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마이클 샌델과 그의 베스트셀러 ‘정의란 무엇인가’.
마이클 샌델의 ‘정의란 무엇인가’(2010)가 근 넉 달째 베스트셀러를 기록하고 있다. 우리 출판계에서 정치철학에 관한 책이 이렇게 오래도록 베스트셀러가 된 적이 없다. 지난 여름 방한한 저자 샌델조차 세계적으로도 희귀한 일이라고 놀라움을 표시한 적이 있다.
이 책이 이 땅에서 오랜 관심의 초점이 된 까닭은 우리 국민이 최근 공공영역, 곧 정치 분야에서 정의가 구현되지 않는 데 대한 강렬한 불만을 갖고 있기 때문으로 해석해야 할 것이다. 말하자면 ‘부정의’한 현실에 대한 성찰이 ‘정의란 무엇인가’라는 질문과 만나게 된 근본 원인이라는 것. 오늘날 이 땅에서 자행되는 ‘정의롭지 못함’에 대한 성찰을 헤아리면 몇 가지로 나눠볼 수 있을 것 같다.
첫째는 효율지상주의에 대한 비판적 인식이다.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성공하면 장땡이라는 식의 결과지상주의에 대해 회의하는 눈길이다. 목표의 성취과정에 대한 적법성과 적합성을 따져야 한다는 데 대한 인식이 ‘정의란 무엇인가’라는 책이 공감을 얻은 맥락 속에 들어 있다는 것.
둘째는 형식적인 기회의 균등만이 아닌 실질적인 기회의 균등, 이를테면 교육과 학습의 실질적인 기회 균등이 국민 전체에게 고루 제공돼야 한다는 생각이 깃들어 있다. 부자는 자식에게 질 높은 사교육을 제공함으로써 좋은 학교에 진학시킬 수 기회를 ‘실질적으로’ 확보하고 있는 반면 가난한 집 자식들은 사교육 자체를 제공받지 못해 성공의 기회를 놓치게 만드는 구조적 병폐에 대한 비판이다.
셋째는 경제적 불평등에 대한 불만이다. 한국 대기업의 성장과정에는 그동안 정치적· 법적 특혜와 국민의 경제적 손실과 희생이 컸다. 그럼에도 현재 대기업은 그 경제적 성과를 독과점하고, 또 그 성과를 자손에게 대물림하는 현실에 대해 불공정하다는 인식이 저변에 깔려 있다.
넷째는 공공영역의 사유화에 대한 분노다. 최근 드러났듯, 외교부 장관이 자기 자식에게 직업을 대물림하려는 데 대한 국민의 절망과 분노가 그 대표적인 사례다. 끝으로 공동체 유지를 위한 구성원의 의무, 대표적으로 군 복무를 이행하지 않은 자들이 고위 공직을 차지하는 데 대한 비아냥거림도 이 속에는 들어 있다. 말하자면 획득과정의 불공정, 기회의 불공평, 소득의 불균등, 그리고 공공영역의 사유화와 탐욕 등이 ‘정의란 무엇인가’를 베스트셀러로 만든 ‘부정의’의 내용물인 셈이다.
동아시아에서 정의에 대한 인식은 그 연원이 꽤 깊다. 그것은 정의를 의미하는 ‘의(義)’자 속에 양(羊)이 들어 있는 데서도 간취할 수 있다. 즉 이 땅에서 정의에 대한 인식은 농경시대를 지나 저 멀리 수렵과 목축의 시대에까지 닿는다는, 기원의 원시성을 글자에서 짐작할 수 있다.
義와 宜, 정의를 뜻하는 두 글자
보다시피 ‘義’자의 글꼴은 양(羊)자, 그리고 아(我)자 모양의 창칼로 이뤄졌다. 원시공동체에서 먹을거리를 정확하게 갈라 균등하게 나누는 데서 생겨난 자형인 것이다. 먹어야 살지만 고르게 나눠 먹기, 이것이 ‘의’라는 글자의 밑바탕인 셈이다. 즉 義자에는 분배의 균등성, 업무의 합리성이 고유하게 박혀 있다. 이것이 동아시아에서 정의 인식의 밑바탕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