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새벽 6시에 던지는 주사위’
또 하나. 그에겐 한국의 미술시장이 작가의 작품을 제대로 평가하지 못한다는 불만이 있다. 이 때문에 그는 미국 뉴욕으로 진출하고픈 욕심이 있다. 좀더 공정하게 작품을 평가한다는 미국에서 좋은 열매를 맺을 수 있다면, 그래서 좀더 많은 미술 애호가가 그의 작품을 거실에 걸어놓는다면 행복할 것 같았다.
지난 3년 동안 미국 미술시장을 노크한 결과, 미국에서 활동하는 한 미술품 중개인을 알게 됐다. 그의 눈에 띄면 미국 진출은 어렵지 않을 것 같았다. 노련하고 계산이 철저한 상인답게 중개인은 지난해 K씨의 작업실을 보기 위해 한국을 방문했다.
중개인은 20일 동안 한국에서 머무르며 그의 작업실뿐 아니라 인사동 등 한국의 미술시장을 둘러보았다. K씨가 한국에서 어떤 대접을 받고 있는지, 어떤 작품을 높이 평가하는지, 그리고 K씨의 안목도 확인하려는 듯했다. 중개인의 태도는 정중했지만 호락호락하지는 않았다. 그는 때로 한국 시장에서 거래되는 그림을 두고 K씨와 논쟁을 벌이기도 했고, K씨가 주로 사용하는 색깔에 대해서도 의견을 달았다. 예컨대 “미국인은 짙은 브라운을 좋아하니 이런 계열의 색깔로 배경을 칠하면 좋겠다”는 식이었다.
‘미국에 진출하려면 중개인의 인정이 필요하다’는 생각에 K씨는 자신의 스타일을 바꾸려고 노력했다. 미국에서 통하면 세계에서 통한다지 않는가. K씨는 몇 개월 뒤 뉴욕 미술시장에 내놓을 그림을 몇 점 보내야 했다.
그러나 스타일이 어디 손바닥 뒤집듯 쉽게 바뀌는가. 변화의 욕구를 내면에서 깔끔하게 소화하지 못한 탓인지, 붓이 힘차게 나가지 않았다.
그렇다고 새로운 세계로의 진출을 포기할 수는 없었다. 결국 뉴욕에 작품을 보냈고, 반응은 생각보다 나쁘지 않았다. 게다가 또 다른 미술품 중개인의 눈에 띄었다. 그 중개인은 K씨에게 “아예 작업실을 미국으로 옮겨달라”고 요구했다. 한국에선 미국의 트렌드를 쫓아가기가 힘들다는 이유에서였다.
“기회는 온 것 같은데, 지금으로선 어떤 결정도 할 수 없어요. 미국에 가면 내 스타일을 잃을 것 같아요. 판매 가격에도 만족할 수 없고요. 물론 미국 미술시장에서 내 그림은 생소할 것이고, ‘진입비용’이 들 것이라는 점을 인정하지만 제게도 한국 화가로서의 자존심이 있잖아요.”
“멕시코 영화계는 몰락했다”
3년쯤 뒤, 그는 어디에서 그림을 그리고 있을까. 서울일까, 뉴욕일까. 그의 작품은 진화했을까, 퇴보했을까. 미국 진출은 그에게 기회였을까, 위기였을까.
멕시코 출신의 영화감독으로 최근 영화 ‘바벨’을 내놓은 알렉한드로 곤잘레스 이냐리투는 “인생은 새벽 6시에 던지는 주사위와 같다”고 한 적이 있다. 오늘이 어떻게 굴러갈지 모른다는 얘기다.
점치는 능력은 주술이지만, 미래에 대한 상상력은 세상을 좀더 잘사는 데 필요한 능력이다. 이 세상은 얼마만큼 상상하느냐에 따라 대응의 깊이와 폭이 달라진다. 답을 찾는 능력보다 세상이 놓친 질문을 던지는 능력, 과거를 분석하는 날카로움보다는 미래를 상상하는 ‘장난기’가 요구되는 세상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