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실이 이렇지만 우리 정치는 여전히 20~30년 전을 헤매고 있다. 87년 체제라 불리는 민주-반민주 구도가 오래전에 해체됐음에도 여전히 3김 구도에서 정치를 배운 마지막 세대들이 우리 정치의 중심에 서서 주요 정당을 이끌고 있다. 이들은 국민의 이익보다는 당론 중심, 반대를 위한 반대, 자유무역협정(FTA) 날치기 통과, 자기중심적 2분법 등으로 우리 사회를 끝없는 분열로 몰고 간다. 중요한 것은 이들이 3김과 같은 카리스마를 갖추지 못해 결국 혼란만 가중시키고 있다는 점이다.
안철수와 박원순의 등장
우리나라의 40대 이하 국민은 생리적으로 이들 3김식 정치에 적응하지 못한다. 이들은 기득권 세력과의 전투에서 무력감을 보이며 패배한 노무현 정부를 보면서 진보정치에 대해서도 확신을 잃었다. 이러한 상황에서 등장한 사람이 바로 안철수이고 박원순이다. 이들은 40대 이하 국민에게 아주 매력적이고 희망을 동반한 멘토로 다가왔다. 국민은 이들에게서 진심으로 세대문제를 고민하는 진정성과 공동체에 대한 헌신성, 그리고 우리 사회를 변화시킬 수 있다는 가능성을 봤다. 국민의 눈에 이들은 좌파도 우파도 아니었다. 안철수 교수와 동반자적 관계를 맺고 있는 박원순의 서울시장 당선은 이런 현실을 고스란히 반영한 결과였다. 국민은 오세훈 전 서울시장의 사퇴 이후 정치 전면에 등장했던 안철수 교수에게 위안을 받고 박원순에게서 새로운 길을 보고 있다.
SNS(사회관계망서비스)의 확산은 이러한 흐름에 불을 붙였다. SNS를 통해 국민들은 스스로 ‘시민권력’이 됐다. 여론조사 전문기관인 한길리서치 정기여론조사에 의하면, 우리 국민의 50% 이상(2011년 9월 52.7%, 11월 54.4%)은 현재 지지하는 정당이 없는 것으로 나타난다. 이런 수치는 성수대교가 붕괴하고 삼풍백화점이 무너졌던 1995년의 혼란스러운 상황과도 비슷한 정도다. 당시 정치권은 위기를 타개할 방법으로 재야 세력을 대규모로 영입한다거나 이회창 같은 신인 정치인, 야인으로 돌아갔던 김대중 전 대통령을 등장시켜 국민의 눈을 사로잡았다. 두 사람의 대선주자가 등장하면서 정치적 위기는 어느 정도 해소될 수 있었다.
그렇다면 총선과 대선을 동시에 치러야 하는 2012년에도 그때와 같은 해법이 통할까. 필자가 보기에 대답은 단연코 ‘NO’다. 국민이 스스로 권력을 말하는 시대에 더는 정치권의 의도대로 국민의 마음이 움직이지 않을 것이란 게 필자의 생각이다. 그렇다면 2012년 한국의 정치 지형은 어떻게 바뀔 것인가?
가장 먼저 예상해볼 수 있는 2012년 정치 지형의 변화는, 지역주의의 약화로 인한 영·호남지역에서의 세칭 ‘묻지마’ 당선의 종말이다. 지역주의의 상징적 인물들이 사라진 이상, 영남에서는 진보통합정당이나 무소속 후보 그리고 반(反) 한나라당 연대의 통합야당 후보가 당선될 것이 확실해 보인다. 특히 총선 불출마를 선언했지만, 부산 출신인 안철수 교수의 영향력이 극대화될 경우 부산지역을 중심으로 한 정치 빅뱅 가능성이 매우 높다. 다수의 통합야당 후보가 당선될 가능성이 있다는 판단이다.
‘묻지마 당선’의 종말
야권에서 상당한 영향력을 가지고 있는 민주당 김부겸(3선) 의원의 대구 출마가 시사하는 바도 크다고 생각된다. 비록 본인의 당선 가능성은 낮다고 할 수 있지만 선거판 전체에 미치는 영향은 상당할 것이 분명하기 때문이다. 호남에서도 상당한 변화가 불가피할 것으로 보인다. 반 한나라당 연대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진보통합정당의 후보들이 등장할 가능성이 높다. 오랫동안 지역을 지킨 구 민주당 정치인들의 대거 퇴진은 이미 불을 보듯 뻔한 상황이다. 하여튼 전국적으로 진보 성향의 후보들이 정당공천과는 상관없이 대거 중앙정치무대로 등장할 가능성이 높다고 판단된다. 이는 우리 정치에 상당한 변화를 가져올 것이다.
한나라당에 대적하기 위한 야권의 연대는 필연적으로 이루어질 것이다. 야권은 이미 그 같은 교훈을 10·26 서울시장 보궐선거에서 얻은 바 있다. 똘똘 뭉쳐야 이길 수 있다는 경험이다. 이렇게 되면 반한나라당 연대에 참여할 진보통합정당의 운신의 폭도 그만큼 넓어질 것이다. 진보통합정당이 원내교섭단체를 구성할 수 있을 정도로 세를 키울 가능성도 높아 보인다. 현실화된다면 정말 큰 변화가 아닐 수 없다.
반한나라당 진영이 한나라당을 이기기 위해선 두 가지 전략적 방법을 택해야 한다. 하나는 통합야당이 진보통합정당과 반한나라당 연대를 하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10·26 서울시장 보궐선거에서 보았듯이 통합야당이 안철수와 박원순을 중심으로 한 새로운 정치바람을 등에 업는 것이다. 안철수 교수의 경우 특정 정당을 지지하기보다는 반한나라당 연대라는 대의를 더 중시하는 성향을 보이는 만큼 민주당 중심의 통합야당만을 지지해 민주노동당과 친노세력 중심의 진보통합정당을 고립시키는 식의 분열적 전략을 선택할 가능성은 매우 낮을 것으로 보인다. 더구나 2012년 대선에 본인이 출마할 경우 진보통합정당의 지지를 반드시 끌어내야 함을 아는 그가 그러한 선택을 할 가능성은 상당히 낮아 보인다. 만약 안철수 교수 등이 바람대로 반한나라당 연대를 강조하거나 추동하고 나온다면 야권에서도 이를 무시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2012년 총선은 반 한나라당 전선이 형성되는지에 그 결과가 달려 있다.
현재 우리나라 만 19세 이상 유권자 중 50대 이상이 차지하는 비중은 37.4% 정도다. 이들은 야당을 포함한 진보세력보다는 한나라당을 지지한다. 반면 20대와 30대의 비중은 지속적으로 줄어들고 있다(1996년 56.1%, 2001년 50.4%, 2006년 46.3%, 2011년 40.1%). 실제 연령별 투표율까지 감안하면, 20대와 30대를 합해도 50대 이상보다 영향력이 작다는 결과가 나온다. 또 40대 이하를 다 합해도 투표율 차이가 25%포인트 이상 벌어지지 않아야 50대 이상과 비슷한 영향력을 발휘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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