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호

“DJ 햇볕정책, 업적에 집착하지 말라”

홍순영 전 통일부장관 심중 토로

  • 송문홍 < 동아일보 논설위원 > songmh@donga.com

    입력2004-09-01 13:1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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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서해교전, 비례의 원칙에 따라 맞대응했어야
    • 모든 통일 가능성에 대비해야, 중국을 설득하는 것이 문제
    • 서해교전에서 정부는 햇볕정책 원칙을 깼다
    • 북한 난민이 북한 붕괴의 전주곡 아니다
    • 중국은 북한을 공산주의 동지로 생각하지 않는다
    • 훌륭한 외교관은 훌륭한 CEO만큼 중요하다
    ‘6·29 서해교전’ 사태는 한반도의 기류에 강한 충격파를 던졌다. 24명의 우리 해군 장병이 사망하거나 부상당한 이번 사태로 남북한 관계는 앞으로 상당 기간 진전이 어렵게 됐고, 조지 W 부시 행정부 출범 이후 1년여 만에 재개를 모색하던 북미대화 또한 정지돼 버렸다.

    국내에서는 한동안 이번 사태를 일으킨 북한의 의도를 두고 의견이 분분했다. 북한은 서해교전에도 불구하고 남북관계를 지속하겠다는 시그널을 여러 방향에서 보내왔고, 서해교전의 여파를 최소화하려는 몸짓도 보여주었다. 무엇보다 북한이 서해교전을 일으킴으로써 얻을 수 있는 ‘이익’이 별로 없다는 점이 북한 전문가들을 당혹스럽게 했다. 전문가들은 저마다 북한의 ‘의도’에 대한 나름대로의 해석을 내놓았지만 거기에 힘이 실리지는 못했다.

    ‘이런 최근의 상황에 대해 한 말씀 해달라’는 요청에 홍순영(洪淳瑛) 전 통일부장관은 오래 망설였다. 장관직에서 사임한 지 몇 달 지나지도 않은 터에, 더욱이 정권 말기에 언론에 나선다는 것이 꽤 부담스러웠을 것이다. 또한 말하는 사람은 솔직하고 허심탄회하게 한다고 하지만, 받아들이는 쪽에서는 얼마든지 무언가 의도가 있는 말로 곡해할 수도 있는 세상이 아닌가.

    하지만 홍 전 장관은 결국 인터뷰 제의를 받아들였다. ‘우리나라는 자서전 문화가 없는 게 문제다’ ‘장관까지 지낸 분들이 퇴임 후 자신의 경험을 털어놓지 않는 것은 일종의 책임회피다’ 등등 기자의 설득도 어느 정도 그의 ‘결심’을 부추겼을 것이다. 그러나 ‘신동아’와 같은 장문의 기사를 싣는 매체와 인터뷰를 하느냐 마느냐를 판단하는 것은 결국 당사자의 몫이다. 그런 점에서 홍 전 장관 스스로도 ‘한마디’에 대한 욕구가 그만큼 컸다고 볼 수 있지 않을까?

    “정부 대응에 문제 있었다”



    -이번 서해교전은 여러 기관과 전문가들의 해석이 엇갈렸다는 점이 특기할 만한 점이라고 봅니다. 이번 사태가 의도적인 도발인지 아니면 우발적인 일인지, 이번 사태를 일으킨 주체가 북한 해군에 국한되는지 아니면 김정일(金正日) 국방위원장의 묵시적 승인을 얻은 것인지 등에 대해 다양한 분석이 나왔지만, 저마다 자신이 기존에 갖고 있던 대북 인식에 기반한 것이라는 인상을 주었습니다. 그런 점에서 또 한 차례 남남(南南)갈등이 일어날 위험성도 매우 높습니다.

    “남북 평화공존정책이라는 것이 매우 다층적이고 다변적인 정책입니다. 어디까지가 평화공존이냐 하는 정의가 뚜렷하게 있는 것도 아닙니다. 따라서 평화공존 문제를 놓고 갈등과 견해차가 있는 것은 너무나 당연합니다. 미국을 보세요. 민주당과 공화당 사이에 대북정책을 놓고 견해차가 있는 것은 평화공존에 대한 인식이 다르기 때문입니다. 우리나라도 서해교전 사태를 놓고 다양한 주장이 나왔지만, 사실 평화공존 정책이 어느 한순간에라도 없을 수는 없는 겁니다.”

    -언론의 논조도 뚜렷하게 나뉘었습니다. 흔히 말하듯 보수적 입장과 진보적 입장으로 갈려 독자들로서는 혼란스러웠을 겁니다. 그렇지만 제가 보기엔 가장 보수적인 언론의 논조조차도 ‘햇볕정책 당장 집어치워라’는 차원의 주장을 한 것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우리 해군 장병이 사상한 만큼 정부가 이번엔 좀더 단호한 태도를 보여줘야 하겠다, 이런 정도의 요구였다고 봅니다.

    “그렇죠. (햇볕정책의) 추진 방법과 시차, 속도, 이런 문제를 놓고 문제 삼는 것이겠지요. 그런데 지금은 재래식 무기라도 한번 사용하면 여럿이 다치는 시대입니다. 옛날처럼 장수만 죽으면 나머지는 항복하는 시대가 아니잖아요? 이렇게 보면 평화공존은 지상명령입니다. 우발적이라고 해도 일단 전쟁이 터지면 다 죽으니까. 전쟁이 나면 통일도 소용없는 일이 됩니다. 그러니까 평화공존의 방법과 속도에 대한 견해 차이라고 할 수 있다는 겁니다.”

    -예컨대 서해교전 바로 다음날 임성준 대통령 외교안보수석이 ‘햇볕정책을 유지하겠다’고 밝힌 것은 분명히 실수였다고 봐요. 정부로서는 내심은 어떻더라도 최소한 그 상황에서 겉으로는 북한에 강경한 입장을 견지했어야 했다고 생각합니다.

    “정부의 대응에 문제가 있었습니다. 먼저 이번 일은 국지적 도발이고 분쟁이거든요. 그렇다면 국지화의 원칙에 따라 현장에서 바로 대응했어야 했고, 비례의 원칙에 따라 상대방의 도발 강도와 비슷한 수준으로 대응하고 보복을 했어야 했습니다. 그런데 그렇게 하지 못했다는 게 아쉽습니다.

    사태 이후의 처리과정에도 문제가 있었습니다. 장교를 포함한 우리 장병들이 전사한 것은 굉장히 큰 사건입니다. 그런데 정부는 영결식 등에서 보여줬듯이 이번 일을 엄중한 사태로 취급하지 않았어요. 사실 이것이 더 큰 문제입니다. 정부가 이번 일을 엄중한 사태로 인식하고 있다는 것을 확실하게 보여줌으로써 국민에 대한 신호도 되고, 북한은 물론 국제사회에 우리의 가치관이라든지 군사적 충돌에 대한 단호한 입장을 보여주는 기회가 될 수 있었습니다. 햇볕정책 3원칙의 첫번째가 ‘무력도발 불용’ 아닙니까? 그런데 정부는 이 원칙을 지키지 못했습니다. 군사작전에서 만족할 만한 성과를 거두지 못한 것에 대해서는 문제 삼거나 비난하고 싶지 않습니다.”

    -우리가 이번 서해사태에 대해 비판한 내용은 크게 두 가지입니다. 첫째, 군의 현장 대응이 미흡했던 이유로 군 지휘부가 햇볕정책이라는 전제에 함몰돼 있었기 때문이 아니냐는 겁니다. 다시 말해 정부가 햇볕정책을 펴고 있는 마당에 군이 너무 강하게 대응하면 곤란하다는 인식, 혹은 북한이 설마 쏘겠냐는 안이한 인식이 있었다는 것입니다. 군인은 어디까지나 군인일 뿐 정치적인 판단을 하는 존재가 되어서는 안된다는 것이지요. 둘째는 앞서 말씀하신대로 정부의 느슨한 대응 태도를 비판했습니다. 정부의 이런 태도는 햇볕정책이 일종의 도그마가 돼버렸고, 불변의 원칙처럼 돼버렸기 때문이 아니냐는 겁니다.

    “그렇지요. 남북한간에는 아직 군사적 신뢰구축이 돼 있지 않습니다. 이런 상황에 분규나 교전이 일어날 개연성이 가장 큰 지역이 서해입니다. 만약의 교전 상황에 완벽하게 대비했어야 했는데 그렇지 못했다는 겁니다. 그렇지만 이런 군사적인 문제에 대해 제가 말하고 싶지는 않습니다. 군도 나름대로 어려움이 있었겠지요.”

    -또 한 가지, 우리 정부가 ‘이번 사태가 우발적인 것 같다’는 식으로 일본과 미국에 설명했다는 얘기가 외국 언론에 보도됐습니다. 물론 정부는 이를 부인했지만요. 하지만 이번에 정부의 대응 태도로 볼 때 충분히 가능한 일이라고 보고, 그렇다면 이 역시 큰 문제라는 생각입니다. 사실 이번 사태로 김대중 정부에서 남북관계는 끝난 게 아니냐고 보는 전문가들도 꽤 있지 않습니까. 이번 사태의 여파가 김대중 정부 마지막까지 계속될 것이라는 전망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우발적이든 의도적이든 분쟁이 일어났다는 것 자체가 매우 중요합니다. 분쟁이 왜 일어났느냐를 분석하는 것은 별 의미가 없다는 겁니다. 한 가지 확실한 것은 북한 군부가 ‘우리가 아직 살아 있다’는 것을 보여주려고 한 측면이 있는 것 같은데…. 그런데 다시 말하지만 남북 평화공존 정책은 여러 측면에서 다양하게 추진됩니다. 군사적 신뢰구축, 경제적 교류협력, 인적 왕래, 문화교류 등 다양한 측면이 있는데 그 중 어느 하나가 잘못됐다고 해서 나머지 모두를 끊어버리는 것은 아니거든요. 물론 매우 중대한 국면에 처하게 되면 그것도 고려해야겠지만.

    그러나 전쟁을 하는 나라들도 대화는 합니다. 지금 북한측 한반도에너지개발기구(KEDO) 요원들이 방한해 있고, 한양대 교수들이 북한에 가 있습니다. 지금도 금강산으로 많은 사람들이 관광을 가고 있습니다. 이렇게 보면 평화공존 정책은 지금도 계속되고 있는 겁니다. 물론 장병들이 죽었는데 정부가 굳이 그런 얘기를 해야 하느냐는 건 별개 문제입니다.

    결론적으로 서해사태 때문에 평화공존이 뒷전으로 밀리게 되고, 남북한간에 교류나 회담은 없을 것이라고 단정적으로 말하기는 어렵습니다. 그렇게 돼서도 안되겠지요. 당장 국민정서와는 맞지 않겠지만 평화의 이름으로 북한을 끌어내는 정책은 계속돼야 합니다.”

    “우리도 미국 이해하려 노력해야”

    -이번 서해교전은 한미공조 체제의 내면적인 문제점을 다시 드러내는 계기도 되었습니다. 우리 정부의 희망과는 달리 미국 쪽에서 북미대화 일정을 일방적으로 연기해버리지 않았습니까? 그나마 1년여 동안의 진통 끝에 어렵사리 나온 북미대화 일정이었는데요. 이번 일은 한미 양국 정부의 대북인식이 매우 다르다는 것을 다시 한번 보여준 예가 됐다는 겁니다. 그래서 일각에서는 김대중 정부가 끝날 때까지 북미대화도 진전이 없을 것이라고 보기도 합니다만….

    “국제적으로 보면 이번 사태의 가장 큰 피해자는 북한입니다. 아주 역설적이지만 그렇습니다. 국제사회, 특히 미국이 북한을 위험한 국가로 보는 시각이 더욱 확고해졌다는 게 큰 이유입니다. 북한이 앞으로 상당 기간 똑바로 행동하지 않으면 회복하기 쉽지 않은 피해입니다. 합리적으로 생각해볼 때 이런 결론이 나올 수밖에 없어요.

    미국은 북한과의 대화를 서두르지 않습니다. 대화를 시작해도 북한으로서는 수용하기가 무척 어려운 의제를 제시합니다. 그래서 북미대화가 더 늦어지는 거예요. 미국의 이런 생각이 달라질 것도 없고, 급할 일도 없고…. 이러면 결국 누가 손해입니까? 북한이잖아요?”

    -바로 그런 상황에 대해 우리 정부가 지나치게 안타까워하고 조급해하는 모습을 보이는 것이 미국을 설득하는 데에 별 도움도 되지 않을 뿐 아니라 국민들 눈에도 안 좋게 보이는 게 문제 아닙니까.

    “한미공조를 위해서는 우리도 미국의 생각을 이해해줘야 합니다. 그 사람들이 우리를 이해하고자 하는 것처럼 우리도 미국의 생각을 이해하도록 노력해야 합니다. 그 중간점이랄까, 의견의 일치를 보는 지점에서 대북정책을 추진해야겠지요. 북한도 마찬가지지만 우리도 고립돼 살 수는 없는 것이잖아요. 이건 남남갈등에서도 마찬가지예요. 국내적 컨센서스라는 기초가 없다면 대북정책은 힘을 얻지 못합니다.”

    -햇볕정책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바로 국민적 컨센서스를 모아야 한다는 얘기는 오래 전부터 나온 것입니다. 통일부장관으로 계시던 작년 가을에도 언론사 논설위원들과의 모임에서 이 문제가 나왔던 걸로 기억합니다. 그래서 그때 북한과 제6차 장관급 회담을 시작하기 전에 홍 전 장관께서 야당을 방문해 남북관계 현안을 설명한 일도 있었지요. 그러나 전반적으로 보면 김대중 정부는 대북정책에 대해 국민을 설득하고 홍보하는 일을 제대로 하지 못한 것 같습니다.

    “정부는 국민적 컨센서스가 이루어지는 수준까지만 정책을 추진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국민을 설득하는 능력이 필요한 겁니다. 그 노력을 자꾸 강화해 나가야 해요.”

    -정부가 지금까지 국민을 설득하는 노력을 하긴 했다고 보십니까.

    “노력을 했지만 더 노력해야 합니다. 그중 가장 중요한 것이 인도주의적 대북지원에 대한 국민적 지지를 얻는 일입니다. 이건 이데올로기를 초월하는 일이거든요. 다음으로 평화정책의 종착점이라고 할 통일한국을 내다보는 일이 있습니다. 통일한국을 전망해볼 때 북한 주민을 먹여 살리고 이들의 마음을 잡는 것보다 더 중요한 일은 없습니다. 그러기 위해서라도 일단 최소한의 모양새만 갖추면 대북 식량지원은 항상 계속돼야 한다는 점을 국민에게 널리 알려야 합니다.”

    -김대중 정부의 남은 기간 남북관계에 대한 전망을 하신다면….

    “당장의 분위기로 봐서는 어렵겠지요. 정부가 다시 발 빠르게 움직이기도 어렵지 않겠습니까? 하지만 북한이 먼저 움직일 가능성도 배제할 수는 없어요. 그러나 제가 통일부 장관 경험을 통해 얻은 교훈 중 하나는 북한의 행동을 예측하기가 어렵다는 겁니다. 제 생각과 북한의 생각이 너무 다를 때가 많았습니다. 저는 합리적으로 판단해 북한이 이렇게 나올 것이라고 생각할 때마다 저 사람들은 다르게 나왔으니까. 그런 점 때문에 전망도 단정적으로 얘기하고 싶지 않습니다.”

    -저는 그동안 북한을 죽 지켜보면서 저들이 저러다가 어느 날 갑자기 무너져버리면 어쩌나 하는 생각도 가끔 했습니다. 준비도 제대로 안된 채 우리가 감당하기 벅찬 사태가 오는 것에 대한 두려움이라고 할까요.

    “그건 다음에 얘기하도록 하지요. 아무튼 중요한 것은 우리가 모든 가능성에 대비하고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 경우 가장 중요한 것이 중국을 설득하는 문제입니다. 독일이 통일과정에서 러시아를 설득해 자기 편으로 만든 것과 마찬가지죠.”

    “탈북자 러시, 상례화될 것”

    -통일 당시 독일은 러시아나 주변국에 대해 사용할 수 있는 카드가 지금의 우리보다 많았다고 봅니다. 예컨대 러시아에 대해서는 막강한 경제력을 활용했지요. 그렇지만 우리에겐 중국을 움직일 카드가 상대적으로 많지 않다는 한계가 있습니다.

    “통독 과정엔 고르바초프라는 열린 마음을 가진 지도자가 러시아에 있었고, 서독의 논리와 약속에 대한 러시아의 신뢰가 있었습니다. 그전까지 20년 넘게 해온 서독의 통일외교도 고려해야 합니다. 다시 말해 독일통일은 당시 동독 주민의 이탈, 고르바초프의 존재, 서독의 대(對) 러시아 외교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결과라는 겁니다. 반면에 북한은 여간해서는 그런 식으로 쉽게 넘어갈 정부가 아니라는 의견도 있습니다. 예컨대 난민이 북한 붕괴의 전주곡이 아니라는 것이지요.”

    -그러나 우리 사회 일각에서는 최근 중국의 해외공관을 통한 탈북자 망명사태를 매우 의미 있는 변화의 조짐으로 보면서 우리가 이것을 전략적으로 활용할 방안을 찾아야 한다는 주장도 있습니다.

    “저는 생각이 조금 다릅니다. 먼저 이런 일은 앞으로 상례화될 겁니다. 그리고 그런 상례화가 아주 오래 지속될 겁니다. 한마디로 말해 저것이 북한의 어떤 큰 변화를 예고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지요. 동독의 난민사태와는 전혀 다른 차원의 일입니다. 지금 중국 해외공관을 통해 들어오는 사람들은 대부분 중국에서 1~6년간 체류한 사람들입니다. 그러니까 절반은 조선족화한 사람들입니다. 그런 사람들이 몇십만명씩 움직인다고 해서 평양에 위기가 오리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우리로서는 국내에 들어오는 탈북자 수가 증가하면 이들에 대한 교육 등 어려운 문제가 많아져요. 이들이 자본주의 경쟁사회에서 생활할 수 있도록 교육하고 일자리를 주는 일들이 큰 과제가 됐습니다. 이런 일들은 통일한국이 된 뒤에 북한 주민을 어떻게 교육하느냐 하는 문제를 미리 내다볼 수 있게 하는 창구 역할을 한다고 할 수 있습니다.”

    -한마디로 작은 차원에서 통일 연습이라고 할 수 있겠지요. 그런 점에서 앞서 말씀하신대로 우리가 모든 가능성에 대비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우리가 얼마나 철저하게 그런 준비를 하고 있는지 의문이 들 때가 참 많습니다. 비근한 예로 통일안보 분야 정부 부처들 사이에서도 협조체제가 잘 이뤄지지 않고 이따금 삐걱거리는 모습을 보일 때가 있잖아요.

    “그건 정책의 문제인데 국가안전보장회의(NSC)에서도 토론을 많이 합니다. 결국 대북정책을 포함해 모든 정책에서 중요한 것은 우리의 행정적 역량과 정치적 역량, 민주적 역량입니다. 토론을 통해 도출한 정책이 국민의 지지를 받도록 추진하는 일련의 과정은 우리 사회 전반의 역량과 관련되는 문제이지 대북정책 한 가지에만 국한되는 것은 아니라는 것입니다.

    -직설적으로 말해서 제 얘기는, NSC만 해도 지금까지 줄곧 임동원 대통령 특보가 좌우했지 홍 전 장관께서 말씀하신 것처럼 외교안보 관련 부처의 수장들 사이에 활발한 토론을 거쳐서 추진돼온 것은 아니지 않느냐는 겁니다. 최소한 정부 밖에서는 그런 인식을 갖고 있는 분들이 많습니다.

    “왜요, 많이 토론했습니다. 저도 임동원 특보와 토론도 많이 하고 부딪힐 때도 있었어요. 그런 과정을 거쳐 정부 내에 컨센서스가 형성되는데, 임특보에게 가장 무게가 실려있는 것은 맞습니다. 북한에 대해서 가장 많이 알고, 논리적이고, 전략 연구도 많이 했고, 대통령과 함께 우리의 3단계 통일방안에 대해서도 해박하고…. 그러니까 뭔가 결과와 업적을 도출하는 데에 애착이 컸겠지요.”

    홍 전 장관과의 대화는 서해교전 사태를 시작으로 여기까지 숨가쁘게 넘어왔다. 인터뷰 전에 홍 전 장관이 대화 주제를 미리 보내달라고 요청해 기자는 간단한 요지를 팩스로 보내놨던 터였다. 홍 전 장관의 앞자리 테이블에는 기자가 보낸 바로 그 팩스용지가 놓여 있었다. 빈칸에는 깨알 같은 글씨로 답변 내용이 메모되어 있었다. 그렇지만 홍 전 장관은 정작 대화 도중에는 그 메모를 거의 쳐다보지 않았다.

    외교관으로 평생을 보냈으니 교묘한 외교 수사로 자신의 말을 다듬는 일은 그에게 아주 쉬운 일일 것이다. 하지만 이날 대화는 여러 면에서 그가 오랫동안 가슴속에 담아뒀던 말이라는 것을 느끼게 했다. 언뜻 들으면 누구나 할 수 있는 평범한 말인 듯해도 그의 경력과 입장을 감안해 곱씹어보면 무언가 새롭게 느껴지는 게 있는, 그런 말들이 많았다.

    -홍 전 장관께서는 외교관 출신으로서 통일부 장관을 역임한 드문 경우의 한 분입니다. 이 정부 초기에는 외교부 장관으로, 작년 가을부터 올초까지는 통일부 장관으로 두 번이나 장관직을 역임한 기록도 세웠지요. 바로 그 점과 관련해 제가 오래 전부터 묻고 싶었던 것이 있습니다. 그건 북한과의 협상 기술에 관한 것인데, 통일부쪽 사람들과 남북문제 전문가 중 상당수는 그동안 남북대화의 특수성을 강조하는 입장을 견지해왔습니다. 국제사회에서 일반적으로 통용되는 협상 기술이 북한에게는 통용되지 않는다는 것이지요. 그런데 홍 전 장관께서는 외교관 생활을 통해 일반론적인 차원에서 국제협상에 익숙한 분입니다. 남북대화의 특수성에 대해 생소하다고 할 수 있겠지요. 바로 그런 점이 작년 가을 이후 홍 전 장관께서 참석한 두 차례의 장관급 회담이 결렬된 요인 중 하나가 아닌가 하는 것입니다.

    “작년의 장관급 회담이 잘 안된 이유로 제가 북한과의 협상에서 국제적인 룰을 너무 고집했기 때문이 아니냐고 비판할 수 있겠지요. 그러나 장기적으로 보면 북한도 국제사회에서 통용되는 협상기술, 주고받기하는 법을 배워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그것이 매우 중요하다고 봅니다. 이제는 더 이상 남북관계의 특수성을 강조하거나 대화 상대로서 북한의 특수성을 전제조건처럼 생각하면 안된다고 생각해요. 1990년대에 북한이 해온 벼랑끝 외교전략으로는 안된다는 것을 이제 깨달을 때가 됐다는 겁니다.

    “북한은 자기도취적인 면에서 벗어나 세계 규범과 행태에 가까이 가겠다는 노력을 해야 합니다. 중국이 변하는 것을 보십시오. 시장경제를 도입하고 국제 규범을 받아들이고 있지 않습니까? 세계무역기구(WTO) 가입은 물론이고 테러리즘 문제라든가 대량살상무기, 국제안보 문제에서도 국제 규범에 가까이 가고 있습니다. 이런 걸 보고 북한이 배워야 합니다. 물론 그렇게 하지 않아도 평화공존은 됩니다. 전쟁은 일어나지 않을 겁니다. 전쟁이 일어나면 함께 죽으니까. 정부도 이걸 전제로 해서 햇볕정책을 하는 것이거든요. 그러니까 북한이 변화하기를 기다리면서 정책을 추진하는 것이 햇볕정책의 특수성이라는 겁니다.”

    -홍 전 장관으로서는 작년 9월 제5차 장관급 회담에 나간 게 북한 사람들과 처음 협상 테이블에 앉은 것이지요.

    “그렇지요. 취임한 지 나흘 만에 장관급 회담을 서울 올림피아호텔에서 했어요. 그때는 참 잘됐습니다. 물론 그 때도 제가 조목조목 우리쪽 견해를 밝히고 반박할 것은 반박했습니다. 당신네가 한국사회를 이해하지 못하는 것 같은데 민주주의 사회에는 항상 보수파도 있고 진보파도 있다, 이렇게 다양한 견해가 있는 법인데 특정 집단을 자꾸 걸고 넘어가는 건 한국을 모르는 얘기다, 이런 얘기도 했습니다. 초반에는 회의도 잘됐고 합의도 여러가지 도출했습니다. 그러다가 북측이 돌아간 뒤 갑자기 합의사항을 모조리 취소했잖아요. 그 바람에 한 달인가 공백이 생겼고 금강산에서 다시 제6차 장관급 회담을 하게 된 겁니다.”

    -작년 11월 제6차 장관급 회담을 처음에는 평양에서 하자고 했다가, 그게 안되니까 묘향산 얘기도 나오고 결국 금강산에서 하는 것으로 받아들였지요.

    “그때 저는 평양에서 회담을 하기를 원했습니다. 평양을 고집한 것은 무엇보다 김정일 국방위원장을 만날 기회가 있지 않겠느냐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사실 회담은 어디서 하건 마찬가지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양보하고 금강산을 받아들인 겁니다.”

    -아무튼 북한 사람들에겐 일반적인 협상 테크닉이란 게 전혀 통하지 않던가요.

    “북한의 교섭 스타일은 한마디로 전쟁입니다. 교섭을 전쟁의 연장으로 봐요. 그래서 ‘전부 아니면 전무(all or nothing)’이고 협상과정에서 당에 대한 충성을 과시해야 합니다.”

    -지금까지 척 다운스를 비롯해 많은 외국 전문가들이 북한의 협상행태에 대해 이런저런 분석을 내놓았지만, 정작 우리는 그런 북한의 협상행태에 적응할 생각만 했지 우리가 그것을 적극적으로 바꿔보겠다는 생각은 부족했던 게 아닌가 합니다. 그런 점에서 홍 전 장관의 협상 스타일이 의미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건 평화공존을 위해서도 중요하다고 생각했습니다. 왜냐하면 그렇게 협상하는 과정을 거치면서 상호 존중하는 정신이 생기기 때문이지요. 그러니까 우리도 북한과 협상할 때 양보할 수 있는 한계를 갖고 임해서 합의가 안되면 다음 번 회담으로 넘기면 되는 겁니다. 회담 때마다 매번 합의를 해야 하는 것은 아니지 않습니까? 과거 미국과 소련이 수십년간 군축회담을 한 것을 우리의 교훈으로 삼아야 합니다. 지금까지 우리는 대북협상에서 짧은 기간 안에 뭔가를 이뤄내려고 했지만 합의를 했는데도 이행으로 이어지지 못한 것이 참 많지 않아요? 경의선을 보세요. 처음에 합의했지만 이행되지 않았잖아요? 이렇게 보면 합의라는 게 무슨 의미가 있겠습니까? 그러니까 남북한이 일단 합의하면 반드시 지켜야 한다는 것도 북한에게 가르쳐줘야 한다는 것이지요. 이런 것을 다 염두에 두고 평화공존 정책을 하는 데에는 시간이 많이 걸릴 수밖에 없습니다. 눈앞의 업적에 너무 집착하면 곤란하지요.”

    ‘눈앞의 업적에 너무 집착하면 곤란하다’는 홍장관의 말은 김대중 정부의 햇볕정책에 대한 아주 완곡한 비판으로 들릴 수 있다. ‘집착’이라는 단어 속에 2000년 남북 정상회담 이후 우리 정부의 대북 행태가 고스란히 담겨 있다고 볼 수도 있기 때문이다. ‘원론적 차원에서 햇볕정책의 당위성에 관한 한 어느 누가 부정할 수 있겠느냐’는 기자의 말에 홍 전 장관은 ‘그럼에도 북한의 실책에 대해서 좀더 과감하게 국민 앞에 얘기하는 것이 좋았을 것’이라고 대답했다. 과연, 선이 굵고 할말은 한다고 알려진 홍 전 장관의 스타일이 묻어나는 답변이다.

    -작년 11월의 제6차 장관급회담은 어땠습니까. 북한쪽 태도가 그전 회담과 별 차이가 없었던가요.

    “지금 생각해보면 북쪽이 합의까지 가지는 않겠다는 생각을 미리부터 갖고 있었던 게 아닌가 싶어요. 우리가 상당한 양보를 했음에도 북측은 ‘당신네가 모든 현안에서 양보하지 않으면 안되겠다’는 식으로 나왔으니까. 그래서 결국 결렬됐잖아요.”

    -그 결과를 갖고 서울에 돌아오니 반응이 어떻든가요.

    “회담하러 간 사람이 판을 깨고 돌아오니까 일단 미안하더군요. 그렇지만 저로서는 그렇게 할 수밖에 없었어요.”

    -반면 야당에게서는 ‘소신을 지킨 장관’이라는 칭찬도 받았지요.

    “곤혹스러웠지요. 회담이라는 게 어떻게든 합의를 해야 좋은 건데 그러지 못한 것에 대해 대통령께도 미안했습니다. 하지만 저는 지금도 그렇게 할 수밖에 없었다고 생각합니다.”

    -직설적으로 표현해서 좀 뭐하지만, 결과적으로는 그것이 통일부 장관으로서 단명하게 된 결정적인 원인이라는 지적도 있습니다만….

    “제가 화해협력 프로세스에 기여하지 못한 건 사실이잖아요.”

    -앞에서 잠깐 중국 얘기를 하셨지만, 이번 정부에서 주중대사로 1년 넘게 근무하셨지요. 우리는 중국을 어떻게 다뤄야 합니까.

    “중국은 우리가 알고 있는 것보다 훨씬 빠른 속도로 변화하고 있습니다. 국제 규범에 맞춰 전진하고 있다는 겁니다. 중국은 북한을 공산주의 동지로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러면 중국은 왜 북한을 부양하고 후견인 역할을 하느냐, 그건 한반도에 정치적 불안이 오는 것을 원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바로 중국의 대한반도 정책의 본질입니다. 바로 그 이유 때문에 북한을 부양하는 것이고,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닙니다. 그래서 중국은 난민문제 같은 현안에도 상당히 전진적으로 대처하고 있는 겁니다. 국제 규범에 맞추어가고 있는 것이지요. 이렇게 변화하기 시작한 계기는 황장엽 사건 때부터였다고 봅니다.

    북한은 바로 이 점을 알아야 합니다. 중국으로부터 공산주의 동지국가로서 지지를 받는 게 아니라는 사실을 알아야 해요. 지금 한국과 중국 일본은 사실상 경제공동체가 돼 있습니다. 이 세 나라 사이에서 하루에도 엄청난 재화와 사람들이 왕래하고 있지 않습니까? 우리로서는 5년이나 10년 후에 중국이 미국을 제치고 첫번째 교역국이 됩니다. 이것은 북한 처지에서 보면 이 지역에서 고립된 섬나라가 된다는 뜻입니다. 그러면 북한의 장래가 어떻게 되겠어요? 이걸 북한이 알아야 합니다.”

    -우리가 중국의 대북정책에 영향력을 끼칠 수 있는 지렛대로서 경제관계를 심화시키는 것 이외에 어떤 것들이 더 있을까요.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중국과 더 가까워지면서 중국의 생각과 우리의 생각을 일치시켜 가는 거예요. 위기 시에는 어떻게 하면 좋겠다는 것까지 포함해 양측의 생각이 동질화되도록 중국을 설득하고, 중국과 생각을 공유해가는 것이 우리의 목표가 돼야 합니다. 이건 통독과정에서 서독의 대러시아 외교와 마찬가지 맥락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지난 50년간 우리와 가장 가까운 맹방은 미국이었습니다. 그런 미국과 좋은 관계를 유지해가는 것도 우리에겐 굉장히 중요한 과제입니다. 그런데 여기에 딜레마가 있는 것 같아요. 작금의 미-중 관계라는 것이 사실 애매한 측면이 있지 않습니까? 한편으로는 양국간에 파트너십을 얘기하면서도 다른 한편에서는 갈등구조가 여전히 계속되고 있으며, 미국이 중국을 포위하려고 한다는 분석도 꾸준히 나오고 있습니다. 이런 양국관계 사이에서 우리가 중심을 잘 잡아야 한다, 자칫 잘못하면 우리가 그 갈등구조의 희생물이 될 수도 있지 않겠는가 하는 점입니다만….

    “물론 많은 학자들이 미중관계에 대해 걱정도 하고 논쟁도 많이 있다는 것을 압니다. 그러나 다시 말하지만 중국은 얼마 전 WTO에도 가입하는 등 시장경제를 수용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결국 중국이 어떤 식으로든 민주주의의 길을 가고 있다는 의미입니다. 중국식 민주주의의 길이지요.

    또 한 가지, 중국에 관한 한 대부분 학자들은 한 가지 점에서는 동의합니다. 적어도 2050년까지 중국은 미국에 대해 군사적 라이벌이 될 수 없다는 것이 그것이지요. 그때까지 중국은 경제개발에 최우선 순위를 두어야 할 것이고, 그것은 중국의 확고한 정책입니다. 그리고 그 사이에 중국은 세계 규범에 더 가까이 가게 될 겁니다. 미국과의 이데올로기적 갭이 좁아질 거라는 점입니다.

    제가 중국에서 1년 1개월 지내면서 얻은 결론은 중국 특유의 실사구시와 실용주의 정신에 입각해, 미국에 맞서는 일은 절대로 하지 않을 것이라는 점입니다. 중국도 물론 자기 주장은 하겠지만 그것이 세계 무대에서 미국과 맞서겠다는 뜻은 아니라고 봐요.

    마지막으로 중국 입장에서 한반도 문제는 어디까지나 대만문제 다음입니다. 한반도 문제를 놓고 미중 간에 어떤 식으로든 최대공약수가 나올 수 있다는 말입니다. 그때에는 북한은 통일에 동의할 수밖에 없습니다. 한반도 통일국가가 무엇입니까? 최소한 시장경제와 민주주의라는 공통분모를 갖고 통일이 되는 겁니다. 그런 점에서 우리는 통일한국의 장래를 항상 염두에 두고 평화공존 정책을 추구해야 합니다.

    그런 맥락에서 저는 이번 월드컵 때 상당히 흥미로운 현상이 나타났다고 봅니다. 미국과 중국에 대한 우리 국민의 인식이 과거에 비해 상당히 달라졌다는 점입니다. 이번 월드컵 때 중국에서는 한국을 때리는 분위기가 있었고, 우리도 이에 대해 꽤 기분 나빠 했잖아요? 미국에 대해서는 월드컵 이전부터 꾸준히 좋지 않은 여론이 흐르고 있었지요. 그런데 이런 일들은 우리 국민의 자립심이 커진 것을 보여주는 중요한 지표가 아닌가, 다시 말해 강대국의 논리에 더 이상 놀아나서는 안되겠다는 의식이 부쩍 커진 게 아닌가 하는 생각입니다.

    향후 우리의 역할에서 민주적 역량과 시장경제 역량의 축적을 통해서 할 수 있는 일이 물론 있습니다. 하지만 이 역할은 우리가 미국 중국과 파트너십을 유지한다는 전제 아래서 가능합니다. 이것 없이는 우리는 설 땅이 없어요. 그걸 잘 유지하는 데에 우리의 사활이 걸려 있다는 겁니다. 사실 수천년 역사에서 우리가 지금 같은 상황에 처하게 된 건 처음입니다. 과거에 우리는 중국 영향권 아래서 살았고, 20세기 초반 35년은 예외적으로 일본의 영향 아래, 해방 이후에는 미국의 영향을 크게 받았습니다. 그런데 앞으로는 전방위 외교를 해나가야 합니다. 그런 점에서 우리는 우리 자신에 대해 불필요한 허상을 가질 필요가 없다고 봐요. 세계에서 우뚝 솟은 대한민국이 어떻고 하는 것은 민족의식을 고양한다는 측면에서는 의미가 있을지 몰라도 진실을 외면하는 부작용도 낳을 수 있습니다.

    앞으로는 경제와 마찬가지로 외교에 우리의 사활적인 이해관계가 걸리게 됩니다. 훌륭한 외교관을 배출하는 것은 훌륭한 CEO나 관리자를 배출하는 것과 똑같이 중요해요. 국가경영에서 가장 기본이 되는 것은 물론 교육입니다. 그 바탕 위에 과학기술이 있고 이를 토대로 경제력이 성장하는데, 여기에 더해 외교 역량에 대한 인식도 새로워져야 해요. 이렇듯 외교에 우리 국운이 걸리게 된 것은 우리 역사상 처음 있는 일입니다.”

    대화가 흐르고 흘러 어느덧 홍 전 장관의 ‘전공’인 외교 분야에서도 한참을 머물렀다. 인터뷰도 이제 종반전. 하지만 홍 전 장관은 아직까지 꼿꼿한 자세 그대로다. 퇴임 후 처음으로 홍 전 장관을 정식 인터뷰하는 것인 만큼 지금쯤 빠진 질문을 다시 챙겨볼 때다.

    -김대중 정부의 외교와 대북정책에 대해 총평하신다면.

    “잘했지요. 특히 대북분야에서는 일관성을 갖고 북한을 끌어들이는 데 성공했습니다. 여러 난관을 극복하면서 지금까지 이 정도로 남북 교류협력을 일궈내고 평화공존을 유지한 것은 김대통령의 업적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그것을 과대 홍보했기 때문에 국민의 기대치가 너무 높아졌고, 결국 그렇게 높아진 기대치를 충족시켜주지 못하게 됐다는 겁니다. 이건 북한 정권의 특수성에 원인이 있습니다. 약속을 안 지킨 건 북쪽이니까. 경의선 연결이 대표적인 예가 되겠지요.”

    -이 정부 남은 기간의 햇볕정책에 대해선 어떻게 전망하십니까.

    “예측할 수 없어요. 하지만 저는 북한이 먼저 움직여줘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상식적으로 본다면 북한이 얼마 남지도 않은 정권에 무언가 배팅을 하려고 할까요.

    “그건 차기 정부를 향한 신호가 될 수 있겠고, 남쪽 사회가 여론에 크게 좌우되는 곳이라는 인식을 하게 된다면 충분히 무언가 행동을 취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김정일 위원장이 마음만 먹으면 무엇이든 할 수 있는 곳이 북한 아닙니까?”

    -누가 되든, 차기 정부의 대북정책은 어떠해야 한다고 보십니까.

    “지금까지 김대중 정부가 해온 것을 바탕으로 평화공존 정책을 계속 추진해야 합니다. 그 과정에서 국민적 지지를 확보하는 일에 더욱 신경을 써야 할 겁니다. 한 가지 더 주문한다면 북한의 실상에 대해 국민에게 더 분명하게 설명해야 하고, 나아가 통일한국의 위상과 과제, 정책에 대해 국민에게 분명한 청사진을 제시해야 한다는 겁니다. 예컨대 통일한국은 동북아의 중간 규모 국가로서 핵무기 없는 민주주의 자유시장 경제체제다, 이런 식의 설명이 필요합니다. 이렇게 해야 앞으로 통일과정을 원만하게 추진해나갈 수 있습니다. 그렇지 않으면 북한 주민을 먹여 살리고, 북한 주민을 교육하는 등 엄청난 과제를 감당하기 어렵습니다.”

    공식적인 인터뷰는 이걸로 끝내기로 하고 녹음기를 껐다. 그런데 세속적인 관심을 끌 만한 얘기는 항상 비공식 상태에서 나오는 법. 홍 전 장관의 경우에도 예외는 아니었다. 현 정부에서 외교부 장관과 통일부 장관 재직 당시의 에피소드, 김대통령을 비롯한 전현직 외교안보 분야 실세들과의 이야기들, 1960년대 초부터 시작된 갖가지 외교 비사들….

    하지만 어쩌랴. 이 부분은 비공개를 전제로 나눈 대화였으니 약속을 지킬 수밖에. 다만 홍 전 장관은 언젠가 자신이 직접 이런 소재를 골라 글을 써보겠다고 약속했다. 또 한 권의 읽을 만한 자서전이 나오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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