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朴槿惠) 한국미래연합 대표는 ‘뉴스메이커’다. 5월11일의 깜짝 방북으로 뉴스를 만들었고 돌아온 직후인 5월17일에는 전국규모의 신당을 창당, 역시 뉴스 한가운데에 섰다. 이어 10여 곳의 기초단체장 선거구에 미래연합 공천의 후보를 내보냈고 지방선거 기간에는 이들 후보들을 지원하고 다녔다.
선거가 한나라당의 일방적 승리로 끝나자마자 정치권은 돌연 정계개편 논란에 휩싸였다. 박대표는 여기서도 논의의 중심에 서 있다. 그 스스로 제3의 대안으로 거론되고 있지만, 민주당 일각에서는 박대표를 적극 영입해야 한다는 주장을 내놓았다. 이런 저런 뉴스 모두가 한달 남짓한 기간 벌어진 것들이다. 박근혜 대표의 방북은 빅뉴스가 되기에 충분했다. 그러나 급박하게 돌아가는 정국 상황은 박대표의 방북을 차근차근 음미해볼 여유를 빼앗아가 버렸다. 뒤 이어 정치권은 선거판으로 달려갔고 전 국민은 붉은 티셔츠를 입고 축구 응원장으로 달려갔다.
이처럼 뒤죽박죽 엉킨 뉴스의 실타래를 다시 풀어보고자 하는 것이 박대표를 만난 이유다. 그는 방북을 마치고 대단한 성과들을 들고 판문점을 거쳐 돌아왔다. 이산가족 면회소 설치, 금강산댐 공동조사, 동해선 연결 및 시베리아 횡단철도와 연결사업 추진 합의 등등 하나하나가 평상시였다면 대단한 얘깃거리가 될 만한 소식들이다.
동시에 의문도 꼬리를 물었다. 김정일 위원장은 왜 굳이 박근혜 대표를 고집해 만났을까? 전용기를 보내 ‘모셔오고’ 판문점을 통해 정중히 ‘돌려보낸’ 저의가 무엇일까? 그리고 두 사람은 과연 무슨 얘기를 나눴을까 등등. 하지만 박대표의 방북 뉴스가 파묻히면서 의문들도 덩달아 증발해버렸다.
이래도 되는 걸까. 남과 북을 오랫동안 통치해온 권력자의 2세이자, 한 사람은 명실상부한 최고지도자로 군림하고 있고, 다른 한 사람도 유력한 대선주자이다. 이들의 만남과 그 속에서 이뤄진 합의를 쉽게 기억의 저편에 묻어버려도 되는 걸까.
이런 궁금증을 안고 박대표를 만난 날은 6월14일 저녁, 월드컵 한국과 포르투갈의 조별예선 마지막 경기가 치러지던 시간이었다. 약속장소 바깥에는 대형TV가 설치돼 있고 그 주변에 어김없이 한국팀을 응원하는 인파가 몰려있어 시끄러웠다.
시스템으로 움직이는 나라 만들자
-월드컵 열기가 대단합니다. 전 국민이 붉은악마 응원단이 돼 대표팀을 응원하고 있습니다. 이런 국민적 열기는 어디에서 비롯된 걸까요.
“우리 국민들 속에 잠재한 폭발적 에너지가 지금껏 분출할 통로를 못 찾다가 이번 월드컵으로 표출된 것 아니겠어요? 이런 잠재력을 잘 이끌어내는 게 바로 정치권의 할 일이에요.”
-한국을 16강 대열로 끌어올린 히딩크 감독의 리더십에 대해서도 논의가 분분합니다. 정치권에서도 히딩크의 리더십을 따라 배우자는 얘기가 나오는데요.
“축구에 필요한 기술을 깊이 연구해 이를 근거로 지도력을 발휘했는데, 결국 지도력이란 어느 분야에서나 마찬가지겠지요. 목표와 비전을 갖고 강력하게 추진해나가는 히딩크 감독의 실천력, 많은 사람들이 오랫동안 보지 못한 것들이죠.”
-비전에 대해 말씀하셨는데 박대표의 국가 비전은 무엇입니까?
“다음의 네 가지를 꼭 실천해야 한다고 생각해서 내가 바라는 국가비전으로 삼고 있어요. 첫째는 경제는 성장했고 시민의식은 하루가 다르게 변하고 있지만 교육제도며, 인사제도며, 의료 보건 등 사회 모든 분야에서 시스템이 갖춰지지 않았어요. 이런 거창한 나라를 시스템에 의해 움직여야지, 사람에 의존해서는 제대로 운영할 수가 없어요. 능력있는 사람이 적재적소에 들어가 그 능력을 발휘하는 시스템. 인사청문회를 실시해 제대로 운영함으로써 대통령도 장관도 때가 되면 바뀌지만 누가 와도 투명하고 합리적으로 일 할 수 있도록 해야 합니다.
둘째, 경제가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과거 아무것도 없던 개발시대에는 정부가 주도적으로 끌고 갈 수밖에 없었죠. 하지만 지금은 정부가 간섭할 수록 경제가 어려워진다고 생각해요. 그래서 경제활동의 모든 것을 민간에 맡기고 정부는 공정한 시장질서 유지에만 관심을 두자는 겁니다. 정부는 기업의 나쁜 관행이 나타나지 않도록 감시하고 제재하는 역할에만 머물러야지 이런 사업해라, 이렇게 기업을 통합해라 하는 간섭을 해서는 안된다고 봐요.
앞으로 무엇을 먹고 사느냐도 중요한 문제입니다. 성장엔진을 개발해 인프라를 구축하는 것도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인프라 구축은 수익이 안나는 일이라 민간이 할 수 없어요. 그거야말로 정부가 나서야 할 일이에요. 21세기 성장엔진은 우리나라를 동북아 물류기지로 만드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5월 북한에 가서도 남북이 공동발전할 수 있는 프로젝트를 꼭 성사시키자고 제의한 거예요. 남북을 연결한 철도가 유러시아 철도에 연결되면 한반도는 물류기지가 될 겁니다. 이는 민간이 못하는 일입니다. 물류기지에는 인프라가 갖춰져야 합니다. 요즘 물류기지는 단순한 운송기지를 말하는 게 아니에요. 그곳 노동자들이 외국어를 잘하냐, 외국인이 살기에 얼마나 편리하냐도 따져야 합니다. 최대한 정부규제는 없애야 합니다.
셋째는 남북문제입니다. 어떻게든 평화를 정착시키고 남북한 공동발전의 틀을 마련해야 합니다. 평화정착이 안되는데 통일이 가능하겠어요? 연방제니, 국가연합이니 하는 게 무슨 소용이에요. 평화정착과 남북 공동발전이 중요합니다. 남북한이 공동으로 참여하는 물류기지 건설도 그래서 필요한 겁니다.
넷째, 동북아의 물류기지를 한반도에 만드는 데는 남북한의 노력뿐 아니라 국제사회의 협조도 필요하거든요. 반드시 그것이 아니더라도 북한을 국제사회의 일원으로서 국제문제에도 적극 참여시켜야 합니다. 그러지 않으면 우리도 발전할 수 없다고 생각해요. 국제적 문제에 도움을 주는 일에 배타적이지 않도록 적극 참여시켜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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