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의 정복’ 쓴 러셀의 행복론 = 평범 속 통찰
“내면보다 외부 세계를 폭넓게 사랑하라”
정신과 전문의 베일런트가 말하는 ‘행복의 조건’
“사랑하고, 일하며, 새로 배우고,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개인의 합리적이고 성숙한 태도와 의지가 중요
[Gettyimage]
사회적으로도 행복은 매우 중요한 가치다. “우리는 다음과 같은 사실을 자명한 진리로 수용한다. 모든 사람은 평등하게 창조됐고, 창조주는 양도할 수 없는 권리를 부여했으며, 그 권리 가운데는 생명, 자유, 행복의 추구가 있다.” 1776년 발표된 미국 독립선언서다. 근대의 출발을 알린 문헌 가운데 하나다. 행복은 생명, 자유와 함께 가장 중요한 권리로 규정되고 있다.
이처럼 행복은 개인적인 동시에 사회적인 가치다. 행복이란 뭘까. 국어사전에 따르면 행복이란 생활에서 충분한 만족과 기쁨을 느끼는 상태를 뜻한다. 여기서 생활이란 물질적 차원과 정신적 차원을 모두 포괄하고 있다.
이러한 행복에 대한 가장 오래되고 권위 있는 정의는 아리스토텔레스에 의해 주어졌다. 아리스토텔레스에 따르면, 행복은 ‘최상의 좋음’, 즉 ‘최고선’이다. 최고선이란 무엇을 위한 수단이 아닌 그 자체의 목적으로서 좋은 것을 말한다. 구체적으로 정신의 이성적 활동을 덕에 기초해 수행하는 것을 아리스토텔레스는 행복으로 정의했다.
그런데 앞서 말했듯 사람마다 이 최고선은 다를 수 있다. 누구에게는 아리스토텔레스처럼 덕에 기반한 정신적 활동이 행복일 것이다. 다른 누구에게는 무라카미 하루키가 말한 ‘소확행’, 다시 말해 소소한 일상을 통해 얻는 즐거움 또는 기쁨이 행복일 것이다.
우리 시대에 우리 인류가 합의할 수 있는 행복이란 있을까. 그것은 저 멀리 있는 신기루와도 같을까, 아니면 가까이 있는 파랑새와도 같을까. 그것이 있다면 어떤 모습을 보일까.
서구 사회에서 아리스토텔레스 이후 행복의 담론은 차고 넘쳤다. 행복은 철학과 심리학을 위시한 인문학 전반의 가장 중요한 주제 가운데 하나였다. 여기서는 두 텍스트를 주목하려고 한다. 영국 철학자 버트런드 러셀(Bertrand Russell·1872~1970)이 1930년에 발표한 ‘행복의 정복(The Conquest of Happiness)’과 미국 의사 조지 베일런트(George Vaillant·1934~ )가 2002년에 발표한 ‘행복의 조건(Aging Well)’이 그것이다.
영국의 수학자이자 철학자, 역사가, 사회 비평가인 버트런드 러셀. [Nationaal Archief]
‘행복의 정복’의 주요 내용
러셀은 20세기를 대표하는 철학자 가운데 한 사람이다. 20세기 철학의 주요 흐름 중 하나였던 분석철학을 창시했다. 또 수학자·논리학자·작가였고, 핵무장 반대운동을 벌인 평화운동가였다. 1950년에는 인도주의와 사상의 자유를 옹호했던 업적으로 노벨문학상을 받았다.러셀은 엄밀한 논리를 추구한 철학자였지만, 시민들에게 친숙한 사상가이기도 했다. 러셀이 시민들에게 널리 알려진 계기 중 하나는 ‘행복의 정복’이란 책을 통해서였다. 철학은 행복을 다루는 대표적 학문이다. 러셀이 철학자이기에 행복에 관한 책을 내놓은 것은 자연스러운 것이었지만, 전통적인 관념철학자가 아닌 논리적인 분석철학자가 행복론을 제시한 것은 이채로운 일이었다.
행복의 정복, 버트런드 러셀 지음, 김병호 옮김, 집문당 [Yes24]
책은 크게 두 부분으로 나뉜다. 제1부가 ‘불행의 원인’을 살펴본다면, 제2부는 ‘행복의 원인’을 탐색한다. 당연한 말이지만 행복해지기 위해서는 불행해지지 말아야 한다. 불행하지 않다는 것이 행복하다는 것을 증거하지는 않지만, 불행을 피하는 것은 행복을 구하는 출발이 될 수 있다.
먼저 러셀은 불행의 여러 원인을 주목한다. 그가 열거한 원인의 목록은 이유 없는 불행, 경쟁, 권태와 자극, 피로, 질투, 죄의식, 피해망상, 대중 여론의 공포다. 이 가운데 경쟁, 권태와 자극, 피로, 질투, 죄의식, 피해망상이 불행을 안겨주는 것은 두말할 필요가 없다. 이유 없는 불행은 구체적 원인이 없는데도 불행하다고 느끼는 ‘낭만주의자 바이런식 불행’을 지칭하고, 대중 여론의 공포는 다른 사람들의 평가에서 비롯되는 두려움을 의미한다.
‘행복의 정복’이 갖는 설득력은 불행을 설명하는 러셀의 접근에 있다. 러셀은 개인적 차원의 심리적 요인과 사회적 차원의 구조적 요인을 두루 고려한다. 권태와 자극, 피로, 질투, 죄의식, 피해망상, 대중 여론의 공포가 심리적 요인이라면, 경쟁은 사회적 요인이다. 예를 들어, 러셀은 질투가 인간의 심리적 본성 가운데 가장 불행한 것이라고 말한다. 자신의 장점에서 즐거움을 찾지 않고 다른 사람의 장점으로부터 괴로움을 갖는 게 질투의 본질이다.
러셀이 이 책을 쓴 1930년에는 자본주의 경쟁에 대한 사회학적 분석과 프로이트 정신분석학에 대한 심리학적 분석이 이미 널리 수용되고 있던 시절이다. 예를 들어, 러셀에 따르면 인간은 생존하기 위해 경쟁을 해야 한다. 이 생존을 위한 경쟁은 곧 성공을 위한 경쟁이다. 그런데 성공이 행복의 모든 것은 아니다. 성공을 위해 치열한 경쟁을 벌이는 과정에서 모든 것을 희생하게 되고, 이 희생을 무릅쓴 성공은 인간을 행복이 아닌 불행으로 이끌게 된다. 러셀은 말한다.
“경쟁의 철학 때문에 오염되는 것은 일만이 아니다. 여가도 마찬가지로 오염된다. 조용히 신경을 안정시키는 여가는 권태로운 것으로 여기게 된다. 결국 여가의 경우에도 끝없는 가속이 필요하게 될 것이고, 그 종착점은 마약 복용과 탈진 상태가 될 것이다.”
그렇다면 어떻게 행복해질 수 있을까. 러셀은 행복으로 가는 여러 요인을 주목한다. 그에 따르면 열정, 애정, 가족, 일, 비인격적인 관심, 노력과 체념 사이의 균형이 행복으로 인도하는 길이다. 이 가운데 열정, 애정, 가족, 일이 행복을 안겨준다는 것은 두말할 필요가 없다. 여기에 더해 비인격적인 여러 종류의 폭넓은 관심과 상황에 따른 적절한 체념 역시 행복에 기여한다. 불가능한 꿈과 희망을 선선히 포기하는 체념이 행복을 가져다줄 수 있다는 주장은 상당한 공감을 안겨주는 견해다.
러셀은 행복이 외부 환경과 자기 자신 모두에 연관돼 있다고 지적한다. 그리고 ‘행복의 정복’에서는 자기 자신과 관련된 부분만 다루고 있다고 고백한다. 이러한 러셀의 접근은 행복에 대한 주관적 해석의 한계를 가질 것이다. 그러나 자기 자신이 행복하다고 느끼지 않는다면, 외부 환경이 아무리 좋더라도 행복을 성취하기 어렵다. 러셀은 말한다.
“행복한 사람은 자유로운 애정과 폭넓은 관심을 가지고 객관적으로 살아가는 사람이다. 그는 이런 애정과 관심을 통해서, 또한 이런 애정과 관심을 베풀면 자신도 다른 많은 사람들의 애정과 관심의 대상이 된다는 사실을 통해서 자신의 행복을 확고히 한다.”
‘행복의 정복’이 전하는 메시지는 다른 사람과 사물에 대한 관심 및 애정이 행복을 가져다준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 자기 내면에 과도하게 침잠하지 말고 바깥 세상에 대해 열정을 발휘하는 것, 내면보다 외부 세계를 자유롭고 폭넓게 사랑하는 것이 행복이라고 러셀은 결론짓는다.
이러한 러셀의 행복론은 일견 평범하다. 숱한 행복론이 차고 넘치는 현재의 시점에서 진부하다고 볼 수도 있다. 그러나 하늘 아래 새로운 것은 없는 법이다. 행복이 멀리 있는 신기루가 아닌 가까이 있는 파랑새라면, 러셀의 행복론은 그 ‘평범 속의 통찰’을 선사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행복의 조건’의 주요 내용
베일런트는 정신과 전문의이자 의과대학 교수다. 그의 이름이 알려지기 시작한 것은 세계에서 가장 오랫동안 진행된 성인발달 연구를 통해서였다. 그는 42년 동안 ‘하버드대학 성인발달 연구’의 책임자를 맡았고, 이 연구를 통해 행복한 삶에 대한 설득력 있는 담론을 제시했다.여기서 베일런트를 주목하는 까닭은 세 가지다. 첫째, 그는 행복의 대표적 전도사다. ‘행복의 지도’ ‘행복의 조건’ ‘행복의 완성’ ‘행복의 비밀’ 등의 저자다.
둘째, 그의 행복론은 장기간에 걸쳐 진행한 실제적 연구에 기반한다. 이 연구는 성인 남녀 814명의 삶을 1938년부터 70여 년간 추적 조사한 것이다. 그만큼 객관성과 타당성을 갖고 있는 것으로 평가된다.
행복의 조건, 조지 베일런트 지음, 이덕남 옮김, 프린티어 [Yes24]
하버드대 의대 정신과 의사로 하버드대 건강센터에서 성인발달 연구소장을 지낸 조지 베일런트. [alchetron.com]
베일런트의 분석이 기반하는 자료는 앞서 말한 성인발달 연구다. 이 연구는 구체적으로 세 집단을 조사 대상으로 한다. 하버드대 졸업생 268명, 보스턴에 거주하는 청소년 456명, 터먼 연구에서 추린 천재 아동 출신 여성 90명이 그들이다.
이 가운데 베일런트가 크게 의존하는 것은 하버드대 졸업생 표본이다. 이 표본 연구는 기부자의 이름을 따와 ‘그랜트 연구’라고도 불린다. 연구 대상자들의 정신건강과 삶을 주목한 이러한 전향적 종단 연구는 한 개인에게 과거가 미래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를 생생히 분석할 수 있는 강점을 가진다.
이러한 성인발달 연구에서 베일런트가 사용한 분석적 도구는 정신분석학자 안나 프로이트가 주조한 개념인 ‘방어기제’다. 방어기제란 일상적 삶에 큰 영향을 미치는 본능과 양심 등이 외부 현실과 마주해 발생시키는 갈등을 해결하기 위해 자아가 사용하는 심리적 메커니즘을 말한다. 어떤 방어기제를 사용하느냐에 따라 한 개인의 삶은 행복해질 수도, 불행해질 수도 있다.
베일런트는 발달심리학자 에릭 에릭슨의 이론을 참조해 한 사람의 발달과정에 여섯 가지 과업이 존재한다고 파악한다. 정체성 확립, 친밀감 발전, 직업적 안정, 생산성 과업, 의미의 수호자, 통합이 그것이다. 이런 일련의 발달 과정에서 특히 무의식적 방어기제가 어떻게 작동하는지를 그는 추적하고 있다.
그렇다면 베일런트에게 행복이란 뭘까. ‘행복의 조건’에서 그가 말하는 행복한 삶이란 ‘성공적인 노화’다. 사랑하고, 일하며, 새로운 사실을 배우고, 사랑하는 이들과 함께 시간을 보내는 게 성공적인 노화라고 그는 개념화한다.
흥미로운 것은 성공적인 노화의 조건에 대한 베일런트의 발견이다. 그에 따르면, 조상의 수명, 콜레스테롤, 스트레스, 부모의 특성, 유년기의 성격, 사회적 유대관계는 성공적 노화와 직접적인 연관성이 없다. 우리가 통념으로 갖고 있는 것들에 그는 이견을 제시하는 셈이다.
베일런트의 분석에서 주목할 것은 성공적인 노화를 예측 가능하게 하는 일곱 가지 요인이다. 그 가운데 가장 중요한 것이 ‘성숙한 방어기제’라고 그는 주장한다. 이어 교육, 안정된 결혼 생활, 금연, 금주, 운동, 알맞은 체중이 뒤따른다. 이 일곱 가지 요인이 그가 펼쳐 보이는 행복의 구체적 조건이라고 할 수 있다.
‘행복의 조건’을 발표한 후 10년이 지나 베일런트는 ‘행복의 비밀’을 다시 내놓았다. ‘행복의 비밀’ 역시 사례 조사 연구가 주요 내용을 이룬다. ‘행복의 비밀’에서 그는 성인발달 연구가 안겨준 교훈을 여섯 가지로 정리한다.
첫째, 인간에겐 도덕적·문화적 편견과 어느 정도 무관한 긍정적 정신건강이 존재한다. 둘째, 심리적 적응을 위한 인간의 대응 방식을 이해하는 것은 중요하다. 셋째, 성공적 삶을 결정하는 가장 중요한 요소는 사랑이다. 넷째, 사람은 누구나 변할 수 있고 또 성장할 수 있다. 다섯째, 잘되고 있는 일이 잘못되는 일보다 사람의 삶에 더 중요한 영향을 미친다. 여섯째, 전향적 종단 연구는 우리 인생사에 대한 그 나름대로의 해답을 안겨준다.
이 가운데 베일런트가 특히 강조하는 것은 세 번째 교훈이다. 그에 따르면, “행복은 사랑을 통해서만 온다. 더 이상은 없다.” 인생에서 성공한 사람 대부분은 서른이 되기 전에 사랑을 알았고, 그 덕분에 성공할 수 있었다. 그런데 여기에 더해 중요한 것은 네 번째 교훈이다. 상처를 딛고 성장할 가능성은 언제나 열려 있다는 것이다.
베일런트 행복론의 의의는 성공적인 노화라는 행복에 대한 정의에 집약돼 있다. 오늘날 100세 시대를 맞이해 누구나 품는 소망의 하나는 ‘잘 늙어가기’일 것이다. 자신에게는 물론 가까운 이들에게, 나아가 같은 시대를 살아가는 이들에게 의미 있는 존재가 될 수 있다면, 그러한 성공적 노화가 행복이라는 베일런트의 행복론에 이의를 제기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다시 행복을 묻는다
이쯤에서 처음 제기했던 문제로 되돌아가 보자. 행복이란 과연 뭘까. 표준적 답변으로는 물질적 만족과 정신적 기쁨을 먼저 생각해 볼 수 있다. 여기서 물질적 요소가 행복의 일차적 조건임은 누구나 인정하는 사실일 것이다. 어떤 이들은 물질적 요소가 행복의 조건과 무관하다고 생각하지만, 다수의 시민은 먹고사는 문제에 어려움을 겪을 경우 행복하다고 느끼지 않을 것이다.이에 대해서는 저널리스트 에릭 와이너의 지적이 좋은 참고 자료가 된다. 와이너는 2008년 발표한 ‘행복의 지도’에서 돈으로 행복을 사는 것이 1년에 1만5000달러 정도까지 가능하다고 주장한다. 이 정도의 금액이면 의식주의 물질생활을 충족시킬 수준이고, 이 수준을 넘어서면 돈으로 행복을 사는 것이 어렵다는 것이다. 화폐가치가 조금씩 하락하는 추세를 고려하면 2024년 현재에는 그 금액이 더 올라갈 수 있을 테지만 말이다.
와이너를 포함해 많은 이들이 이구동성으로 강조하는 것은 물질적 요소가 행복의 필요조건이지 충분조건은 아니라는 점이다. 물질적 조건이 충족된 다음에는 주관적 감정이나 제도화된 문화 등 비물질적인 마음의 상태가 행복의 새로운 필요조건으로서 의미를 가진다. 요컨대, 물질적 풍요와 마음의 풍요가 결합함으로써 행복의 충분조건은 완성된다.
‘행복의 정복’이 갖는 의의는 이러한 마음의 풍요에 대한 설득력 있는 설명을 제공한다는 점이다. 그 함의는 세 가지 측면에서 살펴볼 수 있다.
첫째, ‘행복의 정복’이 갖는 미덕은 앞서 말한 ‘평범 속의 통찰’에 있다. 러셀의 결론은 간명하다. 자신에게 지나치게 몰두하지 않고 세상에 폭넓은 관심을 갖는 게 행복으로 가는 길이라는 것이다. 한 걸음 물러서 볼 때 이러한 결론은 소박해 보인다. 그러나 다시 생각해 보면 자신에 대한 과도한 집착은 결국 절망과 환멸, 나아가 불행으로 귀결될 수 있다. 관심과 열정을 내부가 아닌 외부에 쏟을 때 행복을 쟁취할 수 있다는 주장은 평범 속의 통찰이라 할 수 있다. 이 점에서 러셀의 행복론은 행복의 철학으로서 의미를 가진다.
둘째, ‘행복의 정복’이란 책 제목이 암시하듯 러셀은 행복을 싸워서 쟁취해야 할 대상으로 파악한다. 그에 따르면, 이 세상은 피할 수 없거나 피할 수 있는 불행, 병, 정신적 갈등, 가난, 악의 등으로 가득 차 있다. 이러한 세상에서 행복을 구하기 위해서는 개인적 불행에 대처할 방법을 찾아내고 행복에 이르는 방법을 실천해야 한다. 이 점에서 러셀의 행복론은 행복의 방법론으로서 의미를 가진다.
셋째, ‘행복의 정복’이 갖는 21세기 현재적 의미를 주목할 필요가 있다. 이 책은 1930년에 발표한 탓인지 가부장주의 사고를 담고 있다. 읽어가다 보면 불편한 구절이 적잖게 눈에 띈다. 그러나 전체적으로 볼 때 행복에 대한 러셀의 접근은 오늘날에도 의미 있는 교훈을 안겨준다. 그 교훈은 한마디로 자기 관리와 개방적 태도가 행복에 이르는 지름길이라는 것이다. 이 점에서 러셀의 행복론은 행복의 사회심리학으로서 의미를 가진다.
한편 베일런트의 행복론은 오늘날 100세 시대의 도래를 지켜볼 때 특별한 의미를 던져준다. 그 함의는 세 가지 측면에서 살펴볼 수 있다.
첫째, 자아의 힘이다. ‘행복의 지도’의 원제목은 ‘자아의 지혜(The Wisdom of the Ego)’이고, ‘행복의 조건’의 원제목은 ‘잘 늙어가기’다. ‘행복의 완성’의 원제목은 ‘정신적 진화(Spiritual Evolution)’이며, ‘행복의 비밀’의 원제목은 ‘경험의 승리(Triumphs of Experience)’다. 이러한 원제목들이 함의하는 바는, 행복한 삶이란 살아가는 과정에서 만나는 예상하거나 예상하지 못한 고통에 개인들이 어떤 태도를 보이느냐에 달려 있다는 점이다.
둘째, 구체성의 힘이다. 베일런트 연구의 장점은 생생한 사례들에 있다. 그가 들려주는 구체적 서사로부터 위로와 지혜를 얻을 수 있다. 사람의 삶이란 같지 않고, 또 구체적인 것이다. 추상적 담론은 한때 위로를 안겨주더라도 지속성을 갖기 어렵다. 오히려 나와 다른, 그리고 구체적인 삶의 이야기는 불행을 헤치고 행복으로 나아가는 데 작지 않은 용기를 선사한다.
셋째, 시간의 힘이다. 베일런트에 따르면, 삶의 후반부는 우리 스스로 결정한다. 성숙은 평생에 걸쳐 진행되는 긴 과정이다. 베일런트가 주목한 데이비드 굿하트의 삶은 그 적절한 사례다. 굿하트의 삶은 난관의 연속이었지만 그는 유머와 온화함으로 이를 극복해 갔다. 이러한 굿하트의 인생을 ‘삶의 불연속성을 뛰어넘은 회복탄력성의 화신’이라고 베일런트는 평가했다.
개인 못지않게 구조를 중시하는 사회학자인 내가 보기에 러셀과 베일런트의 행복론에 모두 동의하긴 어렵다. 인간이 사회적 존재라는 점에서 사회적 조건이 행복에 미치는 영향을 간과할 수 없기 때문이다. 앞서 지적한 물질적 조건의 충족은 물론이거니와 평범한 시민들에게 주어진 사회적 조건의 극복은 쉽지 않은 일이다. 자신의 삶이 성공하는 삶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과 실패하는 삶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 가운데 어느 쪽이 더 많은 비중을 차지하고 있을까.
이러한 평가에도 불구하고 러셀의 행복론과 베일런트의 행복론은 우리 시대에 작지 않은 의미를 안겨준다. 러셀의 행복론이 열린 세계를 지향하는 자기 의지의 철학이라면, 베일런트의 행복론은 건강한 삶을 지향하는 긍정의 심리학이다. 삶에서 연속적인 절망은 없다. 삶에 대한 긍정적 태도와 의지가 행복한 인생을 보장한다는 말이 삶의 구조적 조건을 고려할 때 절반만 참이라 하더라도, 우리 인간은 자신의 삶을 행복하게 살아갈 권리가 있다.
행복론과 한국 사회
2024 세계행복보고서에 따르면 세계 143개국 가운데 핀란드가 1위를 차지했다. 사진은 핀란드의 수도 헬싱키에 위치한 헬싱키 대성당. [주핀란드 대한민국 대사관 홈페이지]
이 보고서에 따르면, 2024년 올해 우리나라 행복도는 세계 143개국 가운데 52위를 차지했다. 지난해와 비교하면 5단계 올랐다. 1위를 차지한 나라는 핀란드였고, 덴마크·아이슬란드·스웨덴이 뒤를 이었다. 미국, 일본, 중국은 각각 23위, 51위, 60위를 차지했다.
SDSN이 활용한 기준은 1인당 국내총생산(GDP), 사회적 지원, 기대수명, 사회적 자유, 관용, 부패에 대한 인식 등이었다. 조사 직전 3년 동안(2021~2023년) 자료를 기반으로 점수와 순위를 매긴 거였다.
이 자료에서 주목할 것은 젊은 세대와 고령 세대의 행복도다. 우리나라의 경우 30세 미만 청년층의 행복도는 전체 평균과 같은 52위를, 60세 이상 노인 행복도는 전체 평균보다 낮은 59위를 차지했다. 우리나라 노인빈곤율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가운데 1위를 기록하고 있음을 고려할 때, 고령 세대의 이러한 낮은 행복도는 예견할 수 있는 일이었다.
이러한 자료가 함의하는 바는 우리나라가 세계에서 상대적으로 행복한 나라라고 말하긴 어렵다는 것이다. 특히 60세 이상의 노인 행복도를 다른 나라와 비교할 때 미국과 일본은 각각 우리보다 높은 10위와 36위를 기록했다. 최근 우리나라에서도 본격적인 100세 시대가 열린 만큼 행복한 노년을 어떻게 일궈갈 것인지는 중대한 국가적 과제라 할 수 있다.
돌아보면 우리 현대사는 경제적 산업화와 정치적 민주화 모두 성공적으로 이끌어왔다. 물질적 빈곤으로부터 벗어나고 민주주의를 누려온 것에 이어 이제 그다음의 국가 목표는 국민 다수가 행복한 나라를 만드는 데 있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고령 세대를 위시해 국민 다수가 행복한 삶을 누리기 위해서는 경제적 조건은 물론 정신적 조건을 모두 성취해야 한다. 행복의 경제적 조건을 만드는 것이 국가의 과제라면, 그 정신적 조건을 만드는 것은 개인의 과제일 것이다. 국가의 과제와 개인의 과제가 분리되는 것은 아니지만, 국가와 개인 모두 각자의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러셀과 베일런트의 행복론이 우리 사회에 갖는 함의가 바로 여기에 있을 것이다. 러셀과 베일런트는 행복한 삶을 이루기 위해 합리적이고 성숙한 태도와 의지가 중요하다고 역설한다. 이러한 태도와 의지는 일차적으로 개인에게 달린 것이며, 따라서 각각의 개인은 자신들의 삶에 대한 책임감을 발휘해야 한다.
한 개인의 삶에서 행복만큼 중요한 가치는 없을 것이다. 다시 한번 더 행복이 무엇이냐는 질문을 던져보면, 오래전 시인 김현승이 ‘지각(知覺)-행복의 얼굴’(1975)에서 말한 행복의 모습이 떠오른다. 김현승은 행복을 다음과 같이 노래한다.
“내게 행복이 온다면 / 나는 그에게 감사하고 / 내게 불행이 와도 / 나는 또 그에게 감사한다. // 한번은 밖에서 오고 / 한번은 안에서 오는 행복이다! // 우리의 행복의 문은 / 밖에서도 열리고 / 안에서도 열리게 되어 있다. // 내가 행복할 때 / 나는 오늘의 햇빛을 따스히 사랑하고 / 내가 불행할 때 / 나는 내일의 별들을 사랑한다.”
김현승은 행복은 물론 불행에도 감사한다고 말한다. 불행을 행복으로 여길 수 있는 것은 오늘의 불행을 내일의 희망을 생각하며 견뎌낼 수 있기 때문이다. 오늘의 햇빛과 내일의 별들을 사랑할 수 있는 행복, 그런 행복한 삶이 열리길 바라는 이가 나만은 아닐 것이다. 우리 사회에서 행복한 삶에 대한 담론과 정책이 더욱 토론되고 모색되길 나는 소망한다.
‘김호기의 고전으로 읽는 21세기’는 이번 호로 마칩니다. 그동안 읽어주신 독자분들께 깊은 감사를 드립니다.
김호기
● 1960년 경기 양주 출생
● 연세대 사회학과 졸업. 독일 빌레펠트대 사회학 박사
● 미국 스탠퍼드대 아태연구센터 코렛 펠로
● 現 연세대 사회학과 교수
● 저서 : ‘현대 자본주의와 한국사회’ ‘한국의 현대성과 사회변동’ ‘한국 시민사회의 성찰’ ‘South Korea's Democracy in Crisis’(신기욱과 공편) 外