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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美軍주둔 인정해도 범죄는 용서 못해”

‘미군기지 되찾기’에 나선 김용한씨

“美軍주둔 인정해도 범죄는 용서 못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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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6·25 때 행방불명된 작은아버지 때문에 육군사관학교 합격이 취소되고, 통역병으로 근무하다 최전방으로 전출된 사람. 그는 긴급조치 시대와 1980년 ‘서울의 봄’을 침묵으로 보냈지만, 수많은 운동권들이 현장을 떠난 뒤 묵묵히 고난의 길을 걷고 있다.
1987년 2월 기자는 그를 만난 적이 있다. 그는 당시 독일어 시간강사로 대학에 출강하고 있었는데, 장안의 화제였던 김만철씨 일가족 귀순사건보다 서울대생 박종철씨 고문치사 사건과 부산 형제복지원 사건의 중요성을 강조해 눈길을 끌었다. 전자가 여론전환용 이벤트라면, 후자는 한국사회의 어두운 현실을 적나라하게 폭로한 국가적 테러라는 설명이었다. 그는 1970∼80년대의 대학 캠퍼스에서 데모 한번 해보지 않은 학구파였지만, 이미 오래 전부터 인권운동가의 자질을 갖추고 있었던 셈이다. 그가 바로 ‘우리땅 미군기지 되찾기 공동대책위원회’ 집행위원장 김용한(48)씨다.

노근리 사건의 새로운 증언과 매향리 사격장 파문, 조지 W 부시 미국대통령의 ‘악의 축’ 발언과 F15 전투기 구매 압력설, 용산기지 미군아파트 건축 계획과 잇따른 환경오염 사건, 그리고 동계올림픽 쇼트트랙 판정시비에 이르기까지…. 최근 일련의 사건에서 촉발된 한국인들의 반미감정은 위험수위까지 치닫고 있다. ‘시사저널’이 조사한 자료에 따르면 한총련 학생들의 미상공회의소 점거에 공감한다는 의견이 무려 47.1%에 달했다. 한총련이 공안 당국으로부터 ‘이적단체’ 혐의를 받고 있다는 사실을 감안하면 놀라운 결과가 아닐 수 없다.

한국전쟁 당시 ‘우방’으로 참전했고, 그뒤 막대한 원조물자를 지원했던 미국의 입장에서 볼 때 이는 억울한 평가임에 분명하다. 하지만 1980년 광주항쟁과 1997년 IMF 외환위기를 거치면서 미국을 바라보는 한국인들의 시각은 크게 달라졌다. 한반도의 평화를 위해 주둔하고 있다는 미군에 대해 냉정한 접근이 뒤따라야 한다는 인식이 확산된 것도 역사적 맥락과 무관하지 않다. 이런 분위기의 연장선상에서 ‘주한미군의 현실적 필요성에 공감하지만, 미군의 위상과 기능이 전면 재조정돼야 한다’는 절충론이 설득력 있게 받아들여지고 있다.

3월6일 오후 경기도 평택시 팽성읍 송화1리 마을회관. 김용한씨는 미군 공군기지(팽성읍 안정리 소재, K-6 CAMP HUMPHREYS)로 인한 마을주민들의 피해사례를 수집하고 있었다. 주민들은 밤낮을 가리지 않고 송화1리 상공을 날아다니는 비행기의 소음과 진동, 그리고 사격장 주변을 둘러싼 철조망에 대한 불만을 털어놓았다.

“저공비행을 할 때마다 유리창에 금이 가고 지붕이 내려앉습니다. 그래서 주민들은 수백만원의 빚을 얻어서 콘크리트를 바르고 함석으로 덮어야 합니다. 갓난아이는 자다가 놀라서 병원으로 실려가고 소와 돼지는 기형 새끼를 낳고 있는 지경입니다. 우리가 무슨 죄를 지어서 이렇게 살아가야 합니까.”



“밤에 들일을 나가다가 하마터면 총알에 맞을 뻔한 농부가 있었습니다. 그 양반은 요즘도 밤중에 돌아다니는 것을 무서워해요. 예전에는 미군 사격장 가운데로 길이 나 있었는데, 작년에 철조망을 치는 바람에 20분이나 더 걸립니다. 땅값은 똥값이고, 보상받을 수도 없고, 피해가 이만저만이 아닙니다.”

“비행기가 돌아다니면서 이상한 물건을 쏟아붓는 것을 직접 보았어요. 미군부대에서는 꿀벌이 한꺼번에 날면서 똥을 쌌다고 해명했는데, 제가 보기에는 미군의 분비물 같아요. 냄새가 아주 지독해서 볕이 좋은 날도 장독대를 열 수가 없어요. 옆 동네에서는 미군들이 폐수를 논바닥에 버려서 곡식이 말라죽었습니다.”

주민들의 하소연은 끝도 없이 터져 나왔다. 송화1리 이장 장만수(55)씨는 “수십년 동안 그냥 참고만 살아왔지만, 이젠 우리의 권리를 찾을 때가 됐다. 가장 시급한 건 야간사격 금지이고, 궁극적으로는 미군기지를 사람이 살지 않는 곳으로 옮겨야 한다”고 말했다. 김씨는 빠른 시일에 마을주민 회의에 참석하겠다는 약속을 남기고 송화1리를 빠져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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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성철 < 동아일보 신동아 기자 > sixma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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