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필자는 1억3000만원짜리 시뮬레이션 게임기를 구입했다가 잦은 고장으로 사업을 망친 사람으로부터 게임기 판매업자를 상대로 손해배상 소송을 제기해달라는 의뢰를 받았다. 그런데 이 사람이 내놓은 게임기 매매계약서를 보니 표지를 빼고 달랑 두 장짜리로 되어 있었다.
무려 1억3000만원짜리 기계의 거래 계약서가 달랑 두 장이라는 것도 놀랍지만, 더욱 놀라운 것은 그 내용이었다. 매매대상 기계가 도대체 어떠한 스펙을 가진 것인지, 모델명은 무엇인지, 기계에 대한 A/S는 누가, 어떤 조건으로 하는지 등 가장 기본적인 내용조차 기재되어 있지 않았다.
이밖에도 빌려준 돈을 받아달라는 의뢰를 하면서 송금증 한 장만 달랑 내밀거나 아니면 그마저 없다는 의뢰인을 꽤 자주 볼 수 있다. 이러한 경우 그 의뢰인이 법적으로 권리를 주장하지 못할 수도 있고 설령 주장할 수 있다고 해도 일반 민법규정을 적용해야 하는데 이렇게 되면 계약을 체결한 의의가 전혀 없다.
이와 같은 문제들은 모두 우리나라 국민이 계약서의 필요성에 대한 인식이 매우 낮고 신뢰관계에만 의존하는 데서 비롯된 것으로 보인다. 이번 달에는 계약서를 왜 써야 하는지, 어떻게 써야 하는지를 살펴보고자 한다.
1. 계약서를 쓰는 이유
가. 법보다 계약이 우선이다.
개인 간의 법률관계 내용은 그 개인들이 자유롭게 정할 수 있다. 이것을 계약자유의 원칙이라고 한다. 민법이나 상법과 같은 법률이 있기는 하지만 개인 간의 법률관계에는 법률이 먼저 적용되는 것이 아니라 개인 간에 정해진 계약내용이 우선 적용된다. 계약이 법률에 우선하는 것이다. 이 때문에 계약이 그토록 중요한 것이다.
그래서 계약서의 중요성을 더 일찍 깨닫고 계약관계에서 더 유리한 고지에 올라서기 위해 더 애쓴 사람이 이익을 보게 되어 있다. 잘못된 계약서에 도장을 찍은 후에 불평등한 계약이라고 항의해본들 소용이 없는 것이다. 이 역시 계약자유의 원칙 때문이다.
민법 제104조에 심히 불공정한 계약을 무효로 한다는 규정이 있기는 하지만 웬만한 불공정 계약에는 이 규정이 적용되지 않는다. 판례에 의하면 정상적인 가격보다 2~3배 비싸거나 싸게 매매한 정도만으로는 ‘현저히 불균형’한 거래로 인정받기 힘들다.
그러므로 계약서에 도장 찍기 전에 한 번이라도 더 계약서를 살피고 자신에게 유리한 내용을 추가하려는 노력을 하는 것이 중요하다. 특히 우리나라와 같이 사람들이 계약 내용에 무딘 경우가 많은 상황에서는 계약서를 사수하려고 하는 사람들이 훨씬 큰 이익을 얻는다는 점을 꼭 기억하시기 바란다.
나. 분쟁발생시 결정적인 증거로 사용된다.
소송에서는 누가 이길까? 옳은 사람이 이길까? 유감스럽게도 전혀 그렇지 않다. 소송에서 이기는 사람은 바로 증거를 가진 사람이다. 우리나라의 법원은 증거재판주의를 채택하고 있기 때문에 아무리 그럴듯한 주장을 하더라도 그 주장을 뒷받침할 수 있는 증거를 제시하지 못하면 그 주장은 받아들여지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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