 회사에 다니면서 밤에는 레스토랑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며 아등바등 살았어요. 그러던 1988년 어느 날, 강도를 만나 월급과 아르바이트 주급을 한꺼번에 다 빼앗겼어요. 당장 먹고살 게 막막했죠. 집에 이야기했다간 고향으로 끌려 내려갈 게 뻔했고. 그때 레스토랑 단골손님이던 사진작가가 올 때마다 제게 누드모델을 하라고 말했던 게 떠올랐어요.”
그는 자신이 대단한 매력이 있어서 제안을 받은 것은 아니었다고 했다. 당시만 해도 누드모델이 드문 시절이라 누드사진에 호기심을 보이는 사람마다 “너도 한번 해보라”고 꼬이곤 했다는 것.
운명처럼 시작된 ‘천직’
▼ 돈이 절실했다고 해도 쉬운 선택은 아니었을 텐데.
“사람이 최악까지 가면 못 할게 없겠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어쨌든 생활은 해야 하니까요. 누구에게 손을 벌릴 수 있는 것도 아니고…. 죽기 아니면 까무러치기로 그걸 선택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어요.”
▼ 첫 촬영은 어땠나요.
“한탄강에서 열린 사진촬영대회였는데, 500~600명 모였던 것으로 기억해요. 모델은 저를 포함해 5, 6명이었고요. 막상 촬영장에 가니까 때려죽여도 옷을 벗는 건 못하겠더라고요. 죽어도 못하겠다고 했더니 행사 책임자가 ‘안 할 거면 모든 행사 경비와 위약금을 물어내라’고 하더군요. 어떻게 할 방법이 없었죠.”
▼ 첫 촬영 때 기억에 남는 게 있다면.
“첫 순간만 기억나고 나머진 아예 기억이 없어요. 어떻게 포즈를 취했는지도 모르겠어요. 두렵고, 떨리고, 하늘이 노랗고, 정신이 없었다는 기억밖에 없어요. 카메라 셔터 소리가 엄청 컸고, 작가들이 사람으로 안보이고 내게 달려드는 짐승처럼 보였어요. 그때의 느낌은 남아있는데, 그걸 말로 표현할 수 없어요. 그런 큰일을 당해보지 않은 사람은 몰라요.”
▼ 끝난 뒤의 느낌은 어땠나요.
“수치심이고 희열이고 느낄 겨를도 없었어요. 내 인생을 뒤흔든 어마어마한 사건이었고, 충격뿐이었죠. 다시는 안 할 마음이었기 때문에 아예 생각을 안 했어요.”
▼ 다시는 안 할 생각이었다면서 또다시 누드모델로 선 이유는 뭔가요.
“몇 달 후 또다시 경제적으로 큰 시련이 닥쳤어요. 당시 제 월급이 15만원이었는데 누드모델비로 10만원을 받았어요. 그 걸로 어느 정도 경제적 숨통이 트인 경험이 있어서인지 또 시련이 닥치니까 ‘한번 했는데 두 번은 못하랴’ 하는 생각이 들더군요. 살기 위해 지푸라기라도 잡아야 했어요.”
그는 “지금 생각하면 이 모든 게 운명이었던 것 같다”고 말했다.
“운명처럼 천직이 되는 경우가 있어요. 제가 그런 케이스죠. 벗어나려고 노력도 해봤어요. 당시만 해도 벗는다는 게 사회적으로 수치로 여겨지던 시절이었잖아요. 단순히 돈을 많이 준다고 해서 할 수 있는 게 아니에요. 그런데 운명이 장난처럼 자꾸 나를 벽에 부딪쳐서 하게 만들고 또 벽에 부딪쳐서 하게 만들었어요.”
버려진 명함
▼ 다른 직업을 갖지 않은 건, 누드모델 수입만으로도 충분했기 때문인가요.
“1992년 학교도 다니고 있었고, 여러 일을 하고 있어서 직장을 그만 둔 후 새로운 직장을 찾지 않았어요. 이건 수입으로 따질 수 있는 게 아니에요. 꼭 돈이 목적은 아니었던 것 같아요.”
▼ 누드모델을 하면서 어떤 즐거움이나 보람이 있었다는 건가요.
“이 일이 좋지 않으면 할 수 없는 거죠. 그렇다고 희열을 느껴서 했다고 하는 건 가식인 것 같고…. 누군가가 나를 통해 뭔가를 표현한다는 게 좋았어요. 또 작가들이 제 덕분에 상을 받았다고 하거나 ‘네가 잘해서 좋은 작품을 얻었다’ ‘역시 하영은밖에 없다’는 칭찬을 들으면 더 잘하고 싶은 욕심이 생겼어요. 그래서 계속할 수 있었던 것 같아요. 나 아니면 안 된다는 자긍심이 더 열심히 하게 만든 동력이 된 것 같고.”
얼떨결에 시작한 누드모델 일이었지만 그는 자부심을 가지고 있었다. 1991년부터는 명함에 ‘누드모델 하영은’을 반듯하게 새기고 다녔다.
“당당해지기 위한 몸부림이었죠. 제가 당당해야 남들도 누드모델을 직업으로 인정하고 긍정적인 이미지를 가질 것이라 생각했어요. 하지만 사람들은 내 명함을 가지고 다니는 걸 부끄러워하더군요. 내가 죄를 지은 것도 아니고, 이상한 여자도 아닌데…. ‘우린 술집 나가는 그런 사람이 아니다’ ‘누드모델도 예술에 기여하는 사람’이라고 소리치고 싶은데 나 혼자 떠든다고 될 문제가 아니었어요. 하나보단 여럿이 뭉쳐야 더 큰 목소리를 낼 수 있을 것 같아 협회를 만들었죠. 무엇보다 내가 당당해지고 싶었어요.”
그는 1996년, 누드모델 20여 명과 함께 한국누드모델협회를 만들어 누드모델의 존재를 세상에 알렸다.
“반응은 반반이었어요. 잘했다는 격려와 칭찬도 있었지만, 세상이 말세라느니 이런 것들까지 설친다는 비난도 있었죠.”
▼ 처우나 인식이 많이 달라졌나요.
“협회를 만든 건 우리가 좀 더 양지로 나서고, 사람들이 이런 직업의 세계가 있다는 것을 인식시키기 위해서였지, 어떤 대가를 바란 게 아니에요. 만들었다는 자체가 중요한 거죠.”
한국누드모델협회는 현재 400명 이상이 회원으로 가입돼 있다고 한다. 회원이 아니더라도 성희롱, 성추행을 당하거나 모델료를 떼이는 등 피해를 당했다는 신고가 들어오면 앞장서서 대처해주는 등 누드모델들의 인권과 권리를 보호하는 우산이 돼 준다.
살아있는 몸짓
▼ 협회로 찾아오는 누드모델 지망생이 많을 텐데, 선별 기준이 있나요.
“제가 면접을 봐서 선별합니다. 선발 기준이 뭐라고 딱 꼬집어 이야기할 수는 없어요. 흔히 몸매, 외모로 뽑는다고 생각하기 쉬운데, 절대 그렇지 않아요. 쭉쭉빵빵한 몸만 원하는 작가도 있지만 다양한 몸을 그리는 작가가 더 많아요. 전 그 사람의 개성을 가장 중요하게 봅니다. 또한 모델 일을 계속 잘할지, 한두 번 하고 그만 둘지도 판단합니다. 이야기를 나눠보면 그게 다 보여요. 정말 열심히 할 것 같은 사람만 받아들입니다.”
▼ 몸만 봐도 그 사람의 살아온 것을 알 수 있겠어요.
“그럼요. 26년 동안 별별 사람의 몸을 다 봐왔는데요. 몸을 보면 그 사람이 어떻게 살아왔는지, 어떤 사람인지, 어떤 감정인지 알 수 있어요. 평소엔 옷과 화장에 감춰진 성격이나 생활 습관, 삶이 그대로 묻어나거든요. 몸이 사람의 나이테고, 일기장인 거죠.”
▼ 지망생 교육은 어떻게 하나요.
“간단히 설명하면, 누드모델은 단순히 옷을 벗는 사람이 아니에요. 몸으로 말하는 사람이죠. 문법과 단어를 배울수록 언어능력이 늘어나듯이 몸으로 말하는 법을 배워야 누드모델을 잘할 수 있어요. 인체의 멋과 맛을 살릴 수 있는 몸짓, 감정을 담은 몸짓을 잘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 연기, 마임, 무용, 춤 등 몸으로 표현하는 모든 것을 다 가르쳐요.”
▼ 다 직접 지도하나요.
“기본적인 것은 제가 다 배워 알고 있으니까요. 누드모델 일을 더 잘하고 싶어 연기는 물론 춤도 스포츠댄스, 발레, 한국무용, 탭댄스 등 종류별로 다 배웠어요. 덤블링, 아크로바틱, 무술까지 몸으로 할 수 있는 건 닥치는 대로 배웠죠. 그 외에도 노래, 마임도 배우고 악기도 다룰 줄 알아요. 예술 분야는 안하는 것 없이 다 해봤어요.”
▼ 수입의 상당 부분을 자기개발을 위해 투자했던 거군요.
“당연하죠. 안 그랬으면 26년이란 긴 시간을 누드모델로 살아남지 못 했을 거예요.”
▼ 회원들도 교육을 하나요.
“전문모델이라고 해서 교육 안 받는 게 아니에요. 늘 같은 모습을 보여주면 안 되니까요. 그림이든 사진이든 작가별로 추구하는 스타일이 다르고, 시기마다 선호하는 스타일이 달라져요. 모델도 다양한 모습을 보여줘야 생명력이 유지돼요. 업그레이드를 위해 계속 훈련을 해야 합니다. 필요한 모델이 있으면 그때그때 불러 교육을 합니다.”
▼ 흔히들 누드모델은 하나의 포즈를 취한 채 가만히 있으면 된다고 생각하는데, 어려운 직업이군요.
“잘못된 생각이죠. 그럴 거면 인형을 갖다놓고 작업하지 뭐 하러 누드모델을 쓰겠어요. 모델은 어떤 분위기를 연출하고, 감정표현을 하는 사람이에요. 그것도 촬영할 때마다 다른 분위기, 몸짓, 스타일을 만들어줘야 해요. 작가들이 살아있는 사람을 그리고 사진 찍는 이유가 여기에 있어요. 살아있는 몸짓을 원하는 거죠.”
누드모델 통해 자기 힐링
▼ 연예인과 누드모델의 차이가 있다면.
“연예인이 옷을 입은 상태에서는 연기를 잘 하겠지만 알몸 상태에서도 연기를 잘할 수 있을까요? 옷을 입고 하는 연기와 벗고 하는 연기는 달라요. 옷을 입고 하는 연기는 얼굴이나 의상, 소품으로 이미지를 각인하지만, 옷을 벗고 하는 연기는 오직 몸짓으로만 승부를 해야 합니다. 커버할 다른 어떤 것도 없으니까요.”
▼ 평소 거울을 통해 자기 몸을 보면서 포즈 연습을 하는 게 필요하겠네요.
“포즈는 인위적으로 만들어내는 거예요. 만들어내는 게 아니라 몸짓의 표현을 스스로 체득해야죠. 거울을 보며 어떤 표현, 감정을 가질까를 생각하고 그게 자연스러운 연기 몸짓으로 나오는지를 확인하는 거죠.”
▼ 요즘은 어떤 친구들이 누드모델이 되기 위해 찾아오나요.
“음악 하는 친구, 그림 그리는 친구, 글 쓰는 친구 등 예술 하는 친구가 많이 와요. 자기 창작에도 도움이 되니까요. 외국 유학파도 많아요. 아무래도 우리나라보다 자유로운 문화에서 살았으니까 누드모델에 대한 거부감이 덜하죠.”
▼ 누드모델을 체험하고 나서 뭐라고들 하던가요.
“자부심을 느낀다는 말을 많이 해요. 누드모델은 아무나 쉽게 할 수 있는 일이 아니에요. 돈 때문에 계속할 수 있는 일도 아니고요. 이걸 하면서 자기 힐링이 된다고 해요. 무대에 서면서 또 다른 나를 만나고, 당당함이 생기고…. 만족하니까 이 일을 계속하는 거죠.”
근육과 살로 다양한 표현
누드는 항상 ‘외설이냐 예술이냐’는 꼬리표가 붙는다. 여성(또는 남성)을 상품화, 성적 대상화한다는 비판이 뒤따른다. 관음증을 유도한다는 주장도 있다.
“훔쳐보기 위해, 성적인 관심으로 누드작품을 보는 것은 그 사람의 자유죠. 그렇게 찍는 것도 작가의 자유고요. 예술은 이러면 되고, 저러면 안 된다고 구분 지을 수 있는 게 아니잖아요. 예술은 기본적으로 자기 자유의 주장입니다. 저마다 자유의 관점이 있죠. 예전엔 누드를 이상하게 보는 사람은 나쁜 사람이라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시간이 지나니까 자기가 어떤 식으로 보고 표현하는 것은 자유란 생각이 들었어요. 이것도 예술이고 저것도 예술이라는 거죠.”
“누드모델이 나체를 드러내는 의식 밑바탕에는 자신의 성적 매력을 드러내고 싶은 욕망이 있는 것 아니냐”고 묻자 금세 그의 표정이 굳어졌다. 잠시 침묵이 흘렀다. 질문을 다시 하자 그의 목소리가 높아졌다.
“옷을 벗었다고 해서 성적 매력을 보여준다는 생각은 잘못된 거예요. 우리는 다양한 몸짓을 표현하는 것이지, 가슴 큰 걸 자랑하고, 엉덩이가 예쁘다고 자랑하는 게 아니에요. 남자든 여자든 성적인 매력만을 표현하는 것은 한계가 있어요. 누드모델의 구실은 삶의 희로애락, 다양한 직업의 특징, 다양한 신체의 움직임을 누드를 통해 보여주는 거예요. 예를 들어 생활 속에서도 다양한 몸짓이 있어요. 그 느낌을 무대 위에서 누드로 자연스럽게 표현하는 거죠. 일상의 모습을 알몸으로 제대로 표현하기란 무척 어려워요. 옷 입고 있을 때와 벗고 있을 때는 큰 차이가 나기 때문에 자연스러울 수가 없거든요.”
▼ 근육과 살만으로 모든 다양한 몸짓을 살려 표현하는 게 가능한가요.
“우리가 그걸 표현하기 때문에 작가들이 그런 그림을 그리고 사진작가가 사진을 찍을 수 있는 거죠. 모델은 의상과 소품으로 보여주지만 우리는 근육, 척추, 무게중심, 관절부위 하나하나로 표현하고 보여줘요. 움직임에 따라 근육과 척추, 무게중심이 다 달라져요.”
고개가 끄덕여졌다.
▼ 예술누드와 외설누드의 차이를, 성적인 것을 강조하면 외설이고 삶의 희로애락을 표현하면 예술누드라고 구분할 수 있겠군요.
“저는 이것은 예술이고 저것은 외설이라고 단정할 수 없다고 생각해요. 그게 구분된다면 제가 26년 동안 누드모델을 해온 자체가 무의미해져요. 발가벗은 자체가 외설이라고 하는 사람도 있잖아요. 개인관점에 따라 다른 것이죠. 어느 여류화가가 제게 에로틱한 포즈를 취해달라고 하더라고요. 제가 ‘에로틱한 포즈가 정해져 있나’고 물었더니 ‘아, 벗고 있는 것도 에로틱하지’ 하더군요. 그 말을 듣고 많은 생각이 들었어요. 같은 누드사진도 에로틱하게 보는 사람이 있고 그렇게 안보는 사람이 있잖아요.”
엄청난 체력 요구
▼ 누드모델이 쉬운 일은 아닐 것 같은데, 직업병은 없나요.
“어려움이 왜 없겠어요. 다양한 표현을 해야 하는 직업이라 몸을 이것저것 써야 하니까 몸이 많이 아프죠. 몇 시간 동안 한 가지 몸짓으로 있는 게 엄청난 체력을 요구해요. 살아 있는 인체의 모습을 연출하려면 유연성도 있어야 하고요. 그래서 처음엔 다 몸살을 앓아요. 그뿐 아니에요. 배우가 작품을 위해 많은 노력을 하듯이 우리도 그렇게 해요. 예를 들어 ‘설경과 인간’을 찍는다고 하면 당연히 알몸으로 눈밭을 뒹굴어야 하고, 다 벗은 채 절벽에 매달리기도 하죠.”
▼ 몸매관리도 하나요.
“운동을 하지만 연예인이나 일반 모델과는 운동하는 목적이 달라요. 몸매 관리를 위해 하지 않아요. 몸을 부드럽게 하기 위해, 다치지 않기 위해 하는 거죠.”
▼ 애환이 있다면.
“배려가 너무 없는 경우가 있어요. 지저분한 무대에서 그냥 알몸으로 연기를 하라는 경우도 있고, 추운 겨울인데 난방을 제대로 안 하는가 하면, 심지어 자기들은 두꺼운 외투를 입은 채 환기를 한다며 창문을 열어놓기도 해요. 우리는 알몸인데 말이죠. 실내 적정온도가 22도라고 하는데, 누드모델에게는 무척 추운 기온이거든요. 그래서 개인난방기를 사용하려 하면 건물 규정에 위배된다며 못하게 하는 경우도 있어요. 큰 대접을 바라는 건 아니에요. 일을 제대로 할 수 있게끔 기본적인 예우는 해야죠.”
▼ 가장 화가 났을 때가 있다면.
“모 대학에 일을 나갔는데 실습 공간이 너무 작았어요. 모델이 누운 자세로 포즈를 취하고 있는데 한 학생이 그림 그리는 위치를 옮기겠다면서 모델 몸 위를 넘어가는 거예요. 그림을 그리다 느낌이 안 나와서 자리를 옮기는 것은 자유지만, 모델도 인격체인데 사람 위를 넘어가는 것은 정말 예의가 없는 행동이죠.”
▼ 지금도 성희롱이 있나요.
“완전히 사라지지는 않았죠. 모델을 앞에 놓고 가슴이 어떻다, 섹시하다 등의 성추행적인 발언이 있었다고 가끔씩 신고가 들어와요. 대놓고 성추행을 하는 경우는 없지만 자세를 수정한다면서 모델 몸을 터치하는 경우가 있어요. 모델 몸에는 손끝도 대면 안 돼요. 이런 성추행적 발언이나 행위가 있으면 협회에서 당사자에게 바로 전화해서 엄중경고를 하죠.”
예술 작업의 동반자
▼ 사람들의 그릇된 선입견 때문에 상처받은 일도 많았겠죠.
“지금은 없지만 옛날엔 많았죠. 누드모델하면 술집 나가는 여자, 스트립쇼걸, 심지어 마약하는 여자로 알고 접근하는 사람도 있었어요. 하루는 모델 일을 하는데 쉬는 시간에 다가오더니 대뜸 ‘무슨 약 먹어요?’ 하고 묻더라고요. 또 어떤 남자는 ‘저녁에 어디 가느냐’고 묻기에 집에 간다고 했더니 ‘어느 술집으로 나가는지 알고 싶다. 단골이 되고 싶다’며 꼭 알려달라는 거예요. 제가 단언하건 데 직업 누드모델로서 그런 일을 하는 사람은 없어요.”
▼ 누드모델도 예술인으로 인정받고 싶은 바람이 있죠.
“우리는 이미 예술가로 인정받고 있어요. 화가나 사진작가들에게는 함께 예술을 만들어가는 동반자라는 인식이 많이 형성되어 있어요.”
▼ 하지만 유명작가의 누드작품은 예술성을 인정받지만 정작 누드모델을 향한 시선은 삐딱한 게 현실 아닌가요.
“예전에는 당연히 서운했죠. 지금은 그런 감정은 없어요. 그러려니 하고 받아들이죠. 사람마다 개성이 다르듯이 우리를 바라보는 시선도 다 다르다고 생각하고 넘겨요. 그래도 예전에 비해 우리를 직업적으로 인정해주는 사람이 많이 늘었고, 우리를 이상하게 보는 사람은 많이 줄었어요.”
하영은 회장은 누드모델 외에도 광고 모델, 오페라, 연극, 퍼포먼스 등 다양한 장르에서 끼를 드러내기도 했다.
“모델 일을 하는데 도움이 되고자 해서 한 거예요. 글 쓰는 사람도 다양한 경험을 해야 좋은 글이 나오잖아요. 저도 다양한 것을 해보는 게 누드모델 일을 하는데 도움이 되겠다고 생각했어요. 꼭 누드에 구애받지 않고 다양한 경험을 해본 거죠.”
▼ 다른 길을 갈 수도 있는데, 계속 이 길을 걷는 이유가 있다면.
“천직인 것 같아요. 원래 부끄러움을 많이 타는 성격인데도 이런 직업을 갖고, 26년을 계속하고 있다는 건 천직이 아니면 할 수 없는 것이거든요.”
▼ 지금도 옷을 벗을 때는 부끄럽다는 느낌이 드나요.
“누드모델 생활을 해온 세월이 얼만데요. 그런 건 아주 오래전 없어졌죠. 항상 잘해야겠다는 긴장이 있는 거지 창피함은 아니에요.”
▼ 누드를 통해 추구하는 게 있나요.
“그런 것 없어요. 더 다양한 표현을 하고 싶은 거죠. 우린 누구에게 우리 몸을 보여주기 위해 벗는 게 아니에요. 작품이 잘되기 위해 표현하는 거죠. 작가 또는 화가와 감정을 공감하는 거예요. 제가 표현하고 연기하는 것을 작가가 잘 느끼고 표현해주길 바라는 것이죠.”
“누드모델은 내 삶 그 자체”
▼ 언제까지 이 일을 할 건가요.
“죽어서 관 속에 들어갈 때까지 계속 하고 싶어요. 천직이니까요. 할 수 있을 때까지 해야죠.”
▼ 미혼인데, 일 때문에 결혼이 늦어지는 건가요.
“지금까지는 그렇게 생각했는데, 그게 다는 아닌 것 같아요(웃음). 누드모델 일을 하다보니까 남자를 만나면 자기방어 의식이 강해져요. 그러다보니 연애도 제대로 못 하게 되고…. 보다시피 제 이미지가 강하고 대차다보니까 남자들이 쉽게 접근도 안 해요. 성격을 바꿔보기도 했는데, 제 개성이 없어지더라고요. 내가 내가 아닌 것 같고. 그냥 운명적인 사람을 만나길 기다려요. 이러다 연애도 한 번 못해본 채 죽는 것 아닌가 싶기도 해요.”
▼ 지금까지 연애를 한 번도 못했다는 말을 누가 믿겠어요.
“섹스는 해봤어도 연애는 정말 못 해봤어요.”
▼ 좋아하는 마음, 연애감정이 있으니까 섹스까지 간 것 아닌가요.
“섹스는 순간적으로 마음이 동하면 이뤄질 수 있는 거지만, 연애는 다르죠. 몸 주면 마음도 줘야 한다는 생각은 처음부터 없었어요. 몸 한 번 줬다고 ‘넌 내거’ 하는 남자들을 제일 싫어해요.”
▼ 하영은에게 누드모델이란.
“내 삶 자체죠. 이 일을 안 하면 내 삶도 없는 것 같아요.”
그에게 마지막으로 “여전히 누드모델에 대해 색안경을 끼고 보는 사람들에게 하고 싶은 말”을 묻자 “없다. 그건 그 사람들 자유고, 난 당당하니까”라는 대답이 돌아왔다. 물어본 내가 부끄러워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