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에 있던 린다 김은 화는 면했지만, 이 사건으로 회사 문을 닫아야 했고 한국에 발을 들여놓지 못하는 신세가 됐다. 군검찰에서 수사자료를 넘겨받은 서울지검은 그녀를 기소중지했다. 군사기밀유출과 뇌물공여 혐의였다. 2000년 3월 그녀가 한국에 들어온 것은 바로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였다.
-2년 전 만났을 때 F-X사업에 관여한 것처럼 얘기한 적이 있는데요.
“계약 직전까지 갔었어요. 그러다 기무사 수사가 터지는 바람에….”
-조금 더 자세히 얘기해보시죠. 1998년 10월경 일인가요.
“그렇죠. 일요일 저녁에 비행기를 타고 미주리주 세인트루이스에 있는 맥도널 더글러스 본사로 날아갈 예정이었어요. 그런데 하루 전인 토요일에 한국에 있는 회사에 수사요원들이 들이닥쳐 직원들이 잡혀갔다는 소식이 들려왔어요. 그 바람에 일이 다 틀어져버렸죠. 예정대로라면 세인트루이스에 가서 맥도널 더글러스사와 로비스트 계약을 맺었을 겁니다.”
1998년 10월엔 맥도널 더글러스사는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 회사였다. 1997년 8월에 보잉사에 합병됐기 때문이다. 하지만 린다 김에 따르면 1998년만 해도 법적인 합병상태로 이름만 보잉으로 통일됐을 뿐 맥도널 더글러스사는 엄연히 존재하고 있었다. 직원들도, 회사의 기능도 그대로였다. 오늘날엔 보잉사 공장으로 인식돼 있지만 세인트루이스에 있는 F-15 생산공장은 원래 맥도널 더글러스사 것이었다. 그런 까닭에 F-X사업 로비스트 계약은 이 회사와 진행됐다는 것이다.
-어떤 과정을 거쳐 계약 직전까지 갔다는 거죠.
“제가 F-X사업에 관심을 가진 건 1996년 백두사업 사업자 선정이 끝난 이후예요. 그때부터 맥도널 더글러스사 관계자들과 접촉했는데 1998년에 본격적으로 얘기가 시작된 거죠. 애초 12명이 회사에 로비스트 지원서를 넣었어요. 회사는 이력서와 실적을 보고 후보를 순차적으로 압축했는데, 최종적으로 제가 선택된 겁니다.”
-조풍언씨도 당시 12명에 포함됐습니까.
“왜 안 나섰겠어요? 나중에 맥도널 더글러스사 관계자로부터 조풍언도 (후보로) 검토됐다는 얘기를 들었습니다.”
기무사 수사배경 의혹
린다 김은 “F-X사업은 백두·금강사업처럼 복잡한 사업이 아니다”고 말했다. 그녀에 따르면 백두·금강사업 로비스트를 하기 위해서는 고도의 테크놀로지에 대한 이해가 필요했다. 최첨단의 컴퓨터 시스템과 비행기를 결합하는 사업이기 때문에 상당한 전문지식이 요구됐다는 것. 그에 비해 4개 후보기종 전투기의 성능을 분석하고 비교하는 F-X사업은 상대적으로 단순하고 일하기 편한 사업이었다는 게 그녀의 주장이다. 어쨌든 말도 많고 탈도 많았던 F-X사업이 린다 김의 손아귀에 들어갈 뻔했다는 것은 곱씹어볼 대목이다. 그녀는 “누군가 나를 경쟁에서 밀어내기 위해 기무사 수사를 배후조종했다”고 주장했다.
린다 김은 “사람들이 ‘다시 한국에서 일할 수 있을까요?’ 하고 물을 때 참 갑갑하다”며 백두사업에 대한 세간의 인식을 불만스러워했다.
“백두는 현재 아무 이상 없는 걸로 알고 있어요. 회사(백두사업 통신장비 제공업체인 E시스템사) 얘기가 ‘한국에서 아주 만족해한다’는 거예요.”
린다 김의 로비 스캔들로 얼룩졌던 백두사업의 목적은 통신감청 장비를 실은 비행기로 대북첩보를 수집하는 것이다. 이 사업에 필요한 기종과 시스템이 최종 선정된 것은 1996년 6월. 백두정찰기가 탄생한 것은 그로부터 5년 후다. 미국에서 제작된 백두정찰기는 지난해 시험비행을 거쳐 한국에 도입됐다. 현재 대북첩보 수집이 주임무인 OO부대에서 운용하고 있다. 국방부는 백두정찰기의 운용실태를 묻는 ‘신동아’ 질의서에 대해 “군사기밀이므로 일절 답변할 수 없다”는 의견을 전해왔다.
-그후 F-X사업에는 더 관여하지 않았습니까. 항간엔 F-X사업 기종 선정에 린다 김이 개입했다는 소문이 있는데요.
“저에게 사고가 생기자 회사가 크게 당황했어요. 그걸로 끝났습니다. 그후 더 이상 계약을 시도하지 않았어요. 저 대신 장성 출신들을 로비스트로 고용했다는 얘기를 들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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