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록체인 프로젝트로 세계 통화 지배하려던 메타
정부 반발에 리브라·디엠 등 모든 프로젝트 좌초
메타 프로젝트 기술, 인력 모여 만든 ‘수이’ ‘앱토스’
수이, 빠른 처리 속도로 이용자 늘려
앱토스, 대기업과 손잡고 영향력 확대

암호화폐 ‘수이(Sui)’의 개발사 미스틴랩스의 에반 청 대표. 뉴스1
리브라의 비전이 기존 암호화폐 프로젝트와 근본적으로 달랐던 지점은 ‘글로벌 통화’를 지향했다는 점이다. 이는 사실상 특정 국가의 통화 주권을 넘어선 초국가적 통화의 등장을 예고하는 것이었다.
이 거대한 비전을 실현하기 위해 메타는 스위스에 독립적 비영리기구 ‘리브라 연합’을 설립했다. 초기 연합에는 비자, 마스터카드, 페이팔, 이베이 등 28개의 세계적 금융·결제, 전자상거래 기업이 창립 멤버로 참여했다. 기성 금융시스템과 거대 기술 기업들이 연합해 새로운 경제 질서를 만들려는 시도였다.
‘디엠’으로 이름 바꿔가며 재기 노렸으나

페이스북(현 메타)이 추진했던 블록체인 프로젝트 ‘리브라(Libra)’의 로고. 뉴스1
전방위적 규제 압박은 리브라 연합의 근간을 흔들었다. 2019년 말 연합의 핵심 축이었던 주요 금융·결제 파트너사들이 연이어 탈퇴를 선언했다. 리브라 프로젝트에 대한 ‘정치적 사망 선고’와도 같았다. 궁지에 몰린 메타는 2020년 12월 프로젝트 이름을 ‘디엠(Diem)’으로 바꿨다. 디엠은 프로젝트의 규제 친화적 이미지로 쇄신을 시도했다. 실제로 디엠의 기술적 설계는 “미국 정부가 본 것 중 가장 잘 설계된 스테이블코인 프로젝트”라는 긍정적 평가를 받기도 했다.
하지만 이러한 노력에도 불구하고 규제 당국의 근본적 불신, 즉 ‘단일 거대 기업이 세계 금융 인프라를 통제해서는 안 된다’는 기조를 바꾸지는 못했다. 디엠의 공동 창업자 데이비드 마커스는 훗날 이를 ‘정치적 살해’라고 말하기도 했다. 결국 2022년 1월, 디엠 연합은 프로젝트의 공식 종료를 선언하고 모든 지식재산(IP)과 자산을 실버게이트 은행에 매각했다.
디엠 프로젝트의 좌초는, 역설적으로 블록체인 생태계에 중요한 유산을 남겼다. 프로젝트가 종료되자 수년간 세계 최고 수준의 블록체인 엔지니어와 연구원이 인력시장에 쏟아졌다. 이른바 ‘디엠 디아스포라’라 하는 이 인력들은 메타를 떠난 후 각각 ‘수이(Sui)’ ‘앱토스(Aptos)’ 등 차세대 블록체인 프로젝트를 설립했다.
이들이 공유한 가장 핵심 기술 유산은 바로 프로그래밍 언어 ‘무브’였다. 무브는 디엠 프로젝트를 위해 설계된 새로운 스마트 콘트랙트(블록체인 기반의 자동 계약) 언어다. 기존의 스마트 콘트랙트의 보안 취약점은 해결하는 동시에 계약이나 거래의 처리 속도는 더 빨랐다.
만약 리브라 프로젝트가 메타의 통제하에 성공했다면, 무브 언어와 관련된 기술은 메타의 독점 기술이 됐을 것이다. 그러나 프로젝트가 좌초하고 무브 언어와 관련 기술이 오픈소스화하면서 이 수년간의 연구 결과물은 개방형 퍼블릭 블록체인의 혁신을 가속하는 강력한 기반이 되었다.
병렬 실행으로 데이터 처리 속도 높여
수이는 메타의 암호화폐 지갑 프로젝트였던 ‘노비’의 핵심 인력인 에반 청, 샘 블랙시어, 아데니이 아비오든 등이 2021년 설립한 ‘미스틴랩스’에 의해 개발됐다. 수이의 핵심 경쟁력은 ‘병렬 실행’이다. 한 번에 여러 가지 작업을 할 수 있으니 데이터 처리 속도가 그만큼 빠르다. 송금 거래 한 건 처리하는 데 1초가 채 걸리지 않는다. 높은 속도의 비결은 합의의 최소화다. 블록체인에서 이뤄지는 데이터 이동은 모두 각자의 블록에 기록된다. 이 과정에서 각 블록에서 모순이 되는 정보가 새겨지면 각 블록이 합의를 거쳐 모순을 바로잡는다. 이용자가 많아질수록 블록은 늘어나고 합의를 거쳐야 할 사안도 많아진다.수이는 개인 간 일대일 데이터 전송은 합의 절차를 거치지 않는다. 두 사람이 합의해서 거래가 이뤄지는 만큼 합의할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그만큼 데이터 전송 속도는 빨라진다. 한 사람이 여러 명에게 데이터를 전송하거나 여러 사람이 데이터를 주고받는 식의 복잡한 거래는 합의 알고리즘을 이원화해 해결한다. 수이는 ‘나왈’과 ‘불샤크’라는 두 개의 합의 알고리즘을 사용한다. 거칠게 설명하면 나왈은 데이터 전송 내역과 합의를 담당하고, 불샤크는 각 데이터 전송의 순서를 파악한다. 한 알고리즘이 순서 파악 및 거래 합의를 전부 담당하는 것에 비해 처리 속도가 빠를 수밖에 없다.
데이터 전송 속도가 빠른 만큼 수이는 블록체인 이용자들의 각광을 받고 있다. 2025년 기준, 수이의 개발자 활동은 16% 성장하며 주요 독립 블록체인 프로젝트 중 2위를 차지했다. 2024년에는 서클과 파트너십을 통해 ‘네이티브 USDC’가 출시됐으며, 이는 수이 생태계의 유동성을 크게 향상했다. 이와 함께 수이의 총 예치 자산은 2024년 10억 달러를 돌파했으며, 2025년 11월 기준 시가총액은 73억 달러에 달한다. 누적 탈중앙화 거래소(DEX) 거래량은 700억 달러를 돌파했다.
수이는 제도권 금융시장 진입에도 도전하고 있다. 가장 주목할 만한 움직임은 기관 자금 유입의 신호탄인 SUI 현물 상장지수펀드(ETF) 추진이다. 2025년 3월, 자산운용사 카나리 캐피털(Canary Capital)은 미국 증권거래위원회(SEC)에 SUI 현물 ETF 신청서를 공식 제출했다.

블록체인 프로젝트 ‘앱토스’의 홈페이지. 암호화폐 앱토스의 총 공급량, 거래 속도 등을 한눈에 볼 수 있다. 앱토스 익스플로러 캡처
메타의 유산, 블록체인 시장 흔들다
앱토스는 디엠 블록체인 프로젝트의 개발자였던 모 샤이크와 에이버리 칭이 2021년 설립한 ‘앱토스랩스(Aptos Labs)’가 주도해 개발했다. 앱토스 역시 병렬 실행으로 높은 속도를 자랑한다. 엡토스는 수이와는 다른 방식으로 데이터 처리 속도를 높였다. 엡토스는 ‘낙관적 실행’이라는 원리를 사용한다. 각 블록에 모순이 없을 것이라는 낙관적 판단을 내리고, 일단 데이터를 처리한다. 이후 각 데이터에 문제가 있는지를 확인한다. 문제가 있는 부분만 다시 실행 및 합의를 거쳐 바로잡는 방식이다.앱토스는 금융시장을 공략하는 데 집중하며 성과를 거두고 있다. 앱토스의 가장 두드러진 성과는 ‘실물 자산 토큰화(RWA)’ 시장 공략이다. 부동산, 채권, 주식 등 자산 가치를 블록체인 기술을 이용해 암호화폐 형태로 나눠 팔 수 있도록 만드는 일이다. 세계 최대 자산운용사 블랙록의 ‘BUIDL’ 펀드에 참여했다. 이 펀드는 미국 국채, 현금, 환매조건부채권 등을 암호화폐로 나눠서 투자하는 방식으로 현재 운용액만 28억5000만 달러에 달한다. 앱토스는 미국 투자자문사 프랭클린 템플턴의 암호화폐 프로젝트 ‘BENJI’에도 참여했다. 거대 금융기관 투자상품이 앱토스를 통해 배포됨에 따라, 앱토스는 이더리움과 함께 RWA 분야 주요 블록체인으로 부상했다.
기관 공략과 더불어 앱토스는 구글과 손잡고 인공지능(AI) 구축에도 힘쓰고 있다. 자사 통합 전자상거래 플랫폼인 ‘앱토스 원(Aptos ONE)’에 들어갈 AI 기반의 수요 예측 및 고객관리 솔루션을 개발하고 있다.
암호화폐 업계의 인정도 받고 있다. 2025년 8월, 이더리움 기반의 대표적인 탈중앙화(De-Fi·은행이나 증권사 없이 블록체인을 이용해 만든 금융 서비스) 대출 프로그램 ‘에이브’가 앱토스에 배포됐다. 이는 에이브가 이더리움 계열이 아닌 블록체인에 배포된 최초의 사례로 블록체인 업계가 앱토스의 성능을 인정한 사건이다. 이외에도 앱토스는 페이팔, SK텔레콤 등과 협력해 대규모 일일 활성 사용자(DAU)를 확보, 생태계를 빠르게 확장하고 있다.
블록체인 시장에서 메타가 실패하고 남긴 유산은 수이와 앱토스라는 블록체인 프로젝트로 진화했다. 이들의 경쟁은 ‘기업형 블록체인’의 야심 찬 실험이 어떻게 블록체인의 미래로 이어지는지를 보여주는 사례를 만드는 과정이다.
두 프로젝트 간 경쟁의 첫 번째 관전 포인트는 ‘전략적 포지셔닝’이다. 앱토스는 블랙록, 구글 등 거대 파트너를 등에 업고 시장을 확보하고 있다. 반면 수이는 선택한 이용자를 늘리는 일에 집중하고 있다. 두 번째 관전 포인트는 ‘무브 생태계의 확장’이다. 수이와 앱토스의 경쟁이 무브 언어의 우수성을 입증함에 따라, 다른 블록체인 프로젝트도 무브를 채택하려는 움직임이 보인다. 블록체인 시장을 지배해 온 개발 언어인 ‘EVM’과 ‘솔리디티’의 아성을 무브가 노리고 있다는 이야기다.
결론적으로, 메타는 ‘통화’를 소유하려다 실패했다. 하지만 그들이 남긴 ‘기술’은 수이와 앱토스를 통해 차세대 블록체인 인프라의 표준이 될 가능성을 열었다. 대기업의 야망은 규제 앞에 좌절됐지만, 그 야망을 뒷받침했던 기술은 탈중앙화된 방식으로 그 생명력을 이어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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