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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J 햇볕정책, 업적에 집착하지 말라”

홍순영 전 통일부장관 심중 토로

“DJ 햇볕정책, 업적에 집착하지 말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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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서해교전, 비례의 원칙에 따라 맞대응했어야
  • ● 모든 통일 가능성에 대비해야, 중국을 설득하는 것이 문제
  • ● 서해교전에서 정부는 햇볕정책 원칙을 깼다
  • ● 북한 난민이 북한 붕괴의 전주곡 아니다
  • ● 중국은 북한을 공산주의 동지로 생각하지 않는다
  • ● 훌륭한 외교관은 훌륭한 CEO만큼 중요하다
‘6·29 서해교전’ 사태는 한반도의 기류에 강한 충격파를 던졌다. 24명의 우리 해군 장병이 사망하거나 부상당한 이번 사태로 남북한 관계는 앞으로 상당 기간 진전이 어렵게 됐고, 조지 W 부시 행정부 출범 이후 1년여 만에 재개를 모색하던 북미대화 또한 정지돼 버렸다.

국내에서는 한동안 이번 사태를 일으킨 북한의 의도를 두고 의견이 분분했다. 북한은 서해교전에도 불구하고 남북관계를 지속하겠다는 시그널을 여러 방향에서 보내왔고, 서해교전의 여파를 최소화하려는 몸짓도 보여주었다. 무엇보다 북한이 서해교전을 일으킴으로써 얻을 수 있는 ‘이익’이 별로 없다는 점이 북한 전문가들을 당혹스럽게 했다. 전문가들은 저마다 북한의 ‘의도’에 대한 나름대로의 해석을 내놓았지만 거기에 힘이 실리지는 못했다.

‘이런 최근의 상황에 대해 한 말씀 해달라’는 요청에 홍순영(洪淳瑛) 전 통일부장관은 오래 망설였다. 장관직에서 사임한 지 몇 달 지나지도 않은 터에, 더욱이 정권 말기에 언론에 나선다는 것이 꽤 부담스러웠을 것이다. 또한 말하는 사람은 솔직하고 허심탄회하게 한다고 하지만, 받아들이는 쪽에서는 얼마든지 무언가 의도가 있는 말로 곡해할 수도 있는 세상이 아닌가.

하지만 홍 전 장관은 결국 인터뷰 제의를 받아들였다. ‘우리나라는 자서전 문화가 없는 게 문제다’ ‘장관까지 지낸 분들이 퇴임 후 자신의 경험을 털어놓지 않는 것은 일종의 책임회피다’ 등등 기자의 설득도 어느 정도 그의 ‘결심’을 부추겼을 것이다. 그러나 ‘신동아’와 같은 장문의 기사를 싣는 매체와 인터뷰를 하느냐 마느냐를 판단하는 것은 결국 당사자의 몫이다. 그런 점에서 홍 전 장관 스스로도 ‘한마디’에 대한 욕구가 그만큼 컸다고 볼 수 있지 않을까?

“정부 대응에 문제 있었다”



-이번 서해교전은 여러 기관과 전문가들의 해석이 엇갈렸다는 점이 특기할 만한 점이라고 봅니다. 이번 사태가 의도적인 도발인지 아니면 우발적인 일인지, 이번 사태를 일으킨 주체가 북한 해군에 국한되는지 아니면 김정일(金正日) 국방위원장의 묵시적 승인을 얻은 것인지 등에 대해 다양한 분석이 나왔지만, 저마다 자신이 기존에 갖고 있던 대북 인식에 기반한 것이라는 인상을 주었습니다. 그런 점에서 또 한 차례 남남(南南)갈등이 일어날 위험성도 매우 높습니다.

“남북 평화공존정책이라는 것이 매우 다층적이고 다변적인 정책입니다. 어디까지가 평화공존이냐 하는 정의가 뚜렷하게 있는 것도 아닙니다. 따라서 평화공존 문제를 놓고 갈등과 견해차가 있는 것은 너무나 당연합니다. 미국을 보세요. 민주당과 공화당 사이에 대북정책을 놓고 견해차가 있는 것은 평화공존에 대한 인식이 다르기 때문입니다. 우리나라도 서해교전 사태를 놓고 다양한 주장이 나왔지만, 사실 평화공존 정책이 어느 한순간에라도 없을 수는 없는 겁니다.”

-언론의 논조도 뚜렷하게 나뉘었습니다. 흔히 말하듯 보수적 입장과 진보적 입장으로 갈려 독자들로서는 혼란스러웠을 겁니다. 그렇지만 제가 보기엔 가장 보수적인 언론의 논조조차도 ‘햇볕정책 당장 집어치워라’는 차원의 주장을 한 것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우리 해군 장병이 사상한 만큼 정부가 이번엔 좀더 단호한 태도를 보여줘야 하겠다, 이런 정도의 요구였다고 봅니다.

“그렇죠. (햇볕정책의) 추진 방법과 시차, 속도, 이런 문제를 놓고 문제 삼는 것이겠지요. 그런데 지금은 재래식 무기라도 한번 사용하면 여럿이 다치는 시대입니다. 옛날처럼 장수만 죽으면 나머지는 항복하는 시대가 아니잖아요? 이렇게 보면 평화공존은 지상명령입니다. 우발적이라고 해도 일단 전쟁이 터지면 다 죽으니까. 전쟁이 나면 통일도 소용없는 일이 됩니다. 그러니까 평화공존의 방법과 속도에 대한 견해 차이라고 할 수 있다는 겁니다.”

-예컨대 서해교전 바로 다음날 임성준 대통령 외교안보수석이 ‘햇볕정책을 유지하겠다’고 밝힌 것은 분명히 실수였다고 봐요. 정부로서는 내심은 어떻더라도 최소한 그 상황에서 겉으로는 북한에 강경한 입장을 견지했어야 했다고 생각합니다.

“정부의 대응에 문제가 있었습니다. 먼저 이번 일은 국지적 도발이고 분쟁이거든요. 그렇다면 국지화의 원칙에 따라 현장에서 바로 대응했어야 했고, 비례의 원칙에 따라 상대방의 도발 강도와 비슷한 수준으로 대응하고 보복을 했어야 했습니다. 그런데 그렇게 하지 못했다는 게 아쉽습니다.

사태 이후의 처리과정에도 문제가 있었습니다. 장교를 포함한 우리 장병들이 전사한 것은 굉장히 큰 사건입니다. 그런데 정부는 영결식 등에서 보여줬듯이 이번 일을 엄중한 사태로 취급하지 않았어요. 사실 이것이 더 큰 문제입니다. 정부가 이번 일을 엄중한 사태로 인식하고 있다는 것을 확실하게 보여줌으로써 국민에 대한 신호도 되고, 북한은 물론 국제사회에 우리의 가치관이라든지 군사적 충돌에 대한 단호한 입장을 보여주는 기회가 될 수 있었습니다. 햇볕정책 3원칙의 첫번째가 ‘무력도발 불용’ 아닙니까? 그런데 정부는 이 원칙을 지키지 못했습니다. 군사작전에서 만족할 만한 성과를 거두지 못한 것에 대해서는 문제 삼거나 비난하고 싶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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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문홍 < 동아일보 논설위원 > songmh@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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