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월13일 서울 종로구 인의동 새생명인공신장실에서 혈액투석 치료를 받고 있는 환자들.
혈액투석을 받는 환자의 상당수는 ‘신장장애인’으로 등록되어 있다. 국가는 이들에게 혈액투석 치료비의 80%를 건강보험으로 지원한다(의료보호대상자 등은 치료비 전액 국고지원). 그러나 20%의 본인 부담 비용도 이들에겐 만만치 않은 경제적 부담이 된다.
신장 장애 환자들은 보통 이틀에 한 번 꼴로 혈액투석 치료를 받는다. 1회 투석 치료에 걸리는 시간은 4~5시간. 일반적으로 일주일 이상 투석치료를 거르면 몸에 적신호가 켜진다고 한다. 한 달 본인부담 투석치료비는 평균 50만~80만원이다.
대다수 투석환자들은 정상인보다 기력이 훨씬 떨어져 있다. 치료에 오랜 시간이 걸리는 데다 치료비 부담도 만만치 않은 탓에 상당수 환자가 경제적 어려움을 겪고 있기 때문이다. 최근엔 투석치료비 부담을 못 이겨 아버지의 몸에 꽂힌 혈액투석기 줄을 끊은 아들이 경찰에 검거되기도 했다.
기존 병원비의 25분의 1
혈액투석 환자들의 모임인 (사)한국신장장애인협회는 2004년 2월 서울 종로구 인의동 한국교직원공제회 건물에 ‘새생명인공신장실’(이하 새생명)을 개원했다. 기존 병·의원들을 대신해 자신들이 직접 저가에 환자들에게 혈액투석 치료를 해주겠다는 취지다.
새생명엔 40개의 침상과 40대의 투석기가 갖춰져 있고 1명의 내과 의사와 17명의 간호사가 진료를 맡고 있다. 개원 취지대로 새생명측은 진료비를 파격적으로 낮췄다. “혈액투석에 드는 한 달 본인부담 비용을 2만~10만원대로 인하하겠다”는 것이었다. 이는 기존 병·의원 치료비의 25분의 1 수준이다.
이곳에서 치료를 받으려면 한국신장장애인협회 회원으로 가입해야 한다. 새생명측은 환자들에게 식사와 헬스시설 등을 무료로 제공하고 있다. 또한 환자들이 돈을 벌어 치료받을 수 있도록 세탁물 아르바이트도 알선한다.
2004년 4월13일 현재 이곳에선 110여명의 외래 환자가 혈액투석 치료를 받고 있다. 이날 오후에도 환자 10여명이 투석기를 꽂은 채 누워 있었다. 60대의 환자 A씨는 “신장내과 의원에서 줄곧 투석치료를 받아왔으나 이곳이 치료비가 저렴하다는 소식을 듣고 옮겼다”고 말했다.
A씨와 같은 이유로 새생명을 찾는 혈액투석 환자는 꾸준히 늘고 있다. 최근 한 공중파TV 프로그램에 소개된 이후 환자가 부쩍 늘었다. 염완식 (사)한국신장장애인협회 회장은 “치료비가 싸니 평생 치료를 받아야 하는 환자들에겐 좋은 일”이라고 말했다. 그는 “건강보험공단으로부터 혈액투석치료와 관련, 80%의 지원을 받기로 했다”고 밝혔다.
협회는 2004년 5월 경기 의정부에 ‘새생명인공신장실 의정부센터’를 새로 개원하기로 했다. 협회측은 전국적으로 새생명 인공신장센터를 확산시킨다는 계획을 세워두고 있다.
“새생명에 약 넣으면 알지?”
발등에 불이 떨어진 쪽은 신장내과 병·의원들이다. 환자들이 하나 둘 새생명으로 옮겨가자 비상이 걸린 것이다. 혈액투석 환자들은 대개 한 병원을 지정해 장기간 정기적으로 치료를 받는 경향이 있기 때문에 환자 네댓 명만 이동해도 병원 수입에 큰 타격을 주게 된다. 현재 전국적으로 190여개 병원과 200여개 의원이 인공신장실을 운영하고 있다.
신장내과 의사들은 최근 집단행동에 나섰다. 의사들이 ‘새생명 대책회의’를 가진 뒤 혈액투석기 판매업체나 제약회사 등에 압력을 행사해, 새생명측에 기기나 약품을 팔지 못하도록 하고 있다는 것. 새생명측과 거래를 하면 기존 병원과의 거래를 모두 끊겠다는 식이라고 한다.
혈액투석기기 도매업을 하는 B씨는 최근 새생명측과 외국산 투석기기 공급계약을 맺었다. 이후 새생명측에 기기 몇 대를 납품했다. 그런데 이 투석기기 제조회사의 한국지사가 B씨를 불러 “새생명엔 투석기기를 공급하지 말라”고 지시했다. B씨는 “신장내과 의사들이 투석기기 제조회사에 강하게 항의했다고 들었다. 의사들의 성화에 못 이긴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