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5월18일 광주에서 시작된 평화로운 시위가 유혈 참극으로 막을 내리는 과정에서 미국은 무엇을 얼마나 알고 있었는가? 미국은 무슨 일을 했고 무슨 일을 하지 않았나? 이는 미국이 상황을 어떻게 인식하고 있었고, 나름대로 어떻게 대처했는지에 대한 물음일 뿐이다. 미국이 마땅히 취했어야 할 행동이나 취하지 말았어야 할 태도에 대해 묻는 것은 그 다음 일이다.
1988년 여름 한국 국회는 5·18 광주 민주화운동 진상조사 특별위원회를 구성하고 그해 겨울 외무부를 통해 윌리엄 글라이스틴 전 주한 미 대사와 존 위컴 전 미 8군사령관에게 광주특위 출석 증언을 요청했다. 그러나 그해 12월2일 미 국무부는 이들의 특위 출석 증언을 거부하고 성명서로 답변을 대체했다. 국무부가 ‘배경 설명(Background er)’이라는 제목으로 내놓은 이 성명서와 이를 보충해 발간한 ‘광주 백서’가 지금까지 미 행정부가 보여준 공식 입장의 전부다.
글라이스틴 대사와 위컴 장군이 각각 자신들의 저서에서 광주사태(광주민주화운동이라는 용어가 통용되고 있고 ‘광주사태’라는 용어 사용이 신군부 입장을 대변하는 것이라는 주장이 있긴 하지만, 이 글에서는 1980년 5월 당시 상황에 초점을 맞추고 있고 ‘광주사태’라는 표현을 쓴다 해서 과거사를 잘못 인식할 가능성은 없다고 판단해 ‘광주사태’로 표기함 : 필자)에 대해 언급하고 있지만, 국무부의 공식 문건인 ‘배경 설명’ 및 ‘광주 백서’의 내용과 큰 차이가 없다. 일부 민감한 부분은 사용한 어휘까지 똑같다.
미 정부 입장에서는 일관성을 유지했다는 점에서 다행스러운 일인지 모른다. 귀한 기록을 남긴 글라이스틴 대사나 위컴 장군도 하고 싶었던 말은 하되 불필요한 ‘잡음’을 일으킬 만한 구석은 피해갔다. 그들의 글은 국무부의 ‘배경 설명’이나 ‘광주 백서’의 틀에서 조금도 벗어나지 않았다.
‘서울은 예전처럼 조용하다’
개인의 이해관계가 얽혀 있게 마련인 관련 당사자들의 증언만으로는 광주의 진실을 드러내기에 한계가 많다. 당시 상황을 기록해놓은 미 비밀문서들은 왜 이런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는지를 들여다볼 수 있는 흔치 않은 수단들 가운데 하나다. 주한 미 대사관과 워싱턴의 국무부 사이에 오간 비밀 전문, 국방정보국(DIA) 보고서 및 백악관 상황실의 회의록 등을 통해 피비린내 나는 한국 현대사에 한미관계가 어떤 모습으로 삽입되어 있는지 들추어본다.
글라이스틴 대사는 1999년에 발간된 ‘뒤얽힌 관계, 영향력의 한계(Massive Entanglement, Marginal Influence)’라는 저서에서 광주사태를 ‘한국에 영원한 상처를 남긴 사건으로, 한국전 이후 한국사에서 평화로운 시기에 발생한 가장 심각했던 위기’라고 규정하고 있다. 상당히 조심스럽고 신중한 표현이다. 사태 발생의 주체, 가해자와 피해자에 대한 언급은 모두 피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