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2년 12월호

“제네바 기본합의 쉽사리 깨지 못할 것”

[이슈 좌담] 2002년 12월 서울-평양-워싱턴-도쿄 가열되는 한반도 파워게임

  • 토론진행: 송문홍 토론:서주석 한국국방연구원 연구위원, 조동호 한국개발연구원 연구

    입력2002-11-29 15:2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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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한반도 주변 정세가 혼미 상태에 빠진 지 한 달이 훨씬 넘었다. 현재 최대 현안인 북한의 비밀 핵개발 문제는 10월17일 미국의 전격적인 발표로 본격화됐다. 그보다 한 달 전에는 북-일 정상회담(9월17일)에서 북한의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일본인 납치문제를 과감하게 시인해 세상을 놀라게 했다. 북한은 또 7월 임금과 가격을 대폭 인상하는 내용의 ‘경제관리 개선조치’를 내놓은 데 이어 조차(租借) 수준이라고까지 평가되는 신의주특구 안(案)을 발표하기도 했다.
    • 북한의 최근 행태는 과거 행동에 비하면 차원이 다르다는 게 중론이다. 그렇다면 각각 별개 사안으로
    • 보이는 이 모든 일이 의미하는 것은 무엇일까. ‘신동아’는 정치·군사 부문과 경제 부문의 북한전문가 두 사람을 초대해 최근 한반도 주변을 둘러싸고 있는 복잡다기한 현안들의 의미에 천착해보았다.(편집자)
    ◇ 제네바 기본합의의 운명은?

    “제네바 기본합의  쉽사리 깨지 못할 것”

    박남기(가운데) 경제계획위원장을 비롯한 북한 경제시찰단이 10월28일 경기도 수원의 삼성전자를 방문, 전자동 생산라인을 둘러보고 있다.

    현재 한반도 주변의 최대 현안은 새롭게 드러난 북한의 농축우라늄 핵개발 의혹입니다. 이에 대해 북한은 미국이 먼저 불가침조약 체결에 응할 것을, 미국은 북한이 먼저 핵개발을 포기할 것을 요구하는 등 양측이 평행선을 달리고 있습니다. 이와 관련, 1994년 10월에 체결돼 그동안 핵문제를 비롯한 북한문제 해결에 국제적 틀로 작동해온 북-미 제네바 기본합의가 어떤 변화를 겪을지도 관심사입니다.

    제네바 기본합의가 파기되고 북-미간 갈등 양상이 전쟁으로까지 확대되는 것은 한국 일본 중국 등 모든 이해당사국이 극력 회피할 것이라고 가정한다면, 제네바 합의가 유지되거나 아니면 제네바 합의를 대신할 새로운 국제 틀이 모색되어야 할 상황입니다. 이번에 북한이 과감하게 핵개발을 시인하고 나선 것도 북미 관계에 새 돌파구를 마련하기 위한 고육책이라고 보는 견해가 있지만, 이는 결국 제네바 기본합의의 변경을 초래할 가능성이 큽니다.

    이번 사태가 논의되는 과정에 제네바 기본합의는 어떤 변화를 겪게 될까요. 이를 대신할 새로운 국제 틀이 등장할 가능성은 얼마나 되겠습니까.

    |서주석| 미국은 ‘북한이 제네바 합의를 무효화한 것으로 간주한다’면서 북한이 제네바 합의를 심각하게 위반했다고 비난하고 있습니다. 반대로 북한은 미국이 오히려 제네바 기본합의를 위반해왔다고 상반된 주장을 합니다. 그러면서도 양측 다 제네바 기본합의를 파기할 것인지 여부에 대해서는 확실하게 언급지 않고 있습니다. 제네바 합의가 파기될 경우 문제가 더욱 심각해지기 때문입니다.



    제네바 기본합의의 핵심 내용은 한반도에너지개발기구(KEDO)의 경수로 공급사업과 북한의 핵시설 동결 및 궁극적인 해체를 맞바꾸자는 것입니다. 여기에 대북 중유지원과 북미 관계개선, 안전보장 등의 문제가 따릅니다. 따라서 제네바 합의를 깰 경우 북한 핵시설 재가동이라는 매우 심각한 국면으로 이어질 수 있다고 우려하고 있는 겁니다.

    결론적으로 저는 제네바 기본합의가 완전 파기되지는 않으리라고 봅니다. 물론 제네바 합의에 따라 북한에 제공키로 했던 것들을 대북 압박수단으로 활용할 수 있겠지요. 일시적인 중유지원 중단이나 경수로공사 중단이 있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제네바 합의를 파기하는 것은 미국측으로서도 부담스러울 수밖에 없습니다.

    이런 흐름과 병행해 미국은 북한에 경제외교적인 조치를 고려할 수 있습니다. 일단 경제제재를 하고, 이것이 효과를 보지 못할 경우 군사 조치도 생각하겠지요. 물론 군사 조치는 제네바 합의의 파기가 확인되고 북한이 핵개발을 재개하는 등 막다른 골목까지 갔을 때 취할 수 있는 조치입니다.

    또 다른 흐름은 협상인데, 현재 가동 중인 남북 채널과 북일 채널이 그것입니다. 미국은 이런 채널도 외교적 압박수단으로 쓰기를 원하고 있고, 일본은 이에 부응해 ‘안보문제가 해결되지 않는 한 북일 수교는 안한다’고 원칙을 정리했습니다.

    북미간 직접 협상은 미국이 먼저 북한에 대해 가시적인 조치를 취할 것을 요구하고 있기 때문에 당장은 쉽지 않은 상황입니다.

    |조동호| 제네바 기본합의의 정식 명칭은 ‘제네바 어그리드 프레임워크(Geneva Agreed Framework)’입니다. 다시 말해 북미간에 어떤 분명한 형태의 합의를 했다기보다는 1994년 당시 북한 핵개발로 야기된 문제를 봉합하기 위해 일단 느슨한 형태의 합의 틀을 만든 것이지요. 그런 점에서 제네바 기본합의는 어느 시점에 가면 강력한 구속력을 갖는 형태로 바뀔 수밖에 없는 운명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제네바 기본합의를 만들 당시에는 미국도 2003년까지 북한에 경수로를 지어주겠다는 생각을 진지하게 갖고 있지 않았던 게 사실 아닙니까? 북한은 곧 망할 거라고 생각했으니까요. 따라서 법적 구속력 측면에서 북미간에 좀더 진전된 형태의 합의로 발전할 가능성이 커졌다고 봅니다.

    이렇게 낙관적으로 보는 이유는 두 가지입니다. 하나는 앞에서 말씀하신 대로 북한이나 미국이나 제네바 기본합의를 깨는 것에 부담을 느낄 것이라는 점입니다. 바로 그 이유 때문에 양측 모두 제네바 합의를 파기하겠다고 나서지 못하는 것입니다.

    둘째, 제네바 합의의 서명 당사자는 북한과 미국이지만 경수로 사업에 실질적으로 돈을 대는 것은 한국과 일본이라는 점입니다. 한국과 일본은 제네바 합의를 파기하는 것을 원치 않습니다. 미국이 한국과 일본을 무시한 채 일방적으로 제네바 합의를 어떻게 하지는 못하리라고 생각합니다.

    “제네바 기본합의  쉽사리 깨지 못할 것”

    서주석 연구위원.

    “제네바 기본합의  쉽사리 깨지 못할 것”

    조동호 연구위원.

    북한으로서는 핵개발 사실을 과감하게 시인하는, 이른바 ‘고백외교’를 통해 조지 W 부시 행정부 출범 이래 교착상태에 빠져 있던 북미관계에 획기적인 변화를 꾀할 필요가 있었다고 봅니다.

    7월의 경제관리 개선조치, 신의주특구 발표 등 내부적으로 진행중인 경제 일정을 감안할 때 대외관계에서 돌파구를 찾아야 한다는 생각이 절박했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미국의 강경한 태도 등 현 상황은 북한이 애초에 의도했던 대로 가는 것 같지 않습니다. 북미관계의 앞날을 전망한다면….

    |서주석| 역사적으로는 제네바 기본합의 자체가 북미간에 이뤄진 일종의 일괄타결이라고 볼 수 있지만, 얼마 안가서 삐걱거리기 시작했습니다.

    1998년 금창리 지하핵시설 문제가 불거지고 북한이 미사일 시험발사를 하자 한미 양국은 페리 프로세스를 만들어 단계적이고 포괄적인 접근을 추구했는데, 클린턴 정부가 끝나면서 이것도 중단되었습니다. 그러니까 지금은 한미 양국이 공동으로 상정해놓은, 단계적이고 점진적인 문제 해결의 틀이 없는 상태입니다.

    미국은 작년 6월 핵과 미사일, 재래식무기 등 5가지 우려사항을 북한에 전달했고, 북한이 이것을 풀면 ‘대담한 접근’을 통해 관계를 개선하고 대북 지원을 하겠다고 했습니다. 그러니까 이게 조건부인 셈인데, 실제 협상과정이나 관계개선의 과정이 어떤 양상이 될 것인지 지금으로서는 예측하기 어렵습니다.

    따라서 저는 이번 위기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먼저 한-미-일간에 새로운 일괄타결 유형의 문제해결 방안을 논의한 다음 북미간에 장기적인 관계개선 내용을 담은 후속 문건을 교환하는 수순으로 가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다시 말하면 그저 이번 핵 위기를 해소하는 차원이 아니라 북미간에 장기적인 관계개선 내용까지 담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겁니다.

    미국은 북한이 먼저 핵개발을 포기하라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그것도 즉각적이고 가시적이며 검증 가능한 방법으로 폐기해야 한다고 강조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게 사실 쉽지 않은 얘기입니다. 즉각적으로 핵을 포기하면서 동시에 검증 가능한 방법이어야 한다는 것은 상호 모순되는 얘기일 수 있어요.

    북한이 지금까지 추진해온 핵계획을 포기하고, 그동안 만든 장비와 시설, 핵물질을 다 파기한 다음에 검증까지 받는다는 것은 스케일이 무척 큰 얘기라는 것입니다.

    한편 북한은 미국의 선제 핵공격 독트린이 자신을 겨냥하고 있다고 생각해 불가침조약을 들고 나왔는데, 이것은 북미간에 모든 군사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평화협정보다는 한 단계 아래의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런 점에서 현실성이 있다고도 할 수 있지만, 여기엔 원천적인 한계가 있습니다.

    미국의 핵태세보고서(NPR)에도 표현된 핵사용에 대한 의지, 대테러전쟁 이후 미국이 취하고 있는 군사전략의 흐름에 반하는 주장이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미국으로선 북한의 불가침조약 제의를 수용하기 어렵습니다. 더욱이 북한이 미국의 수교국도 아닌 마당에 이것을 조약 형태로 체결하기는 곤란합니다.

    ‘대담한 접근’, 매력없다

    문제는 이같이 상반된 두 주장을 어떻게 접목하느냐는 것입니다. 저는 원인제공자인 북한이 첫 단계를 열어야 한다고 봅니다. 즉 미국이 주장하는 것과 같은 검증가능한 방법의 핵 포기는 장기간이 걸리므로, 우선은 북한이 핵개발 철회 의사를 표명하고 미국도 ‘북한이 어느 정도의 의사표명을 할 때 협상에 들어갈 수 있다’는 식의 기준을 제시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럴 경우 협상 첫 단계에 다뤄질 내용은 아마도 핵사찰에 관한 것이 될 것입니다.

    |조동호| 저는 이런 생각을 해봅니다. 미국은 현 시점에 북한에 대해 신경을 쓰고 싶지 않을 것이라는 겁니다. 이라크 문제를 비롯해 벌여놓은 일이 많기 때문이지요. 그런 점에서 10월 초에 켈리 특사가 방북한 것은 북한과 협상을 하거나 향후 북미대화의 조건을 확인하기 위한 것은 아니었을 것이다, 오히려 ‘너희가 발가벗고 나올 때까지 우리는 너희와 대화할 생각이 없다’는 것을 일방적으로 통보하러 갔다고 봐야 한다는 겁니다.

    그러나 북한은 미국과 대화를 재개하는 것을 절실하게 원합니다. 그런 점에서 켈리 특사가 오히려 발목을 잡힌 상황은 아닌지…. 미국은 손을 털고 일어서려는데 북한이 ‘우리가 핵도 가지게 되어 있다’는 식으로 나오는 바람에 북한과 대화를 하지 않을 수 없게 된, 그런 상황이 벌어졌다는 것이지요.

    |서주석| 미국이 이번 기회에 북한 핵문제를 부각시키려 벼르고 있었다는 또 다른 해석이 있습니다. 즉 미국은 8월에 확보한 핵개발 증거를 북한에 들이대 북한이 발뺌을 하면 1999년 금창리 시설을 터뜨린 방식으로 부각시킬 생각이었다는 겁니다. 이를 통해 최근 북한이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는 남북관계 및 북일관계에 제동을 걸려는 의도가 있었다는 건데, 북한이 오히려 과감하게 시인을 하고 나서자 미국이 당황했다는 겁니다.

    아무튼 미국으로서는 지금 북한과 본격 협상을 시작할 국면이 아닙니다. 일례로 미국은 6월에 ‘대담한 접근’을 구상했다고 합니다. 그러나 실제로 ‘대담한 접근’의 구체적인 내용은 하나도 드러나지 않았기 때문에 아무도 그것이 매력적인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반면 북한은 협상의지가 강했습니다. 내부 경제문제를 비롯해 북일 정상회담, 남북관계, 신의주특구 등을 위해서는 국제관계를 우호적으로 바꿀 필요가 있습니다.

    이게 구체적으로 담고 있는 것이 미국에 제시한 세 가지 조건 중 하나, 즉 북한의 경제발전에 ‘미국이 장애를 제거해야 한다’는 표현이었어요.

    그런데 북한이 꼭 핵개발을 시인하는 방식을 택했어야 했느냐에 대해선 논란이 있습니다. 제 생각에는 북한이 가만히 있었다면 결국 일방적으로 백기를 드는 상황으로 갔으리라고 봅니다. 사실 북일 정상회담 때 김정일 위원장이 일본인 납치 사실을 시인한 것을 보고 켈리 특사가 방북하면 이와 비슷한 성과가 나올 가능성이 크다고 본 사람이 많았습니다. 그중 하나가 북한이 특별사찰을 수용할 것이라는 전망이었는데, 만약 그렇게 됐다면 미국이 요구한 다섯 가지 우려사항을 북한이 하나씩 수용하는 식의 협상과정으로 이어졌을 공산이 큽니다.

    이건 북한에는 최악의 상황입니다. 그런데 북한은 거꾸로 초강수를 썼습니다. 사실 북한의 핵개발이 어느 정도 진척된 것인지 확인되지 않습니다. 북한의 발표는 허풍일 수도 있습니다. 아무튼 북한이 10월4일 켈리 특사에게 강수를 쓴 것은 잘한 일일 수도 있어요. 그런데 문제는 그후 40일이 지나도록 그토록 대담했던 접근방식의 연장선 상에서 판단을 내리지 못하고 있고, 따라서 상황이 계속 악화되었다는 것입니다.

    ◇ 북한의 불가침조약 제안, 현실성 있나

    북한이 내놓은 불가침조약은 현재로선 모호한 부분이 많아 보입니다. 이것이 북한이 과거 주장해오던 평화협정과는 어떤 관계인지, 남북간 군사적 신뢰구축조치 등과는 또 어떻게 연관되는지가 관심사입니다. 불가침조약을 평화협정보다 하위 개념으로 볼 수도 있는데, 현실적인 가능성을 어떻다고 보십니까.

    |서주석| 북한이 제안한 불가침조약은 상당히 현실적이고, 나름대로 합리적이고 논리적이라고 봅니다. 10월25일 외무성 대변인 담화는 상황을 모르는 사람이 읽으면 ‘북한 주장이 맞다’고 생각할 정도로 논리적입니다.

    과거에는 북한이 그런 얘기를 하면서 항상 결론으로 평화협정을 내세웠습니다. 그때마다 평화협정이 과연 무엇이냐를 놓고 논쟁을 벌이곤 했는데, 거기에 비하면 이번 불가침조약 제안은 평가할 만한 것이라고 봅니다. 미국이 수용하기 어려운 측면은 있지만 말입니다.

    그러면 불가침조약이 과연 어떤 의미를 갖는가. 우리에게는 역시 남북간 군사적 긴장을 해소하는 것이 핵심과제입니다.

    이런 점에서 평화협정이 논의의 중심이 됐던 때보다는 분명 여유가 있을 것으로 봅니다. 그런데 상황이 아주 불분명해요. 북한이 제안한 불가침조약을 우리가 찬성하면 미국은 우리가 북한의 주장을 받아들였다고 생각하지 않겠습니까?

    북한은 1983년 이래 미북간에는 평화협정, 남북간에는 불가침선언이라는 기본 틀을 고수해왔습니다. 그런데 북한이 미국에 대해 불가침조약을 제안했으니 평화협정은 포기한 것인가, 불가침조약만으로 체제를 보장받는 것으로 생각하고 평화협정이나 주한미군 철수 문제는 유보한 것인가, 이런 부분도 아직 불분명합니다.

    |조동호| 우리로서는 북미간에 불가침조약이 맺어지는 것이 바람직한 대안이 될 수도 있다고 봅니다. 앞에서 북미간 불가침조약은 형식상 문제가 있다고 지적했지만, 이미 부시 대통령이 북한을 공격할 의사가 없다고 수차례 천명한 이상 불가침조약을 맺을 수도 있습니다. 그렇게 되면 북한이 또 다시 평화협정을 주장하고 나서지 못할 것이고, 따라서 한미가 불가침조약 이외 안보문제들로 북한을 압박하는 방식으로 나갈 수 있다고 봅니다.

    ◇ 김정일과 고이즈미의 힘겨루기, 누가 승자?

    9월17일 역사적인 북-일 정상회담이 열렸습니다. 이 자리에서 김정일 위원장은 일본인 납치문제를 과감하게 시인해 세상을 놀라게 했습니다. 북한은 꽉 막혀 있는 북미관계를 우회해서 북일관계 개선을 통해 경제적 외부 수혈을 기대했다는 것이 일반적인 해석입니다. 그러나 그 후 상황은 북한의 의도대로 가는 것 같지 않습니다. 무엇보다 일본내에서 납치 문제가 뜨겁게 달아올라 반북 여론이 높아졌고, 북한의 핵개발 시인도 걸림돌로 등장했습니다.

    김정일 위원장과 고이즈미 일본 총리가 벌인 한판의 도박 같은 북-일 정상회담, 여기서 궁극적인 승자는 누가 될까요?

    |조동호| 지난번 북일 정상회담은 북한 의 경제 사정이 중요한 동인(動因)으로 작용했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50억∼100억달러에 달한다는 청구권 자금은 당장 수교를 한다고 해서 북한에 들어갈 수 있는 돈이 아닙니다. 그런 점에서 북한이 당장 기대했던 것은 일본 정부가 동결한 조총련계 북송자금을 풀어주는 것이라는 지적이 있지만, 저는 견해가 조금 다릅니다.

    북한에 흘러 들어가는 조총련계 자금이 정확히 얼마인지는 아무도 모릅니다. 오래 전에 8억달러라는 추정치가 나온 적이 있지만 그건 좀 과장된 것 같고, 90년대에 들어와 일본 경제가 불황을 타면서 그 규모도 매우 위축되었습니다. 따라서 북한이 총련자금 정도를 노려 북일관계를 개선하려 했다고 보기는 어렵습니다.

    아무튼 북한은 7월 경제관리 개선조치와 신의주특구를 추진하면서 외부에서 돈을 끌어와야 할 절박한 상황인 것 같습니다. 저는 얼마 전 서울에 온 경제시찰단에서도 그런 인상을 강하게 받았습니다.

    그런데 미국과는 상황이 여의치 않고, 한국에서도 대규모 지원을 받기 어려운 상황이니, 언젠가는 풀어야 할 숙제인 일본과의 관계개선을 통해 돌파구를 찾으려 했을 겁니다.

    |서주석| 북한은 경제적 실리를 얻기 위해 북일 정상회담에서 자존심도 던져버리고 관계개선을 추진했던 건데, 지금은 9월까지의 흐름과는 분위기가 완전히 달라졌습니다. 무엇보다 일본내에서 납치문제가 뜨겁게 달아오르면서 서로가 신뢰할 수 없는 상황이 되어버렸습니다.

    양국이 갖기로 한 안보협의도 핵문제에 대해 북한은 일본과 이 사안을 논의하지 않으려 하고, 일본 역시 이 사안에 레버리지가 없기 때문에 성과를 기대하기 어렵습니다. 지금 상황은 9월17일 김정일 위원장이 파격적인 납치 시인을 할 때 사람들이 느꼈던 당혹감, 그 부작용이 나타나고 있는 것이 아닌가…. 다시 말해 납치 시인이 악재가 되어버린 겁니다.

    북일 정상회담 직후에는 연내 수교 얘기도 나왔지만 지금은 핵문제를 비롯해 북미간에 걸린 안보문제가 근본적으로 합의되기 전엔 곤란할 것으로 봅니다. 고이즈미 일본 총리도 북한이 핵을 포기하지 않는 한 수교하지 않겠다고 말했습니다. 그러니까 고이즈미 총리도 애초엔 북-일 수교라는 대외적인 성과를 내부적으로 활용하려 했을 텐데, 북한이 워낙 대담하게 시인하는 바람에 그같은 구상이 어긋나게 된 겁니다.

    |조동호| 그런 점에서 김정일 위원장과 고이즈미 총리 중 누가 더 이익을 보았는가를 따지기 전에 누가 더 손해를 봤는지 살펴본다면, 현 상황에서는 김위원장의 손해가 더 컸고, 앞으로도 더 클 것으로 보입니다.

    하지만 지금은 한국과 미국 일본이 대북 목표를 다시 한번 상기해야 할 때라고 생각합니다. 예컨대 북한을 정상적인 국가, 민주적이고 시장경제체제로 전환된 국가로 변화시키는 것이 목표라면 불가침조약을 수용할 수도 있는 것 아닙니까?

    북일관계 정상화를 통한 청구권자금 문제도 그렇습니다. 그 돈은 일본 기업들이 북한에 들어가 도로를 만들고 발전소를 지어주는 방식으로 반환됩니다. 북한으로서는 일본 기업들이 하자는 대로 상당 부분 따라갈 수밖에 없습니다. 인터넷도 개방해야 하고, 통신수단도 확충하고, 북한 내부에서 거래도 활성화시켜야 하고….

    이런 게 바로 북한을 변화시키는 기회입니다. 그런 점에서 저는 일본이나 미국이 좀더 과감하게 북한에 접근한다고 생각합니다.

    ◇ 김정일 체제, 과도기는 끝났다?

    90년대 중반 이래 지금까지 북한은 줄곧 과도기에 있었다고 볼 수 있습니다. 김일성에서 김정일로의 권력이동이라는 측면에서도 그렇지만, 경제적인 측면이나 대외관계 측면에서도 그랬습니다. 그런데 올해 들어와 이같은 분위기가 일변한 듯합니다. 7월 경제관리 개선조치를 비롯해 북-일 정상회담, 신의주특구, 핵개발 시인 등등 최근 있었던 굵직굵직한 사안들은 북한이 이제 새로운 국면으로 접어들고 있다는 분석을 가능하게 합니다.

    문제는 이같은 북한의 몸부림이 성공할 수 있느냐는 점입니다. 예를 들어 가격과 임금을 현실화한 7월 경제관리 개선조치는 북한 경제의 앞날을 좌우할 만한 일입니다. 여러 가지 변수가 있지만, 어떻게 전망하십니까.

    |조동호| 우선 북한의 과도기가 끝났다는 데에 동의합니다. 1994년 김일성 주석 사망 후, 공식적으로는 1998년에 국방위원장에 재추대돼 최고권력자가 된 김정일 위원장이 이제 자신의 능력을 보여줄 때가 됐다는 거지요. 바로 경제문제입니다.

    이번 7월의 경제관리 개선조치도 1999년부터, 이를 위한 특별팀이 가동되고 있었다는 얘기가 들립니다.

    북한의 경제관리 개선조치는 시장경제를 지향하는 개혁개방까지는 아니라고 해도 시장경제적 요소를 도입해 경제를 일으키겠다는 확고한 결심을 보여주는 사례입니다.

    7월부터 도입된 일련의 조치들은 과도적인 시험이라고 할 수 있고, 내년 1월부터는 본격적으로 추진할 것으로 보입니다. 이를 위해 대외관계에서도 대담한 자기 색깔을 보여주려 한 것입니다. 아무튼 북한의 과도기는 이제 끝났다고 생각합니다.

    |서주석| 마이너스 성장세는 일단 진정된 것으로 전해지고 있지만 북한의 경제문제는 여전히 심각한 과제가 아닐 수 없습니다. 반면 사회적인 안정성은 여전히 유지되고 있습니다.

    다시 말해 최근 경제적 변화에도 불구하고 북한체제는 여전히 안정적이라는 겁니다. 이렇게 보면 ‘김정일 2기’로 들어서는 시기라고 할 수도 있는데, 이것이 본격적으로 시작되려면 역시 핵문제부터 해결하고 나서 북한이 근본적으로 변화하려는 노력을 보여줘야 한다고 봅니다.

    저는 90년대 이후 북한의 정책결정에 대해 작은 실리확보에는 성공했지만 큰 흐름에서 그렇지 못했다고 봅니다. 물론 체제를 유지해왔다는 점에서는 나름대로 성공적이었다고 할 수 있겠지만 나머지 부분에서는 실패를 거듭해온 측면이 많아요. 최근 북한의 정책이 삐걱거리는 것도 새삼스런 일은 아니라고 봅니다.

    北 경제개혁 성공의 조건

    |조동호| 북한 경제를 어떻게 살릴 수 있을 것인가, 자본주의나 사회주의나 경제발전은 결국 인풋이 많아야 아웃풋이 많아집니다. 여기서 말하는 인풋이란 자본 노동 기술의 생산요소인데, 북한은 그중 자본이 가장 급합니다. 그런데 돈이 없으니까, 지난 10년 동안 추진해온 것이 기술입니다. 과학기술을 중시하고 IT산업을 키우겠다는 얘기가 그래서 나왔습니다. 하지만 그것도 쉽지 않거든요.

    설령 아이디어가 있어도 그것을 뒷받침할 원재료와 설비가 없으면 한계가 있습니다. 그래서 결국 원점으로 돌아간 겁니다. 이런 맥락에서 7월의 경제관리 개선조치는 내부적으로 자본을 동원하기 위한 조치였습니다. 임금 및 가격을 인상해서 그동안 암시장에서 나돌던 자본을 끌어오겠다는 의도입니다. 그런데 그것만으로는 충분치 않다는 것을 북한도 잘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외자 도입을 위한 대외관계 개선이 중요한 겁니다.

    지금 북한 경제체제는 사회주의 계획경제지만 과거와는 다릅니다. 사회주의 계획경제에서 시장경제로 이행할 때 흔히 세 가지 기준을 말합니다. 첫째는 중앙에서 하부 단위로 결정권을 넘기는 분권화이고, 둘째는 시장화입니다. 즉 가격이 시장메커니즘에 의해 결정되게 하는 것이지요. 셋째는 소유권 문제입니다. 이 세 가지가 다 이뤄지면 시장경제 체제로 이행했다고 볼 수 있는데, 북한의 경우 과거 스탈린식 계획경제 체제에서 분권형 계획경제체제로 이행한 겁니다.

    그러면 과연 이런 조치들이 성공할 것인가. 여기엔 긍정적인 측면과 부정적인 측면이 다 있습니다. 부정적인 측면으로는 대외관계 문제가 가장 큽니다. 중국도 개혁개방 때 대미, 대일관계를 안정시켜 놓고 출발했습니다. 북한 경우엔 경제문제만이 아니거든요. 결국 외교로 풀 수밖에 없다는 겁니다. 그런 면에서 김정일 위원장에게 과연 덩샤오핑(鄧小平)만큼 적극적인 개혁 마인드가 있는지도 의문입니다.

    또 한 가지 한국의 존재도 부담입니다. 중국의 경우엔 개혁·개방에 실패해도 최악의 경우 망하지는 않는다는 믿음이 있었거든요. 그러나 김정일은 자칫하면 남쪽에 먹힌다는 두려움 때문에 주저할 수밖에 없어요. 그래서 변화의 템포가 느리고 특구를 만들어도 변두리 지역에 만드는 겁니다.

    또 한 가지 지적하고 싶은 것은 북한의 경제관료들이 이런 변화를 이끌어갈 실력과 기본을 갖췄는가 하는 점입니다. 제가 이번에 북한 경제시찰단과 함께 산업시찰을 다녔는데, 어떤 사람은 간단한 영어도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어느 기업에서 있었던 일입니다. 관계자가 얘기 중에 ‘바이어의 요구에 맞춰서 해나간다’고 설명했는데, 제 옆에 있던 북한 사찰단원이 ‘바이어가 무슨 뜻이냐’고 묻는 겁니다. 제 설명에도 전혀 이해하지 못하는 눈치였습니다. 다시 말하면 그 사람들에게는 ‘사는 사람의 요구에 맞춰준다’는 게 무슨 의미인지 와닿지 않는 겁니다.

    북한에서 담배를 임가공한 담배인삼공사 관계자에게 들은 얘기입니다. 담배 제작기계를 보면 중간중간에 센서가 달려 있어서 불량품을 골라내게 되어 있답니다. 그런데 북쪽에서 기계가 고장났다고 해서 가 봤더니 그 센서를 다 떼어냈더라는 겁니다. 센서가 불량품을 자꾸 솎아내니까 아예 없애버렸다는 거지요. 그래서 그분이 ‘물건을 많이 만드는 것보다 팔릴 만한 물건을 만드는 게 중요하다’고 설명해줬는데, 북쪽 사람들이 그 말을 이해하지 못하더래요.

    노동자나 장관이나 시장경제 메커니즘에 대한 기본이 전혀 안 돼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이런 상황인데 단위별 기업소가 자체적으로 계획을 세우고 수요공급에 맞춰 가격을 일부 조절할 수 있는 권한을 부여하고, 수입에 대해서도 일정 부분 자율권을 줬는데, 이런 제도를 운영할 능력이 있을까, 그런 점에선 좀 회의적입니다.

    경제 살리려면 유통부문 자극해야

    반면 긍정적인 측면은 두 가지입니다. 첫째는 북한이 성공에 대한 자신감 없이 이런 과감한 조치를 취하지는 않았을 것이며 나름대로 준비를 했을 거라는 겁니다.

    일본에서는 북한이 식량공급이 딸릴 경우에 대비해 3억달러의 현금을 준비해놓고 있다는 말도 있습니다.

    둘째는 북한경제 자체가 굉장히 소규모라는 점입니다. 한국은행은 북한의 GDP를 160억달러 정도로 추산하고 있지만, 적어도 세 배는 부풀린 수치라고 봅니다. 160억달러라면 1인당 GNP가 700달러가 넘는다는 말인데, 현재 중국이 800달러 정도입니다. 우리가 어림잡아 북한의 1인당 GNP가 150∼200달러라고 봐도 전체로는 40억∼50억달러 규모밖에 안됩니다. 그러니까 조금 미진하고 능력이 부족해도 성공할 기회는 있다는 겁니다. 저는 굳이 선택을 하라면 긍정적인 쪽으로 손을 들고 싶습니다. 워낙 경제가 바닥에 있고, 규모도 작으니까….

    북한경제가 고도성장을 하려면 대외관계 개선을 통한 외자 유입이 필수 조건입니다. 그러나 연간 5% 성장이 목표라면, 대외관계 개선이 없어도 가능하지 않겠나 봅니다. 지난 3년간 북한의 연평균 성장률이 3.7%였습니다. 여기서 약 2%만 더하면 되는데, 이번 경제관리 개선조치를 통해 그 정도는 가능하다고 봐요.

    |서주석| 그런데 기본적으로 물자가 부족한 상황에 단순히 가격과 임금을 올린 것만으로 충분하겠느냐는 의문은 여전히 남습니다. 더군다나 인프라도 거의 바닥인 상태잖아요. 이런 상황에 각 기업 주체가 알아서 살림을 꾸려가라고 한 건데, 자칫하면 인플레의 악순환과 같은 파국적인 상황으로 이어질 수도 있지 않을까요. 쌀값도 벌써 84원에서 100원으로 올랐다는 말이 나오더군요.

    제 말은, 대외관계가 뒷받침되지 않는 상태에서 단행하는 대내적 조치는 마치 판도라의 상자를 여는 것과 같다는 겁니다.

    |조동호| 쌀을 예로 들어 설명해보지요. 북한의 쌀, 곡물 수요량은 600만t 정도, 생산량은 400만t 정도로 봅니다. 3분의 2 정도는 자체 공급됩니다. 그 다음 국제사회의 지원분이 연간 100만∼150만t 정돕니다.

    그런데도 북한의 식량난이 굉장히 심각하다는 것은 결국 유통에 문제가 있는 것으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쌀이 예전의 공식 배급망으로는 kg당 8전이지만 암시장에선 70∼80원입니다. 노동자 한달 월급으로 1.5kg밖에 살 수 없습니다. 이렇게 되면 이건 쌀이 아니라 금입니다. 못 먹는 거예요. 경제적으로 설명하면 쌀이 화폐기능과 가치저장 수단으로서 기능하고 있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이렇게 되니까 쌀이 유통시장에서 사라지는 겁니다. 집집이 쌀을 감춰 놓고, 이것이 식량난을 심화시켰어요. 그런데 이번 조치를 통해 암시장 가격과 국정가격의 폭을 줄이면 감추었던 쌀을 내놓게 될 거라고 봅니다. 공산품도 마찬가지로 국영상점 가격이나 암시장 가격이 비슷하다면, 많이 생산해서 성과급을 더 받는 게 과제가 될 가능성이 큽니다. 완전하지는 않지만 이것이 생산을 증대시키는 자극제가 될 수 있다는 겁니다.

    ◇ 러시아 VS 중국, 영향력 역전됐다?

    근년 들어 북한과 함께 북방 삼각관계를 형성하는 중국과 러시아가 한반도 문제에서 차지하는 위상이 달라진 게 아니냐는 얘기가 있습니다. 그동안 국내문제로 이 지역에서 거의 발을 뺐던 러시아가 전면 복귀한 반면 90년대 이후 북한의 후견인 노릇을 해왔던 중국의 퇴조가 눈에 띈다는 것입니다.

    |조동호| 경제적 측면에서 보면 러시아의 영향력은 더욱 커질 가능성이 있습니다. 북한의 산업시설이 대부분 러시아제거든요. 설비를 현대화하려면 낡은 설비들을 때려부수고 다시 짓는 것이 최선이지만, 일단은 그럴 능력이 없으니까 러시아의 협력이 필요합니다. 러시아도 철도 연결을 비롯해 극동지방에서 북한과 협력을 강화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

    어디서 들은 얘긴데, 김정일 위원장이 어느 자리에서 ‘우리 설비가 너무 노후해서 문제’라고 했답니다. 그 얘기를 들은 사람이 ‘그러니까 남북간에 경협을 하건 미국 일본과 관계개선을 하건 지원을 받아야 한다’고 했더니 김위원장이 그 말은 들은 척도 안하고 ‘러시아가 다 고쳐줄 것’이라고 했다는 겁니다. 북한이 러시아에 갚을 돈이 있는데 설비를 고쳐주지 않으면 돈 못 갚는다고 했다나….

    |서주석| 우리 쪽에서 본다면 북한에 공장을 새로 지어주는 것보다 러시아가 나서서 러시아제 설비들을 고쳐주는 게 훨씬 유리할 겁니다. 아무튼 지금은 그것마저 여의치 않은 상황입니다. 지난 번 북일 정상회담 때만해도 북한-러시아-일본의 3각구도가 형성된다는 말까지 나왔는데, 지금은 다시 한미일 구도가 강조되고 있지 않아요?

    한편 북한이 러시아와 관계를 강화하면서 중국이 상당히 불쾌하다는 반응을 보였던 게 사실입니다. 지난 번 양빈 구속도 그와 무관치 않다는 얘기가 있습니다. 지난 1년 사이에 김정일 위원장이 러시아 대사를 자주 만났다고 합니다. 반면 중국은 내부적으로 체제정비에 들어가 있었기 때문에 직접 대응할 수 없는 상황이었지요.

    그러나 앞으로는 중국이 훨씬 부각될 게 분명합니다. 중국은 북한체제의 버팀목이면서 북한이 지향하는 모델이기도 하니까…. 이제 중국이 내부적으로 정치적인 정비를 끝내면 외교적 이니셔티브를 잡으려고 적극 나설 가능성도 있습니다.

    ◇ 대선 뒤에도 햇볕은 계속된다?

    북한 핵개발을 시인한 것은 우리 대선 국면에 결과적으로 보수 성향이 강한 후보에게 이득이 되어준 측면이 있습니다. 이를 어떻게 해석해야 할까요? 누가 집권하건 북한은 계속 ‘햇볕’을 쬘 것이라는 전망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조동호| 북한이 보수성향 후보를 돕기 위해서 의도적으로 그랬다고는 할 수 없지요. 아무튼 차기에 좀더 보수적인 정부가 들어선다고 해도 기본적으로 ‘햇볕’은 계속될 수밖에 없다고 봅니다. 물론 강도는 달라질 수 있고, 특히 출범 초기에 더욱 그렇겠지만, 분단된 나라의 지도자로서 누가 대통령이 되건 남북관계 개선을 외면할 수는 없는 겁니다. 지금은 선거전략상 햇볕정책에 강한 비판기조를 유지하지만 일단 대통령이 되면 상당 부분 달라질 수밖에 없다고 봐요.

    북한이 금강산 관광에서 벌어들이는 돈은 사실 푼돈이라고 봐야 합니다. 경의선 연결은 누가 대통령이 되건 계속 추진할 것이고, 새로 추진중인 개성공단 역시 차기 정부가 ‘안 하겠다’고 거부하지는 못할 게 분명합니다. 그런 점에서 보면 북한이 굳이 남한의 차기 대통령감으로 특정인을 선호할 이유는 없다고 봅니다.

    |서주석| 북한은 그동안 이회창 후보는 비난했지만 노무현 후보에 대해서는 그러지 않았습니다. 그런 점에서 어느 정도 선호는 있지 않겠어요? 그렇지만 저 역시 누가 차기 정권을 맡건 간에 기본적으로는 포용정책을 계승할 수밖에 없다고 봅니다.

    북한이 10월 초에 일을 벌이기 시작했을 때에는 한국의 대선 변수까지 따지지는 못했을 겁니다. 당시는 미국을 압박해서 협상에 들어가자는 생각이 가장 컸겠지요.

    그런데 미국 특사가 돌아가서 이 문제를 터뜨린 방식이 북한으로서는 매우 불쾌했을 겁니다. 백악관에서 발표를 하고, 자기네를 몰아붙이는 식으로 갔으니까. 북한의 반응이 나오는 데 시간이 꽤 걸렸던 것도 그런 이유 때문일 겁니다.

    그런 맥락에서 차기에 지금보다 보수적인 정권이 들어선다면 대미관계에서 한층 세심한 조율이 필요하리라고 봅니다. 조지 W 부시 행정부가 출범한 이후 한국은 미국에 비해 상대적으로 온건한 정책을 견지해왔습니다. 강경해진 미국에 부응해 우리도 똑같이 강경한 쪽으로 선회했다면 한반도 주변상황은 더욱 악화되었을 수도 있는 게 제 생각입니다. 그런 면에서 차기 정권이 미국과 견해차를 좁힐 기회도 되겠지만, 기본적으로 포용정책을 견지해야 한다는 점에서 평상시의 대북정책은 지금과 크게 다르지는 않으리라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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