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4년 12월호

‘뒤땅’에는 오렌지, ‘탑볼’에는 생마늘

  • 글: 신준식 자생한방병원장

    입력2004-11-25 11:4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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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뒤땅’에는 오렌지, ‘탑볼’에는 생마늘
    “공을 치는 순간 좋은 골퍼는 좋은 일만 생각하고, 서툰 골퍼는 나쁜 일만 생각한다.” 메이저대회 7승의 신화적인 기록을 남긴 프로골퍼 진 사라젠의 말이다. 필드에 나선 사람의 감정이나 심리상태가 얼마나 중요한 요소인지 의미하는 말일 것이다.

    일개 아마추어 골퍼에 불과하지만 필자도 이 말에 100% 공감한다. 의학적으로 볼 때 골프는 다른 스포츠에 비해 평소에는 잘 쓰지 않는 근육과 신경을 섬세하게 조종해야 하고 그 정확성에 조금이라도 어긋남이 있으면 결과에 크게 영향을 미치는 운동이기 때문이다.

    때문에 일상에서 스트레스를 심하게 받은 경우는 물론 너무 좋은 일이 있을 때도 감정이 흔들려 필드에서 실수하기 십상이다. 이를 방지하기 위해 필자는 오래 전부터 나름대로 한의학적 이론에 바탕을 둔 처방을 하나 준비해 갖고 다닌다. 멋진 라운딩을 위한 나만의 비법이라고나 할까.

    한의학에서는 인간의 감정을 희(喜·기쁨), 노(怒·노여움), 우(憂·근심), 사(思·생각이 번잡함), 비(悲·슬픔), 공(恐·공포), 경(驚·놀라움)의 일곱 가지로 나눈다. 이 일곱 가지 감정을 가리켜 ‘칠정(七情)’이라고 하는데, 칠정의 변화는 오장육부에 직접적인 영향을 주어 병이 나게도 만들고, 병의 상태를 변화 혹은 악화시키기도 한다고 본다. 이런 이치는 골프에서도 마찬가지다. 라운딩 때의 감정상태가 관련된 장부에 영향을 미치고 그에 따라 라운딩 결과도 달라지게 마련인 것이다.

    지나치게 기쁜 일이 생겨 흥분하면 심장이 상하게 된다. 뜻하지 않은 복권 당첨이나 시험 합격으로 기뻐하다가 정신이 아득하고 산만해지는 경우가 대표적이다. 기쁜 감정이 많아지면 심기가 흩어져(心氣散) 퍼팅이나 쇼트게임이 난조에 빠지기 쉽다. 이런 경우에는 고들빼기나 인삼처럼 쓴 식품을 준비해두었다가 껌처럼 씹으면 한결 나아진다. 몸에 긴장감도 생기고 아드레날린이 분비되어 샷이 잘 나온다.



    화가 난 상태에서는 근육을 주관하는 간이 상하게 되어(怒傷肝) 라운딩에 영향을 준다. 다른 사람과 큰소리로 다투고 나서 골프를 치다 땅만 때린 경험을 해본 적이 있을 것이다. 분노로 간에 울혈이 생기고 이 울혈이 간장이 주관하는 근육을 굳게 해 퍼팅할 때 쓸데없는 힘이 들어가기 때문이다. 이럴 때는 오렌지나 귤처럼 새콤한 음식으로 간의 기운을 올려주면 좋다. 간 기능을 올려주는 신맛이야말로 드라이버나 아이언샷을 할 때 ‘뒤땅 치기’를 방지해주는 최고의 보약이다.

    한편 근심이 많으면 맥을 주관하는 폐가 상하게 된다(悲傷肺). 우울하고 기운이 없어 보이는 사람에게 ‘맥아리가 없다’고 하는 것이 이와 같은 이치다. 맥이 풀렸을 때 골프를 치면 심신이 위축되어 스윙 궤도가 작아지고 비거리가 줄거나 탑볼을 치기 쉽다. 이럴 때는 그늘집에 들러 우동을 시킨 뒤 고춧가루를 섞어 먹으면 좋다. 풋고추나 생마늘을 잘근잘근 씹어먹는 것도 한 방법이다. 매운 음식 때문에 혈액순환이 잘 돼 퍼팅이 금세 풀려나간다.

    반대로 너무 잘 치려고 이런저런 생각을 하다 보면 비장이 상하는데(思傷脾), 이는 혈액순환을 방해하고 혈기를 망동케 해서 집중력이 떨어지는 원인이 된다. 티박스에 올라가 ‘헤드 업을 하지 않고, 볼을 끝까지 보면서, 왼쪽 팔은 쭉 펴고…’ 등등 복잡한 생각을 하다 보면 오히려 역효과가 나지 않던가. 이럴 때 사탕이나 초콜릿 같은 단 음식을 섭취하면 긴장이 풀린다.

    평소 실력과 달리 갑자기 컨디션 난조를 보이는 경우에는 공포나 놀라는 감정이 원인일 가능성이 높다. 상대하기 어려운 사람과 골프를 해야 하거나 뛰어난 기량으로 상대를 놀라게 하는 사람과 골프를 할 때 이런 현상이 나타날 수 있다. 이 경우 공포감이나 놀람 때문에 신장이 상하게 되고(恐傷腎), 이로 인해 신장이 주관하는 뼈와 근육이 약해지고 하체가 흔들려 타점이 들쭉날쭉하게 된다. 홀에서 기다릴 때마다 벤치에 주저앉거나 화장실을 찾는 것도 신장 기능이 떨어져 다리의 힘이 풀리기 때문이다. 이때는 짠맛으로 신장의 기운을 돋워주면 극복할 수 있다.

    스포츠만큼 사람의 심리상태가 적나라하게 드러나는 것도 드물다. 골프 한 게임을 치면 상대를 알 수 있다는 말이 괜히 나온 것이 아니다. ‘칠정 골프’로 마음상태를 점검하고 다양한 처방으로 이를 극복한다면 몸과 마음을 동시에 다스리는 일석이조가 아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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