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4월호

“빨간 스커트 정장에 진주귀고리를 다세요!”

패션 전문기자가 ‘파워드레서’ 박근혜 대통령에게

  • 김민경 | 동아일보 출판국 전략기획팀장, 채널A ‘스타일 A’ 진행자 holden@donga.com

    입력2013-03-19 17:0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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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취임식 날 선보인 다섯 벌, 합격선은 넘었지만…
    • 여성 지도자에게 패션은 ‘메시지’이자 ‘감각’
    • “국내 디자이너 옷 입어달라”
    • 클래식 핸드백, 스카프로 고유의 오브제를
    “빨간 스커트 정장에 진주귀고리를 다세요!”
    “나는 박근혜가 뭘 입어도 예쁘더라.”

    논쟁은 일흔 넘은 아버지의 한마디로 싱겁게 끝나버렸다. 2월 25일 박근혜 대통령이 취임하던 날 갈아입은 다섯 벌의 옷에 대해서 가족들이 제각각 던진 심사평이 난무하던 자리였다.

    그렇다. 박 대통령이 무엇을 입든 ‘예쁘기만한’ 52%의 국민과 뭘 입어도 ‘그저 유감인’ 48%의 국민이 살아가는 나라에서, 오늘 입은 이 옷은 지지하나, 어제 입은 그 옷은 반대하며, 내일은 빨간 스커트 정장을 입어주기 바라는 의견은 ‘국민 여론’에 끼지 못하는 것이다. 하지만 박 대통령이 막 런웨이를 끝낸 패션쇼장처럼 떠들썩한 SNS는 말할 것도 없고, 언제나 ‘정책 우선’을 강조하는 점잖은 신문들까지 박근혜 패션을 대대적으로 분석하는 현상은 우리가 확실히 대한민국 건국 이래 최초의 여성 국가원수 시대에 진입했음을 실감하게 한다.

    부르주아 자본주의의 역사 이래 무채색의 슈트와 넥타이로 ‘위장’해온 남성들과 대조적으로 여성들은 자의든 타의든, 자신이 입은 것을 통해 성의식(젠더), 권력, 경제력, 교양과 취향 등을 표현하는 길을 걸어왔다. 남녀 정치인과 유명 인사들도 예외가 아니었을 뿐만 아니라 유력 인사들의 옷차림은 대중에게 큰 영향력을 미쳐 ‘파워드레싱(Power Dressing)’이란 신조어가 나오기도 했다.

    현재 대한민국 최고의 파워드레서는 물론 박근혜 대통령이다. 어머니 육영수 여사도 파워드레서였지만 패션이란 말조차 쓰기 어려웠던 1960, 70년대 상황에서 이렇다 할 영향력을 발휘하기 어려웠다는 점을 고려한다면 박 대통령은 최초의 파워드레서이기도 하다.



    고백하건대, 최고의 파워드레서인 박 대통령이 취임식 날 무채색 정장 한 벌로 모든 일정을 마치지 않았다는 점만으로도 나는 안도했다. 그러지 않았다면, 나는 중국의 인민복 시대에 살고 있는 악몽을 꿨을지도 모른다. 게다가 상황에 맞춰 다섯 신(scene)을 보여줬으니, 기본 점수에서 일단 합격선을 넘었다고 생각한다. 적어도 박 대통령은 여성 대통령의 패션이 얼마나 중요한지 보여줬기 때문이다.

    ‘점퍼’는 이제 그만

    “빨간 스커트 정장에 진주귀고리를 다세요!”
    취임식 날 박 대통령의 첫 번째 옷차림은 검은색 롱 패딩 파카와 짙은 회색 목도리, 검은색 바지, 검은색 로퍼였다. 서울 삼성동 자택에서 나와 첫 방문지 국립현충원으로 이동하면서 처음 국민을 만나는 모습이었다. 컬러는 적절했지만, 패딩 점퍼는 너무나 아쉬웠다. 여성 대통령의 첫 인사, 순국 영령들에게 참배하는 상황을 고려한다면 모직 코트로 성장(盛裝)한 모습이 적절하지 않았을까. 지난겨울 다운패딩이 보온성을 인정받으며 인기를 끈 데다 이명박 전 대통령이 손주들과 함께 패딩 차림으로 전통 시장을 돌았기 때문인지, 대선 기간 중 많은 정치인이 ‘점퍼’ 차림으로 현충원 참배 등 공식행사에 나섰다. 추운 건 알지만 옷의 예절에는 무심했기 때문일 것이다. 그들에게 폴란드 아우슈비츠 해방 기념식에 파카 차림으로 참석했다가 전 세계 언론으로부터 비난의 화살을 맞은 딕 체니 전 미국 부통령의 사례를 전해준 참모는 없었나보다.

    현충원 참배를 끝낸 박 대통령은 카키색 모직 재킷과 보라색 스카프 차림으로 국회의사당 취임식 단상에 올랐다. ‘시작’을 알리는 적절한 변신이었다. 선거 운동 내내 입어 국민의 눈에도 익숙한 패딩 파카. 혹한과 경쟁자들에 맞서 용맹하게 싸워준 제1 참모, 검은 점퍼의 임무는 여기까지라고, 박 대통령은 치하했을까.

    흥미로운 점은 박 대통령이 공식 취임식 코트로 카키색을 선택했다는 것이다. 카키색은 우리나라에서 ‘국방색’이라는 애국적인 이름으로 불리며, 군필 남성들이 가장 기피하는 색이다. 그만큼 강한 메시지를 갖고 있다는 뜻이다.

    외국 여성 정치인들에게 카키색은 베이지, 회색과 함께 ‘중립’ 컬러로 분류되나, 국군 통수권자이자 우리나라 최초 유일의 파워드레서에겐 강력한 ‘국방의 의지’에 따라 선택된 것으로 보인다. 그동안 정치인 박근혜의 파워드레싱은 언제나 메시지를 담고 있었기 때문에, 그만큼이나 ‘강렬한’ 국방색이었다. 그와 매치되지 않았던 보라색 머플러는 많은 패션 전문가가 주목한 나비 브로치와 어울려 ‘미래’와 ‘희망’을 웅변했다. 서울 광화문 식당에 모여 취임식 장면을 보던 60, 70대 어르신들은 “꼭 여군 같구먼” “여자 대통령이라고 북에서 깔보지 못할걸?”이란 말로 국방색 재킷에 화답했으니, 보수층에게 확실한 메시지를 준 셈이었다.

    권력의 상징, 진주(Power Pearls)

    박 대통령은 취임식에 이은 광화문 복주머니 행사와 밤의 외교사절 만찬에서 각각 다른 두 벌의 한복을 입었다. 유명 인사들의 한복을 많이 지은 김영석 디자이너의 작품으로, 국민 행사와 외빈을 초청하는 행사에서 한복을 입기로 한 것은 박 대통령의 뜻이었다고 한다. 이는 박 대통령의 동양적 마스크와 올림머리가 제대로 돋보였다는 점에서, 어머니 육 여사에 대한 향수를 자극했다는 점에서 탁월한 전략이었다. 동시에 외국 언론이나 외교관들에게는 박 대통령이 재임 기간 중 민족적인 자긍심을 정치력의 한 기반으로 삼을 것이라는 사인으로 전달됐을 것이니, 외교적 갈등이 잠재한 주변 국가들 사이에선 다소의 긴장감도 오갔을 것 같다. 일반적으로 현대화한 국가의 여성 정치인이 전통 의상을 입는 것은 민족 감성에 호소하는 특별한 이벤트로 받아들여지기 때문이다.

    “빨간 스커트 정장에 진주귀고리를 다세요!”
    1998년 대구 달성 보궐선거를 통해 정치에 입문한 이후 2007년 대통령후보라는 유력 정치인으로 성장하기까지 박 대통령이 갖고 있던 카드는 애국심에의 호소와 박정희 대통령에 대한 향수였다. 이러한 전략은 당시 옷차림에서 더 분명하게 나타났다. 세계 여성 파워드레서들을 분석한 ‘파워드레싱’의 저자 로브 영은 이렇게 기술했다.

    (박근혜 대통령이 2002년 김정일을 만날 때 입은 옷 등) 그녀가 좋아하는 실루엣을 보자. 허리 라인이 위로 올라간 재킷, 주름을 풍성하게 잡아 아래로 퍼지게 한 스커트는 한국의 전통 의상인 한복을 연상시킨다. 지구상에서 패션과 트렌드에 가장 민감한 국가 한국에서 이렇게 ‘올드패션’한 여성이 최고 지도자가 되는 역설이 생겨난다. (…) 이처럼 과거 회귀적인 이미지가 의식적인 것이든 아니든, 이런 유의 논쟁은 그녀에게 손해가 되지 않는다.

    다만 외빈초청 행사장의 한복은 국가지도자보다는 퍼스트레이디 같은 인상을 줬는데, 좀 더 격식 있고, 좀 더 파워풀했어야 하는 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이날의 ‘베스트’는 청와대에서 신임 각료들과 함께 첫 번째 업무를 볼 때 선보인 초록색 재킷과 진주목걸이 차림이었다. 초록색은 올봄의 ‘잇 컬러(it-color)’인 데다 박 대통령에게 젊고 활기 넘치는 지도자라는 인상을 준다. 초록색 재킷의 목 칼라 부분과 왼쪽 가슴 부분에는 검은색이 콤비로 매치돼 검은색의 이너웨어, 검은색 하의와 통일감을 줬을 뿐 아니라, 박 대통령을 둘러싼 검은 톤 양복의 남성 각료들과도 조화롭게 어울렸다. 평소 즐기던 브로치 대신, 밝은색 진주목걸이를 선택한 것도 호감도를 높였다.

    흰색 진주목걸이는 ‘파워 펄스(Power Pearls)’라는 애칭이 있을 만큼 전 세계 여성 권력자에겐 필수 액세서리다. 영국의 엘리자베스 여왕과 대처 전 총리, 줄리아 길라드 호주 총리, 힐러리 클린턴 및 콘돌리자 라이스 전 미국 국무장관, 티모센코 전 우크라이나 총리, 칠레 최초의 여성 대통령 미첼 바첼렛(현 유엔 여성기구 총재) 등과 퍼스트레이디 베스 트루먼, 재클린 케네디 등 무수히 많은 여성 인사가 흰색 진주를 사랑한다.

    ‘파워 펄스’의 조건은 한 줄의 굵은 진주알 목걸이를 옷의 목선 위로 오게 하는 것. 권력을 가진 여성들이 선호하는 직경 11~16mm 천연 진주는 워낙 고가인지라 사치 논쟁에 휘말릴 위험도 있다. 여성주의 작가인 저메인 그린은 “모조나 양식 진주처럼 값이 저렴해도 상관없다. 파워드레서라면 크고 풍요롭고 광채가 나면서 일렬로 품격 있게 꿴 진주목걸이를 해야 한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패션은 아슬아슬한 줄타기

    파워드레서의 ‘미션’은 패션을 통해 대중에게 자신이 원하는 정치적, 사회적 메시지를 전달하는 동시에 동시대의 트렌드를 놓치지 않는 감각도 보여주는, 두 마리 토끼를 잡는 것이다. 유력 정치인이 지나치게 유행에 민감하다면 대중에게 ‘사치스럽다’거나 ‘정치적 능력과 노력이 부족하다’는 비난을 듣기 쉽다. 모든 여성 정치인이 두려워하는 치명적인 덫이다. 이 함정에 빠질까봐 아무렇게나 입은 옷차림으로 대중 앞에 나서다보면 의전상의 결례를 범할 수 있고, 시대의 변화와 흐름을 모르는 구식 정치인이나 비호감 아줌마로 낙인찍혀 지지율 하락을 불러올 것이다.

    카를라 브루니 전 프랑스 영부인처럼 전 국민의 기를 죽일 정도로 옷을 잘 입는 파워드레서도 연일 세계 언론에 오르내리지만, 메르켈 독일 총리처럼 지독하게 패션에 무관심해도 연일 언론에 가십거리를 제공해 국민에게 근심거리를 안긴다. 독일은 언뜻 패션과는 거리가 있어 보이지만 영국, 프랑스, 이탈리아 못지않게 최고 수준의 디자이너를 많이 배출한 나라다. 1980년대부터 샤넬을 이끌고 있는 카를 라거펠트도 독일인이다. 바로 그 카를 라거펠트가 “우리는 메르켈 총리에게 더 좋은 바지를 만들어줄 재단사를 찾아내야 한다”고 일갈했다. 독일 정론지들도 총리에 비판적인 기사를 실을 때는 ‘총리, 성공을 위한 옷 입기에 실패’ 라거나 ‘총리, 차라리 구닥다리 옷이 정치력보다 나은 듯’이라고 패션 감각을 물고 늘어진다.

    재클린 케네디, 대처, 힐러리 클린턴, 컨돌리자 라이스와 미셸 오바마 등 성공한 파워드레서들의 공통점은 ‘메시지’와 ‘패션 감각’ 사이에서 아슬아슬한 줄타기에 성공했다는 점이다. 박근혜 대통령도 오랫동안 그런 고민을 해왔을 것이다. 20대에 퍼스트레이디 역할을 맡게 된 1974년부터 2013년 대통령이 되기까지 약 40년간의 옷차림을 살펴보면, 본격 정치인이 되기 전까지 박 대통령은 트렌드를 자기 식으로 소화할 줄 아는 당대의 패셔니스타처럼 보인다. 포토제닉하게 타고난 외모와 젊음도 한몫을 했다.

    “빨간 스커트 정장에 진주귀고리를 다세요!”

    1 보수당을 상징하는 파란색 스커트 정장을 즐겨 입은 대처 전 영국 총리. 2 재클린 케네디. 3 매들린 울브라이트 전 미 국무장관의 유명한 브로치들. 4 콘돌리자 라이스 전 미 국무장관은 육군비행장에서 섹시한 군복패션으로 언론으로부터 ‘감각이 뛰어나다’는 평을 들었다.



    그러나 아버지의 뜻을 잇는 대통령이 되겠다는 목적이 분명해진 이후, 박 대통령의 옷에서는 패션 감각보다 정치적 메시지가 더 중요해진다. 특히 2005년 당 대표 시절 숏커트에 가까운 단발 헤어스타일(젊은 층은 좋아했으나 어르신들은 아쉬워했다)을 잠시 시도했다 다시 올림머리로 돌아간 2007년 이후 이런 특징이 더욱 강화된다.

    박 대통령은 자신의 옷에서 ‘의미’ 이상의 것을 읽어내는 것을 반기지 않은 태도를 보인다. ‘대통령의 딸’보다는 ‘정치인’으로 인식돼야 한다는 부담과, 옷 때문에 시비에 휘말리지 않아야 한다는 조심스러움이 작용한 듯하다. 예를 들어 2011년 유럽 특사 방문 때 외교적으로 올바르게 방문 장소와 상황에 맞춰 갈아입은 옷들이 국내 언론에서 ‘패션’으로 떠들썩하게 보도된 것에 대해 ‘매우 불편해했다’고 정치부 기자들은 전한다. 박 대통령은 한동안 같은 옷을 입고 다녀 이 같은 심기를 드러냈다.

    또 국회에서 남성 의원이 박근혜 당시 당 대표에게 말을 붙이느라 “오늘 입으신 옷이 참 예쁘십니다” 하자 “여러 번 입고 왔던 옷입니다”라고 말해 의원이 당황했다는 에피소드가 있다. 많은 남성이 이런 식의 실수를 한다. 이 말이 설득력을 얻으려면 차라리 옷의 메시지를 설명했어야 했다(‘빨간색 옷을 입으신 걸 보니 선거가 본격화한 듯하다’ 운운). 평소 아무런 패션 센스도 보여주지 못하던 남성이 어설프게 여성의 옷차림을 화제로 삼는 것처럼 어리석은 일이 없다. ‘당신은 여자니까 무조건 예쁘다고 하면 좋아할 것’이란 뜻으로 해석될 수 있기 때문이다. 더구나 공적인 의회에서, 상대가 당 대표라면 정치적으로 매우 위험한 행동이다.

    검소함과 ‘브로치 정치’

    박근혜 대통령은 파워드레서다. 파워드레서의 옷은, 그림의 미적 아름다움보다 강아지는 ‘충성’으로, 해골은 ‘죽음’으로 해석하는 도상학의 세계와 같다.

    2012년 대선부터 최근까지 박 대통령 패션의 도상학에서 가장 두드러진 특징은 ‘검소함’이다. 선거 운동을 위해 빨간색이 더해지긴 했지만, 박 대통령은 늘 단순한 테일러드 컬러 재킷과 바지, 오래된 검은색 구두, 무채색 패딩들만 돌아가며 입었다. 구두는 갈색, 은회색, 감색, 검정 네 켤레를 돌려 신는데, 두 켤레는 10년 이상 됐다고 한다. ‘엘레강스’ 라이선스를 받아 국내 중소업체가 생산 중인데, 지난해 구두를 벗고 운동화를 갈아 신을 때 브랜드가 처음 알려져 ‘대통령 효과’를 기대하고 있다는 후문이다. 시계는 30년 된 라도와 론진이다. 판매가도 비싸지 않지만, 비싼 시계라도 이 정도 착용하면 ‘검소’해진다.

    현대의 여성 정치지도자가 이처럼 같은 옷과 구두를 돌려가며 착용하는 경우는 흔치 않다. 박 대통령조차 대권에 본격적으로 도전하기 전까진 같은 옷을 계속 입은 적이 거의 없다. 강조된 검소함은 명품도, 사치할 여력도 없이 누구나 열심히 일해야 했던 시절을 미덕으로 기억하게 하고 ‘제2의 한강의 기적’이 다시 실현되리라는 메시지를 전한다.

    또 다른 특징은 엄격한 ‘권위’의 실현이다. 도전과 비난이 이어지는 현실 정치의 세계에서 여성 정치인 박근혜의 주요한 방어막이 된 것은 미니멀한 단어와 미니멀한 패션이었다. 권위와 절제가 드러나는 단순한 옷은 외부의 자극에 흔들리지 않겠다는 메시지로 해석된다. 배색으로 강조하곤 하는 재킷의 깃과 만다린 칼라는 꼿꼿하게 서 있다. 대처가 즐긴 ‘파워숄더’(어깨에 패드를 넣어 강인함을 강조)도 박 대통령 패션의 특징으로 남성적 권위를 부여한다.

    박근혜, 패션 디테일에 강하다?

    박 대통령이 3월 4일 첫 대국민담화 때 입은 재킷은 취임식의 녹색에 그늘이 짙어진 듯한 색의 셔츠 컬러로 일에 관해서는 어떠한 타협도 있을 수 없음을 보여주는 듯했다. 대국민담화에 성장이 아닌 사무적 차림이어서 오히려 긴장감이 더해졌다.

    반면 브로치와 목걸이, 귀고리 같은 액세서리와 분홍, 주홍 같은 여성적 색상의 활용은 ‘여성성’에 대한 호소다. 박 대통령 취임 후 더 관심을 모으는 브로치 정치는 ‘내 브로치를 읽어라’라는 책을 펴내는 등 ‘브로치 외교’로 유명했던 미 정치인 매들린 울브라이트를 연상시킨다. 울브라이트는 러시아와 미사일 감축 협상을 할 때 로켓 모양 브로치를 하고 나가 러시아 외무장관이 “그거 우리 쪽에서 가져간 미사일인가요?”라고 하자 “맞아요. 우리가 그것들을 가져다 아주 작게 만들었다우”라고 받아치는 식이었다. 울브라이트는 옷은 심플하게 입었지만 화려한 액세서리를 즐겼다. 그는 “나는 여성으로 살아가는 게 좋다. 직업적으로 훌륭하면서 동시에 행복한 여성으로 보이는 것이 중요하다. 난 브로치와 액세서리를 좋아하는데, 낮에 일할 때 입던 옷을 바로 파티복으로 바꿔주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박 대통령도 2011년 이와 비슷한 이야기를 했다.

    “액세서리는 옷을 입었는데 뭔가 허전할 때 한다. 이 브로치가 없다면 지금 내 의상이 얼마나 우중충하겠나. 액세서리의 역할은 그것 하나로 분위기 전체가 살 수 있다는 건데, 과도하면 제 역할을 못한다. 어떤 사람이 손가락마다 큰 반지를 꼈는데 하나도 살아나지 않더라.”

    일반적으로 파워드레싱의 세계에서 분홍은 가장 기피되는 색이다. 사회적으로 여성화한 색이기 때문이다. 분홍 재킷은 정치인이기 이전에 한 여성으로서의 감성을 보여준다고 한다. 박 대통령과 소통이 어렵다고 말하는 정치인들에겐 위로가 될지 모르겠다.

    “빨간 스커트 정장에 진주귀고리를 다세요!”
    박 대통령이 의도한 것이든, 아니든 박 대통령의 옷장은 자신의 패션 스타일에 대해 본인 스스로 매우 강한 확신을 갖고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박 대통령은 종종 같은 디자인에 색이나 소재만 달리한 아이템을 선보인다(깃에 검은색을 매치한 회색과 녹색 재킷, 화제가 된 갈색과 회색의 타조백, 노란 톤과 자주 톤의 진주목걸이, 만다린 칼라의 색과 디테일만 다른 재킷들). 대중에게 인식되기를 원하는 이상적 이미지를 상정하고, 어떤 아이템이 그것을 전달하는 데 효과적이라고 판단하면 여러 벌을 한 번에 맞추는 것이다.

    한 걸음 더 나가, 박 대통령은 자신의 스타일에서 벗어나는 변화는 받아들이지 않는 것이 ‘득’이라고 믿는 듯하다. 선거 과정에서 ‘젊은 층에 다가가기 위해 올림머리 대신 숏커트를 하시라’거나 ‘서민 이미지를 위해 몸뻬 바지를 입고 시장에 가시라’는 참모들의 조언에 박 대통령이 ‘싸한’ 반응을 보였다는 게 여당 관계자들의 말이다.

    이제 영화 ‘유주얼 서스펙트’같은 결론이다. 낡은 시계와 구두, 옷에는 무관심해 보이고, 변화에도 무심하며, 자신의 옷이 ‘패션’으로 화제가 되는 것조차 싫어하는 박근혜 대통령이야말로, 패션과 파워드레싱에 대해 가장 잘 알고, 이를 적극 활용하고 있는 사람이 아닐까. 영애이자 퍼스트레이디였던 시절의 뛰어난 패션 감각, 2011년 유럽 순방 시 보여준 패션 애티튜드, 정치적 고비마다 보여준 파워드레싱, 솜씨 좋게 여며지는 단추의 개수와 위치, 빈틈을 보이지 않는 재킷의 길이, 깃의 각도와 어깨 패드의 크기까지, 그 모든 옷을 정교하게 짜 맞춘 사람이 박 대통령 자신이란 확신이 점점 강해지기 때문이다. 앞서 언급한 책 ‘파워드레싱’에서 박 대통령에 대해 언급한 한국의 패션 전문가도 “그녀의 옷들을 면밀히 살펴보면, 그녀가 패션의 디테일에 대해서 매우 잘 알고 있는 듯한 느낌을 받는다”고 말했다.

    박 대통령에게 추천하는 7가지 쇼핑 아이템

    파워드레서는 문화와 패션산업에 엄청난 영향을 미친다. 각국의 여성 대통령이나 퍼스트레이디들이 옷과 구두, 벨트, 장갑의 브랜드까지 ‘친절하게’ 밝히며 간접광고 모델을 자처하는 건, 그 덕분에 자국의 관련 산업과 국가 브랜드를 한 단계 높일 수 있기 때문이다. 대통령 가족들의 덕을 많이 본 미국 패션계의 거물 디자이너 오스카 드 라 렌타는 “우리 시대에 옷 잘 입는 영부인을 갖게 되는 것처럼 좋은 일이 없다”고 했다. 그래서 한국 여성의 아름다움을 보여줄 수 있는 대통령을 만나게 된 국내 패션업계의 기대도 클 수밖에 없다. 한국패션디자이너협회장 이상봉 디자이너는 “여성 대통령이 해외 브랜드에 고전하는 국내 디자이너들의 옷을 입어주는 것만으로도 큰일을 하시는 것”이라며 “멋진 여성 정치인을 비난하는 시대는 지났다. 당당하게 옷을 통해 자신의 아름다운 이미지를 보여주기 바란다”고 당부한다.

    그래서 파워드레서인 여성 대통령에게 다음과 같은 쇼핑리스트를 제안한다.

    1 클래식 핸드백 : 박근혜 대통령이 ‘완판’시킨 타조백은 덮개가 생략된 실용적인 쇼퍼백으로, 박 대통령에게는 클래식한 핸드백이 필요하다. 대처 전 총리의 페라가모 백이나, 그레이스 켈리 왕비의 켈리 백 등 파워드레서의 클래식 백은 종종 한 인물을 상징하는 오브제가 된다.

    2 무채색 코트 : 모직 소재의 잘 재단된 테일러드 칼라의 싱글 버튼 코트. 기본적인 검은색과 전 세계 파워드레서의 잇 컬러인 로열블루 각 한 벌씩.

    3 밝은색 스카프 : 스카프는 부드러운 이미지를 주는 데 확실히 효과가 있다. 유럽 순방 시 바람에 날리는 스카프가 박 대통령에게 썩 잘 어울렸다.

    4 하이힐 : 여성 정치인이 구세대냐 신세대냐를 가르는 기준은 하이힐이다. 힐 높이는 현재 박 대통령의 펌프스와 같은 5cm면 충분하지만, 힐은 더 날씬해져야 한다.

    5 파워 펄 : ‘진주귀고리를 한 대통령.’ 생각만 해도 가슴이 설렌다. 파워드레서들이 사랑하는 파워 펄은 여성 대통령 시대에 유행할 것으로 예상되는 아이템이기도 하다.

    6 스트레이트피트 바지 : 남성들의 바지도 폭이 많이 좁아졌다. 약간 슬림한 바지 피트가 더 젊고 활동적으로 보인다.

    7 빨간색 스커트 정장 : 패션계에 이미 박 대통령이 기여한 바가 있다면 빨간색을 복권시켰다는 점. 젊은 층은 ‘붉은 악마’로 레드 콤플렉스를 떨쳐냈지만, 많은 중년 남성이 박 대통령 ‘덕분에’ 비로소 빨간 목도리를 둘러볼 수 있었다. 박 대통령의 쇼핑리스트 마지막 항목으로 레드 컬러의 스커트 슈트 한 벌을 추천한다. 대통령의 열정 뿐 아니라 정부와 여당의 공조를 상징하는 메시지가 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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