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국을 예로 들면 서울 종로 네거리에 전기 가로등 세 개가 처음 점등된 것이 1900년(광무 4년) 4월10일이다. 그러니 한국의 20세기는 전기에서 시작됐다고 해도 틀린 말이 아니다.
DDT와 페니실린이 들어온 것은 1945년 9월8일, 미군이 인천에 상륙하면서부터다. DDT, 페니실린, 마이신 등의 항생물질은 한국인의 수명을 2배 가까이 연장시켰다. 경구 피임약과 세탁기·청소기 등의 가전제품은 여성을 가사노동과 육아 부담에서 해방시켰다. 여성의 생활상이 완전히 달라지게 된 것이다.
1가구 1전화의 실현과 ‘휴대전화’의 등장이 인간의 생활공간을 얼마나 확장시켰는지는 실로 계측할 수 없을 정도다. 컴퓨터와 인터넷이라는 수단을 통해 인간의 공간거리·의식거리가 거의 ‘제로’에 가깝게 되는 날이 이렇게 빨리 다가오리라고는 10년 전만 해도 예측할 수 없는 일이었다.
숱한 변화 요인 중에서도 한국을 변화시킨 가장 큰 요인이라면 20세기 전반의 전기와 전차, 20세기 후반의 자동차와 고속도로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우리가 겪은 지난 세기는 자동차로 대표되는 대중소비시대였다. 한국에 자동차가 처음 들어온 것은 1911년. 그해 조선총독부는 관용 승용차 2대를 들여와 한 대는 총독용으로, 다른 한 대는 왕실용으로 사용했다고 한다. 공식 기록인 동시에 가장 믿을 수 있는 기록이다.
그러나 이후 일제강점기(1911~45년)에 걸쳐 자동차는 크게 증가하지 않았다. 1년에 겨우 수십대에서 수백대씩 늘어난 것이 고작이다. 1945년 광복 당시에도 남북한을 통틀어 자동차 수는 겨우 7000대 정도밖에 되지 않았다.
자동차, 도시체계를 무너뜨리다
그러다 1960년대 초부터 경제개발 5개년 계획이 시작됐다. 그리고 제1차 경제개발 5개년 계획이 끝난 1966년 말부터 ‘보릿고개’니 ‘춘궁기’니 하는 말이 없어졌다. 식량이 없어 굶어죽는 사람이 사라지게 된 것이다. 이때부터 이른바 대중소비시대로 접어들게 된다. 이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것이 바로 자동차 증가현상이다.
경부고속도로가 완전 개통된 것은 1970년 7월7일. 그해 12월말 현재 전국 각 시도에 등록된 차량(승용·승합·화물) 총수는 12만5409대, 서울시에 등록된 차량 총수는 5만9000대였다. 자가용 승용차는 전국 2만8687대, 서울 2만2043대, 부산 2223대, 인천을 포함한 경기도가 1140대였다(교통통계연보 1971).
그러던 것이 30년이 지난 2000년 말에는 전국의 차량 합계가 1205만9276대, 서울이 244만992대로 집계됐다. 자가용 승용차는 전국 합계가 779만8452대, 서울 170만9948대, 부산 52만274대, 인천(42만6612대)과 경기도(165만2112대) 합계가 207만 8724대(건설교통통계연보 2001)였다.
경부고속도로가 개통된 이후 30년간 전국의 자동차 수는 96배, 자가용 승용차에 국한해 보면 전국이 272배, 서울이 78배, 부산이 234배, 인천·경기도가 1823배라는 놀라운 신장세를 보였다. 1970년 당시는 인구 531.4인당 자동차 1대꼴이었는데, 1988년 서울올림픽 당시는 37.6인당 1대, 2000년 말에는 5.8인당 1대가 됐다.
결론적으로 1971~2000년의 30년 동안 한국의 전국토에는 자동차에 의한 공간혁명이 일어난 것이다. 앞으로도 당분간 자동차 증가 추세는 멈추지 않을 것으로 전망된다. 이렇게 자동차가 늘어나고 도로가 정비되어 시간거리가 단축되면서 한국사회 전반에는 실로 엄청난 변화가 일어났다.
첫째는 생활권의 확장이다. 서울에서 고속도로를 이용해 목포나 진주, 삼천포까지 하루에 왕복하는 것이 가능해졌다. 농촌-중소도시-대도시라는 도시체계가 무너진 것은 벌써 옛일이다. 체계니 계서(階序)니 하는 과정이 붕괴된 것이다.
농어촌이 먼저 와해됐고 이어 중소도시가 무너졌다. 수많은 중소도시가 공중분해되어 인구의 절대수 감소 현상에 허덕이고 있다. 또한 허다하게 많은 도시에서 인구의 절대수는 감소하지 않았지만 적어도 지난 10~20년간 인구증가 현상을 거의 찾아볼 수 없었다. 이 모든 현상의 원인이 자동차 때문만은 아니지만 자동차가 중요한 요인이 되고 있는 것만은 부인할 수 없다. ‘농촌에서 중소도시를 거쳐 대도시로’라는 질서가 무너졌기에 중소도시의 존재가치가 사실상 무너져버린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