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 7월호

경제정책, 이렇게 가야 한다

오른쪽 깜빡이를 켰으면 오른쪽으로 가라!

  • 정리·송홍근│동아일보 신동아 기자 carrot@donga.com│

    입력2009-07-03 10:43:00

  • 글자크기 설정 닫기
    • ‘녹색’인지 ‘녹색칠’인지 헛갈리는 저탄소녹색성장
    • ‘공공성 담보한’ 금융·교육·의료 산업화가 해법
    • 이념논쟁 그만두고 성과에 집중할 때
    ■ 일 시 :2009년 6월9일

    ■ 장 소 :코리아나호텔

    ■ 사 회 :강성진 고려대 경제학과 교수/미래연 금융재정전략센터장

    ■ 패 널 :강성원 삼성경제연구소 수석연구원/미래연 산업노동전략센터 연구위원

    옥우석 인천대 무역학과 교수 / 미래연 산업노동전략센터 연구위원



    송홍선 자본시장연구원 연구위원 / 미래연 금융재정전략센터 연구위원

    경제정책, 이렇게 가야 한다

    사진 왼쪽부터 옥우석, 강성진, 강성원, 송홍선

    경기회복은 언제쯤, 어떤 형태로 이뤄질 것인가

    강성진 경기회복과 관련해 V자형을 말하는 사람은 거의 없습니다. 회복이 안 될 것이라고 주장하는 사람도 없고요. L자 U자 W자로 의견이 갈립니다. 한국개발연구원(KDI) 현오석 원장은 U자와 L자를 섞어놓은 형태로 한국경제가 회복하리라고 내다봤고요. 패널들께선 경기회복이 어떤 형태로 나타날 것 같습니까?

    강성원 한국의 경기침체는 근본적으로 미국에서 기인한 것입니다. 우리 경제는 수출의존도가 높기 때문에 외부 요인이 먼저 호전돼야 합니다. 미국 경제가 언제 회복하느냐가 관건이 될 것 같아요. 전미경제연구소(NBER)가 내놓은 제2차 세계대전 이후 미국의 경기하강 국면을 분석해보면 제일 길었던 것이 16개월이었습니다. 1973년 오일쇼크 때와 1981년의 경기하강이 가장 길었죠. 16개월을 기준으로 삼으면 2007년 12월에 경기하강이 시작됐으니 올 상반기가 바닥이라고 볼 수 있겠죠. 실제로 각종 지표를 보면 하강이 거의 끝나는 국면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언제쯤 회복될 거냐, 그게 중요한데 18개 선진국의 금융위기를 분석한 어떤 연구 결과를 보면 바닥을 친 뒤 2년 정도면 바닥 이전으로 되돌아간다고 합니다. 2년 전 1인당 GDP 성장률을 회복한다는 얘기죠. 올 상반기를 바닥으로 보면 내년 상반기나, 내후년 상반기에 회복이 가시화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한국은 내수 중심 회복을 기대하기는 상당히 어렵습니다. 고용이 불안해서 소비 증진을 기대하기도 힘들고요. 민간투자도 어렵기는 마찬가지입니다. 제 생각으로는 U자형으로 내후년쯤 회복이 가시화할 것 같습니다.

    송홍선 미국과 선진국의 경기가 회복하면 그때는 정말로 강한 반등이 나타날 것 같습니다. 문제는 선진국 경기가 회복하긴 하는데 지지부진하게 살아나는 형태일 때입니다. 개발도상국과 선진국 경제가 조금은 다르게 가고 있다고 여겨집니다. 개도국은 내수 부분이 일정 정도 살아나는 것 같아요. 중국은 기본적으로 내수가 살아 있는 것 같고, 브라질 인도 러시아도 타격이 적은 것으로 보입니다. 이런 나라들이 글로벌 경기를 견인하는 힘으로 작용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갖고 있습니다. 선진국에선 실물시장의 유동성 위기가 신용위기로 번졌다가 실물로 넘어갔습니다. 개도국에선 선진국의 위기가 외화유동성 위기로 나타난 것이고요. 한국도 마찬가지입니다. 부도가 난 국가들도 있지만 대개 경제 규모가 작은 나라였어요. 한국에선 외화유동성 위기가 신용위기로 넘어갔는데, 사실 위기라고는 할 수 없고 신용경색이라고 하는 게 더 정확합니다. 신용경색 정도이기 때문에 선진국보다 맷집이 탄탄하다고도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도 선진국만큼 강력한 선제대응을 했기 때문에 선진국보다 경제가 훨씬 빨리 회복할 것이라고 긍정적으로 생각해볼 수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강성진 교수는 어떻게 내다봅니까?

    옥우석 얼마 전 국제통화기금(IMF)에서 나온 보고서를 보면 금융위기는 다른 위기보다 충격이 큰데다 실물 부문에 대한 파급이 폭넓고 회복 속도가 굉장히 느리다고 합니다. 수요 측면에서 타격이 크기 때문에 개별 국가가 위기에서 벗어날 때는 동력을 수출에서 찾은 경우가 대부분이었다고 합니다. 문제는 이번 금융위기가 국지적으로 발생한 게 아니라 미국에서 출발했다는 점입니다. 과거엔 미국이 위기를 겪는 나라의 물건을 사줄 수 있었습니다. 이번 위기의 특징은 수출할 곳이 마땅치 않다는 것입니다. 송 박사께서 브릭스(BRICs·브라질 러시아 인도 중국)를 언급했는데 그 나라들에 과연 그런 여력이 있을까 싶습니다. 바닥을 쳤다거나 바닥을 칠 것이라는 의견엔 동의할 수 있겠으나 얼마나 빠른 속도로 회복할 것인지에 대해선 다른 분들보다 회의적입니다.

    강성진 과잉유동성을 걱정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과잉유동성 여부는 통화량 증가뿐 아니라 통화유통 속도도 고려해야 합니다. 최근 보도에 따르면 유통 속도가 최저라고 합니다. 과잉유동성은 인플레이션을 야기합니다. 그 부분에 대해선 어떻게 봅니까?

    송홍선 유동성이라는 게 참 묘합니다. 과잉유동성은 필요 이상으로 돈이 많이 풀렸다는 것입니다. 경기가 바닥을 칠 것으로 판단되면 자금은 주식시장, 자산시장은 물론 실물경제로 저절로 이동합니다. 그러면 문제가 되는 단기 유동성이 줄어들게 됩니다. 불필요한 유동성은 회수해야 하겠지만 시장 스스로 해결할 수 있는 부분도 많습니다. 유동성과 관련해 정책적으로 어떤 방향성을 가질 필요는 있으나 유동성을 전격적으로 흡수해야 한다는 주장엔 조금 회의적입니다.

    강성진 시장 스스로 해결하는 힘도 있으니 서두를 필요는 없겠지요.

    송홍선 금융시장이 완화하는 역할을 할 수 있습니다.

    강성원 지금은 경기하강 국면이기 때문에 인플레이션이 필요한 상황입니다. 현재의 인플레이션을 두고 과잉유동성이라고 말하는 건 과민반응인 것 같습니다. 1937년 미국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는 경기하강 시점에 통화를 긴축했습니다. 결과는 물론 나빴고요. 지금과 같은 상황에서 통화정책을 긴축으로 바꾸는 건 옳지 않다고 봅니다.

    옥우석 긴축정책의 위험에 대해선 공감합니다. 일본도 비슷한 경험을 한 적이 있지 않나요. 버블에 대해서 선제적으로 대응하다가 경기하강을 겪었지요. 그런데 확장정책이 얼마나 효과가 있었는지 궁금합니다. 생산성 있는 쪽으로 자금이 흘러가는 게 아니라 상대적으로 덜 위험한 쪽으로 자금이 몰려다니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요컨대 부동산이나 자산시장 쪽으로 돈이 풀리고 실물 쪽으로는 연결되지 않는 위험도 상당 부분 존재하는 것 같아요. 그런 부분에 대해선 주의해야 하지 않을까 생각하고 있습니다.

    강성진 기업 구조조정에 대해서도 의견이 엇갈립니다. 1997년 외환위기 때는 사후적인 구조조정이었습니다. 기업들도 동의할 수밖에 없었죠. 그런데 이번 구조조정은 정부의 개입과 관련해 논란의 여지가 많은 것 같아요. 경기회복 속도가 빠르리라는 전제에서 논의가 이뤄지면 논쟁이 더욱 가열될 것 같습니다. 개인적으로는 정부가 개입할 일이 아니라는 생각도 듭니다만.

    송홍선 경제위기 때는 어떤 부분에 자원을 과잉투자했는지가 명백하게 드러납니다. 과잉투자를 초래한 실패한 경영모델을 구조조정하지 않고 그대로 두면 새로운 도약에 장애가 될 수 있습니다. 사회자 말씀대로 정부의 개입에 대해선 논란이 있을 수 있지만 기본적으로 정부가 할 역할이 있습니다. 지금 금융감독원이나 금융위원회가 일정한 원칙을 갖고 진행하고 있기 때문에 크게 문제될 것은 없다고 봅니다. 다만, 어떤 부분이 비효율적인지는 시장이 누구보다 잘 알고 있기 때문에 시장친화적 구조조정 방식을 적극 활용하면 정부개입 논란은 많이 줄어들 것으로 보입니다.

    강성원 이번 금융위기가 외부충격에서 기인했다는 걸 다시 한번 강조하고 싶습니다. 신용경색 상황에서 금융기관이 자금을 회전할 때 정보가 제대로 전달되지 않기 때문에 정보를 원활하게 전달하고자 구조조정을 하는 것이라고 볼 수가 있어요. 그 이상으로 구조조정을 하면 기업의 투자 의욕이 약화됩니다. 경기를 회복시키려고 추진한 구조조정이 의도하지 않은 부작용을 가져오는 것이지요. 채권단의 처지를 고려할 때 일정 부분의 구조조정이 필요하지만 시간표를 정해서 언제까지 어디를 구조조정하라는 식으로 강제하는 것은 필요하지 않은 제약을 늘리는 겁니다. 채권단 주도로 구조조정이 이뤄져야 합니다. 정부가 시간표를 정하는 방식은 부작용이 있지 않을까 이렇게 생각합니다.

    옥우석 정부가 개입하는 것 자체에 반대하는 것은 아닙니다만 우리 정부가 원칙에 대한 일관성이 떨어지는 것 같아요. 호불호를 떠나서 일관성을 유지하는 게 정부가 지켜야 할 원칙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정부가 시장에 기초해서 발전 방향을 만들어가겠다고 천명했으면 시장에 일관되게 그런 신호를 주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녹색성장, 발전동력 될 수 있나

    강성진 경기회복 전망과 정부 정책에 대해 다양한 의견이 나왔습니다. 정부도 성장과 발전을 위해 다양한 정책을 내놓고 있습니다. 그중에서 비전 형식으로 가장 강하게 부각된 게 저탄소녹색성장입니다. 그런데 녹색성장은 과거에 중점 육성한 IT산업과는 다른 점이 적지 않습니다. IT산업은 기존 산업과 서로 윈-윈할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녹색산업은 정부 주도로 민간에 투자 인센티브를 일으키기가 쉽지 않아요. 예컨대 형광등이 기능에선 문제가 없는데 LED로 바꾸면 가격이 10배가 뛰거든요. 민간한테는 인센티브가 적다는 얘기지요. 녹색성장에 대해 패널들은 어떻게 생각하는지 궁금합니다.

    강성원 녹색이라는 용어의 개념 정의가 모호한 부분이 있어요. 저는 국제적 온실가스 규제 동향에 대응한다는 측면에서 접근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규제 환경에 대한 전략적 대응이 요구된다는 점에서 국가 차원에서 인프라를 제공해야 하는 부분도 분명히 있습니다. 이런 면에서 국가의 개입이 정당화하는 부분이 있습니다. 덧붙여 녹색기술이 새로운 성장동력이 될 수 있느냐가 중요한 포인트입니다. 경제사적 측면에서 봤을 때 성장동력이 바뀐 적은 산업혁명 때와 19세기말, 20세기초 대기업이 등장했을 때 두 차례입니다. 산업혁명은 공장제 노동의 도입을 통해 생산성을 증폭시킨 사례입니다. 19세기말 20세기 초엔 전문경영인 체제와 연구개발로 상징되는 근대적 기업이 탄생했고요. 두 사례 모두 비즈니스를 운영하는 조직이 바뀌어야 할 만큼 생산성 향상이 요구됐습니다. 녹색기술을 다루는 곳은 대부분 기존의 기업입니다. 녹색성장이 조직의 개편이나 생산성의 비약적 발전을 요구하는 것은 아니라는 얘기죠. 따라서 국가발전 전략이 녹색성장 하나뿐이라면 포트폴리오 차원에서 위험한 게 아닌가 이렇게 생각합니다.

    옥우석 강 박사 말씀대로 정부가 녹색이라는 말을 굉장히 모호하게 사용하고 있어요. 심지어 어떤 분은 현 정부의 녹색성장은 ‘녹색칠성장’이라며 강하게 비판하더군요. 녹색성장이 추구하는 범위가 너무 광범위해요. 무엇을 타깃으로 하는지 잘 모르겠습니다. 물론 대비가 필요한 부분이기는 하지만. 녹색성장이 과연 미래의 성장 패러다임이라고 얘기할 수 있을 만큼 파급력이 큰 산업인지를 따져봐야 합니다.

    송홍선 녹색산업은 공공재를 생산하는 일종의 규제산업이기 때문에 누군가는 규제비용을 부담해야 합니다. 그래서 속도를 내기 어려운 면이 있습니다. 성장률을 추가로 끌어올리는데도 한계가 있다고 봅니다. 녹색성장은 성장률을 몇% 올린다는 차원이 아니라 성장의 색깔을 바꾸는 정책이라고 보면 될 것 같아요. 성장동력이라기보다는 모든 부분에서 그린 마인드를 갖고 비즈니스를 하라는 의미가 좀 더 강하지 않나 싶습니다.

    산업화가 시급한가, 공공성이 중요한가

    강성진 이명박 정부가 경제정책에서 과거 정부와 차별화하는 부분은 서비스산업에 대한 시각이 아닌가 싶습니다. 현 정부는 금융, 교육, 의료를 하나의 산업으로 강조하면서 이들 분야가 성장에서 중요한 구실을 할 수 있다고 보고 있습니다. 먼저 금융시장부터 다뤄보겠습니다. 극단적으로 보면 규제 완화로 갈 것인가, 규제 강화로 갈 것인가로 갈려 대립하고 있습니다. 패널들의 의견이 궁금합니다.

    강성원 비금융적 시각에서 금융을 바라보면 한국의 금융에 부족한 부분이 있습니다. 특히 중요한 게 기술창업 부분입니다. 중소기업을 창업할 때 자본시장을 이용하는 경우가 상당히 드뭅니다. 사정이 이래서는 질 좋은 창업이 활성화하기 어렵습니다. 비은행권의 규제 완화를 통해서 어떤 통로를 열어줄 수가 있어요. 그렇다고 모든 규제를 다 완화할 필요는 없습니다. 어떤 규제는 오히려 강화해야 합니다. 복잡한 금융상품을 남발해서 강매하거나 현혹해서 파는 상황이 미국에서 모기지유동화증권(MBS) 부실이 발생하게 된 근본 원인이거든요. 그러므로 소비자를 보호하는 규제는 더욱 강화할 필요가 있습니다. 금융기관 건전성에 대한 규제도 마찬가지고요.”

    송홍선 정부가 금융선진화를 규제완화 측면에서 강조하고 있습니다. 그 중심에 금산분리 이슈가 있습니다. 원론적으로 얘기하면 효율성과 안정성을 동시에 추구하는 정책이 지속가능한 금융을 만들어낼 수 있습니다. 금융위기 이후 안정성에 대한 논의가 늘고 있습니다. G20 회의 때도 여러 안이 나왔습니다. G20이라는 큰 흐름에서 한국이 자유로울 수는 없다는 생각이 들어요. ‘금융산업이 막 걸음마를 뗐는데 따라갈 필요가 있느냐’‘아니다. 큰 흐름에 따라가야 한다’는 주장이 엇갈려 나오는데 큰 흐름에는 기본적으로 따라갈 수밖에 없다는 생각이 듭니다.

    강성진 지금과 같은 상황에서 규제가 강화돼야 한다는 말씀인가요? 한국의 금융시장 규제가 G20보다 약하면 강화돼야 하겠지만 만약 더 강하다면 완화해야 하는 것 아닌가 싶습니다.

    송홍선 강화될 부분도 있습니다. 자기자본규제방식은 G20에서 틀 자체를 수정하는 논의가 이뤄지고 있습니다. 장외파생상품 규제의 경우도 거래 상대방의 위험을 줄이는 방안이 이미 마련됐거나 마련될 것으로 보입니다. 약화된 부분도 있습니다. 금융투자회사가 장외파생상품을 다루는 데 필요한 인가요건 등은 진작부터 이중규제 논란이 있어서 조금 완화되었습니다.

    옥우석 저는 다른 시각에서 보고 싶습니다. 금융의 본래 기능은 중계(intermediation)입니다. 실물부분에 자본이 원활하게 배분되도록 하는 기능이 있습니다. 그러면서 다른 한편으로는 하나의 산업 구실을 하고 있어요. 금융산업을 키운다는 말엔 금융산업이 고부가가치 산업이라는 의미가 담겨 있습니다. 다른 산업과의 연관 관계도 중요하지만 금융산업의 수익성 자체를 더 강조하는 것으로 여겨집니다. 그런데 세계의 분업구조 속에서 우리가 금융산업을 특화할 수 있을지에 대해선 생각해봐야 할 것 같아요. 한국은 제조업 중심으로 성장했습니다. 제조업에서 금융 쪽으로 돌아서 성공한 나라로는 미국, 영국이 있고요. 유럽대륙 국가들에서도 은행이 대형화하고는 있지만 은행산업 자체가 경제의 중심이 되고 있다고 하기는 힘들 것 같습니다. 성장의 주안점을 어느 곳에 둘 것이냐에 초점을 맞춰서 생각해볼 필요가 있습니다. 제조업이 중장기적으로도 포기할 수 없는 부분이라고 여겨진다면 리턴이 낮더라도 금융의 안정성을 더욱 확보하는 게 올바르지 않으냐는 생각이 듭니다. 만약 ‘제조업으로는 한계가 있다. 서비스업으로 완전히 옮겨가야 한다’고 생각한다면 고위험(high risk)을 택해야 하겠지요. 이런 부분에 대한 가치 판단이 선행돼야 하지 않을까요?

    강성진 이명박 정부의 서비스산업 정책과 관련해 공공성과 산업화가 대립하고 있다는 시각이 있습니다. 산업화가 중요하다고 말하는 분이 있고 공공적 성격이 중요하다고 주장하는 분이 있습니다. 그런데 공공성에 대해 잘못 알려진 게 있어요. 모든 사람을 똑같게 하는 것이 공공성은 아니거든요. 예를 들어 소득의 경우엔 최저생계비가 보장되면 공공성을 갖춘 것이지요. 교육과 의료를 둘러싼 논란도 결국은 공공성에 초점이 맞춰집니다. 서비스산업에서의 국제수지 적자가 상당한 상황입니다. 서비스산업은 내수를 진작시키고 고용 유발 효과도 상대적으로 큽니다. 패널들은 어떤 의견을 갖고 있습니까?

    강성원 의료기술 측면에서 한국의 의료서비스 수준은 상당히 높습니다. 이윤이 상당히 높기 때문에 의료 부문에 최고의 인재가 몰리고 있습니다. 상당 부분 선진화가 진행돼 있다는 얘기죠. 지금보다 더 선진화해야 한다는 얘기는 받아들이기 어려운 면이 있습니다. 구체적으로 말하면 한국의 보험진료 비중이 2004년 기준으로 62%입니다. 선진국에서 공공진료 부분은 70% 정도를 차지합니다. 한국의 병원이 선진국 병원보다 영리를 취하는 데 유리한 구조라고 볼 수 있는지요. 영리부분과 비영리부분이 공존하는 미국의 경우에도 비영리 병원의 비중이 상당히 큽니다. 따라서 영리부분을 도입한다고 해서 비영리부분이 완전히 구축(驅逐)되는 상황은 일어나지 않을 것 같습니다.

    또 다른 논란은 의료보험당연지정제와 관련한 것입니다. 이 부분에서 중요한 것은 서비스의 가격을 공급자(병원)가 책정할 수 있느냐, 그렇지 않으냐가 될 텐데 미국의 경우에도 공급자가 의료서비스 가격을 설정하지는 않습니다. 보험회사가 서비스 가격을 결정합니다. 한국도 당연지정제를 폐지하면 국민건강보험이 적용되지 않는 병원에선 보험회사가 가격을 설정하면 됩니다. 그런데 한국의 보험시장은 과점화돼 있어요. 보험회사 간 경쟁으로 소비자에게 혜택이 돌아가거나 생산성을 높일 여지가 많지 않습니다. 상위 3개사 비중이 50%가 넘거든요. 당연지정제 폐지나 영리법인화가 의료산업의 생산성을 높이는 데 기여할 수 있을지에 대해서도 저는 의문을 갖고 있습니다. 국민건강보험의 장점은 접근성입니다. 접근성에 해를 입히면서 생산성 부분에서도 별로 얻는 게 없는 상황이 되지는 않을까요?

    교육서비스가 중·고등학생의 사교육을 의미하는 것은 물론 아닐 테고요. 그 부분은 굉장히 선진화됐다고 볼 수 있겠죠. 고등교육 부문에서 가장 큰 이슈는 사립대학의 국가 지원과 관련한 것입니다. 국가의 지원을 받지 않고 운영되는 사립대학이 생긴다면 그런 학교에 대해 정부가 감 놓아라, 배 놓아라 할 수는 없습니다. 명문대학 중엔 어느 정도의 고통을 감수하면 그런 방향으로 나아갈 수 있는 곳이 없지 않습니다. 그러나 국가의 지원을 받는 학교는 상황이 조금 다릅니다. 한국의 사립대학 정책이 미국의 주립대학 모델을 좇을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교육여건과 관련한 규제는 강화하되 행정에 대한 규제는 완화해야 합니다. 정부의 지원을 받는 정도에 따라서 규제의 정도를 차등화할 필요도 있습니다.

    옥우석 중진국 함정이라는 말이 자주 거론되는데 경제학자들이 간과하는 부분 중 하나가 갈등 조정(conflict management) 측면입니다. 통합, 소통 같은 용어가 정치적으로만 사용돼서는 안 됩니다.

    의료산업의 선진화엔 원론적으로 동의합니다. 예컨대 프랑스처럼 의료보험의 공공성이 확보된 나라도 외국 의료기관이 들어와 있어요. 비싼 돈을 내고 진료받을 사람은 외국병원에 가서 치료받지요. 외국인이 운영하는 영리병원은 굉장히 비쌉니다. 반면 대부분의 병원에선 의료보험이 진료비를 거의 모두 해결해줍니다. 영리병원과 관련해서 우리가 주의할 게 있습니다. 제가 첫째아이는 프랑스에서 낳고 둘째는 한국에서 낳았습니다. 첫째아이를 갖고 아내와 병원에 갔을 때 처음 들은 말은 “축하합니다”였어요. 그런데 둘째아이를 갖고 병원에 가서 처음 들은 말은 “이런저런 병에 걸릴 수 있으니 검사받으라”는 거였어요. 영리를 허용했을 때 지금 우리나라 병원의 윤리의식 수준으로는 굉장히 파괴적인 어떤 위험이 나타날 수 있다고 생각해요. 그런 부분에 대해서 우리가 어떻게 조정해나가느냐가 중요합니다. 농담처럼 제 사례를 말씀드렸지만 그런 사례는 우리가 실질적으로 부딪치는 부분입니다.

    교육 부문은 두 가지 측면에서 사회적 이슈가 되고 있어요. 첫 번째가 사교육 문제입니다. 줄곧 하는 생각이 뭐냐 하면, 우리가 사교육을 줄인다면서 문제에 굉장히 잘못 접근하고 있는 게 아닌가 하는 겁니다. 사교육은 입시제도 때문에 발생하는 문제가 아니에요. 입시제도를 백번 뜯어고쳐도 사교육은 제도보다 더 빨리 발달합니다. 핵심은 교육과 노동시장 사이의 연결고리에 있습니다. 한국에선 대학에서 무엇을 배웠느냐가 중요한 게 아니라 어느 대학을 나왔느냐가 중요하지요. 미국에 유학 가서 양질의 교육을 받은 덕분에 성공하는 것이 아니라 미국에서 공부했으니 영어가 능숙하고 또 좋은 학교를 졸업했다고 여겨지기에 성공하는 겁니다. 그렇다면 이런 부분에 대해 우리가 어떻게 접근해야 할까요. 대학이 먼저 바뀌어야 합니다. 입학하면 저절로 졸업이 보장되는 시스템을 뜯어고쳐야 해요. 또 학벌로 상징되는 대학의 독과점 구조를 해체하는 방향도 생각해볼 때입니다. 두 번째 이슈는 대학의 경쟁력입니다. 모든 경쟁엔 목적함수가 있습니다. 기업의 목적함수는 이윤입니다. 그런데 대학은 이윤을 추구하는 곳이 아니에요. 그렇다면 대학의 목적함수가 뭘까요? 평판 아닐까요? 다른 교수님들도 인정하실 거라고 생각하는데 대학들은 그러한 목표를 이루기 위해 좋은 학생을 뽑는 데 역량을 집중하게 마련입니다. 그런데 대학들이 좋은 학생을 뽑기 위해서 좋은 건물을 짓는 데만 몰두하는 모양입니다. 그러다 보면 등록금이 큰 폭으로 인상될 수밖에 없죠. 등록금이 올라가는 속도가 너무 빠르고 이런 상황이 계속되면 교육을 통한 계급 상승이 어려워집니다. 바로잡아야 해요.

    경제정책, 이렇게 가야 한다

    강성진 현 정부가 다양한 경제정책을 내놓았습니다. 도대체 이뤄진 게 뭐냐는 비판도 있습니다. 앞으로 무엇을 하느냐가 숙제인 것 같습니다. 끝으로 경제정책에 대한 날카로운 제언을 부탁드리겠습니다.

    강성원 두 가지만 말씀드리겠습니다. 우선 한국이 선진국 것을 베껴서 성장하는 시기는 지나간 것 같습니다. 스스로 부가가치를 창출해서 성장의 동력으로 삼아야 합니다. 혁신에 대한 수요가 커졌다는 얘기죠. 그러려면 혁신을 강제하는 수단과 혁신에 대한 인센티브가 필요합니다. 혁신을 강제하는 부분은 지난 10년간 공정거래법이 상당히 강화됐고, 무역개방도 폭넓게 추진됐기 때문에 어느 정도 이뤄지고 있다고 봅니다. 혁신의 수혜를 누리게 하는 부분에 대한 정부의 정책적 관심이 필요합니다. 하도급 시스템 정비도 중요합니다. 중소기업의 3분의1가량이 하도급 일을 합니다. 대기업과 1차벤더의 관계는 안정화하고 있는데, 1차벤더 이하로 내려가면 엉망입니다. 상위업체가 돈 떼먹고 도망가는 일도 비일비재하게 일어납니다. 지적재산권 부분도 가다듬어야 해요. 소프트웨어산업이 지적재산권 문제 때문에 고전하고 있습니다. 제조업도 예외는 아니고요. 동대문 의류상가가 한때 상당히 가능성 있는 섹터로 성장하다가 정체된 것도 지적재산권 때문입니다. 새로 디자인한 옷을 아침에 걸어놓으면 저녁에 다른 매장이 그 디자인을 그대로 베껴 만든 옷을 진열합니다. 그러면 누가 디자인을 하겠습니까? 결국 싼 옷을 수입해서 판매하는 구조가 정착됐습니다. 지적재산권과 하도급 부분은 분쟁이 잦습니다. 따라서 적은 비용으로 분쟁을 해결할 수 있는 구조가 요구되는데 그러려면 법률서비스의 공급을 늘려야 합니다. 법률가들이 기득권 지키려고 법률서비스 공급을 제한하고 있어요. 법률서비스 증대와 관련한 정책적 고려도 반드시 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송홍선 녹색성장은 향후 60년을 내다보는 장기 발전전략입니다. 장기적 플랜이 필요합니다. 녹색성장이 정부가 개입하는 비즈니스다 보니 보조금을 나눠줘야 하는 상황입니다. 누구한테 어떤 방식으로 줄 것인가에 대해 깊이 고민해야 해요. IT버블이 투자자들의 신뢰를 깎아 먹은 일이 있습니다. 금융의 힘은 투자자로부터 나온다는 사실을 명심하고, 장기적으로 생각하고, 설계하고, 실행하는 게 중요합니다.

    옥우석 중소기업은 성장뿐 아니라 분배에서도 중요합니다. 사회안전망을 확대해야 하겠지만 확대 폭엔 한계가 있게 마련입니다. 소득격차를 완화하는 데 중소기업이 상당한 역할을 할 수 있어요. 일자리 창출에서도 마찬가지고요. 그런데 이러한 문제에 접근하는 데 있어서 정부의 태도가 애매합니다. 시장을 화두로 던져놓기는 했는데, 시장에 맡겨두자는 건지, 정부가 나서서 뭘 해결하려고 하는 건지, 신호가 굉장히 모호한 경우가 많은 것이죠. ‘친시장적’인 것과 ‘친대기업적’ 혹은 ‘친재벌적’인 것을 혼동하는 경우도 종종 눈에 띕니다. 옳건 그르건 시장에 방점을 찍었으면 시장원리를 올바르게 이해하고 최소한의 일관성을 유지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경제정책은 어떤 성과를 내는지가 가장 중요합니다. 그런데 경제정책이 이념논쟁으로 흐르는 양상입니다. 우리도 이제 이념논쟁을 그만둘 때가 됐다는 생각입니다. 좋은 말씀 나눠준 패널들께 감사드립니다.

    미래전략연구원은 다양한 분야를 포괄하는 전문가·학자 70여 명이 포진해 ▲학제적 연구 ▲실천적 연구 ▲보수와 진보를 아우르는 중도적 연구를 표방하는 네트워크형 민간 싱크탱크다. www.kifs.org



    교육&학술

    댓글 0
    닫기

    매거진동아

    • youtube
    • youtube
    • youtube

    에디터 추천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