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6월29일 오전 9시54분, 해군의 KNTDS(해군전술지휘통제시스템) 스크린 위에 붉은 점 하나가 서해 NLL(북방한계선)을 넘어 남하하고 있다는 정보가 떠올랐다. 붉은 점은 북한의 경비정(388정). 곧 인근에 있던 녹색 점(우리측 고속정) 두 개가 접근해 나가자 또 하나의 붉은 점(북측 684정)이 스크린상의 NLL을 넘는다. 스크린 위에 붉은 실선으로 나타난 북한의 85㎜함포 공격. 곧이어 뒤엉킨 점들 사이로 죽죽 그어지는 붉은 실선들.
곧 후방에 있던 또 다른 녹색 점 두 개가 북상하기 시작했다. 우리 해군의 1200t급 초계함인 진해함과 제천함이다. 초계함이 붉은 점을 향해 포격을 가하자 황해도 사곶 해군기지에 정박한 북한 유도탄정의 스틱스(STYX) 미사일 레이더가 추적 빔을 쐈다. 그 순간 스틱스 미사일 유도 레이더파를 감지한 제천함의 레이더가 비명을 질러댔다. 긴박한 순간. 사정거리 안에 있는 함대함 스틱스 미사일에 맞을 경우 상황은 돌이킬 수 없다. 오전 10시56분 2함대사령부는 사격중지 명령을 내렸다.
“해군이 이지스, 이지스 노래를 부르는 게 이 때문입니다. 지금은 북한에서 쏘면 맞을 수밖에 없어요. 차세대 구축함인 KDX-3가 도입되면 이야기가 달라집니다. 스틱스 미사일을 발사하려는 전자파가 감지되면 이 구축함은 스탠바이 상태에 들어갑니다. 미사일이 발사되면 즉시 요격미사일을 대응 발사합니다. 이 요격미사일에 걸려 스틱스는 바다 위에서 소멸하고 맙니다. 우리 함대는 완벽한 미사일 방어망을 갖추게 되는 겁니다.”
해군에서 전자전 관련분야를 담당하고 있는 한 중령은 “이것이 KDX-3의 위력”이라고 말했다. KDX-3가 취역하는 2008년을 기점으로 한국과 북한의 해군력은 ‘국가대표 대 조기축구팀’ 수준의 격차를 갖게 된다는 설명이었다. 도대체 KDX-3가 무엇이길래 이런 위력을 갖는다는 것일까.
‘물밑부터 하늘까지.’ KDX-3는 함정에 대한 모든 공격을 방어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춘 7000t급 구축함으로 설명할 수 있다. 잠수함·적 함정·항공기·미사일에 이르기까지 전방위로 들어오는 공격을 탐지, 대응하는 함정이다.
우리말로는 ‘차세대 한국형 구축함 사업’으로 불리는 KDX 사업은, 1996년부터 실전배치된 3000t급 KDX-1(광개토대왕급)과 지난 5월 1번함 진수를 마친 4000t급 KDX-2(충무공 이순신급)를 거쳐 3단계 사업에 돌입한다. 국방부는 총 2조9680억원을 투자해 KDX-3 구축함 세 척을 확보할 계획이다. 오는 2008년 KDX-3 제1번함이 취역한다.
한 척당 1조원 내외의 예산이 배정되는 셈인데, 일각에서는 이 예산안에 대해 의구심을 표시한다. 일본이 보유하고 있는 공고(金剛)급 이지스함(7250t)의 건조 당시 가격이 10억달러, 지금 건조중인 이지스함의 가격이 대략 14~15억달러인 것을 고려하면 현재 예산으로는 턱없이 부족할 것이라는 견해다.
해군에게 KDX사업은 새 구축함을 하나 더 사는 단순한 사업이 아니다. 연안을 벗어나 동남아까지의 먼 바다로 나가 한국의 해상교통로를 안전하게 확보할 ‘대양해군’을 만들 ‘전략기동함대’의 주축 세력을 마련하는 야심찬 사업이다.
현재는 세 척의 KDX-3만 건조한다는 계획이 짜져 있지만, 전문가들은 최소한 다섯 척은 있어야 할 것으로 보고 있다. 동·서·남해에 한 척씩 배치한 상태에서 훈련과 정비를 원활하게 하자면 그 정도는 필요하다는 것. 해군은 이를 바탕으로 동·서·남해에 KDX-3를 주축으로 하는 세 개의 해역함대와 한 개 전략기동함대를 보유한다는 계획이다(합참에는 동해와 남해일부, 서해와 남해일부를 각각 관할하는 두 개의 해역함대와, 한 개의 전략기동함대를 갖자는 안을 제시하는 세력도 있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