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다는 사납게 몸을 뒤채며 그르렁거리고 있다. 언덕 위 작전장교가 무전으로 지시하자 8대의 상륙돌격장갑차가 일제히 움직이기 시작했다. 왱왱 하는 요란한 소리가 해변을 뒤흔든다. 4대씩 2개조로 나뉘어 대열을 형성한 장갑차들은 맹렬한 기세로 바다로 뛰어든다.
기자 일행이 탄 장갑차도 곧 파도와 맞부딪쳤다. 바깥을 보기 위해 출발할 때부터 선체 상부 덮개를 젖혀둔 터였다. 병력을 이루 헤아릴 수 없는 파도군(軍)이 결사적으로 달려와 장갑차를 들이받는다. 그때마다 파도가 뿜어내는 허연 피가 공중에 흩뿌려진다.
이 장관을 구경하느라 일행은 옷이 젖는 줄도 모른다. 집채만한 파도가 눈앞에 솟구칠 때면 저절로 고개가 움츠러든다. ‘다행히도’ 장갑차는 가라앉지 않고 반쯤 잠긴 상태에서 파도를 제압해나간다. 깊은 바다로 나아가자 파도의 리듬을 타는 듯 요동이 덜해졌다. 바다 위에 흰 점으로 박혀 있던 갈매기들이 저공비행을 시작하고 하늘엔 언제 나타났는지 헬기가 독수리처럼 빙글거리고 있다.
이윽고 돌격명령이 떨어지자 8대의 장갑차들은 나란히 머리를 돌려 출발지점인 해안을 향해 일렬횡대로 달려간다. 해안 가까이에 이르러 장갑차들은 하얀 연기를 내뿜어 일시적으로 몸을 숨겼다. 일종의 배기가스로 적의 해안포 공격에 대비해 연막을 치는 것이다. 이어 쾅쾅쾅 지축을 울리는 소리가 난다. 각 장갑차에서 연막탄을 연쇄적으로 터뜨린 것이다. 누렇고 매캐한 연기가 흙먼지처럼 일어나 해안을 뒤덮는다. 연막탄 발사는 적의 적외선 잠망경으로부터 장갑차를 가리기 위한 것이다. 연막을 방패삼아 해변에 닿은 장갑차들은 성난 코뿔소처럼 뭍으로 내달렸다.
오후 5시. 낙조에 가까운 한풀 꺾인 햇빛과 소금에 절은 쌀쌀한 바람, 진동하는 화약냄새로 을씨년스럽기 그지없는 이곳은 국내 유일의 상륙사단인 해병 1사단이 도사리고 있는 경북 포항의 한 해변이다.
위험 따르지만 전략효과 높아
경남 진해가 해군의 고향이라면 포항은 해병의 고향이다. 해병이라면 누구나 한번은 포항 땅을 밟아야 한다. 신병훈련을 비롯해 해병 양성과 관련된 모든 기본훈련이 포항에서 이뤄지기 때문이다. 그리고 혹독한 훈련과정을 마친 신병들이 가장 많이 배치되는 곳이 바로 1사단이다. 1사단은 해병대에서 가장 규모가 크고 역사와 전통, 혁혁한 전공에 빛나는 부대다. 해병대의 역사는 1사단의 역사라 해도 지나친 말이 아니다.
해병대가 처음 선보인 것은 1949년 4월. 380명의 적은 병력과 빈약한 장비로 경남 진해에 있는 덕산비행장에서 창설됐다. 한국전 초기 해병대는 대대 병력에 지나지 않았으나 전쟁중 활약에 힘입어 1950년 12월 연대 규모로 커졌다. 이것이 1사단의 전신인 해병 1연대다. 1연대는 1952년 10월 훨씬 규모가 커진 1전투단으로 거듭났고, 1전투단은 전쟁이 끝난 후 1여단으로 발전했다(1954년 2월). 이를 근간으로 이듬해 1월 경기도 파주에서 해병 1사단이 탄생했다. 1959년 3월 1사단은 근거지를 포항으로 옮겨 오늘에 이르렀다.
특수목적군인 해병대의 대표적인 임무는 상륙작전 수행이다. 이 작전의 고전적인 개념은 다음과 같다. 먼저 해군의 상륙함정에 병력과 장비를 탑재해 해상으로 이동한다. 해안 가까이에 이르면 해병대는 상륙돌격장갑차와 고무보트, 상륙주정 또는 헬기에 옮겨 타고 해안 상륙을 시도한다. 이때 엄호를 위한 후방 지원이 필수적인데 대규모 작전이 벌어질 경우엔 함정뿐만 아니라 항공기 지원도 받는다. 해상을 거치지 않는 방법도 있다. 육상기지에서 발진한 헬기 또는 수송기를 타고 직접 목표지점에 날아가 공중으로부터 수직돌격작전을 펼치는 것이다.
상륙작전엔 상당한 위험과 모험이 따르지만 성공할 경우 전략적 가치는 매우 높다. 한국전 당시 인천상륙작전에서 드러났듯 일시에 전세를 반전시킬 수 있기 때문이다. 상륙부대는 해상을 통해 적 후방 지역에 교두보를 확보해 병력과 장비, 물자를 축적한다는 점에서 일반 부대와는 전투개념이 근본적으로 다르다.
또한 전략군으로서의 기능도 무시할 수 없다. 상륙전 수행 능력을 가진 부대가 존재한다는 사실 자체가 적에게 큰 부담을 주므로 전시는 물론 평시에도 후방 및 해안방어임무를 강요하는 것이다. 상륙작전이 주임무인 해병 1사단은 북한군 OO개 사단을 묶어놓는 전략적 가치를 가진 것으로 평가된다.
해병대의 전투부대로는 1사단 외 2사단, 6여단, 연평부대 등이 있다. 상륙작전 외 중요한 임무로는 도서방어와 해안방어를 꼽을 수 있다. 도서방어가 주임무인 부대는 백령도와 연평도를 방어하고 있다. 또 2사단은 상륙훈련도 실시하면서 수도 서울의 서측방을 방어하고 있다.
1사단에서 상륙작전을 상징하는 전투부대는 상륙장갑차대대와 수색대대다. 약칭해 상장대대로 불리는 상륙장갑차대대는 수륙양용장갑차를 이용해 상륙작전 선봉에 선다. 한미연합훈련 등 대규모 훈련에서는 해군 함정을 이용해 바다로 나가지만 일상훈련에서는 글머리에 소개한 대로 독자적으로 근해까지 나갔다가 출발지인 해안을 향해 돌격하는 연습을 한다.
장갑차마다 3명의 승무원이 탄다. 차장은 하사가 맡고, 조종수는 일병 또는 상병, 부조종수는 이병이 맡는다. 장갑차 4대의 책임자는 반장으로 불리며 중사가 맡는다. 장갑차 8대, 즉 2개 반이 모이면 한 소대다. 소대장은 중·소위. 각 장갑차에는 21명의 보병이 탄다.
해군함정(LST)에 실려 바다로 나가는 상륙돌격장갑차는 통상 목표해안 4000야드(1야드는 약 91.44㎝) 앞에 이르면 함정에서 내려 돌격작전을 개시한다. 작전장교(소령)에 따르면 주로 야간을 이용하는데, 자체 레이더가 없기 때문에 해상에 있는 함정에서 거리와 방향을 알려준다.
고무보트가 은밀한 작전에 적합한 반면 장갑차는 고무보트에 실을 수 없는 중장비 및 대규모 병력 탑재가 가능하고 기동성이 뛰어나다는 장점을 갖고 있다. 장갑차에 딸린 무기로는 기관총과 기관포, 유탄발사기 등이 있다.
온화한 인상의 대대장 김근수 중령은 “2차세계대전 당시의 상륙전 장비에 비교하면 기동력이나 화력이 크게 향상됐다”고 말했다.
“1사단 상장대대 대원들의 자부심은 대단하다. 전군에서 유일하게 상륙돌격장갑차를 보유하고 있기 때문이다. 한번 장갑차에 올라타면 후퇴란 없다. 오로지 전진이 있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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