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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형수 심종성의 ‘프리즌 브레이크’

“영하 20도! 잔인무쌍한 살인자는 뭘 먹고 어디 숨었는고?”

사형수 심종성의 ‘프리즌 브레이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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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한밤중에 남의 집에 뛰어들어 강도 살인을 저지른 무도한 범죄자가 재판을 받으러 법원에 나왔다가 감쪽같이 사라졌다. 교도관과 경찰, 헌병에 보병까지 연인원 1만여 명이 동원된 사상 최대의 추적에도 흔적 하나 나오지 않자 당국은 곤경에 빠진다. 장검을 들고 탈주한 사형수가 무슨 짓을 저지를지 모른다는 사람들의 공포심은 날이 갈수록 깊어만 가고, 언론의 질타는 극으로 치닫는데….
사형수 심종성의 ‘프리즌 브레이크’

1933년 1월 심종성이 탈주한 직후 경찰들에게 배포된 그의 수배사진(작은 사진)과‘ ‘별건곤’ 1933년 4월호에 실린 ‘죄와 벌과 인생 : 탈옥수 심종성과 공범 김봉주의 범죄 이면 비화’ 기사.

1931년 10월26일 새벽 3시, 평양 선교리에서 정육점을 겸한 잡화상을 경영하는 임극환은 상점에 딸린 집에서 애첩 안태준과 깊은 잠에 빠져 있었다. 변두리 이면도로의 맨 끝 집이라 주위는 칠흑같이 어두웠고 인적 또한 드물었다.

“쨍쨍!”

늦가을 한기가 을씨년스러운 쥐 죽은 듯 고요한 거리에 짧고 차가운 쇳소리가 울려 퍼졌다. 임극환은 새벽하늘을 가르는 소리에 놀라 잠에서 깨어났다. 잡화점 뒷문 쪽에서 나는 소리였다. 미처 전등불을 켜기도 전에 누군가가 침실 미닫이문을 거칠게 열어젖혔다. 주위가 어두워 괴한의 정체는 분간하기 어려웠지만, 시퍼렇게 날이 선 칼날 두 개는 또렷이 눈에 들어왔다. 매끈하게 빠진 일본도 한 자루와 짧고 굵은 식도 한 자루였다. 임극환은 사시나무 떨듯 온몸을 떨며 목구멍까지 올라오는 비명을 가까스로 참았다. 잠결에 살기를 느꼈는지 뒤늦게 안태준이 눈을 떴다.

“으악!”

안태준이 무의식적으로 비명을 지르자 식도를 든 괴한이 달려들어 안태준의 입을 틀어막았다. 괴한이 제지해도 안태준은 악을 쓰고 몸을 비틀며 거세게 저항했다. 애첩이 봉변을 당하자 이부자리에 앉아 떨고 있던 임극환이 무의식적으로 벌떡 일어났다. 이번엔 일본도를 든 괴한이 임극환을 때려눕혔다. 괴한들은 두 사람을 돌아눕히고는 등에 올라타 철사로 양손을 동여맸다. 반항하면 뒤통수든 등이든 마구 후려쳤다. 부부는 양손을 완전히 결박당한 후에야 비로소 저항을 멈췄다.



부부를 제압한 두 괴한은 손전등을 켜고 집안을 뒤졌다. 현금은 임극환의 지갑에 든 3원20전밖에 없었다. 장사하는 집에 현금이 그것밖에 없을 리 없었지만 아무리 때리고 협박해도 임극환은 끝내 현금을 숨겨둔 장소를 일러주지 않았다. 두 괴한이 임극환과 실랑이를 벌이는 동안 안태준은 식도를 든 괴한을 유심히 뜯어보았다. 주위가 어두워 흐릿하게 윤곽만 보였지만, 분명 익은 얼굴이었다. 윽박지르는 목소리를 귀 기울여 들어보니 분명히 ‘그’였다. 식도를 든 괴한의 정체가 ‘그’인 것을 알아차리자, 양손을 결박당한 후 줄곧 침묵을 지키던 안태준은 이성을 잃고 고함을 질렀다.

“네가 이런 일을 또 하고도 무사할 줄 아느냐? 풀려나면 가만두지 않겠다.”

안태준이 소리치자 두 괴한의 눈빛에는 돌연 살기가 돌았다. 식칼을 든 괴한은 분노가 머리끝까지 치밀어 올라 안태준에게 다가가서 철사로 목을 감고 힘껏 잡아당겼다.

“오냐. 네가 아직 정신을 못 차린 게로구나. 누가 이기는지 어디 한번 해보자.”

식칼 든 괴한이 안태준의 목을 조르는 동안 일본도를 든 괴한이 같은 방법으로 임극환의 목을 졸랐다. 철사로 목을 졸린 부부가 몸을 뒤척이며 살려고 발버둥치자, 두 괴한은 손으로는 철사를 힘껏 당기면서 발로는 부부의 가슴과 배를 사정없이 짓밟았다. 침실은 순식간에 부부의 코와 입에서 흘러나온 시뻘건 선혈로 흥건히 젖었다. 부부는 한참이 지나서야 숨이 멎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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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봉관 한국과학기술원(KAIST) 교수·국문학 junbg@kaist.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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