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호

코스닥은 거대한 의혹 덩어리

  • 이나리 byeme@donga.com

    입력2005-05-10 15:1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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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벤처 드라이브 정책이 불러온 '新관치'
    • 형식은 엔절투자, 내용은 주식 상납
    • 권력층은 '먹튀'하고 개미들만 당했다
    • 의혹의 초점된 실세 정치인들
    • 정-관-벤처업계의 비리 메커니즘
    • 정치권 실세 K씨와 Q사를 둘러싼 소문의 진상
    • KTB네트워크 권성문 사장의 항변
    • 재벌 유착보다 더 부도덕한 벤처 유착
    • ”코스닥은 거대한 금융 피라미드”
    “과거 정치인들이 사과상자에 든 돈 1억~2억 원을 받아 챙기는 식이었다면 요즘은 (자금)시장 구조 자체를 활용, 상상할 수 없을 만큼의 거액을 흔적도 없이 집어삼키고 있다.”

    2000년이 다 가는 시점. 한때 ‘황금의 땅’으로 불리던 테헤란밸리에서 만난 한 벤처캐피탈 대표가 허탈한 표정으로 내뱉은 말이다. 그 자신 ‘작전’ 냄새가 물씬 풍기는 건에 합류를 종용받은 것이 수 차례. 그래서일까, 말을 아끼는 가운데에도 표정엔 냉소가 가득했다.

    지난 한해 천당과 지옥을 오간 여의도 증권가 역시 세밑 루머치고는 심상치 않은 가담항설(街談巷說)이 끊이지 않고 있다. “정현준, 진승현 게이트는 시작에 불과하다” “점점 더 나빠질 일만 남았다”는 등의 절망적 진단마저 나돈다. 정계·금융계 소식에 정통한 사람들 입에서조차 ‘정권만 바뀌면 불거질 일이 한둘이 아닐 것’이라는 얘기가 서슴없이 흘러나오고 있다.

    이런 ‘의심’과 ‘루머’는, 도저히 용납될 수 없을 듯한 부정이 아무렇지도 않게 자행되고 또 역시 아무렇지 않게 넘어간 몇몇 사례들로 인해 더욱 힘을 얻고 있다. “최근 몇 년간 만능키처럼 사용돼 온 ‘시장의 논리’란 실상 ‘정권의 논리’를 뜻하는 것에 다름 아니었다”는 비난마저 횡행하는 요즘이다.

    새 천년 첫해를 마감하는 시점에 공교롭게도 민심은 정치권과 벤처 주변의 ‘부적절한 관계’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코스닥 폭락, 만연한 주가 조작, 잇따른 벤처 관련 금융사고, 벤처기업의 연이은 도산이 2000년이 남긴 상흔이라면, 이와는 전혀 무관할 것 같은 정치권이 왜 민심의 도마 위에 오른 것일까. 민심은 그 해답을 정치권과 벤처 금융, 경제관료를 잇는 검은 커넥션의 존재와, 그 커넥션이 신(新) 정경유착으로 고착되고 있다는 징후에서 찾고 있다.



    김대중 정부는 IMF 경제 위기가 본격화된 1998년 초, 50년 만의 평화적인 정권교체라는 기쁨을 누릴 새도 없이 위기 수습에 나서야 했다. 이를 위해 김대통령은 정권과 재벌의 유착을 완전히 청산하고, 재벌로 인해 피폐한 한국 경제를 되살리기 위해 실리콘밸리식 벤처기업을 대량 육성, 경제 기반을 튼튼히 하겠다는 획기적인 구상을 내놓았다.

    한국 벤처, 어떻게 길러졌나

    대통령은 100만 명에 육박한 실업자를 구제하기 위해서라도 벤처기업을 통한 고용 창출에 주력하겠다는 비전도 제시했다. 정부 부처가 김대통령의 시책을 받들어 너도나도 벤처육성책을 발표하기 시작했고, 이에 호응하듯 벤처 창업 붐이 거세게 일었다. 그때만 하더라도 김대중 정부가 벤처에 거는 기대는 절박한 것이었고, 한편으로는 경제를 살리기 위한 순수함이 깃들여 있었다.

    IMF 경제 위기로 빈 사무실이 널려 있던 테헤란밸리에 벤처기업이 몰려들었다. 마치 1849년 미국 캘리포니아의 금맥을 찾아 전세계에서 몰려든 ‘포티나이너스’의 후예들이 오늘날의 실리콘밸리를 만들어냈듯 불과 몇 km에 불과한 테헤란밸리에 사람과 기술, 자금이 집중됐다. 정부는 이런 분위기에 고무돼 2000년까지 1만개, 2002년까지 2만개, 2005년까지 4만개의 벤처기업을 세우겠다는 포부를 밝혔다. 생존율이 5%도 안되는 것이 벤처기업인데 정부가 그런 무모한 정책을 펴도 되느냐는 비판도 거셌지만 한번 달아오른 벤처 열기는 좀체 사그라들지 않았다. ‘한번 하면 화끈하게 한다’는 한국인만의 독특한 정서까지 가세하면서 벤처 산업 특유의 위험성 따위는 잊혀졌다.

    그러나 테헤란밸리의 벤처 열풍은 그 조성 과정부터가 실리콘밸리와는 전혀 달랐다. 자생적이라기보다는 정부의 강력한 벤처 드라이브에 의해 인위적으로 조성된 측면이 강한 것이다.

    70년대 재벌과 정·관계 유착을 심화시킨 도화선은 정부의 중화학공업 육성책이었다. 몇몇 기업에 대형사업 인·허가권을 쥐어주고 물심양면의 지원을 아끼지 않는 과정에 각종 부작용이 발생했다.

    벤처 육성책 또한 비슷한 유의 ‘관치(官治)’를 불러온 것으로 보인다. 벤처 자금 지원의 증가와 더불어 각종 규제·관리 장치들이 마련됐다. 일정한 ‘심사’를 거쳐 벤처기업을 ‘지정’하고, 코스닥 등록을 ‘좌지우지’하며 주가를 ‘관리’했다.

    여기에는 벤처 정책을 추진하는 정부 부처간 경쟁도 한몫을 했다. 정보통신부 산업자원부 중소기업청 과학기술부처럼 기본 업무가 벤처와 관련이 있는 부처는 물론이고 문화관광부 환경부 농림부까지 우후죽순 격으로 벤처 정책을 쏟아냈다. 부처 안에서 벤처와 관련된 실무를 하는 조직만도 20개를 넘어섰다. 정부는 벤처기업 확인 제도를 통해 자연스레 벤처기업에 대한 통제권을 손에 넣었지만 이런 제도에 반발하는 목소리는 찾아보기 힘들었다.

    정부는 지난 3년 동안 5500여개의 기업에 대해 ‘너, 벤처 맞아’ 하는 식의 ‘확인서’ 발급을 통해 벤처 위에 확실하게 군림할 수 있었다. 정부 인증을 받은 벤처기업들은 회사 출입구 눈에 가장 잘 띄는 곳에 확인서를 걸어두고 손님에게 자랑하는 진풍경이 연출됐다.

    한편으론 관련 업무를 담당했던 관료들의 벤처 행이 이어졌다. 재정경제부, 산업자원부, 정보통신부, 금융감독위원회 등 1999년 이후 벤처기업을 택한 공무원들의 수는 사무관 이상 급만 대충 헤아려 보아도 30명을 넘어선다. 업계 일각에선 이들이 영입 기업의 로비스트나 ‘얼굴마담’으로 활용되고 있다는 의혹이 제기되고 있다.

    코스닥 활황과 더불어 벤처업계엔 엄청난 돈이 몰려들었다. 명동 사채시장에서 제도권 벤처로 흘러든 자금만도 15조~20조원, 이 가운데 감시가 거의 불가능한 사설펀드에만도 2조원 안팎의 자금이 몰린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

    국민들도 벤처 신드롬에 흠뻑 도취했다. 올해 초 한 여론조사에서는 배우자 후보 1위가 벤처기업가로 나타났으며, 돈 2000만원을 주면 무엇을 하겠느냐는 질문에도 역시 가장 많은 대답은 벤처 창업이었다. 돈, 사람, 정보의 이상 집중 현상. 어느새 한국은 ‘벤처공화국’이 돼 있었다. 영남 출신의 40대 여성 벤처기업가 한 명은 “지역 감정, 지역 감정 해도 벤처기업을 지원해주는 김대중 대통령이 최고다”고 말할 정도였다.

    60~80년대 정권처럼 재벌기업을 통해 자금을 동원할 수도 없고, 김영삼 정권처럼 한보 같은 신흥재벌에 기댈 수도 없던 정치권 인사들 또한 벤처 주변에 모여들었다. 벤처 지원이라는 이름 아래 정·관계 인사, 벤처기업인, 유력 투자자를 아우르는 수많은 공식·비공식 모임들이 잇따라 형성됐다. 이들의 만남은 벤처 발전에 필수적이라는 ‘인적 네트워크’의 이름으로 점점 그 세(勢)와 긴밀함을 더해갔다.

    그중에서도 386정치인들과 역시 같은 세대인 유력 벤처 CEO들의 만남이 두드러졌다. 첫 번째 끈은 학맥. 같은 고등학교 혹은 대학 출신끼리 다양한 모임을 형성했다. 업계가 커지면서 모임 규모도 함께 성장했다.

    형식은 엔젤투자, 내용은 주식상납

    한 벤처기업인은 “학교 선배인 모 청와대 인사와 술자리를 했다. 만취하자 ‘나도 벤처로 돈 좀 벌었다, 그런 사람이 주변에 한 둘이 아니다’는 얘길 하더라. 자기 돈 갖고 투자하는 거야 나무랄 일이 아니지만 공직사회에 그런 현상이 만연해 있다면 문제 아니냐”는 이야기를 했다. 실제로 올 초 코스닥 활황이 절정에 달했던 때에는 ‘벤처 돈 못 먹으면 바보’라는 말이 정가에 파다했다고 한다.

    최근 중앙일보는 벤처업계 유력 최고경영자 43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실시했다. 이들 역시 벤처 기업이 포함된 금융사고가 터지는 이유로 투자자들의 한탕주의(32%), 허점 많은 각종 제도(19%), 정치권의 부도덕성(17%)을 꼽았다.

    B창투 책임심사역 L씨는 “언제 쓰러질지 모르는 벤처기업들은 힘있는 인사를 바람막이로 둬야 안심이 됐고, 정·관계 인사들은 적당히 뒤를 봐주며 최대한 낮은 배수로 펀딩에 참여해 이권을 챙겼다. 간혹 무상으로 주식을 받는 경우도 있었다. 형식은 엔젤투자였지만 내용은 주식상납 구조였다”고 설명한다. 악어와 악어새의 관계랄까. L씨 자신도 “유망한 벤처기업 리스트를 달라, 돈을 줄테니 마음껏 굴려 보라는 등의 요청을 여러 번 받았다”고 증언했다.

    정치인이나 공무원들로서는 투자한 업체가 잘 돼야만 큰 수익을 기대할 수 있으므로 자신의 위치와 인맥을 활용, 해당 기업을 물심양면으로 지원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코스닥이 붕괴되면서 ‘믿는 도끼에 발등 찍히는’ 격으로 원금도 찾을 수 없게 되는 경우가 종종 발생했다. 그래서 등장한 것이 ‘투자원금 보존’이라는 기상천외의 비즈니스 모델. 한국디지탈라인에 투자했던 장래찬 전 금감원 비은행검사 1국장이 유조웅 인천 대신금고 사장으로부터 돌려 받은 7억 원이 이에 해당한다.

    정·관·벤처업계를 잇는 각종 루머들이 절정에 달한 것은 4·13 총선 직후인 2000년 4월17일 주가가 대폭락한 무렵부터였다. 권력 주변 인사들이 총선과 대선용 정치자금줄로 벤처를 선택했다는 설이었다. 현 정부 권력 실세들이 1998년 하반기 이후 ▲현대증권 이익치 회장을 통한 바람 넣기 ▲벤처육성을 명분으로 한 코스닥 붐 조성 ▲올 봄 제3시장 개장을 통해 세 차례에 걸쳐 ‘주가 띄우기’를 했다는 음모론이 시중에 공공연하게 유포됐다.

    이런 시나리오가 더욱 설득력을 얻게 된 것은 4·13 총선 직전부터 코스닥이 붕괴 조짐을 보였다는 점이다. 결국 권력층은 이른바 ‘먹튀(먹고 튀기)’를 하고, 소액 투자자들만 엄청난 피해를 보았다는 것이다. 법인고객을 담당하는 금융업계의 한 관계자는 이렇게 말했다.

    “1999년 말에서 2000년 초 증시가 최고 활황일 때부터 뭔가 이상한 낌새를 챘다. 정치권에서 4월 총선에 필요한 선거자금을 조성하기 위한 것 아닌가 하는 의심이 들었다. 그러려면 총선 치르기 4,5개월 전에 ‘작전’을 끝내야 하기 때문이다. 그 때 막차를 탄 개미투자가들만 헛물을 켠 셈이다. 그렇게 권력과 큰손들의 하수인인 금융브로커들이 단물을 빼먹은 벤처기업들은 껍데기만 남게 됐다.”

    인위적으로 조성된 벤처는 결국 ‘가진 자들’의 ‘잿밥’이 되고 말았고, 정경유착을 배척하겠다는 김대중 정부의 신경제는 최악의 위기에 봉착했다. 이것이 2000년말, 다시 실업자 100만 시대를 맞는 한국경제의 현실이다.

    주식시장이 한창 무너져내리던 지난 8월경 차기 정권 창출에 필요한 정치자금 공급책으로 ‘신 5인방’이 존재한다는 소문이 퍼지기 시작했다. 그때만 해도 증권가 주변의 사설 정보팀 사이에서 은밀히 실명이 거론되는 정도였으나 이 문제가 국회에서 거론된 뒤로 사정이 180도 달라졌다.

    한나라당 정형근 의원이 서울 동방상호신용금고 불법대출과 관련한 질의를 통해 이른바 ‘KKKP’ 배후설을 주장한 것. 일부 언론에 주인공으로 지목된 인사들의 실명이 거론되면서 파장은 일파만파가 됐다.

    정의원이 지목한 인사들은 평창정보통신에 40억원의 자금을 투입했다는 민주당 K의원, K증권의 뒤를 봐주고 있다는 실세 K씨, 명동 사채업자들의 배후인 또 다른 정치권 실세 등이었다. 이름이 오르내린 인사들은 관련 사실을 일체 부인하면서 한나라당 정형근 이부영 이주영 의원, 그리고 이를 보도한 신문사를 상대로 명예훼손 소송을 제기하는 등 민감한 반응을 보였다.

    본인들은 강력하게 부인했지만 ‘KK KP’니 ‘투갑스’니 하는 여권 핵심 인사들이 신 정경유착의 권력 측 주인공으로 지목됐다면 그 상대역으로는 코스닥의 스타 벤처기업들인 D사 S사 N사 L사 등의 이름이 오르내렸다. 권력과 벤처를 잇는 파이프라인으로 유력 벤처캐피탈과 사설펀드, 명동의 사채업자들. 금융감독원 직원 등 일부 관료들도 부패 고리의 한 축으로 거론됐다.

    마침내 갖은 ‘설(說)’은 청와대 담장마저 넘어섰다. 지난 12월2일 정동영 민주당 최고위원은 김대중대통령과 민주당 최고위원들이 만난 청와대 만찬석상에서 “권노갑 최고위원이 공기업 인사나 당정 인사에 광범위하게 개입하고 있을 뿐 아니라 각종 비리 의혹까지 나돌고 있다. 사실 여부와는 관련없이 김영삼 정권에서 국정을 농단했던 김전대통령의 차남 현철씨처럼 투영되고 있는 것이 문제다. 권 최고위원을 포함한 동교동계가 퇴진해야 한다”는 요지의 발언을 했다.

    민주당 최고위원 중 가장 ‘어린’ 정동영 의원이 대통령 앞에서, 그것도 당사자가 있는 자리에서 실명을 거론하며 직격탄을 날린 사실은 당 안팎에 커다란 반향을 몰고 왔다. 여기서 정동영 의원이 거론한 ‘각종 비리 의혹’ 가운데는 금융권과 벤처업계의 유착 혐의도 포함돼 있다.

    여권 실세로 거명되는 인사들이 금융권이나 벤처업계와 유착됐거나 비리에 연루돼 있는지 밝혀내기는 쉽지 않다. 설사 관련됐다 하더라도 당사자들이 완강하게 부인하고 있는 데다 관련 물증이 공개될 리 만무한 탓이다. 실제로 소문이 과장됐거나 정치적인 목적을 가진 음해일 수도 있다. 정가나 금융권에서는 벌써 정권이 바뀌면 “여권 실세들과 몇몇 잘 나가는 벤처업계 대표들이 청문회 대상이 될 것이다” “해외로 도피해야 할 정·재계 인사들도 여럿 된다”등의 얘기가 돌고 있다.

    의혹의 초점이 된 두 실세

    시중에서 정권·벤처 유착의 의혹을 받고 있는 인물 가운데는 김대통령의 장남인 민주당 김홍일 의원과 동교동계 ‘장형’ 권노갑 최고위원도 있다.

    이중 김홍일 의원은 인터넷 벤처의 효시로 일컬어지는 골드뱅크와 관련, 처음 이름이 오르내리기 시작했다. 골드뱅크 사장 김진호씨와 동향에 같은 대학 출신이라는 점이 의심을 사게 했다. 골드뱅크가 코스닥 거품 논쟁을 불러일으키며 성장가도를 달리자 이러한 의혹은 더욱 깊어졌다.

    정현준게이트가 터지자 김홍일 의원은 야당 의원들로부터 “한국디지탈라인 사건과 관련있는 것 아니냐”는 공격을 받았다. 그러나 김홍일 의원측에서는 “김의원은 김진호라는 사람과는 일면식도 없으며 사설펀드와는 무관하다”고 잘라 말했다.

    증권가 정보모임에선 정현준씨가 검찰 출두 전, 전 서울시장 C씨의 소개로 한나라당 정형근 의원을 만나 사건 전말을 털어놓고 보호를 부탁했다는 이야기가 떠돌았다.

    그러나 정현준 씨와 20일 남짓 도피 생활을 함께 했던 정씨의 어머니(전직 교사)는 이 소문을 부인했다.

    “아들은 우리 부부와 함께 이곳, 저곳을 전전했다. 그 와중에 4시간 반 남짓 작은 여관에 머문 적이 있었는데 이때 행적이 분명치 않아 그런 추측이 난무하는 것 같다. 그러나 내가 알기로 그런 일은 없다. 우리 부부는 아들이 이렇게 엄청난 일에 관여하고 있는 줄은 꿈에도 몰랐다. 상황이 안 좋아진 건 9월부터였다고 하더라. 이경자씨 쪽에서 하루에 어음을 60억~70억 원씩 돌렸다는 것이다. 현준이는 지금도 사채 쪽을 파야 한다고 말한다. 돈이 없어 변호사 선임도 못하고 있다.

    면회 가서 정치권 얘기 같은 걸 할 분위기는 전혀 아니다. 다만 우리 가족들은 언젠가 진실이 밝혀질 때가 오리라 생각하며 이 시련을 견디고 있다. 지금은 내 아들이 모든 죄를 다 덮어쓴다 해도 뭐라 말할 계제가 아니다. 국감 출석해서도 크게 당할 줄 알았더니 여당이나 야당이나 별 것 없더라. 뭐 찔리는 구석이라도 있는지….”

    앞에서도 언급됐지만 권노갑 최고위원은 사실여부와 관련없이 벤처업계에서 신 정경유착의 한 사례로 거론된다. 권 최고위원이 지난 총선을 앞두고 여권 실세라는 영향력을 발휘해 ‘잘 나가는’ 펀드매니저들과 금융브로커들을 통해 거액의 선거자금을 마련했다는 것. 이런 의혹에 대해 권위원 측에 해명을 요구했지만 어떤 반응도 보이지 않았다.

    정치권 인사의 코스닥 개입 의혹

    시세 조작과 관련해 시중에 가장 많이 떠도는 이야기가 정계 실세 K씨, 업계의 Q사와 대표적 코스닥 기업 F사 간의 커넥션이다.

    지난해 2월, F사에 Q사 사장이 직접 찾아왔다. 액면가의 12배수로 투자하겠다는 것이었다. 외자 유치로 발전가능성은 인정받고 있었지만 아직 이름 없는 벤처에 불과하던 F사로서는 외국 회사와 똑같은 배수로 투자하겠다는 Q사가 반가울 수밖에 없었다. 이렇게 해서 Q사는 F사에 거액을 투자했고, 코스닥 진출 후 F사 주가가 수직 상승하면서 투자액의 수십~100배에 달하는 금액을 회수할 수 있었다.

    D증권사 법인영업부 C부장은 “Q사가 F사에 투자하던 때는 F사가 속한 분야의 업종이 주목을 받기 전이었다. 당연히 Q사의 결정에 의문을 제기하는 사람이 많았다. 그러나 결과는 어떤가. 엄청난 ‘대박’이었다. 이와 관련해 일각에선 ▲정치권에서 F사 등을 중심으로 코스닥에 불을 붙이겠다는 계획을 세워놓고 ▲이를 Q사에 알려 투자토록 한 뒤 ▲코스닥 등록 후 Q사 주변 세력의 F사 주식 집중 매수로 가치를 높여 ▲고점 매도해 이익을 실현했다는 식의 시나리오가 사실인 양 회자됐다”고 말했다.

    그러나 Q사 사장과 친분이 있는 한 펀드매니저는 “그 사람이 호남 출신이라 쓸데없는 오해를 받는 것 같다. 평소 룰을 매우 잘 지키는 사람으로 정평이 나 있고 실력도 우수하다. 예를 들어 F사 거래로 큰돈을 벌었다고 하지만 또 다른 거래들로는 엄청난 손해도 보지 않았느냐”고 반박했다.

    Q사 사장도 “모두 근거없는 루머”라며 “그런 악의적인 소문 때문에 기업활동에 큰 지장을 받고 있다”고 강력하게 부인했다.

    정현준, 진승현씨에 이어 주가조작 의혹을 받고 있는 젊은 M&A 전문가가 있다. 리타워텍 최유신(31) 회장이다. 금융감독원은 현재 리타워텍이 거액의 외자유치 과정에 주식시세를 조종한 혐의를 잡고 정밀 조사를 벌이고 있다. 아울러 1조원이 넘는 외자를 들여오고 3시간 만에 이를 재투자 형식으로 외국에 빼돌린 혐의에 대해서도 조사중이다.

    그런데 한 경제신문에 ‘리타워텍의 폭발적 주가 상승으로 가장 큰 이득을 본 곳은 한국기술투자(KTIC)’라는 기사가 실리면서 세간의 관심은 KTIC 서갑수(54) 사장에게로 확대됐다.

    리타워텍 파문과 관련해 서사장의 이름이 오르내리게 된 것은 KTIC가 리타워텍 전신인 파워텍의 2대주주였기 때문. KTIC는 1990년 보일러 환풍기 업체인 파워텍에 5억원을 투자, 23.94%의 지분을 갖는 2대주주가 됐다. 그러던 것이 최유신 회장이 파워텍을 인수, 인터넷 지주회사 리타워텍으로 면모를 일신한 뒤 주가가 크게 튀어오르면서 보유 지분을 처분, 약 200억 원의 처분이익을 거뒀다. 아울러 KTIC는 리타워텍이 파워텍을 인수하기 전, 최회장이 설립한 홍콩 소재 리타워인베스트먼트 관계사였던 버뮤다 소재 아시아넷에도 출자해 최회장과 인연이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로 인해 증권업계에는 ‘최회장의 파워텍 인수에 서사장이 핵심 연결 고리를 했을 것’이라는 관측이 돌았다.

    그러나 서사장은 이런 보도에 대해 “모두 사실이 아니다”고 강력히 부인했다.

    “우리가 처음 주식을 판 것은 지난 5월25일이다. 리타워텍 주가가 하락세에 접어든 것은 같은 달 24일부터다. 만약 우리가 주가 조작과 관련이 있다면 왜 고점을 지난 다음에야 (주식을) 처분하기 시작했겠는가. 파워텍 인수 역시 최회장 쪽에서 먼저 관심을 갖고 찾아온 것이다. 그 전에는 최회장을 만난 적도, 파워텍을 인수하라고 권유한 적도 없다.”

    한마디로 말해 “리타워텍의 외자 유치 과정 및 주가조작 의혹과 KTIC는 아무 관련이 없다. 우리야말로 선의의 피해자”라는 주장이었다.

    이렇듯 리타워텍-KTIC의 관계에 이목이 집중되면서 KTIC에 민주당 김홍일 의원의 인척이 근무하고 있다는 소문이 돌기 시작했다. 확인 결과, 문제의 인물은 KTIC의 자회사인 KTIC M&A 윤원빈(62) 회장이었다.

    윤회장은 김홍일 의원의 장인 윤경빈 광복회장의 동생이다. 김의원에게 처삼촌이 되는 셈이다. 전직은 (주)대우엔지니어링 부사장. 지난 9월1일 발령을 받아 추석 이후인 9월 중순부터 정식 근무를 시작했다.

    세간에는 서회장이 리타워텍 관련설로 곤란을 겪게 되자 이를 무마하기 위해 대통령 인척을 영입했다는 설이 돌았다. 금융이나 투자 기법과는 별다른 관련이 없는 윤회장이 M&A사 회장이 된 것부터 이상하지 않느냐는 반응이었다.

    이에 대해 서사장은 “출근 시기에서도 알 수 있듯 윤회장 영입과 리타워텍 건은 아무런 관련이 없다”고 말했다.

    “윤회장은 우리 회사 방한정 부사장의 전 직장 상사다. 방부사장이 ‘고생을 많이 하신 분’이라며 소개하기에 돕겠다는 의미에서, 또 기업 M&A에 도움을 받을 수 있지 않을까 싶어 영입한 것뿐이다.”

    그러나 이러한 해명에도 불구하고 윤회장의 존재는 앞으로 김홍일 의원이나 서갑수 사장 모두에게 상당한 부담으로 작용할 듯하다. 정치권과 벤처업계의 검은 커넥션에 국민의 관심이 집중돼 있는 요즘, 국내 최대 규모 벤처캐피탈이자 업계에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하는 KTIC의 자회사에 김의원 인척이 회장으로 재직 중인 것은 아무래도 모양새가 좋지 않기 때문이다.

    그래서일까, 벌써 시중의 몇몇 벤처캐피탈과 벤처 기업들은 은밀히 윤회장의 프로필 및 회사내 역할 파악에 나서는 등 상당히 민감한 반응을 보이고 있다.

    김의원은 이외에도 정현준게이트와 관련해 괌으로 달아난 오기준 신양팩토링 사장과 가깝다는 구설수에 올라 있다. 오씨가 김의원의 친모 차용애씨의 동생과 상당한 친분이 있는 것으로 알려졌기 때문이다.

    “정계 인사 누구도 알지 못한다”

    김의원도 세간의 의혹을 의식한 듯 “오기준 사장은 20년 전에 인척의 소개로 인사한 적이 있다. 몇 년 전에도 만났으나 무슨 부탁을 하기에 거절했다. 그 후로는 어울리지 않았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검찰 주변에서는 오씨가 이런 이력과 이경자 동방금고 부회장과의 관계 때문에 괌으로 도피한 것으로 분석하고 있다. 정치권 로비와 관련해 뭔가 숨기는 게 있기 때문 아니냐는 추측이다. 김의원은 자살한 장래찬 전 금감원 국장과 대신고등학교 동창이라는 점 때문에도 이런저런 루머에 시달린 바 있다.

    벤처와 정치권의 관계를 이야기할 때 자주 이름이 오르내리는 또 한 사람이 있다. KTB네트워크 권성문 사장(39). 잘 알려져 있듯 권사장은 1997년 외환 위기 이후 재계에 혜성처럼 등장한 인물 중 하나다. M&A 전문가에서 상장기업인 ‘미래와 사람(구 군자산업)’의 오너로, 다시 국내 최대의 벤처투자회사인 KTB 사장으로 변신을 거듭했다. KTB 인수 전인 1998년 10월에는 제2건국 범국민추진위원회 위원으로 위촉되기도 했다. 성장 곡선이 워낙 가파른 데다, 벤처업계의 팽창과 그 궤를 같이하고 있어 남다른 주목을 받아 왔다.

    권사장과 관련해 떠돌고 있는 루머는 대략 세 가지. 공기업인 KTB를 인수할 당시 정치권과 모종의 거래가 있지 않았는가, 1999년 말부터 2000년 초까지 업계를 떠들썩하게 했던 ‘냉각캔 사건’ 때 권력층의 비호를 받지는 않았는가, 자신이 대주주로 있는 인터넷 경매업체 ‘옥션’의 코스닥 진입시 요로의 도움을 받지는 않았는가 하는 점들이다.

    ‘냉각캔 사건’이란 금감원이 권사장을 ‘성공 가능성이 희박한 냉각캔을 세계 최초로 상용화했다고 발표해 주가를 끌어올린 뒤 유상증자를 실시, 허위 표시에 의해 시세를 조종했다’는 혐의로 검찰에 고발한 사건을 말한다.

    이런 의혹들과 관련해 업계에선 권사장이 여권 유력 인사인 K씨, S씨, 또다른 S씨 등과 긴밀한 관계라는 소문이 돌았다. 그중에는 “냉각캔 사건에 대해 서울지검 특수1부가 기소유예 판결을 내릴 당시, 권사장이 검찰 실세이자 친여권 인사인 S씨와 함께 있는 장면을 목격했다. 당시 S씨는 권사장을 ‘장래가 촉망되는 벤처기업가이며 우리 일을 많이 도와주고 있다’고 소개했다”는 한 법조계 인사의 구체적인 ‘증언’도 있었다.

    최근에는 증권가 정보지에 권사장이 선거 기간에 여당의 K의원과 또 다른 K의원, 한나라당의 L의원과 K의원에게 금전적 도움을 줬다는 내용이 실리기도 했다. 이러한 풍문들에 대해 권사장은 “어떤 것도 사실이 아니다”며 강력히 부인했다.

    “정치권의 누구도 알지 못한다. S씨한테 확인해보라. 더군다나 정치자금을 마련해 줬다든가 하는 소문은 나를 음해하려는 세력들의 악질적인 공작이다. 지난해 나와 미래와 사람은 9개월 간의 세무조사와 1년 동안의 금감원 조사를 받았다. 그야말로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샅샅이 뒤지더라. 그러고도 별다른 처벌을 받지 않았다는 사실은 내가 매사에 결백함을 증명하는 역설적 증거다.”

    아울러 권사장은 “그런 악성 루머들 때문에 제대로 기업활동을 할 수가 없다. KTB만 해도 미래와 사람이 인수하기까지 모두 3차례나 유찰된, 당시로선 자본잠식 상태에 허덕이던 부실기업이었다. 그걸 직원들과 일심동체가 돼 오늘의 KTB네트워크로 성장시킨 사람이 바로 나다. 옥션에 대해선 할 말이 더 많다. 수많은 닷컴기업 중 옥션만큼 수익모델이 확실한 회사가 몇이나 되는가. 업계에선 도리어 옥션의 코스닥 진입이 일시적으로나마 보류됐던 것이 문제라는 시선이 지배적이다.”

    이러한 권사장의 주장들에 대해 관련업계는 반신반의하는 분위기다. 권사장의 경영 능력과 시장을 보는 눈이 뛰어나다는 점에 대해서는 대체로 동의하는 편. KTB 인수와 옥션 건에 대해서도 ‘괜한 오해를 받고 있다’는 동정적 시선이 적지 않다.

    그러나 ‘신뢰성’과 ‘도덕성’의 측면에 있어서는 여전히 의심의 눈초리를 거두지 않고 있다. 지난 11월15일에는 ‘아시안월스트리트저널’에 “옥션의 성장 잠재력은 크지만 권사장이 대주주라는 사실에 대해 우려하는 애널리스트들의 목소리가 높다”는 기사가 게재되기도 했다.

    권사장을 잘 알고 있는 한 벤처업계 인사는 “권사장이 능력이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KTB 인수과정이나 냉각캔 사건 등을 볼 때 뒷배경이 있는 것 같다. 그는 평소에 ‘주식은 권력이고 권력이 바로 돈이다’는 지론을 펼쳐왔다”고 말했다.

    “코스닥은 금융 피라미드”

    요즘 시중에서는 ‘몸집 비대한 재벌기업에 파이프라인을 댄 과거 정권보다도 성공 확률이 극히 낮은 벤처기업을 자금줄로 동원한 현 정권이 더 부도덕하다’는 인식이 확산되고 있다. IMF 위기의 극복 대안으로 김대중 대통령이 주창한 벤처 육성론이 그 참모들과 벤처 주변 인사들간의 불온한 커넥션으로 비화되면서 이제는 권력 기반 자체를 뒤흔드는 ‘망국병’으로 지탄받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소문의 실체를 밝히기는 쉽지 않은 일이다. 다만 국회, 벤처기업, 증권가와 창투사, 금융부띠끄 등에 일일이 탐문한 내용을 토대로 방대한 정황 증거들을 재구성한 결과, 정-관-벤처-금융권을 잇는 메커니즘의 실체에 보다 가까이 접근할 수 있었다. 결론적으로 말해 정·관계, 벤처 주변 인물들의 ‘모럴 해저드’가 위험수위를 넘어섰으며, 이로 인해 정권 후반기 권력 누수 현상이 심화될 우려가 있다는 판단이다.

    무엇보다 심각한 것은 이와 같은 모럴 해저드가 경제난에 허덕이는 국민들에게 심한 심리적 박탈감을 안겨주고 있다는 점이다. 한국 경제의 희망인 벤처마저 국민들에게 힐난과 증오의 대상으로 전락하지 않을까 두렵기까지 하다.

    한신대 경제학부 윤소영 교수는 현 사태에 대해 “이미 예상했던 일”이라고 말했다.

    “기술적 기반이 탄탄하다는 나스닥조차 미국 경제학자들은 공공연히 ‘금융 피라미드’라는 평가를 한다. 좋게 말해 모험이고 벤처지, 사실은 증명될 수 없는 미래 가치에 기대 자금을 투여하고 ‘대박’이 터지기만 고대하는 구조 아닌가. 정권이 아예 마음먹고 벤처 육성, 코스닥 붐 조성에 나선 것이 아닌가 의심스러울 정도다.

    4대 구조조정이 안고 있는 구조적 모순 때문에라도 우리 주식시장에는 미래가 없다. 기업이 증시 중심의 투명한 경영으로 돌아서기는 난망한 일이다. 지금의 상황이 총체적 경제 난국을 앞당기는 데 결정적인 빌미가 되지 않을까 우려된다.”

    경실련 경제정의연구소 나성린 소장도 “비즈니스의 기본은 정치와 멀리 있는 것”이라며 “벤처기업조차 정경유착의 고리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면 우리 경제의 미래에는 더없이 불행한 일”이라고 개탄했다.

    다시 경제 위기의 기로에 선 한국. 뒤늦게나마 시장을 바로잡고 민심을 끌어모으기 위해서는 대통령 이하 정부 여당의 뼈를 깎는 노력이 필요하다. 당 안팎에서 ‘초심으로 돌아가자’는 이야기가 간단없이 터져나오고 있는 것도 같은 이유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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