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공부하는 학생 처지에서만 보면 FTA시대가 열리면서 기회와 위기가 한꺼번에 닥칠 듯하다. 미국에서 한국으로의 직접투자가 늘어나고, ‘외국인 회사’ ‘한국인 회사’의 구별이 없어질지도 모른다. 회계사, 의사, 기술사 같은 전문직 자격증도 머지않은 장래에 추가협상을 통해 개방될 가능성이 높다고 한다.
성공의 관건은 무엇인가. 일을 얼마나 잘하는가, 협상을 얼마나 잘하는가, 그리고 이 모든 것을 결정짓는 가장 기본적인 요소, 즉 영어 구사력을 얼마나 갖추냐가 개개인의 생존을 결정하는 시대가 올지도 모른다.
지금도 영어가 ‘생존의 도구’라고들 하지만 몇 년이 더 지나 지금의 중고생, 대학생이 사회에 진출할 때가 되면 생존을 위한 기대효과나 레벨은 지금보다 훨씬 높아질 것이다. 지금처럼 인사말과 자기소개 몇 마디 하는 식으로 우리끼리 즐거워하고 만족해하는 수준을 넘어, 정교하고 적확한 어휘선택과 문장구사를 통해 나와 우리의 이익을 극대화하는 경지를 목표로 해야 한다. 그래야 FTA시대의 일꾼이 될 수 있다는 말이다. 요컨대 여태까지의 영어학습 목표수준이 ‘외국에서 마음대로 밥 사먹는 수준’이었다면, 이제부터는 ‘외국에서 자유롭게 밥 벌어먹는 경지’에 이르러야 한다는 뜻이다.
지금의 영어공부 환경은 어떤가. ‘English Divide’라는 신조어가 생겨날 만큼 영어를 둘러싼 양극화 현상이 사회 문제가 되고 있는 현실이다. 그러나 나는 이것이 정치논리의 지나친 일반화에서 비롯된 게 아닌가 생각한다. 요즘 매스커뮤니케이션 접속환경이 광범위하게 확대된 점을 고려하면 영어공부는 여전히 본인의 노력이 90% 이상을 좌우한다고 본다.
이젠 외국에서 몇 년 살았다는 것도 ‘절대 미덕’이 될 수 없다. 한국인의 영혼, 국가관, 역사의식이 조합된 바탕에서 영어를 얼마나 잘 구사하느냐가 주요 변수이지, 체류기간 그 자체로는 별 의미가 없다. 일단 체류 경험만 있어도 인정해주던 시대는 지났다. 외국 체험에 대해 약간의 피해의식이라도 갖고 있다면 이 점을 곱씹어보기 바란다.
다만 일주일에 그저 두어 시간 영어책 좀 들여다보고 미국 드라마 한두 편 보면서 ‘노력’이라고 여기는 것은 영어를 둘러싼 현재의 ‘세계사적 환경’을 너무 만만하게 보는 시각이 아닌가 한다. 영어공부가 일상생활의 의미 있는 일부분이 될 때까지 갈고 닦아야 한다.
‘섀도잉’의 놀라운 효과
컴퓨터로 시험을 치르던 CBT토플에서 인터넷 기반의 ibt토플 체제로 바뀌면서 한국 학생들의 점수가 눈에 띄게 하락했다. 토플 점수 조견표를 보면 CBT로 250점을 맞으면 ibt로 100점을 맞아야 정상이다. 그러나 CBT 260, 270점을 맞던 학생들이 ibt로 100점은커녕 80, 90점도 못 맞는 사례가 많다. 상대적으로 점수 따기가 쉽던 문법 파트가 없어지고 스피킹 파트가 신설됨에 따라 생긴 현상이다.
여기서의 스피킹은 단순한 ‘회화’ 능력 테스트가 아니다. 콘텐츠가 있어야 한다. 예를 들어 “당신이 가장 좋아하는 친구는 누구이며 그 이유는 뭔가”라는 질문을 받으면 1분 이내에 6개 정도의 문장을 만들어 자연스럽게 연결해야 한다.
말하기 연습에는 크게 두 가지가 있는데 하나는 ‘생각하고 말하기’이고, 다른 하나는 ‘무턱대고 따라 하기’이다. 나는 후자를 우선 권한다. 무턱대고 열심히 따라 하며 원어민의 호흡과 어조 발음 등을 흉내 내다보면 어느새 혀가 부드럽게 풀어진다. 문장과 문장을 잇는 연결고리나 일상적인 어구들을 따로 생각하지 않아도 혀가 먼저 돌아가게 된다는 뜻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