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12월호

[기획 | ‘위기를 기회로’ 저출산·고령화 시대] 몽골이 사랑하는 33년 차 난임 의사

최범채 광주 시엘병원 원장 “탄탄한 난임 극복 노하우로 K-의술 세계화 꿈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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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지영 기자

    kjy@donga.com

        

    입력2025-12-11 09:0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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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몽골, 러시아, 중앙아시아 지역의 ‘스타 난임 의사’

    • 2017년부터 몽골 저소득층 자녀와 농아학교 후원

    • 국내외서 누적 4만여 건 IVF 집도, 의술로 국위선양

    • 발표한 논문만 100편 넘는 ‘연구하는 의사’

    • 의사는 늘 겸손한 자세로 배우고, 스스로 경계해야

    최범채 시엘병원 원장. 시엘병원

    최범채 시엘병원 원장. 시엘병원

    “우크라이나 전쟁이 발발하고 그 이듬해인 2023년, 군인이라 참전해야 하는 남편의 아기를 꼭 갖고 싶다면서 한 러시아 여성이 저를 찾아왔어요. 남편의 정자가 담긴 실험실용 튜브를 배꼽에 밴드로 붙이고 온 그녀를 보니 얼마나 절박한지 알 수 있었어요. 전쟁 중이라서 비행기 대신 배를 타고 동해 바다를 거쳐 광주까지 온 거였어요. 시험관아기시술(이하 IVF)을 하고 나서 블라디보스토크로 돌아갔는데, 얼마 후 임신에 성공했다는 소식이 전해졌죠. 어찌나 고맙고 기특하던지 눈물이 나더라고요.”

    1993년부터 난임 전문의로 활약한 최범채 시엘병원 원장은 눈시울을 붉히며 말했다. 광주광역시에 있는 시엘병원에는 그를 만나러 수천 km를 날아오는 외국인 환자가 끊이지 않는다. 그도 그럴 것이 몽골, 러시아, 중앙아시아 지역에서 최 원장은 ‘스타 난임 의사’로 통한다. 단순히 IVF를 잘하는 의사가 아니라 병원 경영자이자 국제 의료 협력자로서 국경과 인종을 초월해 난임 치료와 생명을 구하는 의술을 전파해 왔기 때문이다. 

    최 원장은 어떻게 의료 인프라가 열악한 몽골에서 ‘한·몽 생명 외교’의 주역으로 자리매김할 수 있었을까. 그를 만나 2010년부터 수백 차례 한국과 몽골을 오가며 무수한 생명을 피워낸 글로벌한 15년 여정에 대해 들었다. 

    “닥터 초이(최범채)가 와야 한다”는 2000명의 한목소리

    해외에서 난임 치료를 하게 된 특별한 계기가 있나.

    “2010년에 선배가 몽골에서 병원을 설립한다기에 구경 삼아 따라갔다가 우연히 현지 국립 모자보건센터를 찾았다. 국가에서 운영하는 시설임에도 인큐베이터가 턱없이 부족해서 임신 8개월 만에 태어난 미숙아들을 거의 살리지 못하고 있었다. 큰 충격을 받고 결심했다. 한국에 돌아가자마자 ‘인큐베이터와 수술 관련 자료를 몽골로 보내야겠다’고 말이다.”



    2000년 처음 개원한 후 난임 시술과 산과(분만)를 함께 운영해 왔다. 그런데 주요 시설을 다 몽골로 보냈다고 들었다. 

    “당시 몽골의 의료 상황이 1970~80년대 우리나라 수준이었다. 난임 부부가 많았지만 IVF 영역은 거의 불모지에 가까웠다. 그래서 몽골의 여유 있는 난임 부부들이 한국, 일본, 대만, 싱가포르까지 가서 IVF를 받더라. 분만에 필요한 시설을 몽골에 다 줘버리고, 현지 난임 환자들이 IVF를 받으러 이곳으로 오게 하고 싶었다. 그때가 마침 한국의 의료관광이 본격적으로 시작될 무렵이었다.”

    한국 시엘병원에 와서 IVF 시술을 받은 몽골 부부가 많은가.

    “대략 500쌍 정도다.”

    몽골 사람이 한국에 와서 시술하려면 돈이 많이 들 것 같다. 

    “IVF 비용을 마련하려고 중고차를 팔거나, 키우던 가축을 처분한 환자도 있었다. 나중에 그 사실을 알고 마음이 어찌나 불편하던지…. IVF 시술은 꼭 ‘닥터 초이(최범채)’에게 받아야 한다며 나를 믿고 멀리서 와준 몽골의 난임 부부들에게 어떻게든 보답하고 싶었다. 2017년 3월 몽골 울란바토르에 ‘몽골시엘병원(MONCL FERTILITY CENTER)’을 개원한 것도 그런 이유에서다. 몽골에 최신 시설과 선진화한 IVF로 난임을 치료하는 병원이 있으면 현지에서 비행기를 타고 한국까지 오는 수고를 덜 수 있지 않나.” 

    몽골에서는 외국인에게 개인병원 개원을 허가해 주는가.

    “‘바윗돌에 난을 심는 것처럼 어려운 일’이라는 얘기가 있을 정도로 인허가 받기가 힘들다. 현지 파트너와 공동 개원하려고 정치인, 제약회사, 기업, 의과대학 교수 등 다양하게 만났는데 모두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았다. 정치인은 자신이 가진 권력으로 (병원 설립과 운영을) 본인이 주도하려고 했고, 제약회사는 의료를 안답시고 메인이 되고 싶어 했고, 교수는 의지만 있지 자금이 없었다. 이대로는 안 되겠다 싶어 독립된 의료법인으로 직접 허가받기에 나섰고, 1년 반 끈질기게 도전한 끝에 몽골 시엘병원을 열 수 있었다.”

    비결이 뭔가. 

    “‘뿌린 대로 거둔다’는 말이 맞더라. 한국에서 내게 IVF를 받은 후 임신에 성공한 난임 부부들이 발 벗고 나서줬다. 그들의 가족과 친척, 친구, 지인까지 합세해 무려 2000명이 나의 팬이자, 몽골에서 가장 든든한 후원자가 됐다. 그분들이 ‘몽골에 최신 시설의 난임 클리닉이 필요하다, 그리고 초이(최범채)가 와야 한다’고 한목소리를 냈다.”

    난임 부부에게 아기를 만들어줬다는 것만이 고마움의 전부는 아닐 듯하다. 

    “7~8년간 꾸준히 의료봉사를 했다. 사실 몽골에서는 무작정 와서 약을 나눠주고 진료를 진행하는 방식의 ‘자기만족형 단기 봉사’를 환영하지 않는다. 현지 인프라를 직접 구축해 지속적인 의료서비스를 제공하는 장기 시스템을 원한다. 그런 차원에서 일본의 의료봉사는 철저히 ‘투자 중심형’이라서 고마워한다. 현지 의료진을 지속적으로 교육해 자립 기반을 만들어주기 때문이다. 일본 국제협력기구(JICA)의 지원으로 세워진 몽골국립의과대학(MNUMS) 부속 ‘몽골-일본병원’이 좋은 예다. 의료장비, 시스템, 교육 프로그램까지 모두 일본식으로 설계된 몽골 최고 수준의 국립병원이다.”

    시엘병원이 몽골에서 펼친 의료봉사가 일본의 방식과 비슷한가.

    “최신 시설은 돈만 있으면 갖출 수 있지만 의료진의 시술 경험, 배양 연구원과 간호사에 대한 양질의 교육이 뒷받침되지 않으면 난임 클리닉을 제대로 운영할 수 없다. 그래서 몽골 현지 의사들을 한국으로 데려와 6개월에서 1년 동안 직접 트레이닝을 했다. 과배란 유도에서부터 난자 채취, 배아 이식까지 전 과정을 경험하며 배양 기술도 함께 익히게 했다. 시엘병원에서 트레이닝을 받은 몽골 의사만 해도 대략 30명에 이른다. 또한 2010년부터 2018년까지 약 50차례 몽골을 찾아 현지에서 직접 교육과 진료를 병행했다.”

    몽골 공공 의료 발전에 10년 이상 기여한 공로

    몽골 현지 의사들에게 지금도 계속 후원하고 있다고 들었다. 

    “2014년부터 해마다 몽골국립의과대학에 장학금과 후원금을 주고 있다. 장학생들에게는 시엘병원에 초청해 IVF 같은 보조생식술을 체험하고 연구하는 기회를 특전으로 제공한다. 2017년부터 몽골 저소득층 자녀들과 농아학교 등에도 도움을 주고 있고, 2024년부터는 ‘시엘 학술상’을 제정해 매년 우수한 성과를 내도록 독려하고 있다. 상금은 500만 투그릭. 현지 기준으로 약 3개월치 월급에 해당하는 액수다.”

    해외 분원을 운영하면서 겪는 고충도 있을 텐데. 

    “코로나19 사태 때문에 3년 동안 몽골에 갈 수 없었다. 하는 수 없이 현지 법인장에게 병원 운영을 전적으로 맡겨야 했는데, 카톡 등으로 소통은 가능해도 마음 한구석이 늘 불안했다. 고심 끝에 현지 관계자에게 조심스럽게 ‘세한연후 지송백지후조(歲寒然後知松柏之後凋)’라는 문자를 보냈다. 한겨울이 지난 뒤에야 소나무와 잣나무가 시들지 않음을 안다는 뜻으로, 논어 자한 편에 나오는 구절이다. 평소에는 모든 나무가 다 푸르러 보이지만, 겨울이 오면 누가 끝까지 푸른지를 알 수 있다는 의미가 담겨 있다.” 

    답장 내용이 궁금하다.

    “‘갈택이어(竭澤而漁)를 범하지 않겠다’는 답이 왔다. 연못의 물을 모두 퍼내 물고기를 잡는 어리석은 짓을 하지 않겠다는 뜻의 고사성어다. 다시 말해, 순간의 이익을 위해 변절하지 않겠다는 마음을 담은 말이었다. 정말 고맙더라. 그래서 코로나19가 확산하는 와중임에도 병원 규모를 160평(529㎡)에서 360평(1190㎡)으로 확장했다. 코로나19 때문에 외국 기업이 모두 철수하던 때여서 몽골 사람들이 더욱 놀라워했다.“

    몽골에서 세운 그의 공은 혁혁하다. 몽골 정부로부터 ‘보건의료분야 공훈훈장’(2017)과 ‘북극성훈장’(2019)을 받았을 정도다. 북극성훈장은 몽골 공공 의료 발전에 10년 이상 기여한 현저한 공로가 있을 때 수여되는 최고 등급의 국가훈장으로. 외국인 의사가 이 훈장을 받은 사례는 몽골 건국 이래 찾아보기 힘들 정도로 극히 드문 일이다. 최 원장은 몽골에서 2000여 쌍 난임 부부를 시술해 몽골 인구 증가에 크게 기여한 공로를 인정받았다. 

    몽골에 난임 부부가 많은가.

    “재혼율이 높아서 점점 많아지고 있다. 고령의 신혼부부가 늘어나는 추세다. 또 해외에서 돈을 버는 젊은이가 많아지면서 사회 분위기도 개방적이고 자유로워졌다.” 

    가까이서 지켜본 몽골 사람들은 어떻던가. 

    “몽골 인구는 한국의 15분의 1, 약 350만 명밖에 되지 않는다. 경제적으로도 열악하다. 1인당 GDP(국내총생산)가 한국의 10분의 1로, 약 4600달러 수준이다. 그런데도 칭기즈칸의 후예라는 자긍심이 정말 대단하다. 유목민이던 조상의 생존 본능과 자립정신이 DNA에 박혀 있는 것 같다. 또 타국인에 대한 거부감이 거의 없고, 언어 습득 능력도 놀라울 정도로 뛰어나다. 전형적인 모계사회라 여성의 영향력이 크다. 가난해도 느긋하고 아이 키우는 일도 미리 걱정하지 않는다. 끈기와 절제력, 인내심이 남다르다. 아직은 빈부격차가 심하지 않아선지 남과 비교하지 않고 주체적으로 생활하는 편이다.”

    해외 진출에 성공한 의사이자 병원 경영자로서 한국 의료 관광의 가장 큰 문제점은 뭔가. 

    “의료관광이 성공적으로 정착하려면 영리병원 체제가 필요하다. 싱가포르나 태국은 의료가 이미 산업의 한 축을 이루고 있다. 우리나라 병원은 대부분 대학병원이나 개인병원 중심이라 의료관광에 집중 투자하기가 어려운 구조다. 운영 시스템이 비영리 구조에 묶여 확장성이 떨어지기 때문이다. 결국 좋은 기술과 인력이 있어도 산업 경쟁력으로 이어지지 못하는 구조적 한계에 부딪힐 수밖에 없다.”

    숫자보다 빛나는 한결같은 집념 

    피부과나 성형외과는 이미 의료관광 상품으로 자리 잡지 않았나. 

    “피부과나 성형외과 시술은 체류 기간이 짧고, 의료비가 비싸 의료관광에 유리한 구조다. 하지만 IVF의 경우는 다르다. 진료 과정이 복잡하고 최소 한 달이 소요돼 관광과 치료를 함께 묶기 어렵다. 누구라도 한 달 휴가를 내기는 쉽지 않다.”

    최 원장은 지난 30여 년간 국내 난임 의학 발전사와 맥을 같이해 온 산증인이다. 누적 4만 건이 넘는 IVF를 집도하며, 한 세대의 생식을 연구한 기록이 그의 손끝에 남아 있다. 그는 단순한 ‘시술자’가 아닌, 생식면역학 분야의 임상과 연구를 병행해 온 ‘연구하는 의사’다. 그동안 발표한 논문만 100편이 넘고, 미국생식의학회(ASRM)·캐나다불임학회·일본불임학회 등 국제 학회에서 잇따라 논문상을 수상했다. 국내 난임학회에서도 일곱 차례나 학술상을 받았다. 그러나 숫자보다 더 빛나는 것은 “난임 치료에 열성을 다하는 그의 꾸준한 집념”이라는 주위의 평가다. 최 원장의 소신은 이렇다. 

    “의사는 늘 배우고, 스스로를 경계해야 한다. 모든 걸 다 아는 것 같아도, 실제로는 모르는 게 훨씬 많다. 그래서 겸손해야 하고, 특히 돈 앞에서는 더 그래야 한다. 의사가 병원 수익에 눈이 멀어 불필요한 처방을 하거나 환자의 불안을 이용해서는 안 된다. IVF는 아무리 보험이 적용된다고 해도, 한번 실패하면 재도전이 불가피한 긴 여정이다. 그 과정에서 환자가 지치지 않도록, 최선의 처방과 검사를 통해 불필요한 부담을 덜어줘야 한다. 그래야 난임 부부가 ‘임신이 될 때까지 포기하지 않겠다’는 끈기와 용기를 가질 수 있다.” 

    최범채
    ● 조선대 의대 졸업, 의학박사·명예 경영학박사
    ● 성균관 의대 산부인과 조교수
    ● 몽골 대통령 북극성 훈장(2019).
    대한민국 해외 의료 진출 대통령 표창(2023)
    ● 미국생식의학회(ASRM) 최우수논문상(1997·1999) 등 수상




    김지영 기자

    김지영 기자

    방송, 영화, 연극, 뮤지컬 등 대중문화를 좋아하며 인물 인터뷰(INTER+VIEW)를 즐깁니다. 요즘은 팬덤 문화와 부동산, 유통 분야에도 특별한 관심을 갖고 있습니다.

    “걷기, 읽기, 비우기만 잘해도 몸과 마음 모두 젊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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