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년 5월호

이명박 정권은 이명박-김영삼 동거정권?

  • 송국건│영남일보 서울취재본부장 song@yeongnam.com│

    입력2010-04-28 15:1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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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청와대, 정부, 당, 공기업 곳곳에 YS계 포진
    • 국정철학-핵심정책 이끄는 브레인 역할
    • MB정권 내 YS계, ‘보수진보’로 불려
    • 현철씨 “아버지가 MB 발탁했잖아요”
    • 2012년 대선 구도의 PK 변수로 부상?
    이명박 정권은 이명박-김영삼 동거정권?

    이명박 대통령당선인이 2008년 1월11일 김영삼 전 대통령 팔순연에 참석해 김 전 대통령과 얘기를 나누고 있다.

    “정부 각 부처의 인사 실태를 들여다보고 어이가 없었다. 대구·경북(TK) 출신들이 완전히 씨가 말라 있더라. 인구비례로 보더라도 실·국장급 대구·경북 출신 공무원이 재경부에 달랑 한 명, 국세청에 두 명 남아 있는 게 말이 되느냐. 다른 부처의 사정도 비슷하다. 공무원은 경력 관리가 중요한데 지난 15년 동안 승진이 더디거나, 한직(閑職)을 전전한 사람들은 (각료로) 쓰려야 쓸 수가 없다.”

    2008년 2월25일 출범한 이명박(MB) 정권의 조각(組閣) 과정에서 핵심 역할을 담당했던 대구·경북 출신 인사가 나중에 술회한 말이다. 경북 포항이 고향인 이명박 대통령이 집권 후 대구·경북 출신을 중용하려 했지만 인재풀이 말라 있어 애를 먹었다는 것이다. 그는 “정부에서 대구·경북 인재가 고갈되다시피 한 것은 1993년 김영삼 정부 출범 이후 김대중·노무현 정부를 거친 지난 15년 동안 인사 때마다 부당하게 홀대받은 결과”라고 주장했다.

    “TK정권이 아니라 PK정권”

    이 인사의 설명에 따르면 MB 정권은 대구·경북 출신 고위 공직자 후보를 고르기 어려워지자 대안으로 같은 영남인 부산·경남(PK) 출신을 중용했다고 한다. 부산·경남 출신은 김대중 정권 5년을 제외하고는 김영삼(YS) 정권과 노무현 정권에서 잘 나갔던 만큼 인물도 넉넉했다. 이명박 정부 첫 조각과 정무직 주요인사에서 PK가 워낙 득세하자 당시 대구·경북지역 정치권에선 “MB 정권은 TK 정권이 아니라 PK 정권”이란 푸념까지 나왔다.

    지금도 이 구도는 그대로 유지되는 것으로 평가된다. 청와대의 경우 ‘2실장, 8수석비서관 체제’인데 이 가운데 30%인 정정길 대통령실장(경남 함안), 박형준 정무수석(부산), 박재완 국정기획수석(경남 마산)이 부산·경남 출신이다. 더구나 정 실장과 두 박 수석은 이 대통령을 지근거리에서 보좌하며 국정을 움직이는 핵심 요직에 포진해 있다. 청와대 비서관과 행정관 중에서도 부산·경남 출신으로서 김영삼 정권에 참여했던 인물이 한둘이 아니다.



    국회와 여당 지도부로 넘어가면 일일이 꼽기 어려울 정도로 부산·경남 출신이 득세해 있다. 김형오 국회의장이 경남 고성 출신(지역구는 부산 영도)이고 한나라당 지도부에는 안상수 원내대표(경남 마산·지역구 경기도 의왕-과천), 정의화(부산 중-동구)·허태열 최고위원(부산 북-강서을), 이군현 중앙위의장(경남 통영-고성), 최병국 윤리위원장(울산 남구갑), 안경률 재외국민협력위원장(전 사무총장·부산 해운대-기장을), 여상규 지방자치안전위원장(경남 남해-하동), 김정권 중앙교육원장(경남 김해갑), 김정훈 원내수석부대표(부산 남구갑), 안홍준 제1사무부총장(경남 마산을), 조해진 대변인(경남 밀양-창녕)이 자리를 잡고 있다.

    정치권 부산·경남 출신의 특징은 첫째 YS와 연을 맺고 있다는 점, 둘째 대부분 친이계라는 점, 셋째 그중에서도 이상득(이명박 대통령의 형) 의원 라인보다는 이재오·정두언 라인과 가깝다는 점이다. 예를 들어 부산·경남 출신으로 사무총장을 지낸 안경률 의원은 서울대 철학과 선배인 YS의 오른팔이었던 최형우 전 의원을 통해 정계에 입문했고 친이계이며 그중에서도 친이재오계의 핵심으로 꼽힌다. 정병국 현 사무총장도 상도동에서 YS를 가까이 지켜보며 정치를 배웠다.

    이명박 정권은 이명박-김영삼 동거정권?

    박형준 청와대 정무수석비서관.

    이와 관련해 부산·경남 출신으로 YS의 측근이던 중진 김무성 의원이 친박근혜계에서 파문당하다시피 한 것은 중대한 사건이다. 김무성 의원이 이 대열에 합류한다면 그림이 더욱 분명해지기 때문이다. 김 의원은 2007년 대선후보 경선 때엔 정치적 스승인 YS에게 불려가 ‘MB 지지’를 지시(?) 받았다고 한다. 그때 김 의원은 “각하 제가 친박계에서 넘버 1입니다. 각하의 수하가 어디 가서 배신자 소리를 들어야 되겠습니까”라는 말로 빠져나왔다는 일화가 있다. 친박근혜 진영으로 간 YS계 인사는 1983년 연세대 총학생회장을 지내고 졸업한 뒤 민추협 김영삼 의장의 비서로 정계에 입문하여 언론분석비서를 지낸 이성헌 의원 정도가 꼽힌다.

    “깔려 있는 우리 사람 많다”

    행정부와 공공기관, 관변단체 요직에도 다수의 부산·경남 출신 인사나 YS계 인사가 자리를 잡고 있다. 대부분 ‘부산·경남 출신이면서 동시에 YS계’인데 ‘비(非)PK’지만 김영삼 정권 시절 ‘YS직계’나 ‘범(汎)상도동계’에 속해 권력의 중심에 있던 인물도 꽤 된다. 상도동계 한 인사는 “눈에 드러나는 요직뿐 아니라 잘 보이지 않는 공기업에 깔려 있는 ‘우리 사람’이 상상외로 많다”고 했다.

    이 대통령의 첫 비서실장을 지낸 류우익 주중대사는 김영삼 정권 시절인 1994년부터 1998년까지 대통령자문 정책기획위원회 간사위원을 지내면서 YS와 가까웠다. 4대 권력기관인 국세청을 이끌고 있는 백용호 청장도 김영삼 정권 때 대통령자문 21세기위원회 위원을 지냈다. ‘747 경제공약’을 조율한 이 대통령의 ‘경제 브레인’인 강만수 대통령경제특보는 YS의 경남고 후배로 김영삼 정권 시절 통상산업부와 재정경제원의 차관을 역임하는 등 승승장구했다. 이명박 정권의 ‘차관정치’ 핵심인 이주호 교육과학기술부 제1차관은 김영삼 정권 시절 대통령 직속 교육개혁위원회 전문위원으로서 박세일 서울대 교수와 함께 교육개혁 방안을 마련했고 대통령 직속 노사관계개혁위원회 전문위원도 지냈다.

    김영삼 정권에 이어 이명박 정권에서도 요직에 오른 한 인사는 이 대통령이 YS계를 중용할 수밖에 없는 이유를 이렇게 설명했다.

    “하나는 YS가 이명박 정권의 탄생에 기여했으니 보상을 받는 측면이 있다. 다른 하나는 사상의 공유다. 이 대통령은 ‘경제 살리기’와 ‘선진 세계화’가 국정 철학인데 이 부분에서 YS와 상통하는 구석이 있다. YS가 IMF 외환위기를 불러와 경제를 망쳤다고들 하지만 사실 문민화, 금융실명제, OECD 가입, 최초의 세계화 추진 등을 통해서 한국 경제의 토대를 놓은 측면도 있다. 이 부분에 사상적 공유지점이 있다. 이 대통령의 강만수 중용이 이런 점을 상징하기도 한다.”

    실제로 부산·경남 출신-YS계는 양적으로뿐만 아니라 질적으로도 중도실용노선 등 이명박 정권의 국정철학을 이끌다시피 하고 있고 4대강 사업, 세종시 수정 등 핵심 정책의 추진에서도 선봉에 서 있다.

    “거제 출마 공들이고 있어요”

    이와 관련해 관심을 끄는 인사는 2008년 10월 한나라당의 싱크탱크인 여의도연구소 부소장에 임명된 YS의 차남 현철씨다. 김영삼 정권 시절 ‘소통령’으로 불릴 정도로 권력을 누리다 1997년 한보사태 와중에 검찰에 구속됐던 그는 이후 정치적 재기를 노리기도 했으나 번번이 좌절을 맛봐야 했다. 이 때문에 현재 정가에서는 그가 2012년 총선에서 한나라당 공천을 받는다면 이명박 정권과 YS계의 끈끈한 협력 관계의 화룡점정(畵龍點睛)이 될 것이라는 이야기도 나온다. 현철씨는 기자와 한 통화에서 “이제는 더 이상 늦출 수 없다”고 말해 차기 총선 출마에 강한 의욕을 나타냈다. 다음은 현철씨와의 통화 내용.

    ▼ 이명박 정부에 김영삼 정부 시절 인사가 다수 참여하고 있는데요.

    “10년 만에 정권이 넘어왔으니 그렇겠지요. 아버지와 이 대통령의 근본적인 관계도 작용하지 않았나 생각됩니다. 아버지가 1992년 대선 때 현대건설 사장이던 이 대통령을 영입해 전국구 의원으로 발탁했잖아요. 그때는 현대그룹 정주영 회장이 대선에 출마했었죠. 그 이후에도 여러 인연이 아버지가 지난 대선에서 이 대통령을 돕게 만들었습니다. 이 대통령은 대선 이후 서울시청 멤버를 많이 기용했지만 인재를 구하는 과정에서 문민정부 출신이 자연스럽게 합류했지요.”

    ▼ 김 전 대통령이 이 대통령을 돕는 것은 현철씨의 총선 출마를 염두에 둔 것이란 소문이 있는데요.

    “매번 나오는 말이죠. 아버지 성격을 잘 알지 않습니까. 자식이니까 어쩔 수 없지 않나 하는 생각도 있을 수 있지만 그것 때문에 이 대통령을 돕는 것은 아닙니다.”

    ▼ 다음 총선 때 거제에서 출마합니까?

    “공을 들이고 있어요. 17대와 18대 총선 때도 출마를 시도했다가 뜻을 이루지 못했어요. 이번에는 더 이상 늦출 수 없다는 생각입니다.”

    이명박 정권은 이명박-김영삼 동거정권?

    김영삼 전 대통령의 차남 김현철 한나라당 여의도연구소 부소장.

    현재 공기업에 진출해 있는 현철씨의 측근은 “박형준 정무수석이 YS계의 영입에 큰 역할을 하고 있다”고 했다. 다음은 이 측근의 설명이다. “이 대통령이 자연스럽게 우리 ‘보수진보’(그는 YS세력을 이렇게 표현했다)를 쓰고 있다. 이 대통령으로서는 이전의 전두환·노태우 정권은 극우세력이니 거리감이 있지 않겠나.”

    김영삼 전 대통령은 이명박 정권을 엄호하는 데 적극적이다. 이 대통령이 역점을 두고 추진 중인 세종시 수정도 마찬가지다. 김 전 대통령은 “정부를 절반 이상 쪼개어 이전한다는 것은 국가 안위에 관한 중요한 정책이 아닐 수 없다”고 이 대통령의 손을 번쩍 들어주면서 ‘국민투표에 의한 해결’이란 해법까지 제시했다.

    김 전 대통령은 “내가 국회의원 9선을 하는 동안 이런 국회는 본 적도 없고 이런 정치인도 처음 본다”면서 박근혜 전 대표를 정조준하기도 했다. 국민투표 방식을 훈수하면서는 “박정희 대통령은 집권 18년 동안 자신의 장기집권 등을 위해 네 번이나 국민투표를 악용했지만 세종시 문제는 전혀 다른 차원의 것”이라고 했다. 또 지난 연말 야당의 4대강 예산 삭감투쟁으로 여·야가 격하게 대치하자 “하늘 아래 이런 국회가 있느냐”며 야당을 강도 높게 비판했다. 지난해 고(故) 김대중 전 대통령이 현 정권을 겨냥해 ‘독재’라는 표현을 써가며 공격하자 “나라와 국민은 안중에도 없고 틈만 나면 평생 해오던 요설로 국민을 선동하는 것을 더 이상 묵과해서는 안 된다. 김대중씨는 이제 자신의 입을 닫아야 한다”고 말하는 등 이 대통령을 적극 엄호했다.

    이 대통령과 김 전 대통령 사이의 밀월이 깨질 뻔한 위기도 있었다. 2008년 18대 총선 한나라당 공천파동 때였다. 당시 부산·경남을 중심으로 상당수 YS계 의원이 재공천을 받지 못했다. 그러자 김 전 대통령은 3월18일 경성대 특강에서 “민의를 전혀 존중하지 않은 공천이기 때문에 솔직히 저는 아주 실패한 공천, 잘못한 공천이라고 생각한다”고 했다.

    특히 측근인 김무성 의원이 낙천한 데 대해 “국민이 지지하느냐, 국회의원 생활에서 공로가 있는가를 고려하지 않고 (당 실세가) 멋대로 제일 좋아하는 사람을 공천해버렸다”고 독설을 퍼부었다. 다음날 김무성 의원의 부산 선거사무실을 찾아 격려하면서 “경쟁자보다 여론조사에서 7배나 앞서는 김 의원을 낙천시킨 한나라당 공천은 공천도 아니다. 김 의원을 압도적 다수로 당선시켜 한나라당의 버르장머리를 고쳐줘야 한다”고 직격탄을 날렸다.

    그러자 정가에선 YS가 공천파동을 계기로 이 대통령과 결별하고 박근혜 전 대표에게 기우는 것 아니냐는 전망이 나왔지만 이후 YS와 이 대통령 측의 갈등은 해소국면을 맞았다. 한 정치평론가는 “앞으로 YS가 박 전 대표의 손을 들어주는 일은 결코 없을 것 같다. YS는 체질적으로 박정희 전 대통령을 ‘독재자’로 규정하고 싫어하기 때문에 그의 딸에게도 마찬가지”라고 했다.

    PK정치 부활의 인큐베이터

    이 대통령 입장에서도 김 전 대통령에게 신세를 진 측면이 분명히 있다고 한다. 무엇보다 2007년 대선후보 경선 때 YS는 상도동계 출신 측근 정치인들을 일일이 불러 “이번에 박근혜는 안 된다. 이명박이 된다”며 MB 캠프로 갈 것을 권유해 실제로 여러 사람을 박근혜 후보 캠프에서 빼 와 이명박 후보 진영으로 보냈다고 한다. 이 대통령 집권 후 국정의 고비 때마다 YS가 나서서 한 마디씩 지원사격을 해주고 있다. 가끔은 박 전 대표도 겨냥하니 친이계로선 든든한 원군이다. 이 대통령과 김 전 대통령은 기독교 장로라는 공통점도 있다.

    물론 노련한 정치인인 YS가 MB를 적극 지원하는 데는 이유가 있다고 봐야 한다. ‘이명박 정권을 통한 PK정치의 복원’이라는 원모심려(遠謀深慮·원대한 꿈과 깊은 생각)도 없지 않은 듯싶다. 이렇게 된다면 현재의 이명박 정권은 PK정치의 화려한 부활을 위한 ‘인큐베이터’ 구실을 하고 있는 셈이다. 정치권 일각에서는 이러한 점이 2012년 대선구도에서 PK변수의 부상으로 이어질지에 관심을 보이고 있다.

    민주당 송영길 최고위원은 4월6일 국회 교섭단체 대표연설에서 “이명박 정권은 제2의 김영삼 정권이 되어가고 있다”고 힐난했다. 정치적인 측면이 아니라 경제문제를 거론하면서 나온 지적이지만 시사하는 바가 없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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