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러다 대구가 어떻게 되는 것 아닌가” 시민들 절박
대구·경북 행정통합, 시간 끌 여유 없어…신속히 추진
‘지·산·학·연 협력체제’로 교육이 채용으로 이어지게
홍준표 정책 중 ‘2차 공공기관 이전 추진’ 적극 계승
수도권은 배 터져 죽고, 지방은 배고파 죽는 현실 바꿔야

4월 11일 김부겸 더불어민주당 대구시장 후보가 대구 중구 일제강점기 저항시인 이상화 생가터 ‘라일락뜨락1956’에서 ‘신동아’와 인터뷰하고 있다. 이상윤 객원기자
시인 이상화는 꼭 100년 전인 1926년 ‘개벽’ 70호에 발표한 시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에서 일제에 대한 저항 의식과 조국에 대한 애정을 절실하고 소박한 감정으로 노래했다. 그로부터 19년 만에 대한민국은 광복을 맞았다.
3월 30일, 6·3지방선거를 앞두고 대구광역시장 출마를 선언한 김부겸 전 국무총리는 이렇게 말했다. “대구가 국민의힘을 버려야 진짜 보수가 살아난다.”
김 전 총리는 “공천만 받으면 당선되는 경쟁 없는 독점 구조가 ‘보수의 심장’ 대구 정치를 퇴보시키고 있다”며 “이번 지방선거에서 진짜 보수가 살아날 수 있도록 대구 시민이 새로운 선택을 해달라”고 호소했다.
2012년 3선을 기록한 경기 군포를 떠나 대구로 내려와 네 번 도전해 한번 당선한 그는 “‘양 날개 정치’로 대구 정치를 혁신하겠다”며 ‘보수의 아성’이자 국민의힘 지지세가 강한 대구시장 선거에 더불어민주당 후보로 다섯 번째 도전에 나섰다. 그의 도전에 6월 3일 대구 시민은 어떻게 화답할까. 4월 11일 오후 이상화 시인 생가터인 대구 중구 ‘라일락뜨락 1956’에서 김부겸 민주당 대구시장 후보를 만났다.
대구에서 직접 만나본 시민들 반응이 어떤가.
“한마디로 ‘절박함’ 그 자체다. 10여 년 전만 해도 시민들 마음속엔 일말의 낙관론 같은 게 있었다. 통계적으로 지역내총생산(GRDP)이 전국 꼴찌라는 소리가 나와도 ‘우리 대구가 옛날에 벌어놓은 게 있는데 설마 어떻게 되겠나’ 하셨다. 그때는 위기가 피부에 와닿는 실체가 아니라 숫자로만 느껴졌던 것이다. 그런데 지금은 상황이 완전히 달라졌다. 주위 자영업자들이 줄줄이 망해 나가고, 경제가 축소되는 게 눈앞에 현실로 닥친 것이다. 무엇보다 아들딸들이 대학 졸업하자마자 일자리를 찾아 서울로 떠나는 모습을 보면서 ‘아, 이게 진짜 위기구나’하고 절감하고 계신다. ‘이러다 우리 대구가 정말 어떻게 되는 것 아닌가’ 하는 절박감을 시민들이 많이 호소한다.”
“이번 대구시장 선거, 대구 역사의 분기점 될 것”
그런 절박함이 이번 선거에 ‘변화’의 계기로 이어질 수 있을까.“이번에는 정말 바뀌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대구분들이 저를 지지해 주시는 이유 중 하나가 ‘합리적이고 말이 통한다’고 여기기 때문 아닐까 싶다. 누구를 만나도 ‘이제 한번 제대로 바꿔보자’는 얘기를 자연스럽게 꺼낼 수 있는 분위기는 형성돼 있다.”
보수 색채가 강한 대구에서 민주당 후보를 지지하는 것이 선뜻 내키지 않을 수 있는데….
“그래서 시민들께 이렇게 말씀드린다. ‘여러분이 사랑하는 그 보수정당, 지금 제 역할 하고 있습니까? 표만 받아 가고 방치하지 않았습니까?’라고. ‘이번에는 대구를 위해 김부겸을 부려먹으십시오. 그게 진짜 보수를 살리는 길입니다’라고 설득하고 있다. 누가 더 지역을 잘 살릴 사람인지 ‘잘하기 경쟁’을 하자는 거다.”
김 후보는 “이번 대구시장 선거는 대구 역사의 분기점이 될 것”이라고 의미를 부여했다.
“원래 대구는 섬유와 기계 산업으로 대한민국 산업화를 이끌던 도시였다. 서울에서도 서문시장에 물건 떼러 올 정도로 도시에 활력이 넘쳤다. 산업 전환기에 발맞춰 신산업을 발굴했어야 했는데 그러지 못했다. 기반 산업이 없으니 일자리가 없다. 일자리가 없으니 청년이 떠난다. 지난 15년간 인구 15만 명이 줄었다. ‘하강 곡선을 상승으로 바꾸기 위해 이번에야말로 대구를 살릴 진짜 일꾼 김부겸을 써보이소’라고 호소하고 있다.”
대구가 이 정도로 어려워진 이유가 어디에 있다고 보나.
“정치가 제 역할을 못한 원인이 크다. 보수정당은 지난 30년간 표만 받아 가고 정작 대구에 돌려준 게 없다. 특정 정당 공천만 받으면 당선되기 때문에 기본적으로 일을 열심히 안 한다. 그래놓고 당이 어려워지면 서문시장 와서 ‘당을 지켜달라’고 읍소한다. 당이 대구를 지켜줘야지, 왜 언제까지 시민이 특정 정당을 지켜줘야 하나. 이번엔 대구 시민이 회초리를 들어야 한다. 그래야 대구가 산다. 진짜 보수가 산다.”
김부겸의 킬러 콘텐츠? 중앙정부 설득력
선거 초반에는 ‘바꾸자’는 분위기가 조성됐다가도 선거 종반으로 치닫고 다자 구도가 양자 구도로 좁혀지면 막판에 보수 결집이 일어날 가능성이 높다. 이를 돌파할 김부겸만의 ‘킬러 콘텐츠’는 무엇인가.“대구 선거는 늘 막판에 보수 결집이 있었다. 하지만 지금 대구는 그 관성보다 훨씬 더 절박하다. 결국 ‘쓰임새’와 ‘실리’로 승부를 보겠다. 제 킬러 콘텐츠는 ‘중앙정부 지원을 이끌어낼 역량’이다. 지금 대구 경제는 너무 메말라 있다. 경제 재도약을 위해 펌프질을 하려면 ‘마중물’이 필요한데 결국 예산과 정책, 즉 중앙정부 지원에서 나온다. 대통령 임기가 4년 남았고, 시장 임기도 4년이다. 이 금쪽같은 시간에 중앙정부랑 싸우고 찌그락 바그락 할 여유가 없다. 행정안전부 장관, 국무총리를 지낸 경력을 살려 여당과 야당, 중앙정부를 모두 설득해 내겠다. ‘이럴 때 써먹으라고 김부겸 놔둔 것 아니냐, 지금 안 쓰면 언제 쓰시겠냐’는 효용론으로 승부내겠다.”
12년 전 대구시장 도전 때와 비교했을 때 이번 선거는 어떤 점이 다른가.
“아유, 하늘과 땅 차이가 난다. 그때는 시장 후보 하나 빼고 밑을 받쳐 줄 후보가 거의 없었다. 30개 선거구 중 시의원 후보가 고작 4~5명 나왔으니, 하부 구조가 아예 없었던 셈이다. 그런데 이번에는 다르다. 구청장부터 시의원, 구의원까지 거의 전 지역구에 후보를 냈다. 시민들이 ‘이번에는 민주당 한번 찍어볼까?’ 하는 마음을 끝까지 유지할 수 있도록 받쳐줄 든든한 대오가 형성돼 있다.”
대구·경북 행정통합, 신속하게 추진해야
대구·경북 행정통합 문제도 뜨거운 감자다. 당선되면 통합을 추진할 예정인가.“통합은 선택의 문제가 아니라 생존의 문제다. 1년에 5조 원을 지원받을 기회가 있는데, 지지부진하게 시간 끌 여유가 없다. 신속하게 속도를 내서 추진해야 한다. 그렇게 (통합) 해서 확보한 재원으로 미래 산업에 투자해 질 좋은 일자리를 만들어야 한다. 그래야 아들딸들이 떠나지 않는 도시가 될 수 있다.”
질 좋은 일자리를 강조했는데, 대구의 미래 먹거리로 구상하는 구체적 그림이 있나.
“대구를 디지털 산업화의 주역 도시로 다시 도약시키겠다. 대구를 ‘인공지능(AI) 로봇 수도’ ‘인공지능 전환(AX) 수도’로 만들겠다. 대구가 강점을 가진 기계, 금속, 자동차 부품, 섬유 같은 전통 제조업과 서비스업에 AI 기술을 입혀 미래형 생산구조로 전환해야 한다. 백화점식 투자가 아니라 우리가 잘하는 것에 집중해서 부가가치를 높여야 한다. AI 로봇과 미래 모빌리티, 의료·헬스케어에 집중하겠다. 창업과 문화산업도 청년 일자리의 중요한 축이다. 경북도청 이전 부지에 ‘아시아 글로벌 청년 창업타운’을 조성해 아시아 시장 진출을 위한 원스톱 창업 지원 시스템을 구축하겠다. K-문화 콘텐츠 산업 육성을 위해 국립뮤지컬콤플렉스를 조성하고, 현장 중심의 실무형 인재를 체계적으로 양성하는 기반도 함께 갖추겠다. 대구에는 우수한 공학 교육 인프라가 마련돼 있다. 이를 바탕으로 대구권 대학과 연구소, 민간 기업이 함께하는 ‘지·산·학·연 협력체계’를 구축해 교육이 곧바로 채용으로 이어지는 선순환구조를 만들겠다. 대학 시절부터 꿈과 일자리가 연결되도록 해 청년들이 미래를 꿈꿀 수 있도록 하겠다.”
인터뷰는 김 후보가 문화예술인 간담회를 마친 직후 진행됐다.
문화예술인 간담회에서 주로 어떤 내용이 나왔나.
“오늘 만난 대구 문화예술인들이 지원이 너무 형편없다고 토로하시더라. 제 철학은 김대중 대통령께서 말씀하신 것처럼 ‘지원은 하되 간섭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문화예술 분야에 투자한다고 곧바로 결과가 튀어나오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시민들의 상처받은 자존심을 회복하고 자부심을 높이는 데 문화예술이 기여할 수 있는 부분이 있다. 일례로 (인터뷰를 진행한) 이곳처럼 이상화 시인과 이상정 독립운동가 생가와 주변에 있는 삼성그룹 모태 ‘삼성상회’와 창업주 이병철 회장의 살림집 등을 발굴해 대구가 가진 자산을 스토리텔링화해서 관광자원화하는 디테일한 작업도 병행할 필요가 있다. 대구에 있는 간송미술관 같은 자산도 적극 활용해야 한다. 문화예술 분야는 행정이 이끌어가는 게 아니라 문화예술인들이 자발성과 창의성을 맘껏 발휘할 수 있도록 뒷받침하는 게 중요하다.”
‘대구경북통합신공항’ 추진 방식 수정해야
전임 홍준표 시장의 정책 중 계승할 부분과 과감히 수정할 부분을 꼽는다면.“계승할 부분은 ‘2차 공공기관 이전 추진’이다. 이는 이재명 정부의 ‘5극(極) 3특(特)’ 체제와도 맥을 같이한다. 수도권 블랙홀을 막기 위해 남부권 경제 거점을 만드는 일은 반드시 이어가야 한다. 반면 수정할 부분은 ‘대구경북통합신공항’ 추진 방식이다. 현재의 ‘기부대양여’ 방식은 이전 부지 개발수익으로 사업비를 충당하는 구조인데 수익성 한계가 분명하다. 이 때문에 첫 삽도 뜨지 못하고 있다. 기부대양여 방식을 계속 추진한 것은 실현 가능성보다 형식에 치중한 것으로 보인다.”
어떻게 바꿀 계획인가.
“장기간이 소요되는 대규모 사업 특성상 대구시 재정만으로는 어려운 게 현실이다. 지금이라도 국비를 확보하고 재원 구조를 다각화해야 한다. 관련 입법도 중앙정부와 국회의 협조를 적극 이끌어내야 한다. 필요하다면 공공자금관리기금(공자기금)을 빌려서라도 토지 보상부터 빨리 시작해 부지를 매입해야 한다. 골든타임을 놓치면 안 된다. 또한 대구의료원 등 공공의료 정책도 효율성만 따질 게 아니라 감염병 대응과 취약계층 보호라는 본질에 충실하도록 공공성을 강화하는 방향으로 재설계하겠다. 정책 추진 과정에 충분한 공론화와 시민 의견 수렴이 부족했다는 불신을 씻어내겠다.”
출범 1년을 맞는 이재명 정부에 대해선 대구 시민들이 어떻게 평가하던가.
“12·3비상계엄 사태 여파 등 어려운 조건에서 출범했지만, 실용주의 노선으로 빠르게 안정화했다고 긍정 평가한다. 코스피 5000 시대 진입이나 실용 외교 등 성과에 대해 대구 시민들도 ‘잘한다’고 평가하신다. 특히 지방균형발전에 대한 대통령의 철학이 확고하다는 점이 대구로서는 큰 기회다. 장관과 총리 시절 국비 비중을 70대 30으로 바꾸려다 75대 25에서 멈췄는데, 이재명 정부에선 확실히 지방재정 배분을 늘려줄 거라 기대한다. 중앙정부 허락 없이는 자리 하나 못 만드는 구조도 획기적으로 바꾸어야 한다.”
일각에서는 이번 시장 출마를 대권으로 가기 위한 ‘징검다리’로 보기도 한다.
“터무니없는 얘기다. 임기를 마친 4년 뒤엔 진이 다 빠져 있을 거다. 대구에 마지막 땀 한 방울까지 바치러 왔다. 정치 인생에서 계산적인 선택을 해본 적이 없다. 3선 하던 군포를 버리고 대구로 내려올 때 다들 말렸지만, 그 뒤로 네 번 도전해 겨우 한 번 당선했다. 정계 은퇴까지 생각했던 저를 다시 불러낸 건 깊게 파인 대구의 주름이었다. 1인당 GRDP가 30년 넘게 꼴찌라는 숫자 뒤에 숨겨진 시민들의 고단한 얼굴을 보며 도저히 편안하게 은퇴 생활을 할 수 없었다. 욕심부리고 엉뚱한 생각 하고 다니면 시민들이 귀신같이 알아보신다. 오로지 대구를 다시 살려놓고 싶은 열망뿐이다.”
마지막으로 김부겸이 생각하는 이 시대의 소명은 무엇인가.
“지역 소멸 문제 해결과 국민 통합이다. 이 둘은 사실 하나의 문제다. 과거엔 지역주의가 문제였다면, 지금은 지역이 통째로 사라지는 시대가 됐다. 수도권은 배 터져 죽고 지방은 배고파 죽게 생겼다. 새가 양 날개로 날 듯 대한민국은 진보와 보수, 수도권과 지방이 함께 가야 한다. 한쪽이 죽어가는 나라에서 진정한 국민 통합은 불가능하다. 지역을 살리는 게 곧 나라를 통합하는 것이다. 그러려면 지방에 더 많은 권한을 줘 자치를 실현하도록 해야 한다. 그게 시대가 정치에 요구하는 가장 절박한 과제다.”
지역 소멸 해결·국민 통합이 시대적 소명
시대적 과제를 해결하려면 무엇보다 정치가 정치다워야 하는 것 아닌가.“정치는 리더십이 요체다. 정치가 방향과 방침을 결정해 줘야 행정이 그에 따라 움직인다. 뒤집어 말하면 정치인이 저지를 수 있는 가장 나쁜 행위는 아무것도 결정하지 않는 것이다. 조금만 어렵고 복잡하다 싶으면 결정을 미루고, 서로 책임을 떠넘기고 치고받으면 결국 국민의 삶이 뒷전으로 밀린다. 대구가 그 바람에 지금처럼 멍든 거다. 국민의힘은 대구 시민에 대해 무책임했다. 나는 책임지겠다. 결정하고 리드하겠다.”
김 후보는 자신의 정치적 스승인 제정구 선생의 마지막 당부를 언급했다.
“‘모순과 대립을 통한 세계의 발전은 불가능하다. 화해·상생·통합의 정치만이 의미 있는 결과를 낼 수 있다’는 제정구 선생의 그 한마디가 내 정치 철학의 뿌리가 됐다. 이념이 아니라 삶으로, 진영이 아니라 현장으로 가는 것, 그게 내가 추구해 온 일꾼 정치다. 싸움꾼이 아니라 살림꾼으로서 이념이 아니라 민생의 현장에서 침체에 빠진 대구를 다시 살려놓는 데 온 힘을 다 쏟아붓겠다. ‘정치야 일하자’는 제 신념처럼 시장이 돼 대구를 위해 제대로 일해 보고 싶다.”
김 후보는 2016년 총선 때 대구 수성구갑에 민주당 후보로 출마해 당선하며 ‘지역주의의 벽’을 한차례 허문 경험을 갖고 있다.
그런 그가 다시 도전한 6·3지방선거 대구시장 선거는 TK지역에 더 큰 변화의 바람이 부느냐 그러지 않느냐를 판가름할 중요한 시험대가 될 전망이다. 선거 결과에 따라서는 여야 정치권에 적지 않은 변화를 몰고 올 가능성이 크다. 그는 대구시장 출마 선언에서 “지금의 국민의힘은 제대로 된 보수가 아니다”라며 “대구가 살기 위해 잠시 국민의힘을 버려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런 주장에 6월 3일 대구 시민들은 어떻게 화답할까.
국민의힘 아성 대구에서 민주당 후보 김부겸에게 ‘봄’은 찾아올까.
구자홍 기자
jhko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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