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4월호

언젠가는 한판 붙는다?

‘돌아온 장고’ 허태열 vs ‘열혈 충성맨’ 이정현

  • 송국건│영남일보 서울취재본부장 song@yeongnam.com

    입력2013-03-21 10:1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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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MB 때 ‘인사 전쟁’ 비하면 이번엔 ‘전투’ 수준
    • 친박계 의원, 청와대에 보좌진 끼워 넣으려 로비전
    • ‘朴 무한신뢰’ 이정현 정무수석 막강파워 과시
    • 한 지붕 3실장 체제… 파워게임 뇌관 가능성
    언젠가는 한판 붙는다?

    청와대 유민봉 국정기획수석(왼쪽)과 이정현 정무수석이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박근혜 정부를 이끌어갈 내각과 청와대의 첫 진용이 짜이는 과정에 숱한 뒷얘기가 흘러나왔다. 주로 박근혜 대통령 주변에서 벌어졌다는 인사 암투와 관련된 내용이다. 청와대 핵심 참모와 각료, 4대 권력기관장을 한꺼번에 인선했기 때문에 불가피한 현상이기도 하다.

    박근혜 정부 이너서클 내 파워게임은 5년 전 이명박 정부 출범 때의 ‘인사 전쟁’과 비교하면 소규모 ‘전투’ 수준이었다는 평가도 많다. 인사를 둘러싼 갈등이 아주 없지는 않았지만 과거에 비해선 제한적이었다는 의미다.

    2008년엔 대통령직인수위원회 구성 단계에서부터 이명박 당선인의 핵심 측근들 사이에 치열한 힘겨루기가 시작돼 청와대 참모진 인사 때는 절정에 달했다. 이명박 정권을 만든 세 주역인 이상득-이재오-정두언 라인이 각각 한 명이라도 더 자기 사람을 밀어 넣기 위해 곳곳에서 부딪쳤다. 그 결과 정권이 출범하자마자 정두언 의원이 당시 이상득 의원과 박영준 청와대 기획조정비서관 등을 겨냥해 “인사전횡을 하고 있다”고 직격탄을 날려 초반부터 이명박 대통령에게 부담을 안겼다.

    박근혜 정부 출범 과정에선 그런 전면전까지는 벌어지지 않았다. 구조적으로도 극심한 권력암투가 일어나기 어려웠다. 박 대통령은 사실상 ‘단독 플레이’로 정권을 잡은 격이다. 친박계 정치인들의 도움을 받았고, 친박 안에서도 약간의 분화가 있었지만 박 대통령의 카리스마에 눌려 티 나게 자신들의 몫을 챙길 순 없는 구도다.

    첫 인사 둘러싼 저강도 신경전



    정치적으로 독자세력이 미미했던 이명박 전 대통령은 친형인 이상득 전 국회부의장과 이재오 의원, 정두언 의원으로 분화된 세력들을 ‘친이계’란 울타리 안으로 끌어모아 정권을 창출하는 데 성공했기 때문에 실세들은 논공행상 과정에 지분을 챙기기 위해 인사 전쟁을 여러 차례 치렀다. 그에 비해 박근혜 정부 구성과정에서는 핵심 측근들이 대통령의 눈치를 살피며 자기 사람들을 ‘조용히’ 심기 위해 신경전을 벌였기 때문에 청와대 비서관이나 행정관 몇 사람의 명단이 중간에 바뀐 정황 정도만 감지된다.

    대표적인 사례가 당초 홍보수석실 비서관으로 내정됐던 A씨다. 그는 동향이자 학교 선배인 허태열 비서실장의 선을 타고 청와대 입성이 내정돼 있었다. 하지만 친박계 한 핵심 인사가 뒤늦게 A씨의 전력을 문제 삼고 나섰다고 한다. A씨가 친이계 성향의 인물이란 주장이었다. 그 자리는 결국 다른 사람에게 돌아갔다.

    민정수석실을 둘러싸고도 여러 소문이 나돌았다. 법무비서관으로 내정됐던 변환철 중앙대 로스쿨 교수가 곽상도 민정수석과 행정관급 직원 인선 문제 등을 놓고 마찰을 빚다 스스로 물러난 것으로 알려졌다. 또 민정비서관 내정자인 이중희 전 인천지검 부장검사 내정이 번복된 듯했다가 다시 기용되는 과정에서 친박 핵심부의 내부 알력이 있었다고 한다.

    고용복지수석실의 보건복지비서관 자리도 김원종 보건복지부 보건의료정책관에서 장옥주 전 한국노인인력개발원장으로 바뀌는 우여곡절을 겪었다. 정무수석실 사회안전비서관의 경우 당초 K치안감이 내정돼 직원들과 작별인사까지 나눴지만, 정치권의 입김이 작용해 강신명 전 경북경찰청장이 최종 낙점을 받았다고 한다.

    친박계 정치인들 사이에서는 자신의 보좌진을 청와대에 입성시키려는 로비전도 벌어졌다. 행정관급으로 들어간 보좌진은 대부분 대선 때 실무적으로 활동한 공을 인정받았지만 행정관 정원이 제한돼 있어 경쟁이 치열했다.

    새누리당의 중간 당직자 중에서도 내부 경쟁을 뚫고 대선 캠프와 인수위를 거쳐 청와대에 입성한 경우도 더러 있다. 최상화 직능국장이 춘추관장(비서관급)으로 자리를 옮긴 것을 필두로 이재성 기획조정국장이 정무비서관실 선임행정관, 이호근 기획조정국 심사팀장이 민정비서관실에 자리를 잡았다.

    언젠가는 한판 붙는다?

    박근혜 대통령이 2월 27일 청와대에서 첫 수석비서관회의를 주재하고 있다.



    허태열-이정현 파워게임 잠복

    박근혜 정부 초기에는 권력 핵심에서 비교적 ‘조용한 전투’가 벌어지는 데 그쳤지만, 시간이 흐르면 밖으로도 굉음을 내는 권력투쟁이 불거질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박 대통령이 국정을 운영하느라 내부 단속을 느슨하게 하는 사이에 몇몇 실력자가 정치적 위상을 높이려는 시도를 꾸준히 할 개연성이 있다.

    이 대목에서 ‘변수’가 될 수 있는 인물은 허태열 비서실장이다. 허 실장은 ‘관리형’이지만 친박 국회의원 3선 관록의 정치인인 데다, 청와대 인사위원장까지 겸할 정도로 힘이 있는 만큼 이정현 정무수석을 비롯한 기존 실세들과 대치전선이 형성될 수 있다.

    현재로선 이정현 수석의 실질적인 힘이 허 실장의 그것을 뛰어넘는다고 봐도 무리가 없다. 박 대통령의 ‘무한 신뢰’가 배경이다. 이 수석이 박 대통령의 생각, 인사 구상까지 정확히 꿰뚫고 있음을 보여준 사례가 있다.

    인수위가 한창 활동하던 지난 2월 8일 인수위를 출입하던 기자들은 인사를 두고 엇갈린 정보에 헷갈려 했다. 당시 유일호 당선인비서실장은 그날 신임 총리와 청와대 비서실장이 동시에 발표될 것으로 예고했다. 그러나 같은 시각 이정현 당선인정무팀장은 총리만 발표할 것이라고 귀띔했다. 뚜껑을 열어보니 정홍원 총리만 발표되고, 허태열 실장은 열흘 후에야 지명됐다.

    이 수석은 지난해 12월 19일 밤 대선 승리가 확정된 순간 박 대통령과 축하 악수를 나누면서 감격에 겨운 표정으로 눈물을 글썽거렸다. 그 모습을 지켜본 한 참모는 “박 대통령에 대한 이 수석의 충성심은 거의 ‘솔 메이트’(영혼의 동반자) 같아 보였다”고 했다.

    만일 이 수석이 이런 배경을 바탕으로 권한을 넓혀갈 경우 허 실장과 부딪칠 공산이 크다. 이는 신흥 실세(허태열 등)와 기존 실세(이정현 등)들 사이의 정면충돌로까지 이어질지 모른다. 청와대 내부의 권력갈등이 심각한 수준에까지 이르지 않으면 박 대통령은 핵심 측근들의 ‘분할통치’를 위해 이를 묵인하는 상황도 가정해볼 수 있다. 김대중 전 대통령도 재임시절 외부 수혈 인사인 김중권 비서실장에게 힘을 실어줘 동교동 가신들의 전횡을 견제하도록 유도한 바 있다.

    3실장 체제의 불안한 동거

    비서실 내부뿐 아니라 새 정부 3실의 수장인 비서실장, 국가안보실장, 경호실장 사이의 미묘한 힘겨루기도 예상된다. 허태열 실장이나 김장수 국가안보실장, 박흥렬 경호실장은 모두 묵묵히 ‘넘버원’을 보좌하는 참모형에 가깝다. 따라서 박 대통령 면전에서 부딪치는 일은 상상하기 어렵다.

    다만 청와대가 본격적으로 굴러갈 때 업무상 마찰이 생기는 것은 불가피하다. 비서실과 국가안보실의 업무 구분이 명확하다고는 하지만, 일을 하다보면 상대 영역을 침범할 수도 있다. 이 경우 일이 잘못됐을 때 책임공방이 벌어지면서 내부 갈등으로 번질 소지가 충분하다. 국가안보실과 경호실 사이에도 마찬가지다. 또한 의전 문제 등을 놓고 비서실·국가안보실과 경호실이 마찰을 빚는 경우도 가상할 수 있다.

    정권 탄생 과정의 특수성과 박 대통령 특유의 용인술 등으로 당장은 이너서클 내부의 갈등이 ‘찻잔 속 태풍’에 그치겠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여러 변수가 발생하면 찻잔이 단번에 깨질 수도 있다. 그것이 권력의 속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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