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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해의 끝에서 생각한 산다는 것은?

한 해의 끝에서 생각한 산다는 것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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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것들의 정치

한 해의 끝에서 생각한 산다는 것은?

반값 등록금을 촉구하는 대학생들의 촛불집회.

한 해를 살아냈다는 것은 한 해 동안 있었던 크고 작은 경쟁에서 나를 지켜냈다는 뜻이기도 하다. 겨우 나를 지켜냈으나, 가슴은 공허하고 마음은 황폐하다. 왜 그럴까? 자기동일성을 떠받치는 것은 경쟁에서의 이김이고, 그것은 필연적으로 피로를 낳는다. 나도 모르게 존재하는 것의 피로함이 누적된 탓에 나는 그토록 공허하고 황폐했던 것이다. 경쟁보다 우리 삶을 제약하고 규정하는 것은 ‘정치들’이다. ‘정치들’은 우리를 어딘가에 귀속시키며 그 대가로 안정된 자아를 보장한다. 국가 권력이 정치 지형을 바꾸고 우리 삶을 더 나은 것으로 혁신시켰던가? 변화의 미시적 기원은 ‘작은 것들의 정치’에 있다. 그 거점 공간은 공적 영역이 아니라 부엌 식탁과 같은 일상생활이 이루어지는 곳이다. 비(非)이데올로기적 프레임 안에 있는 부엌 식탁은 ‘대화’를 하기에 좋은 공간이고, 여기에서 이루어지는 대화와 토론으로 힘없는 사람들은 정치적인 자율성을 얻고 거시적인 정치에 대안을 만들어냈다. 그 움직임은 자살 폭탄이나 테러와 견주어서 정말 작고 미미해서 밖으로는 잘 드러나지 않는다. 큰 정치와 격절된 식탁 주변에서 일어나는 ‘작은 것들의 정치’는 작은 것들이 모여 힘을 만들고 결국은 정치의 장에서 변화를 일궈낸다. 제프리 골드파브는 한국의 촛불 시위를 ‘작은 것들의 정치’의 한 예로 이해한다.

“외부인으로서 그리고 비전문가로서 촛불 시위에 대한 나의 일반적인 이해는 다음과 같다. 대중적인 인터넷 공적 포럼인 아고라를 통해, 한 열네 살 중학생 소녀가 2008년 4월 초에 미국산 쇠고기의 수입을 재개하려는 정부의 조치를 막기 위해 서울시청 광장에서 촛불 집회를 열 것을 요청했다. 초기의 시위에 참여한 사람들은 대체로 열네 살에서 열일곱 살 사이의 중학교와 고등학교의 청소년이었다. 이들은 문자 메시지를 통해 광우병의 위험과 미국산 쇠고기 수입 재개 문제에 대해 논의하고 있었고, 이후 행위의 필요성에 대해 느끼게 되었다. 그들은 자신들이 가지고 있는 관심과 우려를 보여주기 위해 처음에는 상대적으로 작은 집단에서 만났지만, 이들이 제기하는 문제에 대한 관심이 좀 더 커다란 사회집단들에서 가시적이게 됨에 따라 그 시위들에 대한 강한 반응이 나타났다. 광장에서, 도시와 전국에 걸쳐 좀 더 커다란 일련의 촛불 시위가 뒤따라 일어났고, 이는 6월10일에 전국적으로 100만 명이 참가했던 대규모의 촛불 시위를 이끌어냈던 것이다.”(제프리 골드파브, ‘작은 것들의 정치’)

이제 ‘작은 것들의 정치’는 세계적인 현상이다. 1989년에 동유럽 ‘식탁과 불법 서점, 시낭송회’와 같은 작은 공간을 거점으로 삼은 ‘작은 것들의 정치’는 마침내 공산주의 체제를 무너뜨리고 거대한 정치적 전환을 이뤄냈다. 2011년 튀니지, 예멘, 바레인, 리비아, 이집트 등 중동에서 일어난 힘없는 사람들을 중심으로 하는 ‘작은 것들의 정치’는 새로운 변화를 이끌어내는 중이다. 2011년 10월, 시민연대의 대표로 서울시장선거에 나선 박원순이 기존 정치권력의 지원을 받은 여당 후보를 물리치고 서울시장에 당선함으로써 기존 정치의 역학구도를 요동치게 만든다. 이것도 ‘작은 것들의 정치’가 일군 혁신의 좋은 예다.

이집트, 리비아… 그리고 박원순



우리는 정치들의 작은 틈새에서 겨우 자아를 보존하고 살아간다. 그러나 앞으로는 이 힘없는 것들이 정치적 대안 세력으로 주목받을 것이다. 정치들의 작은 틈새에서 겨우 존재하는 작은 것들이 일으키는 변화와 혁신은 21세기의 중요한 정치적 대안이 될 것임을 이미 증명해 보인 바 있다. 20세기의 뛰어난 사회학자인 어빙 고프먼은 이렇게 적는다.

“어딘가에 속해 있지 않다면, 우리에게는 그 어떤 안정된 자아도 없을 것이다. 그러나 사회적 단위에 대한 완전한 헌신과 애착은 자아 없음을 의미한다. 한 명의 개인이 되었다는 의식은 좀 더 넓은 사회적 단위로의 끌어당김이 있을 때 나타날 수 있다. 우리의 자의식은 그런 끌어당김에 저항하는 작은 방식들을 통해 생길 수도 있다. 우리의 지위는 세상이라는 단단한 건축물들에 의해 뒷받침되지만, 개인적 정체성에 대한 우리의 의식은 종종 갈라진 틈새 사이에 존재한다.”(어빙 고프먼, ‘공적 제도의 숨겨진 세계’, 여기서는 제프리 골드파브, 앞의 책에서 재인용.)

우리는 정당에 소속되지 않고 능동적으로 정치 행위에 가담하지 않더라도, 일상 속에서 작은 정치를 한다. 식탁에서, 거리에서, 생맥주집에서. 누군가 대화를 하거나 혹은 소셜 네트워크에서 상호소통하는 글을 올리면서. 실은 우리가 일상 속에서 행하는 말과 행동은 대부분 미시적 정치행위들이다. 인터넷에 접속하고 대중적인 인터넷 공적 포럼인 ‘아고라’에 올라 있는 글들을 열람하고, 거기에 댓글을 달면서, 우리는 거침없이 정치 속으로 뛰어들어간다. ‘작은 것들의 정치’가 더 큰 정치의 틀을 바꾸고, 새로운 전제정치적 위협에 맞서는 힘이 될 수도 있다. ‘작은 것들의 정치’가 저 리비아에서 오래된 독재자를 무너뜨리고 새로운 정치를 이끌어냈다.

“작은 것들의 정치는 개인적인 인간 존재와 무언가 새로운 것을 세계로 가져오는 역량 사이의 연계를 가능케 하는 사회적 재료다. 사람들은 그들 사이에 존재하는 공간에서, 그들의 상호작용에서, 상황을 재정의하고 그 과정에서 그들의 세계를 바꿀 수 있다.”(제프리 골드파브, 앞의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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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석주| 시인 kafkajs@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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