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24 재보선에서 당선된 새누리당 이완구, 김무성, 무소속 안철수 의원(오른쪽부터)이 4월 26일 국회에서 의원 선서를 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한때 ‘친박계의 좌장’으로 불리던 김무성 의원 주변에 사람이 모이고 있다. 여의도 정가에선 ‘무대계’가 형성되고 있다는 말이 나돈다. 무대는 ‘무성이 대장’의 줄임말로 김 의원의 통 큰 리더십에 매료된 젊은 당료들이 붙인 별명이다.
국회 본회의장에선 4·24 부산 영도 재선거를 통해 여의도에 입성한 김 의원 주변에 여당 의원들이 모여 담소를 나누는 광경이 자주 목격된다. 국회 의원회관 사무실도 문전성시다. 여의도 일대 음식점에서는 김 의원을 ‘주빈’으로 하는 식사 자리가 자주 마련된다. 국회 정문 앞의 한 퓨전 일식집이 무대계의 ‘아지트’라는 말도 들린다.
김 의원 주변에 사람이 모이면서 그를 유력한 ‘포스트 박근혜’로 꼽는 이가 늘고 있다. 그는 아무런 당직도 맡고 있지 않지만 원내대표는 물론 당 대표보다 존재감이 크다고 여기는 이가 많다. 이 때문에 그가 차기 당권에 가장 근접해 있는 것으로 파악된다. 새누리당 차기 당 대표는 내년 5월에 선출된다. 내년 6월 지방선거 일정 등을 감안해 조기 전당대회가 열릴 수도 있다.
“금주 선언하라”
국회 입성 후 김 의원은 공식적으로 잠행(潛行)에 가까운 행보를 하고 있다. 새누리당 최고위원-중진의원 연석회의에 꼬박꼬박 참석하지만 별다른 발언은 하지 않고 주로 듣기만 한다. 그의 목소리가 뚜렷하게 들린 것은 ‘윤창중 스캔들’이 터졌을 때다. 당시 청와대 참모들에게 “금주 선언을 하라”고 다그친 게 고작이다.
김 의원은 공식 인터뷰 요청을 정중히 사양했다. “언론에 등장하고 싶지 않다. 인터뷰 요청이 많지만 모두 거절하고 있다”고 했다. 몇 차례 시도 끝에 6월 14일 어렵게 전화가 연결됐다. 통화 내용은 ‘때를 기다리면서 열심히 공부하고 있다, 당이 필요로 하면 대표직에 도전할 용의는 있다’로 요약된다.
▼ 여의도 정치에 복귀한 뒤 향후 역할을 놓고 눈길을 끌고 있습니다.
“내가 뭘 하겠다고 먼저 나서는 일은 없을 겁니다. 나를 필요로 해서 요청이 올 때까지 공부하면서 기다리는 거죠. 언제가 될지는 모르겠어요.”
▼ 요청이 오면 당 대표에 도전할 생각인가요.
“그건 그렇죠. 나는 철저한 당인(黨人)이니까, 당인으로서 멋진 당을 만들고 싶은 생각은 있어요. 동지가 당을 배신하지 않는데 당이 먼저 동지를 배신하는 일이 절대로 없는 당을 만들고 싶습니다.”
김 의원은 2008년 18대, 2012년 19대 총선을 앞두고 연이어 당의 공천을 받지 못해 정치적 위기를 겪었다. 이명박 정부 초기인 2008년에는 친박계 좌장으로서 대선후보 경선에서 고배를 마신 패장(敗將)으로서 수모를 당했다. 그때 그는 친박 무소속으로 자신의 기존 지역구였던 부산 남구을에 출마, 기사회생해서 여의도로 돌아왔다.
2012년의 상황은 조금 달랐다. 당시 공천권은 사실상 박근혜 비상대책위원장이 행사했지만 그는 낙천했다. 자신은 철저한 당인으로 당을 위해 헌신했는데 당이 자신을 배신했다고 그때 일을 생각하는 듯했다. 지난 5월 중앙당의 밀실 또는 하향식 공천을 차단하기 위한 정치쇄신 방안을 담은 공직선거법 개정안을 공동발의한 것도 그런 맥락에서다. 그는 재선거 당선 직후 동아일보 인터뷰에서 “섣부르게 권력을 잡았다고 동료의 목을 치는, 그런 나쁜 짓이 새누리당에서 재연되지 않도록 하겠다. 제도적 장치를 마련하겠다”고 공언했다.
▼ 정치적 목표가 뭡니까.
“멋있는 정치를 하고 싶어요. 지금은 공부하면서 기다리다가 그런 계기가 생기면 멋있는 정치를 해보려고 합니다. 구체적인 그림은 아직 없어요.”
▼ ‘포스트 박근혜’로 꼽히기도 하는데요.
“제게 그런 자격이 있다고 생각하지 않아요.”
▼ 당내에 김무성 계보가 형성되고 있다는 말도 있습니다.
“그런 소리 듣지 않으려고 제가 먼저 ‘콜’해서 모이지 않아요. 만나자는 연락이 오거나 우연하게 모이게 되면 가는 거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