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5월 함께 라운드한 동료 변호사들과 다정하게 포즈를 취했다. 왼쪽 끝이 필자.
일단 골프를 시작한 사람이라면 누구나 골프를 잘 치고 싶은 마음일 것이다. 그렇지만 골프를 시작했다고 해서 모두 프로선수가 될 수 있는 것은 아닐 터. 프로선수가 될 생각이 없다면 굳이 골프를 잘 치려 애쓰기보다는 골프를 ‘재미있게’ 즐기는 것이 낫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즐거운 골프가 승부보다 앞서면 라운드가 한결 상쾌해진다. 이런 즐거움을 더 ‘효율적으로’ 만끽해보자는 심산으로 나는 스스로 몇 가지 원칙을 만들었다.
첫째, 한번 라운드에 동반한 사람이 재미가 없으면 두 번 다시 그 사람과는 골프 약속을 잡지 않는다. 내기에 지나치게 집착해 돈을 좀 잃으면 금세 얼굴색이 변하고 애꿎은 캐디만 나무라는 사람, 짧은 퍼팅을 놓치고 나면 다음 홀까지 이동하면서 내내 말 한 마디 안하는 사람, 필드에서 휴대전화 통화를 너무 자주하는 사람, OB난 공을 끝까지 찾으러 다니느라 동반자의 플레이를 지연시키는 사람…. 이런 사람들이 대표적인 기피 인물이다.
고교 동창들과 라운드할 때의 일이다. 한 친구가 짧은 퍼트를 놓치고는 퍼터로 그린을 내리찍어 그린이 푹 패었다. 그 후로 그 친구와는 골프를 치지 않았다. 언젠가는 80대 초반을 치는 선배 한 분과 필드에 나갔는데, 홀을 이동하는 동안에도 지난 홀에서의 실수를 복기하는 듯 18홀을 도는 내내 말이 거의 없었다. 숨이 막힐 정도였다. 스트레스를 풀러 왔다가 오히려 스트레스를 받아서 가는 어리석음을 두 번 다시 겪을 필요는 없지 않겠나.
둘째 원칙은 가족에 관한 것이다. 주말 골퍼라면 누구나 공감할 고민거리 하나가, 주말에 골프를 치러 가면 가족들, 특히 아내가 싫어하는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
그래서 나는 주말에 골프를 치러 나갈 경우엔 아내와 아들에게 벌금 10만원을 낸다는 원칙을 세웠다. 골프 치러 가기 전날 아내는 세면도구, 골프 옷, 속옷, 신발, 모자 등을 골프가방에 챙겨준다. 골프를 친 후에도 나는 항상 바지 뒷주머니에 2만~3만원을 넣어두곤 한다. 그러면 주말에 골프를 치러 가더라도 아내에게 ‘확실히’ 덜 미안하다. 아내도 ‘비교적’ 기꺼운 마음으로 가방을 챙겨주고, 다녀온 후에도 반갑게 내 가방을 받아주는 듯하다.
셋째 원칙은 말 그대로 매너에 관한 것이다. 내가 처음 ‘머리를 올린’ 곳은 중앙CC였는데, 당시 동반자들은 사업하다 은퇴하신 나이가 지긋한 분들이었다. 생애 처음 필드에 선 그날 내가 배운 것은 골프 매너가 전부였다.
그 후로도 다른 동반자들과 라운드하면서 늘 좋은 점은 따라 배우려고 했다. 캐디에게서 클럽을 건네받거나 건네줄 때는 항상 ‘고맙습니다’라고 말하는 습관을 배웠고, 캐디피를 줄 때는 미리 준비해 간 봉투에 넣어 건네주는 게 좋다는 것도 배웠다.
언젠가 한번은 우리 팀 캐디가 매우 바쁜 것 같아 내가 대신 핀대를 홀에 꽂아주면서 캐디들이 하는 것처럼 다음 팀을 향해 인사를 해보였다. 그러자 다음 팀의 캐디가 매너가 좋은 신사라며 필드의 다른 캐디들에게 무전으로 이야기하는 것이었다. 가끔은 골프백에서 이름 모를 캐디들이 넣어놓은 감사의 편지를 발견하기도 한다. 누군가가 나로 인해 즐겁다면 당연히 나로서도 흐뭇한 일이다.
세상의 모든 이치가 그러하듯, 골프에서도 결과가 아니라 과정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필드에 한번 나갔다 들어올 때까지의 모든 과정-골프가방을 챙겨주는 아내와 가족에 대한 배려, 필드에 함께 나간 동반자에 대한 배려, 캐디에 대한 배려 등-이 매너에서 시작해서 매너로 끝난다면, 타수와 상관없이 일상의 스트레스를 더 말끔히 날려보낼 수 있을 것이다. 즐거움은 나누면 배가 되는 법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