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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DT의 神’ 조광현 전 해군 대령

“고 한주호 준위처럼 솔선수범하는 아름다운 전통 지켜나가야”

‘UDT의 神’ 조광현 전 해군 대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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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후 작업은 현역이 하겠다”

‘UDT의 神’ 조광현 전 해군 대령

천안함 수색작업에 참가한 UDT동지회 회원들이 4월5일 오전 백령도에서 철수하고 있다.

조씨는 한 준위가 순직한 3월30일 밤 경기도 성남 국군수도병원에 있는 빈소를 찾았다. 다음날 오전 조문 온 김태영 국방부 장관, 김성찬 해군참모총장과 귀빈휴게실에서 조우했다. 조씨가 인사를 하자 김 장관이 “조광현 선배님 아니십니까” 했다. 이에 조씨가 “어떻게 제 이름을 기억하십니까” 묻자 김 장관은 “특전 분야에서 조 선배님을 모르면 특전맨이 아니죠”라고 답했다고 한다.

“그때 내가 한 준위 장례 문제로 화가 나 있었다. 한주호 아니면 해군은 떡이 됐을 게 아닌가. 그 사건이 나는 바람에 해군 욕하던 여론도 잠잠해지고 실종자 가족들도 (구조에서) 인양 쪽으로 방향을 튼 것 아닌가. 그런데 해군 작전사령부장(葬)으로 3일간 치른다고 해서 화가 났지. 다음날 오전에 총장이 온다기에 얘기 좀 하려고 기다리고 있었던 거다. 그런데 김태영 장관이 먼저 내가 하고 싶은 얘기를 꺼냈다. 김 장관은 ‘한 준위는 해군을 살린 영웅이다. 3일장은 너무 짧다. 살신성인의 영웅적 행위를 널리 알려야 하는 것 아니냐. 해군장으로 5일장을 치르게 해 일반 국민도 많이 조문하게 하자’고 했다. 참 고맙더라.”

UDT동지회(회장 심현표)는 실종자 가족의 요청에 따라 천안함 실종자 수색작업에 참여했다. 회원들 중 50m 이상 심해잠수 경험이 있는 직업 잠수사 12명이 우선 선발됐다. 이들은 3월29일 해군 2함대사령부가 있는 경기도 평택에서 헬기를 타고 백령도로 들어갔다. 어선을 타고 사고현장에 도착한 그들은 한 준위를 비롯한 UDT 현역들과 함께 물속으로 뛰어들어 함수 실종자 수색에 나섰다.

최악의 작업환경이었다. 조류와 수온, 시정 등 모든 면에서 안전기준을 초과했다. 미군이 참여하지 않은 것도 그 때문이었다. 한국군은 안전수칙을 위반하고 작업한 셈이다. 수심 40m에서 스쿠버(Scuba·휴대용 수중호흡기)만 메고 들어가면 불안해서 작업을 오래할 수 없다. 기껏해야 15~20분이다. 호흡이 빨라지고 조류가 세기 때문에 체력소모도 크다. 잠수경력이 몇 년 되지 않은 젊은 군인이나 아마추어 잠수사들이 나가떨어진 것도 그 때문이다.



UDT 예비역들은 다음날 오전에도 한 준위팀과 함께 수색작업을 벌였다. 점심 때가 돼 식사를 하기 위해 백령도로 철수했다. 기상이 더 나빠지고 있었다. 12시20분쯤 한 준위가 전화를 걸어와 “오후 작업은 현역들이 하겠다. 실종자 가족들이 저토록 애타게 기다리고 있으니 오늘 중으로 작업을 끝내겠다”고 했다. 오후 3시20분쯤 현장에서 연락이 왔다. 한 준위가 사고를 당했다는 것이었다. 수색에 참여했던 UDT 예비역들은 다음날인 3월31일 장비는 남겨둔 채 몸만 빠져나와 분향소로 향했다.

“군에서 함미 쪽 접근 막는다”

‘UDT의 神’ 조광현 전 해군 대령

1968년 UDT 14기 입교생은 120명이었으나 수료생은 7명뿐이었다. 앞줄 왼쪽에서 두 번째가 조광현 대장. 오른쪽 옆으로 최웅 육군특전사령관, 미 해군 잠수함장. 서 있는 사람들은 교관들과 수료생들이다.

선체 출입구를 개방하고 통로 내부에 인도줄을 설치하는 등 성과를 내긴 했지만, UDT 예비역들의 수색작업은 순조롭지 않았다. 작업환경이 열악해 잠수할 수 있는 시간이 극히 제한돼 있는데다 역할분담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은 탓이었다. 특히 함미 수색작업은 SSU(Ship Salvage Unit·해난구조대) 측과의 업무협조가 원활하지 않아 어려움을 겪었다.

“현역은 훈련은 잘돼 있지만 실전경험이 부족하다. 반면 직업으로 잠수를 계속해온 예비역들은 실전경험이 풍부하다. UDT 예비역들이 참여한 건 군의 수색활동에 만족하지 못한 실종자 가족 측에서 도움을 요청했기 때문이다. 물에 들어갔던 예비역들이 나와서 내게 하소연을 했다. 군에서 함미 쪽은 접근을 못하게 한다고. 현장 지휘부와 사전 조율이 되지 않은 탓이었다. 사전에 협의를 해서 작업 배당을 받아야 하는데 무작정 작업하겠다고 하니 군 쪽에서 난색을 표했던 모양이다. 군에서 탐탁지 않게 여긴 면도 있었고.”

조씨는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4월1일 인천에서 백령도로 들어가려다 기상 악화로 대기했다. 다음날 UDT 동지들과 함께 백령도로 들어가 임차한 어선(5t급)을 타고 사고현장으로 향했는데 풍랑이 거셌다. 선장이 항해를 거부하는 바람에 되돌아와야 했다.

“SSU부대 책임자에게 전화해 ‘오후 함미 수색작업을 우리가 맡는 게 어떻겠느냐’고 제안하자 ‘오후 작업계획을 수립해 준비하고 있다’는 답변이 돌아왔다. 현역 후배들이 하겠다는 걸 뺏는 것도 모양이 우습고 해서 ‘그럼 다음날 오전엔 우리가 하겠다’며 물러섰다.”

해난구조가 전문인 SSU가 있는데 굳이 UDT가 참여한 이유가 뭘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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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성식│동아일보 신동아 기자 mairso2@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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