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0년 2월호

“특검은 이형자 거짓말에 끌려 다녔다”

  • 조성식 동아일보 신동아 기자

    입력2006-12-21 13:4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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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옷사건 특검의 문제점은 이형자씨 주장에 치우친 점이었다. 그에 따라 ‘1억원 옷값’의 실체를 찾는 데 지나치게 정력을 소모했다. 특검은 이씨의 거짓말을 너무 늦게 알아챘다. 》
    진실은 여전히 안개에 갇혀 있는가. 아니면 우리 곁에 다가온 ‘평범한 진실’이 믿기지 않는 것인가. 지난 1년 동안 온 나라를 들쑤셔놓았던 옷사건. 사직동팀이라 불리는 경찰청 조사과의 내사를 시작으로 서울지검 국회(청문회) 특검 대검 등 다섯 차례에 걸쳐 조사가 이뤄졌지만 혼돈의 수렁은 깊기만 하다. 아마도 가장 큰 이유는 대검 수사결과가 특검과 적지 않은 차이를 보였기 때문이리라. 이형자씨가 구속된 후 일각에서 ‘형평성’ 시비와 더불어 사건의 본질에 대한 의문이 다시 제기되는 것도, 바로 국민적 기대를 모았던 특검의 신뢰성이 흔들리는 데 따른 혼란 때문이다.

    지난해 12월30일. 대검은 옷사건최종수사결과를 발표했다. 그날 오후 기자는 충격적인 제보를 받았다. 옷사건 특검수사에 특별수사관으로 참여했던 민변(민주화를 위한 변호사 모임) 소속의 한 변호사가 특검의 잘못을 폭로하는 기자회견을 준비하고 있다는 것이었다. 수소문 결과 그 주인공은 문병호 변호사(41)임이 밝혀졌다. 민변의 만류로 기자회견을 취소한 그는 한사코 인터뷰를 고사했다. 열흘쯤 뒤 다시 만난 그는 “특검제의 개선과 발전을 위해서”라는 명분으로 인터뷰에 응했다. 그는 4시간 동안 매우 열성적인 태도로 그가 겪은 옷사건 특검 수사과정의 문제점과 그가 파악한 놀라운 ‘진실’을 말해줬다. 그의 논리는 대체로 사실에 근거했으며 상식에 가까운 것이었다. 그에 따르면 옷사건 특검이 ‘실패’했던 가장 큰 이유는 이형자씨의 거짓말을 미처 알아채지 못한 점이었다. 그에 따라 너무 많은 ‘실수’를 저질렀다. ‘유감스럽게도’ 그가 내린 결론의 상당 부분은 대검의 수사결과와 일치하는 것이었다.

    문변호사는 사시28회 출신으로 89년 인천시 부평에서 변호사 사무실을 개업했다. 인천지방변호사회 인권위원장, 민변 사법위원장 등을 역임했으며 현재 부평에서 환경 교육 노동 등 각 분야에 걸쳐 다양한 활동을 펴고 있다. 98년 7월∼99년 6월까지 미국 워싱턴의 조지타운대학 로스쿨에서 객원 연구원으로 있을 때 특검제에 관심을 갖고 공부했던 것이 옷특검 수사에 참여하게 된 동기였다.

    ―원래 기자회견을 생각했다면서요.

    “가장 큰 동기는 첫째 특검의 수사발표를 보고 경악해서였습니다. 내가 보기에 검증 안 된 내용들이 사실인 양 발표문에 들어가 있었습니다. 거기에 특검보였던 양인석 변호사가 신동아그룹과 최순영 회장이 검찰 수사를 받던 98년에 신동아그룹 고위간부의 변호를 맡았던 사실이 드러났습니다. 이건 있을 수 없는 일입니다. 그래서 대검의 수사발표 직후 혼란에 빠진 국민들에게 진실을 알려야겠다고 결심했습니다. 그런데 민변측에서 ‘정치적으로 오해를 살 여지가 있으며 특검제의 존립을 위협할 수도 있다’며 말렸어요.”



    ―대검과 특검 수사의 가장 큰 차이점은 정일순·이형자씨의 혐의에 관한 부분입니다. 특검 수사에서는 정씨의 옷값대납 요구가 인정된 반면 대검은 이를 인정하지 않았습니다. 왜 이런 결과가 나왔다고 봅니까.

    “옷사건 특검의 가장 큰 문제점은 처음부터 이형자씨의 진술에 너무 기댄 점이었습니다. 이 사건은 크게 두 가지 축으로 구성됐는데, 하나는 연정희―정일순씨의 관계이고 다른 하나는 정일순―이형자씨의 관계예요. 특검의 가장 큰 성과라면 연씨의 옷 구입 날짜를 밝힌 것이지요. 반면 옷값 대납 요구를 둘러싼 정씨와 이씨에 대한 의혹은 서로 팽팽했어요. 그런데 특검팀은 처음부터 이씨쪽으로 기울어져 있었습니다.”

    ―언제부터 특검 수사 방향에 의문을 품었습니까.

    “(정씨에 대한) 영장 청구 전까지는 큰 불만이 없었어요. 영장이 기각되니까 문제가 커졌지요. (수사를 시작한 지) 4주 만에 영장을 청구했는데 기각됐습니다. 특검팀 주류의 시각은 정씨가 이씨와 연씨 사이에서 옷을 팔아먹기 위해 장난을 쳤다는 것이었지요. 또 정씨가 집권세력에 부담이 되는 일을 많이 알고 있으며 옷사건 당시 장관 부인들이 정씨로부터 옷 하나씩 다 받았다고 믿고 있었습니다. 대신 정씨는 그들 덕분에 세무조사를 피하고 또 그들에게 인사청탁을 했다는 겁니다.”

    ―장관 부인들이 가져갔다는 옷이 이형자씨의 로비와 관련됐다고 믿은 겁니까.

    “한 장관 부인의 진술을 근거로 삼은 것인데, 이 사건과는 관련 없는 일이에요. 특검팀은 정씨를 DJ정권의 고위 로비스트로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정씨를 잡아넣으면 뭔가 나온다고 생각한 겁니다. 연정희씨에 대한 로비의혹보다 다른 장관부인들이 옷을 하나씩 나눠 가졌을 가능성에 초점을 맞췄어요. 연씨에게는 옷이 안 갔을지 모른다는 생각을 하면서.”

    ―특검 수사발표 때 나온 코트 6벌의 의혹과 관련된 것입니까.

    “그런 인식에서 발표했던 거지요. 문제는 이것이 근거 없는 얘기라는 겁니다.”

    지난해 12월20일 특검은 수사결과를 발표할 때 밍크코트 6벌의 의혹을 새로 제기했다. 그에 따르면 정씨가 6벌의 코트를 구입했는데 이형자씨에게 판 2벌을 뺀 나머지 코트들의 행방이 묘연하다는 것. 특검은 이 코트들이 고관부인들에게 건네졌을 가능성을 암시했다.

    ―근거 없이 그런 발표를 할 수 있습니까.

    “특검팀은 정일순씨를 거짓말쟁이로 여겼어요. 태도나 인상도 안 좋았고. 나도 인정했어요, 그건. 그러나 그 거짓말을 따져볼 필요가 있습니다. 기본적으로 정씨는 옷장사입니다. 옷장사이기 때문에 고객인, 그것도 검찰총장 부인인 연씨가 찾아와 ‘나 여기서 옷 샀는데 남편한테 혼났으니 몰래 넣어준 걸로 해달라’고 부탁했을 때 옷장사라면 누가 안 도와주겠습니까. 정씨는 연씨와 관련해 거짓말을 한데다 밍크코트 6벌도 도매상에게 반납했다고 거짓말을 했어요. 그런데 정씨에게 코트를 넘긴 도매상은 반납받은 적 없다고 그래요. 정씨 처지에선 고객 보호 차원에서 그럴 수도 있거든요. 그런데 특검팀은 정씨의 거짓말이 권력의 큰 비밀과 연결된다고 믿었어요. 그러므로 구속영장을 청와대가 기각시킨 게 됩니다. 그런 논리로 가는 겁니다. 영부인과 장관부인들에게 뭔가 의혹이 있는 것처럼. 이형자씨와 관련 없이. 그래서 수사기간(60일)의 3분의 2를 정씨 잡아넣는 데 써버린 겁니다.”

    대검 수사 결과 특검이 의문을 제기한 코트들의 행방이 밝혀졌다. 소유자 중 장관 부인은 한 명도 없었다.

    ―정씨가 입을 열지 않아 특검이 코트 행방을 확인하지 못해 그런 것 아닙니까. 만약 확인했다면 수사 흐름이….

    “바뀌었는지도 모르지요. 나도 사실 (정씨에 대한) 1차 구속영장을 청구할 땐 애매한 생각을 갖고 있었어요. 그러나 만약 정씨를 구속했는데도 밍크코트가 안 나오면 ‘이건 무죄다’라고 생각했습니다. 나오면 유죄지만. 장관부인들에게 안 간 게 확인되면 무죄지요. 그러니까 이씨의 1억원 주장에 맞추기 위해 계속 코트에 집착할 수밖에 없었던 겁니다. 연정희씨와 상관없이. 이 얘기를 아무도 몰라요.”

    정일순 구속에 집착

    ―옷사건의 본질 규명보다는 그 이상의 것을 파헤치려고 한 듯싶은데요.

    “어찌 보면 너무 크게 본 게 특검팀의 문제였습니다. 연씨가 가져갔다는 것과 상관없이, 연씨가 안 먹었더라도 다른 사람들이 먹었다고, 무조건 먹었다는 생각이 강했어요.”

    ―먹었다는 건 이형자씨와 관련된 겁니까.

    “그럴 수도 있고 다른 건으로도, 예컨대 인사청탁 같은.”

    ―그건 옷사건과 관계없는 일 아닙니까.

    “상관없지요. 그런데 그런 근거도 없는 비하인드 스토리, 그걸 공식 판단의 기준으로 삼았으니….”

    특검은 정씨에게 알선수재 혐의를 적용해 구속영장을 청구했다. 이형자씨에게 연씨에 대한 청탁 명목으로 금품을 요구했다는 혐의였다. 문변호사에 따르면 이는 무리수였다.

    “특검은 정일순씨를 잡아넣으면 옷로비 의혹도 풀리고 다른 건도 잡을 것으로 기대했습니다. 그런데 이형자씨의 논리를 따라가다 보면 모순이 발생해요. 알선수재란 로비를 할 사람과 받을 사람을 중간에서 소개시켜 주는 겁니다. 서로 의사소통이 있어야 해요. 통상 어느 한쪽만이라도 중개인에게 의사 표시가 있어야 합니다. 그런데 이씨는 로비를 안 했다고 하고 연정희씨는 로비사실도 모르고 있었어요. 거기다 정씨는 옷값 대납을 요구한 적 없다고 하고. 그러니까 이건 이상한 거지요. 로비의 주체와 객체가 다 로비를 부인하니. 법리적으로 따져봐도 죄가 될 수가 없어요. 특검은 수사결과를 내놓으며 연정희씨가 옷로비에 관련되지 않았다고 하면서도 정씨에 대해선 알선수재혐의를 인정했어요. 이건 모순이에요.

    이형자씨 주장에 따르면 정씨가 협박했다는 얘긴데, 그런데 옷이 없어요. 1억원을 요구했다는데. 이건 굉장히 중요한 문제예요. 라스포사에서 연씨가 치른 옷값은 다해봐야 300만원이 안 돼요. 반납한 호피무늬코트를 400만원으로 쳐 포함시켜도 1000만원이 안 돼요. 옷도 안 보내고 1억원을 요구했으니 정씨는 사기꾼에 공갈범이 됩니다. 더욱이 이형자씨가 (옷값을) 못 낸다고 했는데도 계속 전화했다는 것 아닙니까. 판사의 영장 기각 사유도 바로 이 점을 믿지 못하겠다는 것이었습니다. 검찰총장 부인, 재벌회장 부인을 상대로 사기·공갈로 등쳐먹는다? 나중에 뒷감당을 어떻게 하려고요. 만약 이형자씨가 옷값을 냈다면 어떻게 됐겠습니까.”

    ―내부에서 이 문제에 대해 논의가 안 됐습니까.

    “회의를 안 해요. 60일 동안 딱 한번 했어요. 정씨에 대한 1차 구속영장이 기각됐을 때. 양특검보의 일방통행이었습니다.”

    ―왜 그렇게 됐습니까.

    “정씨의 잘못이 커요. 12월19일(연씨의 코트 구입일)에 대해 계속 거짓말하는 겁니다. 연씨와 관련된 건 모두. 오죽하면 내가 따로 불러 얘기했어요. ‘당신은 이형자씨와 싸워야 한다. 이씨 말에 따르면 연씨에겐 죄가 없다. 당신이 죄가 된다. 그러니 연씨 부분은 사실대로 말하라’고. 그런데 계속 거짓말하는 겁니다. 그 바람에 수사관들이 정씨를 거짓말쟁이로, 정씨가 하는 말이면 무조건 거짓말로, 그리고 그 거짓말은 권력과 관련된 것으로 여겼지요. 그걸 종합적으로 체크해주는 사람이 있어야 했는데.”

    ―아무도 이의제기를 안 했단 말입니까.

    “정일순씨의 진술에 대해 좀 다른 얘기를 하면 바로 묵살 당해요. 하지만 연정희씨의 옷 구입과 관련해 거짓말했다고 해 다른 진술을 다 거짓말이라고 할 순 없는 것 아닙니까.”

    ―이형자씨의 거짓말에 대해 특검은 어떻게 판단했습니까.

    “옷값 대납을 요구했다는 일시가 왔다갔다 하고 옷값도 틀려요. 그런데 특검은 이것을 기억의 불명확성 탓으로 돌렸죠. 그럴 수도 있겠죠. 이형자씨는 사직동팀 조사 때 정씨가 12월20일(98년) 저녁에 처음 전화를 걸어 옷값을 요구했다고 주장했어요. 그날이 남편 최순영씨의 회갑날이라 확실히 기억한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검찰 조사 때는 12월18일 오후 8시로, 특검에서는 12월18일 오후 9시 이후라고 말을 바꿨어요. 왜 바꿨냐. 연씨 일행이 라스포사에 간 날이 12월19일이라는 걸 나중에 알았거든요. 아무리 기억이 없다 해도 회갑날만큼은 정확히 기억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이씨는 사직동팀 조사에서 이렇게 진술했다.

    “남편 회갑날인 12월20일 밤 8시경 가족들이 모여 저녁식사를 하고 있는데 정일순씨가 전화를 걸어 ‘내일 검찰총장 부인이 우리 가게에 오니 당신이 밍크코트 3벌을 사줘라’고 했다. 옷값이 수천만원이라고 해 거절했는데 옆에서 남편이 ‘잘 했다’고 말했다.”

    결국 이 진술이 통째로 거짓말임이 드러난 셈이다. 문변호사는 “이씨의 주장은 앞뒤가 안 맞는게 많다”고 말한다.

    “이형자씨와 막내 동생 이형기씨는 그날(12월18일) 저녁 6시쯤 라스포사에 찾아 갔다고 주장하는데 이런 의문이 생겨요. 두 사람이 라스포사를 떠난 것은 저녁 8시가 넘어서였습니다. 그런데 정씨가 옷값을 요구하려면 라스포사에서 만났을 때 얘기하지 왜 이씨가 집으로 돌아간 뒤 전화를 했냐는 겁니다. 그날 이씨는 횃불선교원에 찾아왔던 배정숙씨와 싸운 다음 찾아온 겁니다. 연씨가 라스포사에 진짜 옷을 사러 오는지 확인하러. 말하자면 연씨의 뒷조사를 하러 간 겁니다. 정씨 말로는, 와서 연씨 욕만 실컷 하고 갔다는 거예요.”

    문변호사에 따르면 더욱 큰 문제는 옷값이었다.

    “이씨 자매는 사직동팀과 서울지검 조사 때 정씨가 요구했다는 옷값이 수천만원이라고 했어요. 그런데 국회 청문회와 특검 조사에선 한 장 얘기가 나오더니 슬그머니 1억원으로 바뀌었어요. 그런데 바뀌게 된 근거가 없어요.”

    이형자씨가 라스포사를 찾은 것은 98년 10월부터. 10월, 11월 두달여에 걸쳐 약 8000만원 어치의 옷을 샀다. 사직동팀 조사에 따르면 영부인을 잘 알고 있다는 정씨의 환심을 사 정씨를 통해 영부인에게 다가가려는 목적에서였다. 그러나 결과적으로 이형자씨는 옷만 잔뜩 사고 뜻은 이루지 못했다.

    “정일순씨 말이, 돈을 챙길 생각이었다면 그때 챙겼을 거라는 겁니다, 영부인을 내세워. 연정희씨는 문제도 아니라는 거죠. 당시 상황을 보면 일리 있는 말이예요. 그런데 정씨 말은 다 거짓으로만 여기는 겁니다.”

    99년 10월19일 수사를 시작한 특검은 11월16일 정일순씨를 긴급체포, 구속영장을 청구했다. 그것이 1차 청구였다. 하지만 법원은 이를 기각했다.

    “긴급체포를 하자 정씨는 연정희씨의 옷 구입과 반납 날짜를 실토했습니다. 야 이거 정일순이 많이 알고 있구나, 사람들이 착각할 만한 분위기였습니다. 그건 이해합니다. 내가 영장 청구에 동의한 것은 정씨의 위증 혐의 때문이었어요. 옷값 대납 요구과 관련된 알선수재 혐의는 애초 힘들 것으로 봤습니다. 영장실질심사 때 정씨의 변호인이 질문하는데 가슴이 덜컹하더라고요.”

    ―이형자씨도 정씨에게 전화한 적이 있지요?

    “이형자씨 말로는 정씨가 12월18일에 전화한 다음 12월21일 오전 10시경 자기가 정씨에게 전화를 걸어 배정숙씨에게 전해달라며 ‘옷값 못 낸다’고 그랬다는 거예요. 이씨가 전화로 이 얘기를 한 것은 정씨도 인정합니다. 그런데 가만히 따져보면 이씨 자매 주장이 앞뒤가 안 맞아요. 12월18일 옷값 요구를 거절했는데 정씨가 21일 아침 8시에 이영기씨(이형자씨의 바로 아랫동생)에게 전화를 걸어 또 옷값 요구를 했다 그래요. 그러면 이영기씨가 언니에게 당연히 얘기하지 않았겠어요. 그러면 항의를 해야 마땅한데 그런 얘기는 없고 두 시간 뒤 전화를 걸어 엉뚱하게 배정숙씨 얘기를 해요. 거기다 다음날인 12월22일 아침 정씨가 이영기씨에게 또 협박하는 전화를 했다는 거예요. 상식적으로 납득이 안 가죠. 두 번이나 거절했는데. 더구나 동생한테.”

    ―정황이나 논리로 봐 틀리지 않는 얘기 같은데 특검은 이를 어떻게 생각했습니까.

    “이 문제를 거론하니까, 질이 나쁜 여자라서 그렇다는 겁니다. 그러니까 할 말이 없지요. 꼭 내 말이 맞다는 건 아니지만 영장이 기각되면, 최소한 양식이 있다면 생각을 해봐야지요. 이유가 뭔지. 11월16일 1차 영장이 기각됐을 때가 터닝 포인트였어요. 그런데 특검팀은 워낙 자기 논리에 빠져 있었어요. 한 번쯤 잘못됐을 가능성을 검토했어야 했는데.”

    ―사직동팀 내사 착수 시기에 대한 이씨의 주장도 논란을 일으켰지요?

    “나중에 밝혀졌지만 명백한 거짓말이었습니다. 이씨는 1월7일경 조사를 받았다고 주장했습니다. 연정희씨를 음해하기 위해서였죠. 연씨의 코트 반환날짜가 1월8일이니. 그러면 조사 나오는 것 알고 반납한 게 되니까. 자기 말로는 1차 조사를 횃불선교원에서 받고 2차 조사는 63빌딩 회장실에서 받았다고 그래요. 그런데 이씨의 안사돈 조복희씨가 이씨와 두번 다 같은 날 조사를 받았거든요. 조씨한테 물어보니 63빌딩에서 1차 조사를 받았어요. 날짜가 1월15일이고. 첫 번째는 진술서를 쓰지 않았습니다. 두 번째는1월19일 횃불선교원에서 받았어요. 사직동팀 내사기록에 있는 진술서에도 진술 날짜가 그렇게 돼 있어요. 그럼 상식을 가졌다면 이형자씨가 거짓말하는 것으로 보고 이씨를 쪼아야지. 그런데 거꾸로 조씨를 쫘대는 겁니다.”

    ―이씨쪽 목사가 그에 관해 증언하지 않았습니까.

    “사람들이 잘 몰라 그렇지 이형자씨가 얼마나 거짓말한 줄 압니까. 조사가 1월7일경 시작됐다는 걸 주장하는 근거로 송목사라는 증인을 댔어요. 송목사가 1월11일 미국으로 출국했는데 출국 3∼4일 전 횃불선교원에 갔다가 이씨가 조사 받는 걸 봤다는 겁니다. 외무부 여권과에 확인해보니 송목사는 1월말에 출국했어요. 송목사도 특검에 와 이씨의 말을 부인했고. 그 여자가 큰일날 여자입니다. 아주 웃기는 여자예요.”

    특검팀은 또 ‘이권사’라는 사람을 불렀다. 역시 이형자씨가 증인으로 내세운 여자였다. 그런데 그 여자도 특검 조사에서 이씨의 주장을 부인했다.

    “뻔한 거짓말을 그렇게 해요. 모두 수사 막바지에 밝혀진 일이었지요. 양특검보도 나중에 발을 뺐잖아요, 이형자씨 말이 틀린 것 같다고.”

    특검은 수사 발표 때 이 문제와 관련한 이형자씨의 위증을 언급했다. 특검이 지적한 이씨의 유일한 ‘잘못’이었다. 그러나 그나마 ‘현재의 조사결과만으로 위증이라고 단정하기 어려워 추가조사가 필요함’이었다.

    ―다른 수사관들은 이형자씨의 거짓말을 어떻게 생각했습니까.

    “이씨가 거짓말은 했지만 정일순씨의 거짓말이 더 크다고 생각한 겁니다. 이게 굉장히 중요한 문제인데, 처음에 이형자씨의 주장부터 제대로 검증했더라면…. 이 사건엔 여러가지 경우의 수가 있어요. 연정희씨만 해도 옷을 샀다가 도덕적 비난이 두려워 돌려줬을 가능성, 아니면 로비와 관련된 뇌물로 받았을 가능성. 정일순씨는 옷장사로서의 거짓말 또는 정권 차원의 거짓말. 각 시나리오를 검토해야 하는데 처음부터 한 개의 시나리오만 보고 간 겁니다.”

    ―배정숙씨의 혐의에 대해선 특검이나 대검이나 큰 차이가 없지요?

    “같은 판단입니다. 여러 정황으로 보면 배씨의 대납 요구는 정씨보다 가능성이 높아요. 우선 옷값이 훨씬 작기는 하지만, 정씨의 경우와는 달리 옷의 실체가 있거든요. 연씨와 함께 앙드레 김에서 산. 그런데 그것도 ‘배씨의 요구로 2200만원을 준비했다’는 이형자씨 주장이 거짓말로 밝혀져 법정에서 입증하기가 쉽지 않을 듯합니다. 지난번에 법원이 배씨에 대한 구속영장을 기각한 것도 그런 판단에서였지요. 횃불선교원 경리 관계자와 비서에게 확인하니 이씨 말이 안 맞아요.”

    ―정일순씨에 대한 영장을 재청구할 때 내부에서 반대는 없었습니까.

    “내가 반대했어요. 그러나 단칼에 묵살됐지요. 재청구해도 안 떨어질 것 같아 걱정이 됐어요. 그때까지도 정일순씨에 대한 영장에 집착하는 건 명백한 무리수였습니다. 특검팀의 오만이었어요. 겸허하게, 틀릴 수도 있다는 생각을 했어야 하는데 외압 아니면 판사가 무지해서 기각된 걸로 판단하는 겁니다. 11월27일 세 번째로 영장을 청구할 때 사표를 결심했습니다. 이 팀으론 안 되겠다, 이것은 아니다, 해도 너무한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외압설은 넌센스예요.”

    문변호사는 정일순씨의 혐의는 법리적으로 ‘무조건 무죄’라고 판단한다. 옷값 대납요구를 안 했다면 당연히 무죄지만 설사 요구했더라도 알선수재나 공갈 사기 등 어떤 혐의도 인정되기 힘들다고 본다.

    “알선수재가 되려면 청탁의 표시가 있어야 해요. 그런데 이형자씨의 말을 들어봐도 정씨가 그런 말은 하지 않았어요. 이것이 3차 영장 기각 사유입니다.”

    특검팀의 수사방향에 실망한 문변호사는 12월7일 최병모 특검에게 “내 결론은 다르다”며 수사보고서 작성 작업에서 빠지겠다고 말했다. 다만 밖에서 보는 눈이 있으니 사표를 내지는 않겠다고 했다. 12월20일 특검의 수사결과를 보고 그는 충격을 받았다. 이형자씨의 숱한 거짓말이 드러났지만 수사결과는 여전히 이씨의 진술을 기준으로 삼은 것이었다. 정일순씨에게 알선수재 혐의가 인정된 점말고도 곳곳에 ‘부실’이 눈에 띄었다.

    ―연씨의 호피무늬반코트 값이 1380만원으로 발표됐는데요.

    “웃기는 얘기입니다. (수사 시작) 45일째 정일순씨에 대한 3차 구속영장을 청구했는데 그때까지 영장엔 400만원으로 기록돼 있었어요. 이것이 보름 만에 3배로 부풀려진 겁니다. 그 전에도 1380만원 얘기가 있었지만 인정되지 않았어요. 배정숙씨의 증언인데 착오일 개연성이 컸습니다. 그날 배씨가 라스포사에서 봤다는, 1380원짜리 가격표가 붙은 롱코트는 정씨 남편이 운영하는 클라라 윤 제품으로 연씨의 호피무늬코트와는 다른 것이에요.”

    문변호사는 “이 수사의 최대 어려움은 옷이 없다는 점이었다”고 말했다. 이형자씨의 주장대로 2200만원 또는 1억원어치의 옷값 대납 요구가 있었다면 그 대상인 옷이 나와야 하는데 아무리 찾아도 그만한 가격의 옷이 나오지 않더라는 것. 그래서 옷값에 대한 증언이 사람마다 다르면 그중 가장 큰 수치로 옷값을 계산했다고 한다. 연씨의 옷값이 부풀려진 건 사실이다. 사지도 않은 옷, 반납한 옷도 포함시켰고, 실제 산 값이 아닌 원 가격표로 계산했다. 2000만원이니 3000만원이니 하는 옷값은 그렇게 해서 나온 ‘어처구니없는’ 수치다.

    ―연씨가 ‘거저’ 가져갔다는 표현도 화제가 됐는데요.

    “(정일순씨에 대한) 구속영장엔 판매 목적이라는 표현이 분명히 있었어요. 특검 발표에 따르면 연씨가 이은혜 전옥경씨에게 ‘대가 없이 보냈다’는 얘기를 한 것으로 돼 있는데 당사자들은 모두 그 사실을 부인하고 있어요. 수사결과에 그런 추상적 표현을 쓰면 안 되지요, 증거가 없는데.”

    이은혜씨의 진술에 따르면 연씨의 옷 구입은 ‘공짜’가 아니었을 개연성이 크다. 이씨는 99년 1월초 연씨와 함께 기도원에 가기 위해 연씨 집에 찾아갔다. 그때 연씨가 98년 12월19일 라스포사에서 입어봤던 호피무늬코트를 걸치고 나왔다. 이씨가 깜짝 놀라 물었다. “어머 그 옷 샀어요?” 연씨는 “아니야. 나보고 사래”라고 말했다. “얼마 달래요?” “400이래.” 특검이 이씨의 얘기를 귀담아 들었다면 ‘거저’라는 표현은 나오지 않았을지 모른다.

    옷로비 특검수사에 참여한 변호사는 모두 6명. 최병모 특검에 이어 서열 2위인 양인석 특검보가 실질적인 수사책임자였다. 나머지 4명의 변호사와 2명의 현직 검사가 특별수사관으로 활동했다. 문변호사는 수사팀 4명 중 선임으로 1호 수사관이었다. 그는 옷사건 특검이 ‘실패’한 원인 중 하나로 최특검의 ‘어정쩡한 역할’을 꼽았다.

    “최특검이 홍보를 담당한 게 실책이었어요. 그 바람에 최특검은 수사팀에서 완전히 배제됐어요. 최특검은 수사 내용과 관련해 한번도 보고 받은 적도, 지시한 적도 없습니다. 기자들이나 만나고. 양특검에게 수사 전권을 넘긴 건 최특검의 실수였습니다. 수사 내용을 모르니 수사 방향을 균형 있게 이끌지 못했습니다.”

    ―그밖에 특검 활동의 문제점과 한계를 꼽는다면요.

    “특검은 검찰에 대한 단순한 비판이 아닌 대안을 제시해야 합니다. 그런데 검찰 출신 변호사와 검사들이 주도함으로써 특검이 특수부 수사로 변질돼 본뜻이 상당 부분 훼손된 측면이 있습니다. 언론에 자주 뜨면 우선 수사가 제대로 안 돼요. 언론의 과열보도와 그에 따른 흥분은 차분한 수사와 냉정한 결론을 방해했습니다. 언론의 숱한 오보도 걱정이 됐습니다. 뭣보다 수사기간이 짧았던 것이 가장 큰 한계였습니다. 나중에 이형자씨의 거짓말을 알았는데 터닝하기에 너무 늦었어요. 초반 2주에 제대로 방향을 잡았어야 했는데. 기간이 짧으니 실수를 만회할 시간이 없었습니다. 또 준비기간이 짧다보니 인선 작업에 문제가 있었지요. 한 6개월은 줘야 제대로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여력이 있으면 권력기관의 축소·은폐와 관련해 청와대 법무비서관실에 대해 압수수색을 하고 싶었습니다.”

    ―옷사건 특검의 성과를 꼽는다면요.

    “무엇보다도 코트 구입 및 반납날짜와 관련된 연정희씨의 위증 혐의를 밝혀낸 점, 그리고 사직동팀 최초문건과 최종보고서를 공개하는 계기를 만들어 권력기관의 개입 의혹을 파헤치는 계기가 된 점을 꼽을 수 있겠지요. 특검이 이 사건에 대한 권력의 개입 및 축소·은폐 의혹까지 다뤘다면 옷사건의 실체가 훨씬 더 선명하게 드러났을 것으로 봅니다. 여기에 대해선 대검도 철저하게 수사하지 않은 듯합니다. 박주선씨 처리로 적당히 덮었다는 느낌입니다. 김태정씨가 알려진 것 이상으로 개입했을 가능성도 있다고 봅니다.”

    문변호사는 특검 수사를 통해 수사관행의 문제점을 새삼 느꼈다고 했다. 수사관의 고압적 태도와 밀어붙이기식 수사방식, 그리고 참고인을 죄인 다루듯 하는 수사 관행은 사라져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형자씨의 구속을 두고 형평성 시비를 제기하고, 이씨의 로비 시도를 옹호하는가 하면 심지어 이씨가 피해자라고 주장하는 사람들도 있는데요.

    “아주 위험하고 수상한 논리예요. 같은 거짓말이라도 이형자씨의 거짓말은 아주 죄질이 나빠요. 연정희씨와 정일순씨의 거짓말은 도덕적 비난을 두려워 한 방어적인 거짓말입니다. 그에 반해 이씨의 거짓말은 남을 음해하려한, 적극적이고 공격적인 거짓말로 보입니다.”

    문변호사는 마지막으로 ‘이형자 음모론’과 관련해 흥미 있는 얘기를 들려줬다.

    “사직동팀 최초문건 중 ‘조사과 첩보’(99.1.15 작성)엔 ‘이형자 음모론’을 입증하는 핵심 내용이 담겨 있어요. 여기서 이씨는 연정희씨를 직접 겨냥하고 있습니다. 분명히 이씨가 말한 것으로 묘사돼 있어요. 그런데 내사기록을 보면 1월19일 진술에서는 연씨가 쏙 빠지고 갑자기 옷값 대납 요구의 주체가 정일순씨로 바뀌었어요. 처음에 연씨를 직접 겨냥했다가 겁이 나니 정씨에게 모든 걸 떠넘겼을 가능성이 있어요. 자기가 한 말이 있으니 취소하진 못하고. 어떻게 4일 만에 그렇게 말이 바뀔 수 있습니까. 최초문건이 사직동팀에서 작성한 것이 맞다면, 이건 음모론을 입증하는 명백한 증거입니다. 그게 아니라면 김태정씨가 이씨를 불러 입을 막았다는 얘기인데…. 이건 옷사건의 흐름이나 이씨의 그간 행적에 비춰 가능성이 낮다고 봐야겠지요.”

    문변호사가 말하는 ‘조사과 첩보’의 관련 내용은 다음과 같다.

    ‘평소 알고 있는 논현동 소재 라스포 의상실 정사장(성명 미상, 여)으로부터 전화가 왔는데 검찰총장 부인과 통일원장관 부인 등 2명이 와서 수천만원 하는 외국산 밍크 롱코트 1벌, 소형 밍크 망토, 소형 코트 등 3가지 옷을 외상으로 가져가려고 하는데 그 옷값을 이형자가 부담할 것이라고 하였으니 그 대금을 달라고 연락이 와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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