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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형제’ 황장엽·김덕홍 결별 내막

황장엽, 김덕홍의 ‘訪美’와 ‘망명정부’를 거부하다

  • 이정훈 < 동아일보 신동아 기자 > hoon@donga.com

‘의형제’ 황장엽·김덕홍 결별 내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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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주체재단 이사장을 맡았지만 황씨는 그가 처음 소개한 ‘주체’가 김일성 부자의 독재체제를 강화하는 이념적 도구로 전락한 데 대해 크게 좌절하고 있었다. 북한에서는 중국을 제외하고는 외국으로 바로 이어지는 직항로가 거의 없다. 따라서 외국에 가려면 먼저 베이징(北京)으로 나와야 한다.

베이징에 온 황씨는 여광무역을 운영하는 김씨를 자주 만나 흉금을 털어놓고 이야기했다고 한다. 김씨 또한 베이징에서 자본주의의 맛을 본 다음이라 북한 체제에 대해 환멸을 느끼고 있었다. 이때 황씨는 그의 한국 망명을 결정적으로 도운 전 KLO 부대장 이연길(李淵吉)씨와도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다. 이연길씨와의 대화는 황장엽·김덕홍씨가 망명하는 직접적인 동인이 되었다.

1997년 2월12일 황장엽·김덕홍씨는 전격적으로 베이징 주재 한국대사관 영사부로 망명을 단행했다. 안기부는 이연길씨를 통해 두 사람이 망명해올 것을 미리 알고 있었다.

세계 여론의 주목을 받던 두 사람은 얼마후 안기부의 보호 아래 필리핀으로 옮겨갔다가 1997년 4월20일 김포공항에 들어왔다. 이날 황씨는 “우리 민족의 평화적 통일을 위하여 마지막 힘을 다 바침으로써 조금이나마 민족 앞에 속죄할 수 있게 되길 바란다”는 내용의 성명을 발표했다. 김씨도 비슷한 내용의 성명을 발표했다.

안기부 조사를 마친 두 사람은 일심동체로 북한 민주화를 위해 노력해왔다. 두 사람, 특히 황장엽씨는 한국사회에 들어와 어렵게 살아가던 탈북자들의 정신적 지주가 되었다. 탈북자들은 김정일에 반대한다는 의식만 있을 뿐 어떤 논리로 어떻게 싸워야 하는지를 정립하지 못하고 있었는데, 황씨는 싸워야 하는 논리와 방법을 조목조목 세워주었던 것이다.



1999년 3월9일 황씨를 정신적 지도자로 삼은 탈북자들은 국정원의 지원을 받아 탈북자동지회(이하 동지회)라는 사단법인체를 만들었다. 국정원은 사무실 임대 비용과 회보를 발간할 수 있을 정도의 운영비는 제공했으나, 모임은 탈북자들이 자치적으로 운영하도록 하였다. 동지회 회원들은 황장엽씨의 분신이나 다를 바 없는 김덕홍씨를 회장으로 선출하고, 황장엽씨는 명예회장으로 추대했다.

이 시기 김대중 정부는 김정일 정권과의 대화를 추진하는 햇볕정책을 펼쳤다. 그리하여 2000년 4월에는 베이징에서 박지원(朴智元) 문화관광부장관과 송호경 북한 아태 부위원장 간에 남북정상회담을 위한 밀담이 있고, 이어 6월 역사적인 남북정상회담이 이루어졌다. 남북정상회담은 탈북자들을 매우 곤란하게 만든 이벤트였다. 김정일 신드롬이 일어날수록 반(反)김정일을 주장해온 탈북자들에게는 자기가 몸담았던 조직을 배신하고 나온 배신자라는 그늘이 드리워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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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훈 < 동아일보 신동아 기자 > hoo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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