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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약관리법상 취급 제한 물질까지 버젓이 모기약으로 유통

사람 잡는 살충제

농약관리법상 취급 제한 물질까지 버젓이 모기약으로 유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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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약관리법상 취급 제한 물질까지 버젓이 모기약으로 유통

무심코 사용하는 살충제 가운데 일부에는 EU 등 선진국이 사용을 막는 화학 성분이 함유돼 있다.

살충 효과가 뛰어나 피부에 바르는 해충차단제에 많이 쓰이는 화학물질 ‘퍼메트린’에 대한 평가도 부서마다 엇갈린다. 식약청은 퍼메트린 성분을 규제하지 않는다. ‘소비자시민모임’이 시중에서 판매 중인 가정용 살충제 16개 제품의 표시 성분을 조사한 결과, 9개 제품에 퍼메트린이 들어 있었다. 그러나 농림수산식품부의 농약관리법은 이 물질을 취급 제한 물질로 규정하고 있다. 퍼메트린은 유해화학물질관리법상 유해물질이기도 하다. 농약으로도 쓸 수 없는 유해 물질을 가정용 살충제에는 사용하는 셈이다.

가정용 살충제와 농약은 모두 해충을 잡기 위한 약이라는 점에서 공통점이 있다. 그러나 살충제는 소비자가 쉽게 구입해 사용할 수 있는 점, 사용 기준보다 많이 써도 제어할 방법이 없는 점, 밀폐된 공간에서 사용할 경우 공기 중 부유물질과 결합해 오래 잔류할 수 있는 점 등을 감안해 더욱 철저하게 관리해야 한다. 문제는 우리나라에서 이 원칙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고 있다는 점이다. 예를 들어 국내에 등록된 모든 농약은 10년에 한 번씩 위해성 재평가를 받아야 한다. 이 과정에서 인체에 유해한 것으로 판정될 경우 생산이 금지된다.

그러나 살충제에 대해서는 이런 규정 자체가 없다. 1998년 4월 마련된 ‘의약품 등의 품목허가신고심사규정’에 따라 살충제를 허가할 때 제품의 안전성과 유효성을 검토하고 나면 끝이다. 그 결과 2010년 현재 우리나라의 살충제 제조 허가 품목은 113개 업체 1090개에 달한다. 반면 EU와 미국은 각각 10년과 15년에 한 번씩 살충제의 안전성을 재검토해 허가 여부를 결정한다. 현대 과학의 발전에 따라 한때 이로운 것으로 알려졌던 화학물질의 독성이 속속 밝혀지고 있다는 점에서 살충제의 재평가 시스템은 반드시 마련돼야 한다는 게 전문가들의 견해다. 이에 대해 설효찬 식약청 화장품정책과장은 “우리도 약사법을 개정해 10년마다 살충제 허가를 재검토하는 것을 추진 중”이라고 했다.

슬로 데스

이와 동시에 유독성 등을 이유로 이미 사용이 금지됐으나 여전히 사용되고 있는 살충제도 철저히 감독하기로 했다. 연세대 환경공해연구소 김호현 교수 등이 2008년부터 2년간 전국의 어린이 보육시설과 유치원 및 실내놀이터 등의 유해물질을 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전국 대부분의 시설에서 유기인계 살충제인 디클로르보스 성분이 검출됐다. 디클로르보스는 동물 실험에서 발암성이 확인돼 2007년부터 사용이 전면 금지된 물질이다. 김 교수는 “이후 상대적으로 독성이 낮은 피레스로이드 성분 살충제를 사용하도록 했지만, 해당 제품의 가격이 기존 제품에 비해 14배나 비싸고 살충 효과도 떨어진다는 인식 때문에 여전히 디클로르보스 성분 살충제를 사용하는 업체가 있는 것 같다”고 설명했다. 1999년 소독업이 허가제에서 신고제로 전환되면서 영세업체들이 범람하는 것도 문제다. 김 교수는 “영세업체들이 저렴한 가격을 경쟁력으로 내세워 영업하면서 금지된 소독제를 사용하는 경우가 있는 것 같다. 살충제의 유해성에 대한 교육과 계도, 행정단속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2011년 10월 번역 출간된 릭 스미스, 브루스 루리에의 저서 ‘슬로 데스’는 캐나다의 환경운동가인 두 저자가 우리의 일상 속에 들어와 있는 각종 화학물질이 인체에 미치는 영향을‘생체 실험’을 통해 확인하는 내용이다. 이들은 프탈레이트와 트리클로산이 포함된 목욕용품으로 샤워하고, 플라스틱 컵에 담긴 커피를 마시며, 코팅이 된 프라이팬에 음식을 조리하고, 일회용 포장용기에 담긴 스파게티를 전자레인지에 데워 먹는다. 그렇게 다양한 방식으로 몸속에 화학성분을 ‘집어 넣은’ 결과는 놀라웠다. 체내에서 생식 관련 장애를 일으키는 모노에틸프탈레이트 농도가 실험 전보다 22배, 내분비계를 교란하는 트리클로산 농도는 2900배 증가한 것. 이들이 사용한 제품이 모두 동네 상점에서 쉽게 구입할 수 있는 것으로, 대부분의 사람이 그동안 문제의식 없이 써오던 것들이라는 점에서 이 실험은 캐나다 내에 큰 반향을 일으켰다. ‘일상 속 내 아이를 서서히 죽이는 오리 인형의 진실’이라는 부제에서 알 수 있듯, 저자들은 어린이 장난감에 함유된 독성 화학물질 문제도 제기한다. 이들의 조사 결과 상당수 놀잇감과 유아복에 납, 브롬화합물, 프탈레이트 등 치명적인 독성 화학성분이 들어 있었다.

화학가정용품 위해성 평가

‘슬로 데스’는 2009년 캐나다에서 출간된 이후 현지 소비자의 생활 방식에 여러 가지 변화를 가져왔다. 비스페놀A가 든 젖병, 강한 인공 향이 첨가된 목욕용품과 방향제, 오래된 테플론 프라이팬 등이 가정에서 퇴출당했고, 정부도 독성 화학물질에 대한 규제와 감시체계를 개선하는 다양한 정책을 내놓았다.

우리나라에서도 최근 비슷한 움직임이 시작되고 있다. 2011년 7월 여성민우회생협, 녹색연합, 환경운동연합, 건강사회를 위한 약사회, 노동환경건강연구소 등 시민사회단체가 모여 구성한 ‘발암물질 없는 사회만들기 국민행동’은 중국산 장난감 등 우리가 일상에서 쉽게 접하는 물건들 속 독성 물질의 위험성을 고발하는 운동을 펼치고 있다.

정부도 생활화학용품의 안전성을 엄격하게 검사, 관리하겠다는 방침이다. 2011년 12월 초 보건복지부는 2013년까지 세정제, 방향제, 접착제, 광택제, 탈취제, 합성세제, 표백제, 섬유유연제 등 일상생활과 밀접하게 관련된 8가지 화학가정용품의 위해성을 평가해 해당 품목의 안전기준에 반영하겠다고 발표했다. 환경부도 국내에 유통되는 모든 화학물질에 대한 위해성 여부를 분석·평가해 그 결과를 정부에 보고·등록하도록 강제하는 것을 골자로 하는 ‘화학물질등록평가법’ 제정을 추진 중이다. 김호현 연세대 환경공해연구소 교수는 “우리는 지금 무수히 많은 화학물질에 둘러싸여 살고 있다. ‘이렇게 누구나 사용하는 물질이 위험한 건 아니겠지’라는 생각은 위험할 수 있다. 살균제나 살충제 같은 독성 물질을 사용할 때는 더욱 그렇다. 벌레가 살 수 있는 환경이 사람에게도 좋은 환경이라는 걸 깨닫고, 스스로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고 말했다.

신동아 2012년 1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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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화선 기자│spri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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