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중구는 620년 된 도시라 곳곳에 역사·문화 자원이 가득하다. 서소문성지, 충무공 생가터, 광희문, 주자소터, 혜민서터, 성곽길, 서애 유성룡 고택터 등 하나같이 역사적 가치와 스토리를 겸비한 자원이다. 이런 자원을 관광명소로 개발하는 ‘1동 1명소 사업’을 추진해 도시에 스토리를 입히면 중구와 서울의 품격이 한 단계 높아질 것이다.”
최 구청장은 성균관대 토목공학과를 졸업하고 1977년 국가기술고등고시에 합격한 뒤 서울시 도시계획국에서 공무원 생활을 시작했다. 서울시 행정부시장을 지냈고, 지난해 중구청장 재선에 성공했다.
공직생활 대부분을 지하철건설본부장, 뉴타운사업본부장, 건설안전본부장 등으로 일하며 서울 개발을 진두지휘했다. 개포·양재지구 개발, 청계천 복원공사, 버스중앙차로제 도입, 동대문디자인플라자(DDP) 건설, 올림픽대로·동부간선도로 건설 등 굵직한 사업은 대부분 그의 손을 탔다. 그가 ‘서울시 토건(土建) 선생’으로 불리는 이유다. 도시공학박사이자 도시계획 전문가인 그가 구청장이 돼서는 ‘도시에 문화를 입힌다’고 나서니 연유가 궁금하다.
1동 1명소, 정동야행…
“서울을 방문하는 외국인 관광객 77.6%가 중구를 찾는다. 그런데 대부분은 명동이나 동대문에서 쇼핑하는 게 목적이다. 당장은 외국인과 외지인들이 쇼핑하러 오는 게 좋겠지만, 장기적으로는 한계가 있다. 늘어나는 관광 수요에 대비하고 재방문율을 높이려면 중구의 역사·문화 가치를 활용한 볼거리를 많이 만들고, 관광객이 즐길 수 있는 자리를 마련해야 한다. 쇼핑을 하면서 한국 역사도 배우고, 저녁에는 우리나라 최대 건어물 시장인 중부-신중부시장에 마련된 ‘호프광장’에서 노가리와 오징어를 곁들여 한잔씩 할 수 있도록 하는 거다.”
▼ 5월 ‘정동야행(夜行)’도 그 일환인가. 밤길을 걸으며 역사·문화시설을 둘러보고 전통체험 프로그램을 즐기는 축제라 호응이 컸다.
“중구는 개항 이후 각국 공사관이 들어오면서 외교 중심지가 됐고, 서양인들은 근대 교회와 학교를 세웠다. 덕수궁 석조전, 제일교회, 대한성공회 서울주교좌성당, 이화여고박물관, 배재학당 등은 근대문화유산의 보고(寶庫)다. 야간 조명이 멋진 덕수궁 중명전에서 사진을 찍고, 중화전에서 연주를 들으며 한국의 밤 정취를 만끽하면 얼마나 멋있을까 생각했다. 우리의 역사·문화 콘텐츠를 활용한 야간관광 프로그램을 만들어 우리 문화를 알리고 싶었다. 문화재해설사들의 설명을 듣다보면 역사 공부도 절로 된다.”
▼ 미국대사관저를 처음 개방해 관심을 끌었는데.
“구청 과장들과 성공회, 러시아대사관 등을 수없이 방문했다. 처음엔 대부분 반응이 시큰둥했다. 선뜻 문을 열겠다고 나선 곳도 5곳뿐이었다. 지난한 설득 과정이 있었다. 결국 미국대사관저를 최초로 개방하면서 화제가 됐고, 축제 이튿날에는 마크 리퍼트 대사가 대사관저 정원에 깜짝 등장해 관람객을 맞기도 했다. 이틀간 9만여 명이 다녀갔고, 개방한 시설들도 평소의 8~10배를 웃도는 방문객이 몰려와 함박웃음을 터뜨렸다. 관광객을 위해 야간에 상점 문을 열어달라고 요청했을 때 손사래를 치던 상점 주인들도 ‘대박’을 터뜨렸다. 그래서 가을에는 축제 기간을 하루 늘렸다. 축제라는 게 첫 회에 실패하면 실패다. 첫 회부터 확실히 성공해야 입소문을 타고 다시 찾는다.”
정동야행은 9월 21일 미국 애리조나에서 열리는 피너클 어워드에서 새 프로그램 부문 은상을 수상했다. 피너클 어워드는 세계축제협회가 매년 전 세계의 축제 중 우수 축제를 선정해 시상하는 것으로 ‘축제의 오스카상’이라 불린다.
▼ 올해 가을 축제는 언제 하나.
“10월 29~31일이다. 가수 이용이 부르는 ‘10월의 마지막 밤을…’(‘잊혀진 계절’) 노래가 들리면 정동야행을 떠올리기 바란다(웃음). 이번에는 5월 첫 축제 성공에 힘입어 다양한 공연·체험 프로그램도 마련했다. 영국·캐나다대사관과 정동의 숨은 보석인 성공회성가수녀원 등 27개 시설이 축제에 참가한다. 어제(10월 6일) 27개 시설 관리자들과 마지막 점검을 마쳤다. 정해진 시간에 방문하는 만큼 사전 예약을 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