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명보. 정의원은 대표선수 가운데 그를 특히 좋아한다. 정의원은 월드컵을 앞두고 이렇게 말한 적이 있다. “홍명보 선수를 만났는데, ‘이번에는 왠지 좋은 성적이 나올 것 같다’고 하더군요. 그래서 저도 예감이 좋습니다.” 또 한번은 사석에서 “홍명보 선수는 이 다음에 좋은 지도자가 될 것이다”라고 칭찬하기도 했다. 정몽준 신화의 시작이 94미국월드컵이었다면, 마무리는 2002한일월드컵이었다. 공교롭게도 홍명보 선수는 1994년에 두 골을 넣었고, 2002년에 MVP 후보로 뽑혀 브론즈볼(3위)을 수상했다.
―홍명보 선수와는 여러가지로 인연이 많으시죠.
“제가 홍명보 선수를 FIFA(국제축구연맹) 선수위원회에 추천했지요. 홍명보 선수는 훌륭한 축구선수이고 인품도 좋아요. 제가 한가지 에피소드를 들려드릴게요. 1993년에 미국월드컵 아시아지역 최종예선전에서 한국이 탈락할 뻔했잖아요. 마지막 경기에서 우리가 북한과 붙었는데 두 골 이상으로 이기고, 이라크가 일본과 비겨줘야 월드컵에 나갈 수 있었습니다.
전반전이 끝났는데 우리는 0대0이고, 일본은 이라크한테 1대0으로 이겼어요. 매우 절망적이었는데 후반에 우리가 세 골을 넣고 이라크가 극적으로 일본과 비겼어요. 그런데 전반전 하프타임 때 감독이 홍명보 선수를 때려서 얼굴이 퉁퉁 부어오른 겁니다. 후반전이 시작됐는데 홍명보를 잘 아는 북한 공격수가 ‘얼굴이 왜 그러냐’고 묻더랍니다. 그런데 홍명보 선수가 ‘그냥 부딪혔다’면서 둘러댄 모양이에요. 만일 홍선수가 그때 성질대로 감독하고 충돌했다면 어떻게 됐겠어요. 대형사고가 터질 수도 있었는데, 끝까지 잘 참아줬어요.”
―홍명보 선수의 자서전 ‘마지막 리베로’를 읽으셨나요.
“조금 봤는데 잘 썼더라고요. 홍선수는 일본에서 우리나라에 올 때 부상을 당해서 대표팀에서 탈락했잖아요. 그 사이에 송종국 선수가 열심히 뛰니까 언론에서 ‘홍명보는 갔다. 길이 없다. 홍명보 때문에 게임이 느려진다’는 얘기가 나왔습니다. 그때 홍선수는 은퇴선언까지 고려했답니다. 그러다가 박항서 코치를 만났는데 박코치가 그러더래요. ‘너는 이제 뛰기 어렵다. 그러니 대표팀에 와서 군기 반장을 해라.’ 홍선수는 그 말에 충격을 받고 더 열심히 운동을 했답니다. 그것만 봐도 정말 좋은 선수라고 생각해요.”
정의원은 여기까지 말하고 갑자기 조중연 축구협회 전무를 불렀다. 그러고는 이렇게 말했다. “홍명보 선수 자서전을 1000권쯤 구입해서 축구협회 1층에 전시하세요.” 즉석에서 1000권이라. 정의원은 역시 아버지를 빼닮았다. 머릿속에서 떠오르는 순간 그대로 밀어붙이는 스타일이 고 정주영 회장의 모습 그대로다. 기자는 순간 서해 간척지 공사가 조수간만의 차이 때문에 벽에 부딪히자, 유조선을 끌어다가 막았다는 ‘정주영식 공법’이 떠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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