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리 탓에 소비 위축…매상 40% 줄어
소비 촉진 도움 되면 민생회복지원금 시행해야
정치하는 사람들, 꼭 오늘만 사는 사람들 같아
비례 됐으면 됐지…조국 대표가 ‘헛물’ 켜서야
“사람 그리 안 봤는디, ‘윤통’은 너무하대요”
“사람 잘못 쓴 문재인 감옥 가게 안 생겼소”
광주송정역 앞에 국민의힘과 더불어민주당 플래카드가 위 아래로 붙어 있다.
격차해소 차이는 좁히고 기회는 넓히겠습니다
간호법 해냈습니다
전남대학교 총학생회 초청 특별강연 “우리가 결정하는 대한민국”
9월 8일, 광주송정역 앞에는 국민의힘과 더불어민주당, 조국혁신당 등 각 정당에서 내건 플래카드가 여럿 나붙어 있었다. 제일 먼저 눈길을 끈 것은 역사(驛舍)에서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내려오는 동안 마주한 조국혁신당 플래카드였다. 둥근 달 옆에 ‘탄핵’ 두 글자를 새겨 넣고 ‘탄핵의 달을 띄우겠다’는 글귀에는 조국혁신당이 지향하는 정치적 목표가 무엇인지 또렷하게 드러나 있었다.
길 건너 맞은편에는 전남대 총학생회 초청 조국 조국혁신당 대표 특별강연 안내 플래카드가 걸려 있었다. 광주송정역 앞 플래카드가 내걸린 모양새만으로 볼 때 4월 총선에 광주에서 불었던 ‘조국혁신당 바람’이 지금까지 유지되고 있나 하는 착각을 불러일으켰다.
민주당 48%, 이재명 41% 지지 도시
광주송정역 길 건너편에 조국혁신당이 내건 플래카드가 붙어 있다.
조국 대표 관련 플래카드 외 간호법 국회 통과를 자축하는 플래카드는 광주 광산구를 지역구로 둔 박균택 민주당 의원이 내건 것이고, 격차 해소를 강조한 플래카드는 김정현 국민의힘 광주시당 위원장이 내건 것이다. ‘해냈다’는 주도적 표현을 제1야당 민주당 의원이 사용하고, 집권여당 시당위원장이 ‘넓히겠다’는 다짐과 약속의 표현을 쓴 게 이채롭게 다가왔다. 오랫동안 민주당 핵심 지지기반 구실을 해온 광주에서는 명목상 집권여당과 실질적으로 여당 구실을 하는 정당이 다를 수 있다는 점이 플래카드 문구에서부터 느껴졌다.
9월 첫째 주 한국갤럽이 실시한 여론조사에 따르면 광주를 포함한 호남지역의 정당 지지율은 민주당이 48%였고, 조국혁신당 17%, 무당층 17%, 국민의힘 14%였다. 집권여당 국민의힘 지지율이 민주당은 물론 조국혁신당보다도 낮았다.
광주시민은 윤석열 대통령에 대한 직무수행 평가도 박하게 준 것으로 나타났다. ‘잘한다’는 응답은 15%에 그친 반면 ‘잘 못한다’는 응답률은 80%였다. 장래 대통령감을 묻는 질문에 호남 응답자 41%가 이재명 민주당 대표를 꼽았고, 조국 대표라고 답한 응답자도 11%에 이르렀다. 한동훈 국민의힘 대표는 8%에 머물렀고, 이준석 의원 3%, 김동연 경기지사 2%, 안철수 국민의힘 의원과 오세훈 서울시장, 김문수 고용노동부 장관이 각각 1%를 차지했다(여론조사와 관련한 자세한 내용은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 참조).
광주시내 상가 곳곳이 비어 있다.
“윤통(윤 대통령)은 할 줄 아는 게 수사밖에 없는가 보잉. 이재명(민주당 대표)이 잡들이 하다 안 되니께 인자 문재인(전 대통령) 잡아갈라는 모양인디 참말로 징허요. 주가조작한 사람(김건희 여사를 지칭)은 냅둬불고 (김혜경 여사가) 10만 원 ‘법카’ 썼다고 오라 가라 하는 게 무슨 경우당가요.”
그는 이재명 대표에 대한 사법 리스크를 ‘리스크’가 아니라 ‘정치 탄압’이라고 강변했다. 택시기사와 대화하는 게 아니라 민주당 강성 지지층과 대화하고 있는 게 아닌가 착각할 정도로 그는 강한 어조로 이 대표를 적극 방어하고 엄호했다.
문재인 죄라면 사람 잘못 쓴 죄
흥분한 목소리로 속사포처럼 육두문자를 섞어가며 정권과 대통령에 대한 분노를 쏟아내던 그는 문재인 전 대통령에 대한 언급에서는 갑자기 차분해졌다.
“사람들이 문재인이가 사람 잘못 쓴 죄로 감옥에 갈 거랍디다. 그 양반 답답하긴 해도 못된 짓 헐 사람은 아닌디….”
현재 문 전 대통령을 향한 검찰 수사는 두 갈래로 진행되고 있다. 하나는 문 전 대통령이 이상직 전 의원을 중소벤처기업진흥공단(중진공) 이사장으로 임명한 뒤 문 전 대통령 사위 서모 씨가 이 전 의원이 대주주로 있던 타이이스타젯에 임원으로 취업해 2억 원이 넘는 월급과 체재비를 지급받은 것과의 연관성이다. 중진공 이사장 임명에 대한 대가성 뇌물로 사위 서씨를 취업시켜준 게 아니냐는 게 검찰의 시각이다.
다른 하나는 2020년 21대 총선에서 이 전 의원이 전북 전주을에서 공천 받기 유리하도록 유력 경쟁자였던 최모 씨가 ‘컷오프’되는 데 청와대가 영향력을 행사했느냐 여부다. 두 사건에 대한 검찰 수사 과정에 문 전 대통령 딸 다혜 씨와 주변 인사들에 대한 광범위한 압수수색이 진행됐고, 문 전 대통령 부인 김정숙 여사가 지인을 통해 딸에게 거액을 생활비로 송금한 내용 등이 흘러나왔다.
또 다른 택시기사 이모 씨는 문 전 대통령을 둘러싼 수사에 대해 독특한 해석을 내놓았다.
“지금 문 전 대통령 수사는 윤통이 아니라 ‘이명박 사람들’이 한답디다. 문 전 대통령이 적폐 청산한다고 이명박 전 대통령을 집어넣었지 않았소. 그 앙갚음으로 이번에 문 전 대통령을 잡아넣으려 한다는구만요. 지금 윤 대통령 주변 사람들이 대부분 이 전 대통령 시절 사람들이라 그런 소리들을 허지요. 그란디 문 전 대통령이 그때 이 전 대통령을 집어넣지 않았어야 했어라. 그 일이 지금 이런 사단을 맹근 거 아닌가벼요. 어찌 됐건 그 (문 전 대통령) 사위라는 사람이 항공사 취직한 것은 쪼매 껄쩍찌근하기는 혀요.”
검찰 수사 배경에 대한 근거 있는 얘기라기보다는 구원(舊怨)에서 비롯된 정치 보복이 검찰 수사를 통해 되풀이되고 있는 것 아니냐는 해석이었다. 그는 다음 한마디를 덧붙였다.
“정치하는 사람들 보면 참 단순혀요. 꼭 오늘만 사는 사람들 같당게요. 윤통도 그려요. 지금은 자기가 대통령이지만서도 몇 해만 지나면 ‘문통’처럼 되지 않는가요. 그라믄 나중 일을 생각혀서라도 지금 헐 일, 안 헐 일 분간을 잘 혀야 허는디. 참말로….”
화제를 전남 영광·곡성 군수를 뽑는 10월 재선거 얘기로 돌렸다.
“조국 대표가 월세 방까지 얻어 재선거에 올인한다고 하는데 광주 여론은 어떻습니까”
질문이 떨어지기 무섭게 날카로운 답변이 돌아왔다.
“조국이가 헛심 쓰는구만.”
전남 영광이 고향이라는 그는 “총선 때야 조국당을 찍어줘도 야당이 유리할 것 같으니께 찍어준 거시고. 지금은 군수 한 명 뽑는디 조국당이 뭐시 헌 게 있다고 기대를 한당가. 비례 됐으면 비례 일이나 잘헐 일이지. 조국 씨가 아주 헛물을 켜고 있구만.”
호남 최대 양동시장에서 만난 사람들
이씨와 달리 광주에서 만난 시민 중에는 조국혁신당에 대해 기대감을 표하는 이도 적지 않았다. 9일 오전 양동전통시장에서 만난 70대 A씨는 “광주에서 조국당 인기가 제법 있다”며 “광주 사람들이 민주당이 꼭 좋아서 지지하는 건 아니다”라며 “몇 해 전(2016) 안철수의 국민의당이 나왔을 때 대안이 될까 싶어 찍어줬더니만 홀딱 없애고 가버렸다”고 말했다.
양동시장 전통시장활성화 지원 사업에 참여한 또 다른 어르신은 “아무리 얘기를 해도 들어먹지를 않으니 요새 사람들은 정치 얘기를 잘 안 한다”고 했다. 그는 “선거 때만 반짝 정치인들이 지역을 돌아다니지, 평소에는 우리들이 어떻게 사는지 도통 관심이 없다”고 부연했다.
양동시장 100주년 기념 조형물.
시장에서 장사하는 상인은 물론 장을 보러 시장을 찾아오는 고객도 대부분 ‘지하철을 무료로 이용할 수 있는 어르신’이 많았다. 거동이 편치 않은 어르신이 주로 찾는 양동시장이지만 지상까지 이어진 엘리베이터가 없어 큰 불편을 겪고 있다고 한다.
실제로 지하 3층 지하철 승하차장에서 지하 2층 개찰구까지는 엘리베이터가 설치돼 있었지만 지하 2층에서 지상으로 올라오는 엘리베이터는 없었다. 시장으로 통하는 1, 2번 출입구에는 엘스컬레이터가 설치돼 있었다. 그마저도 시장으로 곧바로 연결되지 않고 10계단 정도는 걸어 올라오도록 설치돼 있었다.
양동시장으로 향하는 에스컬레이터 상층부 일부가 계단으로 돼 있어 시장을 찾는 어르신들이 불편을 겪고 있다.
광주 최대 규모 전통시장인 말바우시장.
장날(9월 9일)을 맞아 말바우시장에는 장 보러 온 시민들로 북적였다.
‘말바우’라는 이름은 임진왜란 때 활약한 의병장 김덕령 장군이 말을 훈련할 때 말이 도착한 장소에서 유래했다. 말이 힘껏 발굽으로 바위를 디뎌 바위가 말발굽 모양으로 움푹 파였다는 데서 ‘말바우’라는 이름이 붙여졌다. ‘바우’는 ‘바위’의 전라도 사투리다. 실제로 말바우시장터에는 말 발자국이 찍힌 바위가 있었는데, 도시개발로 도로가 확장되면서 없어졌다고 한다. 박창순 말바우시장 상인회장에게 광주의 민심을 들어봤다.
요즘 전통시장 형편이 어떤가.
“코로나 때도 매출 감소 없이 잘 버텨왔는데, 요즘은 40% 가까이 매상이 줄었다. 어렵다고 다들 아우성이다.”
매출이 크게 준 이유가 뭔가.
“문제는 경기다. 금리가 많이 올라 소비가 크게 위축됐다.”
전 국민 25만 원 민생회복지원금에 대한 입장은 뭔가
“상인이 아니라 일반 서민 입장에서 얘기하겠다. 개인적으로 25만 원씩 소비 쿠폰 나눠줘서 소비를 촉진하는 게 꼭 필요했다고 생각한다. 그랬으면 전통시장도 살고 지역에도 돈이 골고루 돌았을 것이다. 서울 아파트값 오른다고 매스컴에 많이 나오던데, 여기 광주는 35%, 심한 곳은 40% 가까이 떨어졌다. 우리 시장은 다행히 공실이 거의 없지만 복합쇼핑몰과 인터넷상거래의 영향으로 일반 상가들이 텅텅 비고 있다. 광주 패션 중심거리라던 충장로조차 공실이 크게 늘었다. 그 정도로 지역경제가 안 돌아가고 있다. 소비 촉진에 1%라도 도움이 된다면 (민생회복지원금을) 시행했어야 한다.”
박 회장은 “정치는 잘 모르지만, 서로 싸우느라 서민에게 필요한 정책이 뭔지 정치인들이 잘 모르고 있는 것 같다”며 “경제를 가장 우선적으로 생각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김대중(DJ) 전 대통령이 대통령 됐다고 광주 사람들이 처음에는 좋아라 했는데 지금은 꼭 그렇지도 않다”고 말했다. 그는 “DJ가 전남도청을 (전남 무안으로) 옮기는 바람에 문화예술 상권 1번지였던 충장로가 쇄락했다”고 말했다.
그는 “앞으로 군 공항까지 옮긴다고 하는데 그러면 광주에 뭐가 남느냐”며 “기아자동차와 금호타이어가 있다고는 하지만 부품은 대부분 타 지역에서 들여와 여기서는 조립만 한다”고 말했다. 그는 “광주는 생산은 줄고 소비 위주 도시가 된 지 오래”라고 말했다.
박 회장은 윤 대통령과 이재명 대표, 조국 대표 등 정치인에 대한 평가에는 신중한 태도를 보였다. 다만 “지난 대선 때 여기서 윤 대통령을 많이 찍어줬는데, 지금은 그때만 못한 것 같다”고 에둘러 말했다.
‘차기 대선주자로 누가 인기가 있느냐’는 물음에는 “여기서는 민주당 지지세가 세다”며 “누가 됐건 능력 있고 깨끗한 사람 밀어주자는 분위기”라고 말했다.
광주 현역의원이 물갈이된 이유
광주는 22대 총선에 현역의원 물갈이가 많이 된 지역 가운데 하나다. 그만큼 기성 정치권에 대한 불신의 골이 깊다. 한 지역 정치권 인사는 “22대 총선에 광주 현역의원이 대부분 물갈이된 이유가 대선 패배에 대한 정치적 책임을 물은 것”이라고 해석했다.
22대 총선에 광주에서 당선한 의원은 광산구을에서 재선한 민형배 의원을 제외하고 모두가 초선이다. 광주 동구·남구갑에서 당선한 정진욱 의원은 한국경제신문 기자 출신으로 민주연구원 부원장을 지냈고, 동구·남구을에서 당선한 안도걸 의원은 기획재정부 제2차관 출신이다. 서구갑 조인철 의원은 광주시 문화경제부시장을 지냈고, 북구갑 정준호 의원은 법조인 출신으로 당 정책위 부의장을 했다. 북구을 전진숙 의원은 광주시의원과 청와대 행정관을 지냈다. 그는 “이번 총선은 전문성 있는 새 인물이 광주 정치에 활기를 불어넣어 주기를 바라는 시민들 요구가 반영된 결과”라고 풀이했다.
그러나 광주 공천은 ‘친명횡재 비명횡사’ 공천이었다는 비판도 없지 않다. 현역이 탈락한 광주 지역구에 이재명 대표의 각종 사법 리스크를 변호하는 데 앞장선 이들이 공천을 받았다는 점에서다. 광주 광산갑에 민주당 공천을 받아 22대 국회에 입성한 박균택 의원은 광주고검장 출신으로 대장동 재판에서 이 대표를 직접 변호한 인연이 있고, 광주 서구을에서 민주당 공천을 받아 22대 국회에 입성한 양부남 의원도 당 법률위원장으로 이재명 대표에 대한 사법 리스크 전반을 관리해 왔다.
22대 국회에 입성한 광주 현역의원들에 대한 초반 평가는 긍정적이라고 한다. 법안 발의도 활발하고 현장 민원실을 가동해 지역 주민과 소통하는 데도 적극 나서고 있다는 것. 광주 토박이로 지역 정치권에 오랫동안 몸담아 온 또 다른 인사는 “내후년 지방선거 때 민주당과 조국혁신당 경쟁이 불가피한 측면이 있다”며 “민주당에서 소외된 인사와 복당이 안 된 인사, 그리고 낙선한 전직 의원 측근 인사 가운데 지방선거 출마를 위해 조국혁신당 문을 두드리는 사람이 나올 수 있다”고 전망했다.
그에 비해 이낙연 전 총리가 주도한 새로운미래에 대해서는 광주에서도 존재감이 미미한 것으로 나타났다. 말바우시장에서 상무지구로 향하는 길에 만난 택시기사 박모 씨는 “총선에 출마하지 않고 호남 출신 큰 정치인으로 남아 후배의 선거를 도왔더라면 다음을 모색해 볼 수도 있었을 텐데, 자기가 직접 출마해 떨어지는 바람에 정치적 재기가 어려울 것”으로 예상했다. 22대 총선에 이 전 총리는 광주 광산구을에 출마했다 14% 득표에 그쳤다. 상대였던 민주당 민형배 의원은 75.09% 압도적 득표로 당선했다.
광주는 이재명으로 정했다?
택시기사 박씨는 “지금 광주 사람들이 절실히 원하는 것은 정권을 찾아오는 것”이라며 “정권교체에 걸림돌이라고 여겨지면 가차 없이 버림받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조국혁신당도 마찬가지”라며 “총선이나 지방선거는 집권 가능성을 높이기 위해 세력을 키운다는 입장에서 표를 잠시 나눠줄 수 있지만, 대선은 전혀 다른 문제”라고 말했다. 그는 “맘에 들어서는 아니지만 지금으로 봐서는 광주는 이재명을 차기 대선 후보로 확정한 것이나 마찬가지”라고 말했다. 그는 “이재명 말고 대안이 될 만한 사람이 없지 않으냐”고 말했다.
야권 일각에서는 이 대표를 대체할 차기 주자로 김동연 경기지사와 김부겸 전 국무총리, 김경수 전 경남지사를 일컬어 ‘신 3김’으로 거론한다. 그러나 광주시민들은 ‘신 3김’에 대해 “현재로서는 택도 없는 소리”라고 일축했다.
양동시장 인근에 대규모 아파트 단지가 들어서 있다.
양동시장 상인과 이곳을 찾는 광주시민은 다음 선거에 어떤 선택을 할까. 양동시장 100주년 기념 조형물 뒤로 병풍처럼 아파트 단지가 빽빽이 들어서 있었다. 전통과 변화가 공존하는 도시, 2024년 광주의 현재 모습을 상징하는 듯했다.
구자홍 기자
jhko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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